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95
195
케롤 성으로 (2)
* * *
엘런 일행이 스탱 성에서 구출한 생존자는 총 100여 명이었다.
그중에서 특수부대원은 한센을 포함해 3명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전부 스티어드의 병사들이었다.
한센은 왜 특수부대원들의 생존자가 적은지 설명해 주었다.
자신에게 신성력을 넘겨주던 일을 이야기할 때, 그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들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이 한데 어우러진 복잡한 표정이었다.
‘덕분에 한센을 잃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겉으로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엘런은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엘런의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인물은 한센이었다.
그가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당장에 이 대륙에서 한센만큼 싸워 줄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이제 곧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다.’
스탱 성의 방어에 실패하면서 키에아스의 봉까지도 릭의 손에 넘어갔다.
이제 에레네스 동쪽에서 남은 성유물은 토마르에 있는 키에아스의 망토밖에 없었다.
공격받을 지역이 좁혀지면 방어 집중도 역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엘런은 릭의 동선을 예측해서 움직이면서도 항상 만약을 대비한 예비 병력을 다른 지역에 배치해 두었다.
자신의 예측이 어긋났을 때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공격받을 지역은 명확했다.
아직 그들은 에레네스를 뛰어넘고 브룩이나 크트론을 공격할 만큼 세력을 넓히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답은 케롤 성 하나인 것이다.
키에아스의 성유물을 빼앗으려는 자, 그것을 지키려는 자.
양쪽에게 선택지가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이곳에 모든 병력이 모인다면, 자연스럽게 대규모 전면전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기서 한센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크겠지.’
비록 동료의 도움을 받았다고는 해도 그는 오우거를 잡을 수 있는 자였다.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오우거를 상대할 수 있는 자의 존재 여부는 큰 차이였다.
특히 엘런의 활동반경을 훨씬 더 넓어지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일단은 본대에 합류부터 해야 한다.’
엘런에게 있어 가장 급한 것은 그것이었다.
그가 스탱 성으로 가기 직전 연합군의 경로는 에레네스로 향하는 길목인 생로레일이었다.
하지만 적의 목적은 그곳이 아니라 케롤 성이다.
판톤에게 미리 귀띔을 해 놓기는 했지만, 추기경들이 병력을 옮기는 걸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을 확인해야 했다.
만약, 아직도 연합군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면 그때는 엘런이 나서야 할 때였다.
그랬기에 엘런 일행은 한센의 몸이 말을 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자마자 당장 생로레일로 이동했던 것이다.
“예상대로군.”
엘런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연합군은 아무도 오지 않을 생로레일 성을 지키고 서 있었다.
그 뒤로는 생로레일 성벽의 증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누군가의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것들이었다.
“이제 오셨소?”
엘런이 도착했다는 소리에 판톤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이미 엘런이 한센을 구했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인지 그의 뒤를 신관들이 따르고 있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진행되지 않았나 보오.”
엘런은 성문 앞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하루라도 빨리 케롤 성을 방어하러 가야 한다고 말했으나, 저들이 전혀 말을 듣지를 않더이다. 내가 토마르의 크루세이더니 그곳을 방어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냐며 절대 반대를 하더군.”
판톤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엘런은 한숨을 내쉬었다.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판톤의 성격상 몇 번이고 그들을 찾아가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 매번 에레네스의 안전을 말하며 그의 말을 거부했을 추기경들의 모습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 늙은이들의 입장을 옮겨 말하고 있는 것은 생로레일의 신관이오?”
“그렇소만…….”
엘런의 속에서 뜨거운 무엇인가가 올라왔다.
그는 열불이 난다고 하는 표현을 몸소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졌다.
‘진짜로 급한 게 뭔지 모르고 있는 건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있는 건가?’
키에아스의 성유물을 모으러 다니는 자가 현재 자기 손안에 넣을 수 있는 마지막 성유물을 향해 진격한다.
이 예상을 할 수 있는 것은 엘런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이 정도 예측은 말 그대로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로지 근시안적으로 안전만 볼 줄 아는 추기경들의 눈에는 그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뚝.
엘런은 그들의 입장을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해 줄 필요도 없었다.
연합군의 명령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괜한 불화를 피하기 위해 웬만하면 에레네스에 협조해 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있는 병사들의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협조는 끝이다.’
엘런은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판톤의 옆을 지나쳤다.
“베리 경, 어쩌려는 게요? 차라리 증축을 빨리 끝내고 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소. 병사들이 더 붙는다면, 며칠 내로 끝낼 수도 있을 것이오.”
판톤이 그런 엘런을 불러 세웠다.
이미 자신이 한바탕 소동을 벌인 후였기에 에레네스 쪽에서도 화가 많이 난 상태일 것이다.
여기서 엘런까지 달려들면, 연합군의 와해가 현실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몬스터 대군의 침공을 받을 토마르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
엘런이 슬쩍 고개를 돌려 판톤을 바라보았다.
“판톤 경, 적이나 아군이나 답답한 놈들에게는 매가 약이오.”
* * *
생로레일 성의 신전.
그곳에는 생로레일의 담당 신관 델리가 누군가에게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보고를 받는 이들은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발밑에 있는 돌판에서 나온 빛이 그들의 형상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생로레일 성의 증축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나?”
“성벽 높이뿐만 아니라, 방어 마법들도 새겨 넣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최소한 1.5배는 더 견고해질 것입니다. 그러니 추기경들께서는 아무 걱정하지 마시길.”
그들은 에레네스에 있는 추기경들이었다.
그들은 에레네스 동쪽 관문인 생로레일과 서쪽 관문인 찬트랄레에 이런 돌판을 하나씩 설치해 두었다.
항상 주변국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에레네스의 특성상 교황청과의 즉각적인 교류가 이루어져야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로레일도 비록 토마르 왕국의 도시지만, 수도인 케롤의 신관과는 독립되어 있었다.
“델리 경이 그렇게 말하니 이제야 안심이 되는 것 같군.”
“그러게 말이오. 마물들이 성스러운 에레네스의 땅으로 진입할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남은 기간 동안 더욱 만전을 기해 주길 바란다.”
추기경들은 하나같이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야 자신들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안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연합군의 보병대장 판톤이 계속해서 케롤 성으로 병력 이동을 건의하고 있습니다. 주장이 워낙 강해 무시하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판톤이 주장하는 말들은 대부분 일리가 있는 말들이었다.
자신도 추기경들의 명령이 아니었다면, 당연히 허락했을 요구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델리의 입장에서도 에레네스의 안전과 추기경들의 명령만을 명분으로 그의 주장을 무작정 거부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교황의 허가 정도가 있어야 했다.
“그런 놈의 말은 무시해 버리도록 하라.”
“우선되어야 할 것은 교황청이 있는 에레네스로 향하는 방어다. 그것이 끝나고 나야 다음 장소를 방어하는 것이지. 주객이 전도된 말을 잘도 하는구나.”
“토마르의 존망은 우리가 신경 쓸 것이 아니다. 이 대륙에 있는 모두를 희생해서라도 에레네스를 지키도록 하라.”
“이것은 교황님께 말씀드릴 것까지도 없다.”
추기경들은 득달같이 달려들자 그들의 명령을 듣는 델리마저도 질릴 정도였다.
“그러다가 베리라는 자가 오기라도 하면 어떡합니까?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그가 온다면 저도 버티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사실, 그 부분이 가장 걱정되는 것이었다.
그는 엘런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지만, 엘런의 활약상에 대해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다.
오우거를 혼자 쓰러뜨렸다는 이야기는 믿을 수도 없었다.
성격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는 앞뒤 안 가린다고 들었다.
그런 그가 돌아온다면, 자신이 지금처럼 버티고만 있기는 힘들었다.
“그자도 머리가 돌아가는 자인 이상 우리와의 협력이 연합군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하겠다면, 그도 어쩔 수 없겠지.”
“그러니 그대는 그저 모른다고 버티고만 있으라.”
델리는 겁이 났다.
그들이야 교황청에 숨어 있으면 되는 것이지만, 그 무지막지한 사람을 직접 대면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움직여지지 않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조금만 버티고 있으면, 자신도 저들처럼 교황청에서 한껏 목에 힘을 주고 있을 수 있었다.
“호오, 그런다는 것이군.”
그때, 신관의 방 한구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방 안에 있는 사람은 델리 자신과 성유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는 추기경들의 형상이 전부였다.
그는 깜짝 놀라며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았다.
“분명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을 텐데!”
델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에레네교를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신관들의 호통에 잔뜩 움츠린다.
“너는 닥치고 있어.”
그러나 그는 델리의 말을 완전히 무시해 버렸다.
생전 처음 겪는 대답에 델리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것도 잠시 델리의 얼굴이 붉어졌다.
“네놈이…….”
잔뜩 화가 난 델리가 한 번 더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였다.
그는 자신의 입이 조금이나마 늦은 것에 감사했다.
“베리!”
“당신이 어떻게 그곳에 있소?”
추기경들의 반응을 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는 델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바로 그 상대인 것이다.
“내가 왜 여기 있는지가 궁금하오? 나는 왜 병사들이 여기 있는 지가 궁금한데 말이오.”
엘런은 화를 잔뜩 욱여넣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것을 몰라서 묻는 거요? 에레네스로 향하는 길목인 생로레일의 증축 공사가 끝날 때까지 그곳을 지키기 위함이오.”
이제 갓 추기경을 단 신관 하나가 엘런의 말을 되받아쳤다.
“그러니까 연합군이 왜 그 짓거리를 하고 있냔 말이오. 당신들은 진짜 여기에 성벽 몇 개 더 덧댄다고 해서 에레네스가 안전해질 거라 믿소?”
“그럴 줄 알고 포탈도 넘보지 못하게 수를 써 놨소. 일단은 에레네의 성지가 있는 에레네스를 먼저 확보하고 그 후 토마를 지키도록 하겠소. 그러니 그리 아시오.”
신참 추기경은 끝까지 단호했다. 옆에 있던 추기경들도 하나둘씩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엘런은 더 이상 이자들을 설득할 수 없음을 느꼈다.
사실 그것은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엘런은 그저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었다.
“잘 들어. 저놈들은 성유물을 모을 때마다 더 강해진다. 그리고 벌써 두 개를 챙겼지. 이렇게 눈덩이가 불어 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너희들 때문에 시기가 점점 늦어지고 있으니, 지금이라도 당장 병력을 토마르로 돌리겠다.”
그렇게 말한 엘런은 뒤로 돌아섰다.
“이대로 가면 그대의 입장도 곤란해질 텐데?”
“우리의 협조가 없으면 연합군도 와해될 것이오.”
잠시 엘런의 분위기에 압도당한 추기경들은 그가 직접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대면하고 있지만, 실제로 그들은 이프루의 교황청에 있었고 엘런은 생로레일 신전에 있었다.
안전이 확보되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들의 입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우리를 무시하고 있었다니. 이렇게 나오면 연합군을 승인해준 우리가 회의감이 들지 않겠소?”
“그대의 무례한 태도는 정식으로 문제 삼도록 하겠소.”
그들이 신나서 엘런에 대한 공격을 했지만, 그는 여전히 뒤돌아 서 있을 뿐이었다. 추기경들은 그가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보고는 자신들의 승리를 직감했다.
“이보시오. 정말 그대로 나가는 것이 확실하오?”
한 추기경이 신관의 방이 다 울릴 정도로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엘런이 고개를 돌렸다.
“너희들이 몬스터보다 먼저 죽고 싶으면 그렇게 해 봐. 서부 대륙의 안녕이고 뭐고 이프루부터 치러 갈 테니까.”
누군가 그 말을 들었다면 그것이 허풍이라며 웃었을 것이다.
“…….”
그러나 적어도 추기경들만큼은 그것이 전혀 허풍같이 들리지 않았다.
옆에서 그 말을 직접 들었던 델리는 이미 다리가 풀린 채로 주저앉아 있었다.
엘런이 뿜어내는 살기는 이프루와 생로레일의 거리를 초월하여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 전해졌다.
교황청에 있는 추기경 회의실은 일순간 침묵에 잠겼다.
“너희 같은 놈들은 내가 잘 알지.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득하려고 해도 자신의 안위나 이익만 생각하는 놈들. 그런 놈들한테는 그것을 빼앗아가는 게 가장 효과적이더라고.”
엘런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니 제발 가만히라도 있어라. 일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그 말을 남기고 엘런은 신관의 방을 나가 버렸다.
“…….”
그가 나갔음에도 신관의 방 안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