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88
188
수복 (1)
* * *
서부 대륙 연합군은 창설식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
헬라 왕국의 수도 헬리오가 점령된 이 상황에서 그들이 한가로이 출정식이나 벌일 시간은 없었다.
그들은 출정하자마자 빠르게 헬라 왕국부터 수복해 갔다.
연합군은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한 지역이나 성에서 차례차례 승리를 만들어 갔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한 마지막 장소인 수도 헬리오로 향하고 있었다.
그들의 행보는 말 그대로 파죽지세였다.
엘런은 헬리오가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이 있는 곳에서 말을 멈추었다.
“이곳에서 대기한다.”
엘런의 명령과 동시에 모든 부대의 진군이 거의 동시에 멈추었다.
그것은 엘런의 명령이 순식간에 끝자락에 있는 병사들에게까지 전달되었다는 의미였다.
또한, 이들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움직이는지 보여 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각자 병장기를 점검해라. 식사는 일전에 만들어둔 건조식품으로 해결한다. 언제 전투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긴장의 끈은 놓지 말도록.”
곳곳에서 지휘관들이 엘런의 명령을 전했다. 이들도 원래 병사 출신들이었는데, 전투에서 공을 세워 지휘관으로 진급한 자들이었다.
엘런은 공치사를 즉시 그 자리에서 눈에 보이는 결과로 만들어 주었다.
그러자 병사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기 시작했다. 이참에 지휘관으로 승진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기도 했다.
“힘내시게. 이제 헬리오만 되찾으면 되네.”
“그래, 이제 헬라 왕국 수복이 끝나가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연합군은 헬라 병사들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곳에는 헬라 출신의 병사들도 다수 섞여 있었다. 또한 헬라 왕국 수복 과정에서 추가된 병사들도 많았다.
“고맙네 다들. 그래도 이토록 빨리 다시 헬라 땅을 찾게 될 줄은 몰랐네.”
“몬스터들에게 그토록 힘없이 무너진 우리가 부끄러울 지경이라네.”
“그러게나 말일세.”
그들은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인간이 이토록 잘 싸울 수 있는지 몰랐다.
몬스터가 등장했다고만 하면, 도망치기 일쑤였던 과거의 자신들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게 다 지휘관의 중요성 아니겠는가?”
“하긴, 이 모든 전략이 다 베리님의 머릿속에서 나온 거라지?”
그들의 시선이 엘런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말대로 엘런이 지휘하는 연합군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전생 시절부터 포함한다면, 말단 용병으로 시작해서 결국 왕국의 전략관 자리까지 오른 엘런이었다.
그는 경험이 부족한 연합군의 병사들부터 신성력과 신성 마법이라는 낯선 힘을 사용하는 신관들까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전략을 만들어 냈다.
이 모든 것이 모든 계층의 특성을 직접 체험한 엘런이었기에 가능했다.
“이토록 부대를 세분화해서 움직일 수 있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 지인이 정찰대나 기병대에 있는데, 그놈들 말이 부대의 투입 시기나 빠지는 시기, 진행 방향까지 모든 걸 베리 님께서 지시한다고 하더군.”
병력의 분업화와 그럼에도 한 부대와 같은 유기적임의 유지.
것은 엘런이 즐겨 쓰는 방법이기도 했다.
정찰대장 샤를리가 이끄는 정찰대는 여러 부대로 나누어져 광역 감시 마법을 통해, 몬스터들의 위치를 파악했다.
엘런은 그중 몬스터의 수가 가장 적거나 지형적으로 가장 유리한 몇 곳을 선택했다.
그러면 기병대장 토드가 이끄는 기병대가 몬스터들의 전열을 흐트러뜨렸다.
이것은 엘런이 메카 평원 전투에서 사용하던 기병 전술을 조금 변형시킨 것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단순히 말만 탈 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상 전투를 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 덕분에 엘런은 메카 평원 때보다 기병대의 역할을 더욱 늘릴 수 있었다.
좌우에서 갑자기 나타난 기병대가 몬스터 대열의 허리를 끊어 녀석들을 고립시키면, 그다음 차례는 판톤을 필두로 한 보병대의 공격이었다.
그들은 고립당한 몬스터를 사정없이 베어 넘겼다. 그들에게 몬스터는 에레네교를 더럽히는 마물이자 자신의 가족들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의 손속에 자비라는 것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자네가 출정식 때 했던 말대로 그분의 손짓은 정말 엄청나더군.”
헬라의 병사는 엘런과 신관들이 대형 몬스터를 잡아 주던 모습을 떠올렸다.
특히, 엘런은 병사들이 고전하고 있을 때면 어김없이 나타나 대형 몬스터들을 처리해 주었다.
손짓 한 번에 그토록 위협적인 몬스터가 맥없이 쓰러지자, 그들은 오히려 방금 쓰러진 트롤이 약한 것인가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며 병기들을 정비하고 있을 때, 말을 탄 병사 하나가 그들에게 다가왔다.
“파울, 자네 여전히 살아 있었구먼.”
“호오, 이게 누군가. 자네는 보급대에 있어서 죽을 일은 없겠군.”
“몬스터에게 죽을 가능성은 덜 하지만, 일을 하다가 죽을 판국이네.”
파울의 말에 그는 앓는 소리를 해 댔다. 그러자 파울을 비롯한 그들도 안쓰럽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일반적으로 전투병과에 있는 이들은 지원병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직접 피를 흘리며 싸우는 이들의 눈에 지원병은 하는 것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주위에 있던 병사들 중 그 누구도 그의 말에 불만을 품는 이가 없었다.
그들도 보급대의 업무량이 말도 안 될 정도로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런은 무엇보다 보급을 중요시 생각했다.
보급로가 끊긴다면, 당장 이 많은 병사가 싸우기도 전에 굶어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몬스터들이 유격전에 능했기 때문에 보급로가 가장 취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엘런은 한 번에 네 가지 보급로를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전진할 때마다 네 가지 보급로를 서로 얽히게 했다.
“그래서 보급로는 다 연결시키고 온 건가?”
“이번에는 특별히 한 번 더 교차시키라고 말씀하시더군. 덕분에 일이 2배였네.”
엘런의 전략 덕에 보급로 몇 개가 몬스터들에게 공격당하기는 했지만, 보급로가 끊기는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전투지원대가 할 일이 훨씬 많아지게 된 것이다.
“그래도 헬라를 이렇게 빨리 되찾지 않았는가?”
“이 대륙에서 이 빌어먹을 전쟁을 가장 빨리 끝내 주실 분이 바로 저분일 걸세.”
“그렇겠지. 그럼 나도 다시 가보겠네. 이 정도 시간을 내는 것도 사치니까 말이야.”
그렇게 말한 보급병은 서둘러 말을 몰아 자신의 부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는 표현이 딱 맞는군.”
“아니, 저 친구만 그런 게 아니야. 우리도 바쁜 건 마찬가지라고.”
“하긴. 얼른 우리도 정비나 마저 합세.”
파울을 비롯한 다른 병사들도 다시 자신의 임무로 돌아갔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하루라도 빨리 이 전쟁을 끝내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헬라 수복은 하루라도 빨리 끝내고 싶은데.’
그리고 그것은 헬리오 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엘런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헬리오 성 내부의 상황을 살피며 전략을 생각하고 있었다.
‘저놈들은 수성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는 것 같군.’
그도 그럴 것이 수성은 가장 유리한 형태의 전투였다.
병사들끼리만 해도 통상 3배는 많은 병사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수성을 하는 쪽이 몬스터라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이 필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헬리오 성의 커다란 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부서진 성벽도 보수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마치 들어올 테면 들어오란 식의 도발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는 것 같았다.
‘외관도 어떻게 한 달여 만에 저렇게 만들어 둘 수가 있지?’
성벽 외부는 여기저기 부서진 상태 그대로였다.
무너진 성루나 성벽에 묻어있는 핏자국은 헬라 성에서 있었던 치열한 전투를 그대로 담고 있었다.
거기에 몬스터들의 오물까지 덕지덕지 묻어 있기도 했다.
그곳은 더 이상 찬란했던 과거의 영광을 잊은 유령의 성이 되어 있었다.
“아아, 어쩌다 헬리오 성이 저렇게 된 것이란 말이오?”
그때, 한 사내가 엘런의 옆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에는 힘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
바닥에 찍히는 발자국에는 오직 한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헬리오 성을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몬테 경.”
그의 핼쑥한 몰골을 보고는 믿을 수 없겠지만, 그는 헬라의 왕족 몬테였다.
헬리오에 있던 헬라의 왕족들은 성이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하는 날 모두 몰살되고 말았다.
애초에 포로라는 개념이 없는 몬스터 군의 특성상 헬리오 성에 있던 주민들 중 살아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헬라 왕조의 씨가 완전히 말라 버린 것은 아니었다.
헬라 왕국의 다른 지역을 관리하던 왕족이 있었던 것이다. 연합군의 가장 첫 목표가 헬라 왕국의 수복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릭의 군대가 헬라 왕국을 점령할 때는 모든 지역을 차근차근 점령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키에아스의 성유물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것이 보관되어 있는 수도를 향해 최단거리로 나아간 것이다.
결국, 몬스터들에게 짓밟힌 곳은 헬리오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지역들뿐이었다.
그 때문에 연합군이 나타나자 아직 점령당하지 않은 지역에 있던 헬라 군들이 속속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그중 가장 많은 병력을 이끌고 온 것이 바로 여기 있는 몬테였다.
“우리는 정녕 저곳을 되찾을 수 있는 것이오?”
“그렇소. 지금까지 한 대로만 한다면 가능할 것이오.”
“나는 하루라도 빨리 저곳을 되찾고 싶소. 지금까지는 폐하가 안 계시는 상태에서 어찌어찌 잘 버티고 있었지만, 왕국에 조금씩 불안한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했소.”
귀족들 사이에서는 왕이 없어지자 그에 대한 복수보다는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몇몇 평민들도 이제 치안이 유지되지 않는 상황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곳곳에서 속출하는 산적이나 초적 떼는 왕국의 망조를 짐작케 하는 것 같았다.
이대로 조금만 있다면, 헬라 왕국은 무법지대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에레네스에서도 최대한 빨리 헬라 왕국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싶었다.
그러려면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왕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연합군의 첫 활약지가 바로 헬라 왕국이 된 것이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 아니겠소?”
“폐하께서는 참으로 인자하신 분이었는데,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린 것인지…….”
몬테의 눈에서 진심 어린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는 자신의 숙부가 아니라 한 명의 백성으로서 국왕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이런 내가 주책이었군. 이제 곧 헬리오 성을 되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들떴나 보오. 아무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지원해줄 테니 헬리오 성을 좀 부탁하겠소.”
눈을 훔친 몬테는 서둘러서 자신의 부대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엘런은 잠깐 그 뒷모습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얼른 저곳을 되찾고 나는 릭을 잡으러 가야 한다. 이곳에서 낭비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마음 같아서는 곧장 릭이 등장하는 곳을 향해 돌진하고 싶었지만, 연합군의 명분상 그렇게 정할 수만은 없었다. 그가 자기 마음대로 하려면 뭔가 성과를 보여 줘야만 했다.
그 성과가 바로 헬라 왕국의 탈환이었다.
‘아무리 성문이 열려있어도 기마병부터 투입하기에는 너무 많은 위험이 따른다. 처음부터 보병으로 진입해야겠어.’
엘런은 머릿속에 전략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문으로 들어가는 병사들을 엄호할 방법은…….’
이 부분이 가장 고민이었다. 현재는 부대 사정상 한센이 이끄는 특수부대가 빠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병사들을 엄호할 화력을 끌어낼 방법이 없었다. 몬스터들이 성문 앞에 서서 부대를 공격한다면, 아무리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엘런은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것은 부족한 화력을 채울만한 방법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전투지원대에 있는 다슈라는 신관을 좀 불러 주시겠소? 이 상황에 아주 적절한 마법이 그에게 있었던 것이 생각나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