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93
193
공습 (4)
* * *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간다.
눈을 통해 들어오는 세상은 뿌옇게만 보였다.
여기서 눈을 감으면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몸은 방어 기제의 일환으로서 몸을 강제적인 휴면 상태에 돌입시키려 했다.
‘네로, 데이브, 옆에 있나?’
한센은 자신의 부하들을 부르려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대신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붉은 선혈이었다.
당장 죽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의 부상.
한센이 오우거를 처리할 때만 해도 전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비단 한센만의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가까스로 의식을 붙잡고 있는 이의 숫자도 몇 명 되지 않았다.
대부분은 이미 생명이 다한 자들이었다.
시체들의 표정에는 하나같이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한센은 멀어져 가는 의식을 다시 한 번 붙잡았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더라…….’
갑작스럽게 큰 충격을 받으면 일시적으로 기억이 사라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지금의 한센의 머릿속이 딱 그랬다.
자신이 왜 죽기 일보 직전까지 부상을 입은 채로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오우거를 처리하고 성벽 위로 올라온 몬스터들까지도 밀어냈다.
스탱 성을 공격했던 몬스터를 모두 몰아내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거기까지는 똑똑히 기억이 났다.
‘그리고 다음은…….’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그는 그 외침의 뜻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애초에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인간의 성대로는 도저히 낼 수 없는 기괴한 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들은 직후부터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모든 기억이 파편의 형태로 남아 있었다.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형상, 괴기한 포효, 검붉은 색의 무엇.
정보들은 한 데 얽힌 채, 풀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피잉.
‘피를 너무 많이 쏟았다.’
과다 출혈 때문인지 한센의 머리가 핑 도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우거를 과다 출혈로 제압한 한센이 과다 출혈로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나의 목숨이 다한 것은 상관없지만, 성유물을 지키지 못한 것은 천추의 한이 되겠구나.’
에레네의 검이라 불리는 자신이 교단의 성유물을 수호하지 못했다.
그것은 그의 명예에 큰 흠집을 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신의 상태를 직감하고 있었다.
이미 치사량 직전까지 피를 쏟았다.
오우거와의 전투에서 신성력을 한계치까지 사용한 탓에 상처를 치료해 줄 신성력도 거의 없었다.
몸 상태 전부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나?’
한센은 이제 죽음을 준비했다.
점점 떨어져 가는 체온과 그에 따라 멀어지는 의식이 마음의 준비를 부추겼다.
“한센 경, 정신 차리십시오.”
그때, 그의 의식을 붙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데이브?’
그것은 한센이 의식을 잃어 가는 순간까지도 찾았던 신관의 목소리였다.
그는 가까스로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대로 끝나면 아니 되오. 경은 앞으로도 에레네스를 수호할 에레네의 검이지 않소.”
데이브는 엉금엉금 기어서 한센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한센의 눈에 그가 보였다.
그 역시도 온몸이 상처 투성이였다.
게다가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어 그곳으로 여전히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괜찮나?’
한센은 그 말을 전달할 수 없었다.
몇 번이고 데이브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나 데이브는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한센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다.
오우거를 잡을 때 신성력을 너무 많이 쓴 탓에, 문자 그대로 말할 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사실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데이브는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명색이 오우거 슬레이어이신데 몸 상태가 말이 아니지 않겠소?”
마침내 그가 한센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한센의 어깨에 올렸다.
‘……!’
한센의 눈이 찢어질 것 같이 커졌다.
그는 지금 데이브가 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챈 것이다.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으려 했다.
우우웅.
그러나 그의 간절한 마음이 데이브에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그의 어깨에 올라가 있던 데이브의 손에서 하얀빛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얼음장같이 차가웠던 그의 몸에 조금씩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데이브가 가지고 있던 신성력이 그의 몸으로 옮겨지고 있는 것이었다.
“당신은 정말이지 엄청난 사람이라니까.”
한센의 호전은 아주 잠깐에 불과했다.
어느 순간부터 신성력을 전해 주고 있는 데이브의 혈색은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지만, 한센의 몸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한센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신성력의 절대량 자체가 독보적이었다.
그런데 직전에 있었던 오우거와의 전투에서 그 방대한 신성력을 모두 쏟아부었다.
당연히 그것을 다시 채우는 데도 많은 양의 신성력이 필요했다.
그 양은 결코 일개 신관이 채울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가 입은 외상 자체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직까지 몸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적인 수준이었다.
“아직 생명이 붙어 있는 신관, 크루세이더…… 너희들도 힘을 보태는 게 어떻겠나? 지금 에레네스에…… 필요한 자는 우리가 아니라…… 한센 경이지 않은가?”
얼굴이 완전히 하얗게 질려 버린 데이브가 쥐어짜 내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장 멈추시게!’
그러나 한센은 아무리 성대를 쥐어짜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크윽.”
“데이브 경의 말이 맞소.”
“에레네스에 필요한 분은 우리가 아니라 한센 경이지.”
데이브의 말이 잘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주변에 있던 신관과 크루세이더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데이브처럼 엉금엉금 기어서 한센에게 다가왔다.
그들도 몸 상태가 완전히 정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몸에 난 상처를 따라 핏물이 넘쳐흘렀다.
그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붉은색 핏길이 생겨났다.
터업.
그들은 데이브가 한 것처럼 똑같이 한센의 몸에 팔을 올렸다.
‘이러지들 마라.’
한센은 그렇게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이 빌어먹을 성대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를 않았다.
‘하지 말란 말이다.’
그와 동시에 몸에 다시금 체온이 돌기 시작했다.
손가락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근육들이 힘을 찾고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며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핑 돌던 의식마저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만두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한센은 간절한 눈빛으로 그들을 보았다.
신성력을 보낼수록 체온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감각이 조금씩 없어져 갔다.
근육이 힘을 잃어버리고는 수축과 이완을 하지 않고 축 늘어졌다.
의식이 급격하게 흐려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만둬!”
드디어 한센은 자신의 생각이 입으로 튀어나와 다시 귀로 들려왔다.
이제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성대를 울릴 수 있는 힘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자신의 말에 대답해 줄 사람이 없었다.
자신의 몸에 올려 있는 수많은 손에서는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의 생명이 다한 것이다.
“젠장…….”
한센은 입에 한 번도 담지 않았던 욕설을 내뱉었다.
끼오오오오.
한센의 욕설 위로 와이번 한 마리가 날아갔다.
“생각지도 못하게 힘을 써 버렸잖아.”
그 위에는 릭이 타고 있었다.
그는 피곤하다는 듯 목을 이리저리 꺾었다.
“뭐 하나 하려고만 하면 여기저기서 방해를 해 대니, 귀찮은 놈들.”
그는 지상에 있는 병사들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평민을 바라볼 때와 같은 경멸의 눈빛이 서려 있었다.
그의 눈에 그들은 같은 인간이 아니라 모기 한 마리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러다 그의 눈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 대고 있는 한센의 모습에서 멈추었다.
그의 주변으로 많은 인간이 몰려 있었다.
“됐다. 저것들도 꼴에 인간이라고 살아 보려 하는데. 어찌 되었든 두 번째 목표도 챙겼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지.”
순간 그를 죽일까 했던 릭은 이전에 힘을 많이 썼다는 이유로 그를 그냥 지나쳤다.
그러는 그의 손에는 키에아스의 장갑과 같이 백색으로 빛나는 봉이 들려 있었다.
결국에는 스티어드 왕국이 가지고 있던 성유물마저 릭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런 곳에다 숨겨 놓았을 줄은 몰랐군. 하메론 그 녀석도 참 대단하단 말이야.”
그는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이곳에 키에아스의 성유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메론의 말대로 이곳 지하에는 스티어드 왕국의 성유물 키에아스의 봉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제 공간 마법이 가능한 거리 중에서는 토마르만 남은 것인가?”
이미 이전에 힘을 너무 많이 사용한 탓에, 릭은 더 이상 포털을 사용할 마나가 없었다.
그는 혼잣말을 허공에 뿌리며 그의 본대가 있는 방향으로 날아갔다.
* * *
“스탱 성의 전투에서 한센 경이 패배했다고?”
정찰대원의 보고에 엘런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성안에 남아 있을 몬스터 때문에 안까지 모두 보고 오지는 못했지만, 외곽 상황만 봤을 때는 패배가 확실해 보였습니다.”
“생존자는 있었는가?”
“성 내부에서 생명 반응이 일부 보였습니다. 그러나 몬스터의 생명 반응도 있었기에 직접 구출할 수는 없었습니다.”
엘런과 연합군은 헬리오 성의 탈환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이었다.
엘런은 헬리오 성을 완전히 정리하자마자 공격받은 세 지역에 정찰대원을 보냈다.
아렌츠와 생로레일이 받은 공격은 엘런의 예상대로 주의를 끌기 위한 공세가 전부였다.
미리 예측하고 있던 것인 만큼 녀석들을 막아 내기에 부족함은 없었다.
가장 의외였던 것은 스탱 성의 상황이었다.
스티어드의 성유물이 스탱 성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에, 엘런은 이곳에 가장 강한 공세를 예상했다.
그래서 그는 스탱 성으로 한센을 비롯한 최정예로 구성한 특수부대원을 보냈다.
그중에는 자신이 직접 대오우거전을 준비시켰던 인원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도란과는 달리 승리를 위한 이성적인 선택을 하는 한센인 만큼, 엘런은 스탱 성의 전투에서 필승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믿었던 한센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그곳에 하메론이라도 등장한 것일까?’
자신이 아는 한 릭은 한센을 이길 실력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변수는 갑작스러운 하메론의 등장밖에 없었다.
그가 나타났다면 한센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다. 아직 그는 대외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여전히 자신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그가 준비가 끝났다면, 애초에 몬스터를 끌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단신으로 등장해 성유물을 가져갔을 것이다.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 무슨 이유란 말이지?’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스탱 성의 생존자에게 직접 묻는 것이 더 좋은 선택지였다.
‘그렇다고 생로레일로 가고 있는 연합군 전체를 돌릴 수도 없고.’
아무리 모든 왕국이 공동으로 연합군을 구성하였다고 하더라도, 서부 대륙의 실세는 에레네스였다.
당연히 연합군도 그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공격 받은 세 가지 지역 중 하나가 바로 에네레스로 향하는 길목인 생로레일이었다.
엘런의 예측 덕에 성공적으로 몬스터의 기습을 막아 냈음에도, 추기경들은 성이 공격당했다는 사실만으로 노발대발했다.
그 때문에 연합군은 생로레일의 방어벽의 보수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 주둔하고 있게 되었다.
어디를 가나 권력을 가진 자들이 문제였다.
야망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자들, 근시안적인 이익에만 미친 듯이 달려드는 자들.
이들만 아니었어도 이 대륙의 발전은 훨씬 더 빨리 이루어졌을 것이다.
“판톤 경, 이대로 병력들을 생로레일로 이끌어 주시오.”
엘런은 뒤따라오던 판톤을 불렀다.
“무엇 때문에 그러시오?”
그는 엘런의 의중을 알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 늙은이들의 입맛에 맞춰 주면서도 정보를 알아낼 방법은 내가 직접 가 보는 것밖에 없는 것 같소.”
“무슨 말인지 알겠소.”
판톤은 엘런이 지칭하는 늙은이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그 역시도 조금 전 연합군 본대를 찾아온 에레네스의 전령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를 제외하고 신관과 크루세이더 중 10명만 데려가겠소.”
“알겠소. 그럼 우리는 생로레일에 있으면 되는 것이오?”
판톤의 물음에 엘런은 고개를 저었다.
“스탱 성이 함락당했다면, 이제 케롤 성이 직접적인 위협의 대상이 될 것이오. 내가 얼마나 걸릴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연합군을 꼭 케롤 성으로 돌려 주시오. 하루라도 빨리 가야 준비를 더 철저히 할 수 있소.”
판톤이 자신의 굳은 의지를 확인하기라도 하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모습에 엘런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부대 진행 방향의 반대쪽으로 돌렸다.
‘한센, 그대가 정찰대원이 보고한 생존자에 들어가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조금만 더 버티고 있으시오. 내가 갈 테니.’
엘런은 말의 고삐를 말아 쥐고는 박차를 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