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89
189
수복 (2)
척척척척.
연합군은 헬리오성을 향해 일제히 진군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꽤 많은 전투를 겪으며 그들은 제법 군대의 형식을 갖추게 되었다.
3만 명의 군인이 동시에 진군하는 소리는 헬리오 성안에 있던 몬스터들도 깨어나게 만들었다.
“크르르릉.”
헬리오 성 쪽에서 낮은 포효가 바람에 실려 왔다.
그러나 병사들은 이제 몬스터의 비린내나 포효 따위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녀석들과의 싸움에서 몇 번이고 승리를 거두고 살아남은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도 내가 제일 많이 잡아 주지.”
“거, 맨날 어디 고블린 같은 녀석들이나 말고 최소한 오크 이상의 숫자만 세는 게 어떻소?”
“그러게나 말이오. 전투 중에 보면 귀신같이 고블린만 찾아다니더군.”
진군을 하는 와중에도 작은 목소리로 농담을 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의 진군 속도는 매우 빨랐고, 어느새 헬리오 성문 근처까지 다가갔다.
만약 군사 전문가가 이 장면을 봤다면 지휘관이 미쳤다고 호통을 쳤을 것이다.
그들은 활의 사정권까지 진격했기 때문이다.
연합군이 일반적인 공성전을 하고 있었다면, 이쯤에서 화살이며 돌덩이가 날아왔어야 했다.
그러나 몬스터들이 점령하고 있는 성은 조용하기만 했다.
“역시 예상대로이오. 저들은 수성이라는 것 따위는 하지 않는 녀석들인 것 같소.”
“그렇다면 우리야 좋은 것 아니겠소?”
엘런은 왼손을 들어 올렸다. 그 수신호를 확인한 지휘관 하나가 신관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이제 슬슬 시작하면 될 것 같군. 이 정도 거리면 괜찮을 것 같나?”
엘런의 물음에 다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관이 기사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은 서부 대륙에서 결코 있을 수 없었다.
신관들의 기사에 대한 인식을 생각해 보면, 이 정도 반응도 그가 엘런에게 큰 존경심을 표현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럼 시작해 주게.”
엘런이 총지휘관으로 부임하면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각자 신관들이 가진 신성 마법의 특성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모든 신관이나 크루세이더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신성 마법들도 존재했지만, 그 사용 폭은 넓지 않았다.
그들이 진정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자신들만이 가진 고유한 신성 마법들이었다.
그들을 적재적소에 사용하려면 가장 먼저 그들의 능력을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 연합군에 차출된 신관들의 숫자만 해도 2,000여 명이 넘었다.
한 번에 모두 파악하기는 어려운 양이었지만, 엘런은 틈틈이 그들의 고유 신성 마법을 파악했다.
그 덕분에 엘런은 지금 같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다슈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했다.
무릎을 꿇는다는 것부터가 커다란 신성 마법을 예고하는 행위였다. 그의 주문도 점점 길어졌다.
“당신의 터전을 지키는 신성한 전쟁에 참전하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확신하오며…….”
그의 옆으로는 다른 신관들도 함께 무릎을 꿇고 같은 주문을 외웠다.
이들의 행위는 엘런이 생각한 신성 마법의 가장 좋은 장점 중 하나였다.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다슈의 신성 마법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각자 고유한 신성 마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인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할 정도로 큰 힘이 필요할 때가 있다.
‘동부 대륙의 마법사들 같았으면, 모두 같은 마법을 사용해 화력을 집중하는 것이 가능했겠지만…….’
3서클 정도의 마법이라도 수백, 수천 명의 마법사들이 같은 마법을 사용하면 꽤 커다란 위력이 나올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서부 대륙인들은 고유한 신성 마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마법사들처럼 모두 같은 마법을 쓰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바로 이런 방식의 협력이었다.
한 명이 그 마법을 사용하면 다른 신관들이 신성력을 보태주는 형식이다.
‘아무리 봐도 저건 매우 효율적이란 말이지.’
엘런은 함께 기도를 올리고 있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 방법의 가장 좋은 점은 협력자의 수준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법의 경우, 3서클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려고 하면 모두가 3서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신관들의 합동 기도는 본인의 수준과 상관없었다. 단지 신성력이라는 힘만 보태 주는 것으로 신성 마법을 더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수호자의 탄생.”
그사이 기도를 마친 다슈가 신성 마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계속해서 전진하는 보병들이 성문을 통과하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느닷없이 하늘에서 거대한 손바닥이 떨어졌다.
그 손바닥은 성문 뒤에서 연합군을 기다리고 있는 몬스터들을 깔아뭉개 버렸다.
“쿽!”
“크아!”
그 누구도 몬스터들의 괴성을 끝까지 들을 수 없었다. 그 녀석들이 목소리를 채 뱉어 내기도 전에 납작해졌기 때문이었다.
“전진한다! 헬리오 성으로 진입한다.”
판톤이 큰소리로 외쳤다.
성문 뒤에 우글거리던 몬스터들에게 약간은 겁을 집어먹었던 병사들은 다시금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들은 각자의 검이나 창을 꼬나 쥐며 성문으로 진입했다.
콰앙, 콰앙, 콰앙!
손바닥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었다.
손바닥 한 번에 최소 4마리 이상의 몬스터는 바닥에 납작해졌다.
그 덕분에 연합군은 좁은 성문에서 고전하지 않고 수월하게 성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쪽부터 다 쓸어 버려!”
“이놈들 전부 인간을 죽인 놈들이다. 본때를 보여 줘야 해.”
헬리오 성안으로 들어오는 인간의 숫자가 많아질수록 상대적으로 몬스터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전황을 지켜보고 있던 엘런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수도 신전이 있는 곳에서 그리고 몬스터만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마법이기는 하지만 효과는 정말 굉장하잖아?’
다슈가 사용한 ‘수호자의 탄생’은 성립 조건이 아주 까다로운 신성 마법이다.
그러나 그만큼 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저건?’
그때, 엘런의 눈에 거대한 몬스터 하나가 들어왔다.
‘내가 나서야겠군.’
그렇게 생각한 엘런은 곧바로 전장으로 날아갔다.
후우웅.
콰악.
어른의 허리 두께만 한 나무가 병사 세 명을 날려 버렸다.
10미터를 날아간 병사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오우거다.”
“젠장, 오우거까지 등장하면 어쩌자는 거야?”
“크루세이더, 방벽부터 만들어.”
오우거 1마리의 등장에 전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져 버렸다.
오래전, 드래곤이 중간계에서 사라진 후부터 지상 최강의 생명체로 군림해 온 오우거.
특히 서부 대륙의 오우거는 동부 대륙의 그것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자랑했다.
덩치부터가 동부의 오우거에 비해 1.5배는 커 보였고 팔뚝이나 허벅지의 두께도 훨씬 굵었다.
“방벽부터 펼쳐.”
후웅.
“커헉!”
이 무지막지한 녀석은 신성력이 둘린 검조차도 찢기 힘든 질긴 가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당연히 신성력으로 된 방벽도 쉽게 부숴 버릴 근력도 가지고 있었다.
괜히 서부 대륙에는 여전히 ‘오우거 슬레이어’라는 호칭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헬리오 성에 등장한 것이다. 책에서만 봐오던 녀석을 직접 만나고 위력을 체험하기까지 하니 신관과 크루세이더조차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가능한 신관, 크루세이더들은 모두 저 녀석들부터 막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병사들의 생존에 먼저 신경을 썼다. 그들은 병사를 뒤쪽으로 물리고 자신들이 오우거와 대치했다.
파밧.
그때, 한 신관의 옆으로 무엇인가가 지나갔다.
그 속도가 워낙 빨랐던 탓에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할 틈도 없었다.
피융.
스걱.
콰앙.
그리고 그가 자신의 뺨을 만지기도 전에 오우거의 주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궁수가 쏜 화살 같기도 했고 기사가 휘두른 검 같기도 했으며 또, 신관이 사용한 신성 마법 같은 소리인 것처럼도 들렸다.
신관은 하나의 소리에서 서로 다른 3개의 소리가 들리는 현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신관의 눈이 갑자기 크게 떠졌다.
오우거의 몸 곳곳에 상처들이 생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3개의 소리처럼 들리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세 가지 소리가 모두 들리는 것이다.’
너무 빨라서 1개의 소리처럼 들렸을 뿐, 사실은 세 가지 소리가 순서대로 들려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오우거의 몸에는 검상, 관통상, 동상이 모두 생기고 있었다.
“쿠어어어.”
자신의 몸에 상처가 나고 있는 와중에도 녀석은 자신을 공격하는 자의 꽁무니조차 잡지 못했다.
이리저리 팔을 휘두르는 사이에 녀석의 몸은 더욱더 많은 상처들로 채워져 갔다.
녀석의 주위에는 녹색 피가 고여 웅덩이가 되어 가고 있었다.
쿠웅!
마침내 녀석이 들고 있던 통나무를 놓쳤다.
그리고 그 거대한 몸뚱어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오우거 1마리가 쓰러졌다.”
“어떻게 된 것이지?”
“어떤 조가 한 거야?”
오우거에 신경 쓸 틈도 없이 다른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고 있던 연합군은 갑자기 오우거 1마리가 쓰러지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다 쓰러진 오우거 앞에 서 있는 청년을 보고는 입까지 벌리고 말았다.
오우거를 잡는 것은 도저히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오우거 슬레이어들도 모두 원정대를 꾸린 것이었다.
그랬기에 당연히 크루세이더, 신관, 병사로 이루어진 조가 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것만으로도 찬사를 보낼 일이었다.
그러나 녀석의 앞에 서 있는 저 청년은 단신으로 오우거를 쓰러뜨렸다.
“총지휘관님?”
“오우거를 혼자서 처리하는 게 가능하긴 해?”
“직접 봐 놓고 못 믿는 건가?”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못 믿겠으니 이러는 거 아닌가?”
그 청년은 바로 엘런이었다.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숨을 한 번 내쉬었다.
‘확실히 동부 녀석들보다는 훨씬 강하네. 한 서른 번은 공격해야 죽다니.’
그 짧은 순간 동안 엘런은 서른 번의 공격을 했던 것이다.
엘런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일단, 제일 골칫거리를 쓰러뜨렸으니 나머지들도 정리해야겠어.’
엘런의 지원을 받아 대형 몬스터들이 차례차례 쓰러지자 연합군의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찔렀다.
그들은 단숨에 헬리오 성에 있는 몬스터를 처리해 버렸다.
헬리오 성의 전투는 그렇게 작은 고비를 넘김으로써 연합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잔여 몬스터 소탕까지 모두 완료했소.”
엘런은 전후 처리에 대한 보고를 듣고 있었다.
“건물 내부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생존한 몬스터는 없었소.”
기병대장 토드는 기병대를 이용해 도시를 모두 훑어보고 돌아온 길이었다.
“생존자는 없었소?”
“예상대로 생존자는 아무도 없더군. 저 잔악한 마물들이 모두 한 명도 살려 놓지 않았소.”
생존자를 찾던 토드가 본 것들이라고는 썩어 문드러져 가고 있는 시체들이 전부였다.
“헬라의 국왕으로 보이는 시체가 있긴 했었소. 그것은 몬테 경에게 인계하도록 하겠소.”
“그러도록 하시오. 이제 이곳을 재건해야 할 사람은 몬테 경이니 말이오.”
엘런도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도 없었다. 헬라 왕국의 비극은 이런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이제 다음 막은 몬테가 이끌어 가는 헬라 왕국일 것이다.
솔직히 말해, 그가 잘 해낼지는 동부 대륙인인 엘런과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그가 잘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었다.
“큰일 났소!”
엘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정찰대장 샤를리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무슨 일이오?”
“적들의 포탈 반응이 감지되었소. 그것도 세 군데에서 동시에 말이오.”
“자세히 설명해 보시오.”
엘런의 말에 그는 곧바로 지도를 펼쳐 들었다.
“스티어드 왕국의 스탱과 아렌츠, 그리고 토마르 왕국의 생로레일이오.”
샤를리의 설명을 듣고 있던 토드도 샤를리만큼 다급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 어찌해야 하오?”
그러나 엘런만큼은 표정에 변함이 없었다.
원래부터 표정의 변화가 없는 사람이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샤를리는 그런 엘런에게 질릴 것 같았다.
“그대는 무슨 생각이라도 있는 것이오?”
샤를리는 일말의 기대를 가지고 엘런에게 물었다.
“그렇소.”
그리고 엘런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