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80
180
최후의 전사들 (2)
* * *
여기저기서 튀어 오른 흙더미는 단순히 흙먼지뿐만 아니라 거대한 진동까지도 몰고 왔다.
순식간에 발밑이 기울어지거나 사라지자 에레네스의 신관들은 균형을 잃어버렸다.
엘런은 곧바로 레비테이션을 사용한 덕분에 그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이번에는 또 뭐야?”
그는 공중에 뜬 채로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호크아이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피어오른 흙먼지가 무척 심했기에 지상의 상황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가?”
“영역의 봉은 어떻게 됐어?”
“영역의 봉부터 사수해!”
한편, 흙먼지 내부의 상황은 상공과는 달리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들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어으아, 내 팔이 사라졌어.”
“끄아아악!”
“살려 줘, 살려 주세요, 제발.”
그러나 소리로만 들어도 처참한 병사들의 비명이 그들의 고함을 덮었다.
“이건 병사들의 소리가 아닌가?”
“최후의 전사들이 해제된 것 같습니다. 병사들이 모두 이성을 찾고 고통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이제 병사들의 눈에는 초점이 잡혀 있었다.
그 대신에 고통과 절규가 그들의 눈동자를 가득 채웠다. 자신의 팔이나 다리가 허전한 것을 깨닫고 그것을 확인하고 나서부터 그들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들이 기어간 자리에는 아직도 김이 나는 붉은색의 피가 흥건했다.
“그럴 리가! 그렇다면…….”
도란은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병사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영역의 봉이 꽂혀 있던 자리부터 찾았다.
‘최후의 전사들’은 마족으로부터 에레네가 있는 천상을 지키는 전사들의 전승에서 따온 마법이었다.
그들은 사지가 모두 절단되고 의식을 잃으면서까지도 마족으로부터 천상을 지켰다.
그 때문에 이 마법이 발동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바로 에레네가 있는 천상이다.
그러나 이곳은 중간계였다. 애초에 천상이라는 곳을 중간계에서 찾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최후의 전사들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조건이 실현 불가능한 탓에 점차 잊혀 가는 신성 마법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마법에 대해 연구를 하던 신학자 하나가 천상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물질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천상에 있는 신전의 기둥 일부를 깎아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영역의 봉이었다.
그 특징 덕분에 영역의 봉이 꽂혀 있는 곳은 어디든지 천상의 일부를 재현해 낼 수 있었다.
이 봉 덕분에 소멸할 위기에 처했던 [최후의 전사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많은 준비 작업이 필요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도란이 메카를 공격하기 전 일주일 동안 준비를 한 것도 바로 이 봉을 발동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영역의 봉이 쓰러졌다는 것인가.’
영역의 봉은 에레네스가 가진 성유물 중 하나였다.
그것이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갔다고 한다면, 자신의 목숨과 바꿔서라도 그것을 찾아내야만 했다.
‘그자가 마법을 사용하기라도 한 것인가?’
그것은 아니었다.
엘런은 분명 마법을 사용하기 직전의 상태였던 것은 맞다. 그러나 그는 갑자기 흙더미가 솟아오르는 순간, 엘런이 급히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것은 흙더미의 등장을 전혀 의도하지 않은 자의 모습이었다.
‘아니, 지금은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일단 봉의 행방부터 찾아야 한다. 이유를 확인하는 것은 그다음이다.’
도란은 허리에 차고 있던 은색 봉을 휘둘렀다.
그러자 먼지가 조금은 걷히는 것 같았다. 애초에 워낙 많은 먼지가 피어올라 전부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가 앞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젠장.”
그것은 항상 에레네의 사도로서 언행에 주의를 기하던 도란에게서는 듣기 힘든 단어였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본다면, 그런 그의 언행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영역의 봉 주위로 몬스터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저들이 어떻게 여기에.’
몬스터들은 진영의 최전방에서 최후의 전사가 된 토마르 군과 싸우고 있어야 했다.
물론, 백병전이었던 만큼 혼란 속에서 진영 깊숙이 들어오는 몬스터들이 일부 있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도란은 저토록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영역의 봉 주위에 있는 건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조금만 옆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는 현재까지 벌어진 모든 상황이 납득이 되었다.
“데스웜.”
몸통 길이만 50미터에 달하는 그 녀석은 땅굴을 파고 다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사람이나 동물을 잡아먹는 몬스터다.
여기까지가 널리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저곳에 있는 데스웜은 상식에서는 벗어난 행태를 보여 주고 있었다.
땅으로 튀어나온 그 녀석들이 몬스터들을 입 밖으로 토해내고 있는 것이었다.
데스웜의 입속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진영의 뒤쪽에서 토마르군을 공격했다.
도란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몬스터들이 이 정도의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몬스터들이 전략적인 행동을 보인다는 토마르의 보고가 맞았다.
몬스터들의 신체 조건에 지략까지 겸비되니 전략 선택의 폭이 훨씬 넓었다.
그 속에서 도란은 어떤 대처를 해야 할지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그가 고민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마법이 풀린 병사들이나 심지어 신관, 크루세이더들까지도 몬스터의 손에 죽어 나갔다.
‘저기서는 빠른 판단을 내려 줘야지. 총지휘를 내리는 자가 저러고 있으니 상황이 악화될 수밖에.’
그리고 그 아비규환의 모습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자가 있었다.
엘런은 레비테이션으로 공중에 떠 있는 덕분에 먼지가 걷히자 전세를 한눈에 훑을 수 있었다.
최후방에 있던 황금빛 봉이 무너지고 거기서 튀어나온 몬스터 떼거리, 그리고 정면에서 맞붙고 있는 몬스터들. 토마르 군은 지금 앞뒤로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해 있는 형국이었다.
‘이렇게까지 된 상황이면 어쩔 수 없지.’
엘런의 양손에 푸른색 마나가 서렸다.
그의 손이 움직이는 궤적을 따라 마나는 잔상을 남겼다.
‘기가라이데인, 3중첩.’
쿠르릉.
마나가 잠깐 일렁거리더니 그것은 이내 거대한 번개로 바뀌었다.
콰가가가가.
그 수십 개의 번개는 그대로 지상을 향해 내리쳤다.
말 그대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몬스터들은 몸이 새까맣게 탄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 모습은 마치 마지막 계시의 장에 쓰여 있는 최후의 심판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심판이야. 에레네께서 심판을 내리시는 거라고.”
토마르의 한 병사는 그 광경을 넋을 놓고 지켜보며 말했다.
“이것은 계시의 장에 나오는 심판의 장면이 아니던가.”
그 장관은 도란조차도 이성적인 판단을 잃도록 만들었다.
그러던 그의 눈에 번개 사이로 유유히 내려오고 있는 그림자가 보였다.
“정녕, 에레네께서 강림하셨다는 말인가.”
혼자 중얼거리던 그는 그 그림자의 정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잠시나마 에레네로 착각했던 그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엘런이었다.
엘런은 도란의 앞에 사뿐히 착지했다.
“얼른 지휘를 내리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것이오?”
“지금 마법을 사용한 것인가?”
도란의 말에 엘런은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방금까지 도란의 눈에 가득하던 경외심은 엘런의 얼굴을 보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렇소. 그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내가 또 에레네가 만든 세계를 왜곡시킨 것이겠지. 그러나 지금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시오? 어찌 되었든 몬스터에게 도륙당하고 있는 저들을 지켜야 할 것 아니오?”
엘런은 도란에게 폭풍처럼 쏘아붙이고는 몸을 돌려 버렸다.
도란이 그런 그를 붙잡았다.
“마법을 사용하다니. 이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언제까지고 그러고 앉아 있도록 하시오. 나는 마법을 써서라도 이 전투에서 승리해야겠으니까.”
엘런은 경멸스러운 눈으로 도란을 째려보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공의 말대로 방금 내리친 번개는 강력했소. 그러나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몬스터들이 저토록 산개해 있으니 전황을 바꿀 만한 큰 역할을 한 것도 아니지 않소. 그러면서도 신의 질서를 어기기까지 하다니.”
어떻게든 합리화를 시키려는 모습이었다.
엘런은 그런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적어도 공처럼 자존심만으로 앞뒤 없이 전략을 짜는 사람이 아니니.”
“그게 무슨 말이오?”
그의 말에 엘런은 따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 곳만 바라볼 뿐이었다.
두두두두.
그리고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서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 *
‘신호인가?’
판톤은 전장에 내리치는 번개를 보며 생각했다.
‘에블린에서도 보았지만, 저자의 마법은 정말이지 기적과도 다를 바가 없단 말이다.’
올비아 산맥 경계를 살피러 갔다가 우연히 보게 된 엘런의 모습은 여전히 그의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그가 보여 주는 것 역시 신이 일으킨 기적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척.
판톤은 얼른 감상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검을 치켜 들었다.
지금은 감상보다 신호를 받았다는 것에 집중해야 할 때였다.
푸르르.
그가 타고 있던 말이 가볍게 머리를 털었다.
뒷발을 구르는 것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다는 의미처럼 보였다.
“신호가 떨어졌다. 모두 진군할 준비를 해라.”
판톤의 뒤에는 그처럼 말을 타고 있는 병사가 한가득 모여 있었다.
그들 중에는 크루세이더나 기사들도 있었지만, 평민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돌격한다!”
“예.”
판톤의 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윽고 병사들이 그의 뒤를 따라 말고삐를 쥐었다.
다그닥, 다그닥.
전투 시작 전부터 수풀 사이에 숨어 있던 기병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는 100명이 조금 넘는 숫자였다. 그 사이 전장에서는 두 번째 낙뢰 세례가 떨어졌다.
“속도를 올린다.”
판톤의 명령에 그들은 자신들의 말에 박차를 가했다.
“히이이잉!”
두두두두.
100마리의 말이 달리는 소리는 가히 지축을 울린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크기였다.
그들의 눈에 이내 지옥으로 변해 있는 전장이 보였다.
“끔찍하군.”
“우리의 동료들이 저기서 죽어 가고 있는 건가?”
“우리가 저들을 구해야 한다.”
판톤을 비롯한 병사들의 눈에 분노와 함께 의지가 서렸다.
그들은 달리고 있던 말의 속도를 더욱 높였다.
“때맞춰 와 주었군.”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 기마병들을 보자 엘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저들은 대체 무엇이오?”
도란은 갑작스럽게 등장한 기마병들에 대해 의문을 표했다.
“공은 오직 메카를 탈환하겠다는 생각과 저 끔찍한 마법을 사용하겠다는 일념밖에 없었으니, 토마르군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겠지.”
엘런은 도란의 관심이 오로지 그가 말한 준비에만 있다는 것을 알고 일부 병사를 빼돌린 것이었다.
전투 경험이 전무한 서부 대륙인들에게도 큰 장점이 하나 있었다.
그들은 순례 여행이 보편화되어 있다 보니 웬만한 이들이 말을 탈 줄 알았다.
전략을 짜는 것에 있어 기마병의 존재는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 수 있게 해 준다.
엘런은 평원에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게 되면, 그것들의 무게만으로도 방패벽이 쉽게 무너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때문에 몬스터들이 한 점에 집중되지 못하도록 분산시킬 전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따로 기병들을 선출해 판톤에게 지휘권을 맡긴 것이었다.
‘스톤 바디, 200중첩.’
엘런은 달려오는 기병대 한명 한명과 모든 말에 스톤 바디를 사용했다.
신체의 일부를 석화시켜 방어력을 높이는 간단한 1서클의 마법이었다.
두두두두두두두.
그러나 100여 명의 사람과 100여 마리의 말에 모두 스톤 바디가 씌워지니 그 무게감 자체가 달라져 버렸다.
지금 판톤이 이끄는 기병대는 그 운동 에너지만으로도 100톤을 넘는 움직이는 무기가 된 것이다.
‘매직 미사일.’
피이잉.
엘런의 스태프에서 뻗어 나온 빛줄기가 기마병들이 공격해야 할 지점을 지시했다.
“돌격한다.”
그의 지시에 방향을 잡은 판톤과 기마병은 몬스터 무리와 충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