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77
177
토벌대 (2)
* * *
“전방에 아라카 성이 보입니다.”
척후병 하나가 부대를 향해 뛰어오며 외쳤다.
그 소리에 토마르군의 얼굴에 활기가 찾아왔다.
‘드디어 도착한 건가.’
그 소리가 반가운 것은 엘런도 마찬가지였다.
케롤을 떠난 군대가 아라카 지방까지 가는 데까지는 생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넉넉잡아 일주일을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근 2주가 걸려서야 아라카로 도착할 수 있었다.
거의 2배 가까운 시간이 더 걸린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이자들이 의욕만 넘치는 오합지졸인지 몰랐던 게 문제였던 게지.
엘런의 소리 없는 불평에 대답해 준 것은 프로뱅밖에 없었다.
출정할 때만큼은 라뷔에의 연설로 의욕을 가득 충전했던 그들은, 케롤 성문 밖을 나서자마자 그 실체를 드러내고 말았다.
프로뱅의 말대로 토마르군은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오합지졸들이었다.
‘병사도 병사 나름이지만, 제대로 된 지휘관도 없었으니 말입니다.’
병사들이 전투 경험이 없다면, 적어도 기사라고 하는 지휘관들이 적절한 명령을 내려 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지휘관 역시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임은 마찬가지였다.
서부 대륙에는 에레네스라는 강력한 국가 때문에 큰 전쟁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동부 대륙에서는 귀족 간의 세력 다툼이 매우 흔했다.
오죽하면, 파티 중에 자신의 가문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전쟁을 벌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그러나 서부 대륙에서는 에레네의 이름으로 모든 것이 신관의 중재로써 마무리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쟁이 일어나려야 일어날 수가 없는 구조였다.
또, 당연하게도 전쟁에 관해서 무지한 이들도 대다수였던 것이다.
이들에게는 기본적인 숙영지 편성을 바라는 것조차 지나친 사치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지 않으면, 매끄럽게 진행되는 일이 없었다.
그나마도 몬스터를 토벌하러 다닌 경험이 있는 크루세이더들이나 신관들이 없었더라면, 아라카까지 오는 시간은 이것보다 훨씬 더 걸렸을 것이다.
-그래도 말이다, 저 크루세이더나 신관이라는 녀석들은 대단하긴 하더군.
‘이들에게 정규화된 군이 거의 필요 없게 된 이유가 바로 그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아라카로 오는 길에 몬스터 무리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렇게 큰 규모는 아니었고, 요즘 들어 무리를 지어 다닌다는 몬스터 군단의 일부분인 것 같았다.
토마르군 정도의 숫자라면 고전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토마르 진영은 몬스터 무리를 보자마자 혼란스러워했다.
전술적으로 짜여 있는 동선에 맞게 움직여야 할 병사들은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궁수들은 긴장한 탓에 조준 사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달려드는 몬스터로부터 진영을 지키는 방패병들 역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결국, 몬스터 몇 마리가 방패에 들러붙자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순식간에 전열이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백병전을 해도 숫자가 워낙 많아 토마르군이 이기는 것은 맞겠지만, 전열이 무너진 상태로 싸우는 것은 큰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에 가장 피해야 할 일이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엘런이 혀를 차며 나서려는 순간 크루세이더와 신관들이 나섰다.
그들은 고작 수십에 불과한 숫자였다.
그러나 신성력이라는 미지의 힘으로 중무장한 그들은 대다수의 병사보다 훨씬 더 강력한 무위를 보여 주었다.
크루세이더들은 신성력을 두른 검으로 몬스터들을 베어 넘겼다.
신관들은 축복을 통해 그들의 힘을 강화해 주거나, 신성 마법을 통해 그들을 지원했다.
거기에 엘런까지 가세하자 지금까지의 고전이 거짓말인 것처럼 금방 정리되었다.
-하긴 그들 한 명, 한 명은 오히려 동부 대륙의 기사나 마법사보다도 강한 것 같더구나.
한때 동부 대륙의 마법사였던 프로뱅조차도 그 차이를 인정할 만큼 그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역설적으로 그들이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진 탓에, 이따금씩 일어나는 몬스터와의 충돌에서도 일반 병사들이 경험을 쌓을 일이 없기도 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도착을 했군.”
엘런은 군대가 아라카 성문 앞에 도착하자 허탈해진 듯 툭 내뱉었다.
“예상보다 더 늦게 도착하게 되었소. 그러나 이 시간에라도 도착한 것은 모두 베리 경 덕분이오.”
“베리 경이 아니었다면, 그자가 말한 기간을 맞출 수 있었을지조차도 의문이오.”
“그대의 힘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판톤을 비롯한 크루세이더들이 엘런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들의 말대로 이번 원정에서 엘런의 역할이 지대했다.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그가 보여 준 것만 해도 그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했다.
엘런은 신관들과 괜한 분쟁을 피하기 위해 마법은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비약을 통해 한층 더 강해진 정령술로서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확실히 정령계로 갔다 온 후에 제피로스나 이시르는 훨씬 더 강력해져 있었다.
그러나 엘런이 돋보인 곳은 전투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병사들의 숙영지 편성이나 취사와 같은 아주 기초적인 분야에서 진정으로 빛났다.
크루세이더들도 이 정도의 대규모 군대를 이끌어 본 적이 거의 없기에, 부대 운영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자 하는 수 없이 엘런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용병 시절부터 마법 부대 장교로서 있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그들을 지휘했다.
그러자 처음에는 기사라고는 해도 별 신경도 쓰지 않던 신관들이나 크루세이더들이 갑자기 친한 척을 해 대기 시작한 것이다.
“경들의 무위 덕분이니 너무 나를 띄워 주지 않았으면 하오. 그럼 판톤 경, 아라카로 입성을 명하는 게 어떻겠소?”
엘런의 말에 판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찌 되었든 성문 앞까지 무사히 도착했으니, 이제는 위풍당당하게 입성할 차례였다.
그는 병사들 앞에 서서는 목을 가다듬었다.
“제군들 모두 수고 많았다. 이제 우리는 아라카로 입성할 것이다. 몬스터들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을 성의 주민들은 우리를 매우 반길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은 동요하지 말라. 그저 정면만 바라보며 위풍당당하게 전진하면 될 것이다.”
판톤이 그렇게 말한 것은 경험이 없는 병사들의 무단 행동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첫 입성은 그 도시에 머물 군대의 첫인상을 결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게다가 입성이라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니 그 중요성은 더욱 부각되었다.
“그럼 입성한다.”
그의 명령에 따라 토마르군은 아라카 성으로 입성했다.
미리 보내 놓았던 전령 덕에 그들의 진군에 맞춰 아라카의 커다란 성문이 열렸다.
이제는 아라카 주민들의 열혈한 환호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차례였다.
꽃다발을 든 소년, 소녀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그 주위로는 주민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질 것이다.
‘……없다?’
그것은 엘런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모두 비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성문 양옆으로 길게 이어진 주민들을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몬스터들 때문에 하루하루를 공포 속에 살아가던 그들을 구원하러 온 것이 아니던가.
그러나 성 내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화로운 것 같았다.
몇몇 주민이 성문 옆을 지나가다 그들을 보고는 인사를 하는 게 전부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꽃잎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다.
그것 말고도 이리저리 찍혀 있는 발자국들이 많은 주민이 이곳에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
마치 얼마 전에 입성 환대를 한 것 같은 상태였다.
“판톤 경, 이̠어떻게 된 것이오?”
엘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판톤에게 물었다.
그는 구원군이 왔는데 이토록 고요한 적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설마…….”
그러나 판톤에게는 짐작 가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그의 불안감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였다.
“토마르에서 지원군을 보내다니,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가 없소. 반갑소. 나는 에레네스의 신관 도란이오.”
화려한 사제복을 입은 자들이 그들을 반기며 나타난 것이다.
‘선수를 빼앗긴 건가.’
다른 누구보다도 눈치가 빠른 엘런이었다.
그는 지금의 장면만 보고도 어떤 상황이 일어난 것인지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토마르 군의 총사령관 판톤이오. 에레네스의 신관께서 여기는 어쩐 일입니까?”
판톤의 퉁명스러운 반응은 엘런의 예상이 맞았음을 증명했다.
그러나 상대도 만만치는 않았다.
“아라카의 신관에게서 들었소. 몬스터들을 끌고 온 웬 남자가 키에아스의 5대 성유물을 노린다고 하더군. 그런데 에레네스에서 나서지 않고 있을 수가 있겠소?”
“물론 그가 교황청에 지원군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소. 그러나 그대들이 이토록 일찍 도착할 줄은 몰랐던 것이오.”
토마르 군이 그토록 서둘렀던 것도 다 이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던가.
“얼마 전 보고서에 요즘 들어 일어나는 몬스터 대란 뒤에 배후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교황께서도 그 의견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셨소. 그래서 선발대로 우리를 먼저 아라카로 보낸 것이오. 교황의 은총에 감사를 드려도 좋소.”
판톤은 크루세이더임에도 불구하고 교황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교황의 명에 따라 급하게 선발대를 꾸리느라 인원이 충분하지 않았소. 그런데 토마르 군이 때마침 당도해 주니 이것이 에레네의 축복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오.”
‘교황의 지시인가? 그렇다면 교황도 여간내기가 아니군.’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모두의 환호를 받으며 아라카에 입성해야 했다.
그러나 에레네스에서 먼저 입성함으로써 토마르군은 그저 증원군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이거 밥그릇이 뺏길 수도 있겠는데.’
엘런은 잘못하면 전투는 토마르군이 다 하고 공은 에레네스가 가져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목적은 릭을 사로잡는 것이기는 했으나, 이왕 라뷔에를 도와주기로 한 만큼 그에게 가장 유리한 결과를 가져다주고 싶었다.
“병사들이 먼 길을 오느라 지쳤소. 일단 그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해 주겠소. 그러고 나서 그다음 이야기를 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소?”
“좋은 생각이오. 신관들이 토마르군에게 은총을 내려 주도록 하겠소.”
판톤은 토마르 군을 병영으로 가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도란과 다른 신관들은 병사들에게 축복을 걸어 주었다.
병사들이 해산하고 나서 그들은 따로 자리를 가졌다.
“이곳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았소. 그대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오.”
그것은 판톤이 한 말이 아니었다.
도란은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그 말을 내뱉고 있었다.
엘런은 주객이 전도되어 버린 이 상황이 혼란스러웠다.
“아니오. 우리는 그저 에레네의 땅을 지키기 위해서 달려온 것일 뿐이오.”
그렇게 말하는 판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그도 자신의 속마음을 말할 수 없는 상황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대도 알다시피 아라카 성 앞은 중요한 곳이 아니오? 그래서 우리는 정찰부터 진행했소.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당장이라도 저 마물들을 몰아내겠다고 다짐했소.”
도란은 판톤이나 엘런의 표정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것들이 지금 성서(聖書)에 나오는 에레네의 땅, 메카를 점령하고 있소. 이것은 하늘 아래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오. 우리가 지휘할 테니 토마르 군의 병력 정보를 넘겨주시오.”
타국의 병력 정보를 넘겨 달라니. 엘런은 그것이야말로 하늘 아래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알겠소.”
그러나 판톤은 순순히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병력 현황을 넘겨주었다.
그것은 완전히 상급 부대의 지휘를 받는 하급 부대의 모습이었다.
“음, 좋은 병력으로 구성되어 있군.”
탁.
그는 병력 현황이 적힌 종이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지도를 가리켰다.
“3일 후, 준비가 끝나는 대로 우리는 메카를 칠 것이오.”
“실례지만 내가 한마디만 해도 되겠소?”
그가 가리킨 곳은 아라카 성 앞에 있는 널따란 평야였다.
그러자 보다 못한 엘런이 나섰다.
“토마르의 지휘관이군. 좋소. 말해 보시오.”
“도란 공이 보여 주신 자료를 보면 몬스터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많은 편이오. 그런데 이들과 굳이 평원에서 싸움을 벌일 필요가 없어 보이오. 그것들과는 성을 끼고 하는 수성전이 훨씬 유리할 거요.”
엘런의 말이 있던 직후 회의장의 분위기는 급격히 차가워졌다.
이시르의 힘을 사용하더라도 이보다 더 공기를 냉각시킬 수 있을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유일하게 표정이 굳지 않은 판톤조차도 그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당신, 지금 메카를 그대로 두자고 하셨소?”
“그렇소. 그것이 더 전황 상으로 더 유리…….”
그러나 엘런의 말은 끝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닥치시오! 더는 그 불경한 입을 열지 마시오.”
도란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3일 후, 메카를 공격할 것이오. 그러니 공도 그렇게 알고 있으시오.”
쾅!
도란은 종이를 내던지고는 문을 세차게 닫으며 나가 버렸다.
“크흠…….”
다른 신관들도 곤란한 표정을 하며 그의 뒤를 따라갔다.
몇몇은 엘런에게 대놓고 경멸하는 눈빛을 보이기도 했다.
군사 회의는 그렇게 엘런의 한마디로 끝이 나 버렸다.
그 상황에 당황하고 있던 엘런에게 판톤이 다가왔다.
“베리 경, 잠깐 나 좀 보시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