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7
17
두각을 드러내다 (1)
“신입생 대표, 릭 체들턴. 앞으로.”
사회자의 말에 체들턴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선서. 진리의 숭배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는 바…….”
체들턴의 말에 따라 마법 아카데미 신입생들이 선서문을 제창했다.
신입생들뿐만 아니라 재학생, 아카데미의 교직원들 모두 체들턴을 주목했다.
마탑에서 체들턴이라는 이름은 그만큼 영향력이 있었다.
체들턴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다.
어딜 가든 항상 겪어 오던 일.
그는 주목을 받는 것이 그리 새롭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이런 상황은 당연하기까지 했다.
그런 체들턴을 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한 명.
‘릭 체들턴.’
엘런은 자기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릭 체들턴.
그는 명문 마법사 가문인 체들턴가에서도 치켜세울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물이었다.
가문은 그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그는 아카데미에 입학하기도 전에 이미 최상급 엘릭서를 몇 병이나 마셨다.
수석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한 후에도 그의 성공 가도는 멈추지 않았고, 체들턴 가문을 공작가로 올리기까지 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 재능만큼이나 그의 성격은 지독한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는 전형적인 귀족이었다.
아카데미 시절 그는 평민 학생들을 벌레처럼 취급했다.
아카데미 교직원들도 체들턴가의 눈 밖에 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를 제지할 방법은 없었다.
그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카데미에서 쫓겨난 학생만 해도 한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었다.
그는 특히 엘런을 싫어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노력충’.
일말의 재능도 없는 벌레가 노력이랍시고 꿈틀거리는 것을 극도로 혐오했다.
엘런이 교실 구석에서 홀로 마법 이론서를 보고 있을 때면 그 책에 파이어볼을 쏘며 엘런을 조롱했다.
하지만 재능이며 돈이며 가문에서까지 그 어떤 것이라도 내세울 것이 없는 엘런은 그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 다른 책을 꺼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체들턴은 엘런을 일부러 아카데미에서 쫓아내지 않으며 점점 멀어지는 격차를 통해 열등감을 심어 주었다.
“……선서합니다. 신입생 대표, 릭 체들턴.”
체들턴의 선서를 끝으로 엘런의 회상이 멈췄다.
하지만 입학식이 끝날 때까지도 엘런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 * *
입학식 이후 신입생들의 아카데미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학생들은 각종 강의를 들어야 했다.
마법 이론과 마탑의 역사.
고대어와 같은 마법 관련 과목.
마법사 윤리와 예절과 같은 교양 과목.
그리고 마나 수집과 마법의 사용과 같은 실기 과목을 수강했다.
“마법의 발현의 조건은 세 가지다. 의지와 마나의 운용, 그리고 주문의 영창이지.”
아카데미의 교사 라타드가 검은 벽면에 마법을 이용해 글자를 써 내려갔다.
“의지가 강할수록 발현되는 마법의 힘이 강력해지지. 드래곤의 용언이라는 것은 이 의지만으로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의 말에 학생들이 종이에 필기를 하기 시작했다.
학생들 중 체들턴, 레오나드, 엘런 이 세 명만이 종이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있었다.
라타드는 체들턴에게 눈길도 보내지 않은 채 레오나드를 향해 말했다.
체들턴이 수업 중에 교실을 박차고 나가더라도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굳이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었다.
“레오나드, 마나 운용의 원리와 주문의 영창을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도록.”
라타드의 말에 레오나드는 깜짝 놀라며 일어섰다.
“예? 예!”
당연하게도 레오나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수업에 집중하도록 해라.”
“예. 죄송합니다.”
레오나드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의자에 앉았다.
이어서 라타드는 엘런에게 시선을 향했다.
“엘런, 너는 설명할 수 있나?”
“마법을 발현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해당 마법의 수식을 사용하게 되는데, 이때 체내에서 마나가 움직이게 됩니다. 이 수식이 정확할수록, 또는 마나 친화력이 높을수록 효율적인 마나 운용이 가능하고, 그것이 마법의 효과를 극대화시킵니다. 또한 체내에 저장된 마나는 각자 고유한 특성을 지니게 되는데, 이 특성 있는 마나를 현실 세계에 구현시키기 위해 매개체로서 주문을 영창합니다. 이 역시 마나 친화력이 높을수록 주문의 길이를 줄여서 효율적인 마법 사용이 가능합니다.”
마치 교과서를 눈앞에 두고 설명하는 것 같았다.
주위에 있는 학생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엘런의 설명에 놀란 것은 라타드도 마찬가지였다.
아직 기초 이론도 배우지 못한 1학년 신입생의 입에서 이토록 구체적인 마법 구현의 원리를 들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구나.”
짝짝짝!
라타드의 말에 학생들은 박수를 쳤다.
“저 녀석 제법이잖아?”
“난 뭐라고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도 못했어.”
“레오나드랑은 완전 다르잖아?”
학생들의 반응에도 엘런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의자에 앉았다.
‘훨씬 복잡한 마법의 원리도 완벽히 이해했는데 이런 기본적인 원리조차 이해 못 할까?’
“이것으로 수업을 마치겠다.”
라타드가 수업을 마치자 학생들은 교실 밖으로 우르르 몰려나갔다.
* * *
그 후로도 많은 이론 수업에서 엘런은 두각을 드러냈다.
입학 첫 주는 이론 수업에 중점을 두기 때문에 엘런의 실력은 더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 * *
“잠시 따라오너라.”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 때 라타드가 엘런을 따로 불렀다.
“차라도 마시겠나?”
“괜찮습니다.”
“자네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더군.”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엘런의 태도에 라타드의 표정은 더욱 흥미롭다는 듯 변했다.
“유진의 제자라고 하더군. 이런 것이 큰 실례라는 것을 알지만 자네와 같은 재능은 그런 자의 제자로 있기에는 너무나 아까워. 마법에 대한 이해, 수식의 계산, 그리고 그에 걸맞은 노력까지! 자네는 마법사가 갖춰야 할 지능과 태도를 모두 가지고 있네. 자네가 원하기만 하면 내가 어떻게든 자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내 제자로 들이고 싶어.”
그의 말에 엘런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라타드와 같은 마법사에게 이런 극찬을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하지만 엘런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자네는 최고의 마법사가 될 재목이야. 자네만 원한다면 졸업 학기에 꼭 내 제자로 들이고 싶어.
라타드가 30여 년 전 이 자리에서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였다.
-아직 1학년이지만 반드시 열심히 해서 선생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하늘을 나는 것 같은 기분으로 대답하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엘런, 노력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어.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아. 미안하네.
그 이후로 라타드와는 어떠한 교류도 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원망보다는 자신의 참담한 재능 때문에 화가 났었다.
자신을 보는 라타드의 안쓰러운 눈빛이 자신을 너무나도 힘들게 했었다.
“죄송합니다. 스승님께서 제 학비까지 지원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잊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엘런은 최대한 정중하게 말했다.
“사람으로서의 도리까지 되어 있구먼. 알겠네. 이런 이야기를 해서 미안하네.”
라타드는 엘런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는 마법사로서는 드물게 편협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아닙니다. 선생님 같은 분에게 극찬을 받은 것만으로도 저는 기쁩니다. 앞으로 그 칭찬에 걸맞은 마법사가 되겠습니다.”
“기대하겠네.”
달칵.
“후우.”
방문을 닫고 나온 엘런은 다시 한 번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야, 너 적당히 나대.”
갑작스럽게 옆에서 들려온 말에 엘런은 눈살을 찌푸렸다.
굳이 얼굴을 보지 않더라도 그 목소리의 주인을 알 수 있었다.
“레오나드, 뭐가 그렇게 불만이지?”
엘런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잔뜩 얼굴을 구기고 있는 레오나드가 서 있었다.
“이론 좀 안다고 잘난 척하나 본데? 그러다가 한순간에 가는 수가 있어.”
“네 까짓 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엘런은 레오나드의 어깨를 툭 치며 지나갔다.
레오나드는 엘런에게서 느껴지는 왠지 모를 위압감에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빠드득!
엘런이 지나가고 나서야 겨우 이를 갈 수 있었던 레오나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