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9
19
두각을 드러내다 (3)
마법 시험이 모두 종료된 후.
“감히 평민 주제에?”
“이건 말도 안 돼.”
“귀족의 권위가 어디까지 떨어진 거야?”
커다란 양피지에 마법으로 써진 글을 읽고 있던 귀족반 학생들은 크게 분개했다.
바로 엘런의 이름이 이번 마법 시험 총점 순위에서 5위에 기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체들턴을 제외하고는 마법 이론이나 마나 수집력 같은 주요 마법 과목이 아닌 예법 과목에서 올린 점수 덕에 엘런보다 높은 순위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평민 학생이 귀족 학생보다 우위에 있었던 적은 한 번밖에 없었어.”
“그건 하메론이었잖아. 저런 평민과는 다르다고.”
“이건 귀족의 수치다.”
고위 귀족의 자제들은 자체적으로 마나 자질 검정을 시행한다.
마나 자질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때부터 가문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체계적인 교육과 가문의 마나 수집법, 마법 이론 개인 교습 등 평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지원을 받는다.
그만큼 마법사의 배출은 가문의 입지를 다지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고위 귀족 자제들에게 있어 아카데미는 졸업장을 따기 위해 형식적으로 입학하는 것이지 큰 배움이나 성장에 뜻을 두고 오는 곳이 아니었다.
오직 평민이나 하위 귀족들만이 아카데미에서 무언가를 배워 가고자 입학한다.
“별것도 아닌 일에 흥분하지 마. 조금 뛰어난 가축일 뿐이니까.”
옆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체들턴이 나서자 주위 학생들은 모두 조용해졌다.
“곧 있으면 대련 시험이 있으니, 그때 저 가축을 제대로 교육시켜 주면 되는 노릇이야.”
체들턴은 평민을 동물 그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도 위험할 수 있는 것 아니야? 그 녀석 실력은 있…….”
그 말에 체들턴의 인상이 구겨졌다.
그러자 말을 한 학생은 얼른 자신의 입을 막았다.
“지금 내가 가축에게 질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거야? 어이가 없군.”
“아니, 내 말은…….”
“어떤 혼란도 없는 평안 속의 마나여, 나 지금 그대의 힘을 빌리노니 그대 번뇌 속에 스며들어 평안을 찾게 할지어다. 슬립!”
털썩.
서둘러 변명을 하려던 학생은 체들턴의 슬립 마법에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
“저, 저건 슬립?”
“체들턴, 너 3서클의 경지에 올라선 거야?”
학생들은 1학년이 벌써 아카데미 졸업 요건인 3서클에 진입한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래도 내가 위험할 것 같아?”
“저 녀석이 착각한 거지.”
“우리는 한순간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없었어.”
이미 아카데미 내 최고 학년인 4학년의 수준에 있는 그가 조금 뛰어난 평민 따위에게 지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 * *
엘런은 자신의 반대편 소파에 앉아 한순간도 쉬지 않고 입을 놀리고 있는 유진을 보고 있었다.
“교사들이 너를 보고 하메론의 재림이라 부른다고 하더구나.”
“제가 어떻게 하메론 님과 비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엘런은 시험이 끝난 후 아카데미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평민반 학생들 모두가 그에게 접근했으며, 모든 교사들이 자신을 알은체했다.
그 소식이 유진에게도 전해졌는지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이게 다 내 덕분인 걸 아느냐? 역시 내 사람 보는 눈은 대단하단 말이지. 재능은 있으나 형편이 되지 않는 너를 가엽게 여겨 이렇게 지원해 주지 않았느냐, 하하하!”
그는 방이 떠나가게 웃어 댔다.
엘런은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제가 그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그럼!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지. 그렇고말고.”
그러면서 품에서 책 몇 권을 주섬주섬 꺼냈다.
“자. 이 스승이 너의 학구열을 더욱 증진시키고자 이렇게 귀한 것을 구해 왔다. 앞으로 나의 이름에 걸맞은 역량을 보여 주려무나.”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엘런의 인사를 끝으로 유진은 자신의 마탑 정기 검정 연구를 준비한다며 서둘러 마탑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책상에 앉은 엘런은 방금 전 유진이 주고 간 마법서를 꺼내 보았다.
-마나 운용의 심화 원리
-서클의 생성에 관한 실험일지
-효과적인 마법구현을 위한 심상적 방법론
일전에 한 번도 읽어 보지 못한 책들이었다.
호기심이 생긴 그는 책의 내용을 슥 훑어보았다.
제대로 된 마탑의 마법서라 그런지 모르는 내용이 꽤 있었다.
과거의 그는 많은 마법서들을 몇 번이고 독파했지만 주로 시중에 떠도는 그저 그런 마법서가 대부분이었다.
물론 용병 일을 통해 모은 돈을 들여 진귀한 서적을 몇 권 읽어 보긴 했지만 마탑의 보안 때문에 자주 접해 보지는 못했다.
‘이거 유진이 생각보다 제대로 된 걸 가지고 왔는데?’
엘런은 본격적으로 자세를 잡고 그 책들을 읽어 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새로운 지식들이 머리를 채우는 느낌은 상쾌하기까지 했다.
* * *
그렇게 두 달 동안 엘런은 세 권의 책을 몇 번이나 완독했다.
‘느껴진다. 세 번째 서클이 느껴져.’
엘런은 자신의 심장에서 느껴지는 세 번째 고리에 흥분했다.
엘런은 두 달 만에 3서클 초입에 오른 것이었다.
아카데미 졸업 요건이 3서클인 만큼 보통의 학생들의 경우 2년간 아카데미에서 수련했을 때 이룰 수 있는 경지였다.
뛰어난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1년 정도가 걸리는 일이었다.
하지만 엘런은 겨우 두 달 만에 그것도 독학으로 그 경지를 이룬 것이었다.
‘마법서의 이해가 말도 안 되게 잘돼. 한 번 읽는 것만으로 대부분이 머릿속에 들어왔어. 심지어 까먹지도 않고 온전히 남아 있잖아.’
책의 내용은 마탑의 전문 서적인 만큼 생전에 읽던 책들보다도 이해하기 훨씬 어려웠다.
하지만 엘런은 책을 읽는 순간 마치 내용이 흡수되는 것처럼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덕분에 몇 번을 완독하고 나자 그는 책의 내용을 완벽히 이해했다.
‘영창의 생략 능력과 관련이 있는 일인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자신의 능력과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또한 세 번째 서클을 구성할 마나량을 확보하기 위해 하메론의 던전에서 가지고 온 엘릭서 한 병을 마시면서 그의 마나량은 회귀 전의 자신과 비슷해졌다.
‘오히려 전투력으로만 따지면 체술만 제외하고는 영창을 생략하는 능력이 있는 지금이 월등히 뛰어나다.’
그는 아카데미에 들어온 이후에도 체술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었지만 몸의 골격이 완성되어 있던 과거보다는 떨어지는 것이 당연했다.
‘점점 더 기대하게 되잖아.’
엘런은 지금 자신의 상태가 너무나도 만족스러웠다. 과거에는 단 한 순간도 가져 보지 못했던 이 우월함이 이제는 그의 손에 있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어. 유진의 활용도가 더 높아지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