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96
196
케롤 성으로 (3)
* * *
생로레일의 신전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온 엘런은 곧바로 병력을 소집했다.
“우리는 토마르의 케롤 성으로 간다.”
그리고 병력이 모두 모이자마자, 케롤 성으로 병력을 이끌었다.
갑작스러운 이동에 병사들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엘런 덕에 전장에서 몇 번이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자들이다.
그가 한다고 하면 병사들은 이내 아무 이견 없이 그를 따랐다.
판톤은 그런 연합군의 모습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정말 이렇게 가도 되는 것이오?”
항상 에레네스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던 판톤도 이번 건은 부담스러운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은 향후 에레네스와 토마르 사이의 외교 분쟁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엘런 역시 그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대로 두고 보고 있다가 릭에게 세 번째 성유물을 내주는 것보다는 이것이 훨씬 좋은 선택지였다.
그가 알고 있는 릭은 절대 일을 뒤로 미룰 자가 아니었다.
“그는 성유물을 가질 때마다 강해지고 있소. 세 번째 성유물을 가진다면 그때는 나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수 있소.”
그 말이 판톤의 걱정을 잠재워 주었다. 아니, 정확히는 걱정을 덮어 주었다는 것이 맞았다.
그가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 엘런보다 더 강한 사람은 없었다.
그의 압도적인 위력을 보고 있노라면 지금까지 자신이 얼마나 게을렀는지 느끼게 되었다.
그는 혼자서 성 하나를 거뜬히 제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엘런이 어쩔 수 없는 상대가 되어 버린다니. 그것은 서부 대륙 전체의 재앙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다.
그런 점을 생각해보면 에레네스와의 외교적 갈등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일단은 모두가 멸망하는 것부터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말이 전적으로 맞소. 지금은 생로레일 따위에 신경 쓰고 있을 겨를이 없소.”
현재 합류한 연합군 중 유일하게 릭과 대적해 본 적이 있는 자는 한센이었다.
릭의 힘을 직접 체험해 본 그는 당연하게도 엘런의 의견에 동의했다.
에레네의 검, 한센의 동의 덕분에 추기경들과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당장 연합군이 와해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가는 게 늦지는 않겠소?”
“그것이 가장 문제요.”
판톤의 질문에 엘런은 머리를 긁적였다.
엘런은 연합군 창설과 동시에 정찰대원을 곳곳에 보내 놓았다.
그의 전투 철학인 정보의 중요성을 이곳에서도 똑같이 실천한 것이다.
게다가 저들은 포탈을 이용한 이동을 했다.
이동에 걸리는 시간을 벌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빠른 정보 전달이 필요했다.
‘대원들이 정찰하고 있는 지역에서 몬스터들이 점점 빠지고 있다고 하오.’
생로레일에서 병사들의 소집 명령을 내렸을 때쯤 샤를리에게 들은 보고였다.
전 지역에 퍼진 몬스터를 결집한다는 것은 대규모 공세를 의미했다.
지금까지의 패턴에다가 대규모 공세의 준비 시간을 더한다 치더라도 지금쯤이면 그들이 움직일 때였다.
엘런이 스탱 성으로 가 있는 동안 연합군이 생로레일에 들렀다 곧장 케롤 성으로 가기만 했으면 여유 있게 도착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전략들이 더욱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추기경들의 횡포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저들이 언제 공격이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점이오. 게다가 포탈을 사용하는 만큼, 아무 전조도 없이 불쑥 공격해 오겠지.”
그나마도 포탈이 열리기 직전의 반응 정도는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이 위안거리였다.
그러나 그것도 고작 몇 분 전의 반응을 알아차리는 것이 전부였다.
예를 들어 지금 당장 케롤에서 포탈 반응이 감지된다면, 연합군 측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우리가 없는 상황에서 몬스터의 공격을 받으면, 케롤 성은 잠깐도 버틸 수 없을 것이오.”
판톤의 걱정은 바로 연합군 수뇌부 모두의 걱정이었다.
그들은 몬스터들과 직접 전투를 벌이며 저들의 위험성에 대해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그것들에게는 포로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을 오로지 하나의 먹잇감으로밖에 보지 않는 녀석들.
그들이 성으로 진입하는 날에는 그 참극은 눈 뜨고 볼 수 없어질 것이다.
자신들의 공간에서 그저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자들과는 달랐다.
이들은 몬스터 문제가 전 대륙으로 퍼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한 자들이었다.
“케롤 성까지는 이제 이틀 정도 남았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까지 그들이 공격하지 말아 주길 바라는 것뿐이오.”
“그렇겠지.”
엘런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속도를 더 내기는 해야겠소. 토드 경, 기마병들이 타고 있는 말 중 일부를 부상자나 짐수레에 쓰도록 하겠소. 아드리안 경, 그대는 지원병들이 본대와 많이 떨어지지 않게 보급로 작업을 지금보다 반 정도로 줄여 주시오.”
그렇다고 가만히 에레네께 기도만 하고 있을 엘런은 아니었다.
그는 현시점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노력을 할 생각이었다.
“알겠소.”
엘런의 명령을 들은 이들이 각자의 위치로 말을 몰았다.
엘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도저히 자신들이 몬스터와의 대규모 전면전을 앞둔 사람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불길한 예감은 뭐지?’
그의 눈에는 파란 하늘이 어째서인지 검은빛이 감도는 것처럼 보였다.
* * *
엘런의 우려와는 달리 이틀간 케롤 성 주변에서 포탈 반응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케롤 성이 보인다.”
케롤 성의 성벽이 저 멀리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러자 엘런을 포함한 연합군의 수뇌부들은 조금이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이곳에서 보기에 케롤은 무척이나 평화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늦지는 않은 것 같소.”
이들 중 유일하게 토마르의 국민인 판톤은 안전한 케롤 성의 모습에 가장 안도하는 것 같았다.
“샤를리 경, 포탈 반응은 어떻소?”
“아직 포탈 반응도 잡히지 않소. 우리가 성문을 걸어 잠그고 싸울 수 있을 것 같소만.”
오는 내내 대규모 탐지 마법을 사용하느라 샤를리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조금씩 보였지만, 그럼에도 그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성에 진입하는 대로 병력들도 조금 쉬게 해야 할 것 같소. 행군 속도를 올리느라 저들도 매우 힘들었을 게요.”
“그 전에 그대도 조금 쉬어야 할 것 같소.”
판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엘런에게 말했다.
엘런은 이틀간 잠을 거의 안 자다시피 할 정도로 무엇인가를 연구했다.
밤마다 그의 막사 안에서는 바람과 냉기가 불어 나왔다.
그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최소한 동이 트기 직전까지도 그의 막사에서는 같은 현상이 반복되었다는 것이다.
“걱정해 줘서 고맙소. 하지만 나는 괜찮소.”
엘런이 그를 향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연합군은 케롤 성을 향해서 나아갔다.
미리 앞서 나간 척후병이 돌아와 케롤 성의 입성 허가를 받았다고 보고했다.
그들이 이제 입성이라고 생각할 때였다.
가끔씩 불행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찾아오고는 한다.
그리고 긴장이 풀린 바로 그때가 불행에게 공격당하기 가장 좋을 때이다.
“포탈 반응이 감지되었소!”
그리고 샤를리의 외침이 그 명제를 참으로 만들어 주었다.
“포탈 반응이라니? 그들이 오고 있다는 말이오?”
토드가 깜짝 놀라며 샤를리에게 되물었다.
그도 샤슬리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 입성까지 30분도 남겨 놓지 않은 이 시점에 그런 소리를 들으니 믿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그렇소.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오.”
샤를리는 애써 현신을 외면하고 싶었던 그들을 확인 사살시켰다.
“성문 진입은 없다. 곧바로 방어태세로 전환해!”
수성전(守城戰)을 생각하고 있던 엘런은 곧바로 계획을 수정했다.
지금은 무심한 하늘을 원망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반응이 잡히고 포탈이 열리기 전까지는 불과 몇 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전에 모든 병사가 진영을 완벽하게 구축하고 있어야만 했다.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는군.”
한센이 엘런의 말에 가장 먼저 움직였다.
“젠장, 기병대 전부 불러와!”
“방패병부터 앞세운다.”
그제야 다른 지휘관들도 정신을 차리고 부대 지휘에 들어갔다.
성문까지는 아직 거리가 남아 있었다.
절대 몇 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성문을 여닫는 작업 또한 쉽지 않았다.
성문을 여닫는 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포탈은 이미 열리고도 남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또 평원 전투를 해야 한다는 건가?’
케롤 성을 목전에 두고 연합군은 횡으로 긴 진영을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
엘런은 문뜩 메카 평원의 전투가 떠올렸다.
물론 그때보다 병력의 경험이며 숫자에서 훨씬 차이가 나긴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몬스터의 숫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척척척.
거의 4만에 달하는 숫자였음에도 연합군은 금세 진영을 갖추었다.
지금까지 헬라 왕국을 토벌하면서 평원 전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성에서 벌인 전투보다 평원 전투가 익숙했다.
“온다.”
연합군이 신속하게 진영을 구축을 완료했을 때였다.
샤를리의 입이 열렸다.
슈우욱. 슈욱. 슈우욱.
공기를 집어삼키는 듯한 소리.
바로 포탈이 열릴 때 들리는 소리였다.
일대를 몬스터의 서식지로 만들어 버리는 지옥의 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많기도 하군.”
최전방에서 방패를 들고 있는 병사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그들의 앞에 나타난 포탈의 개수가 5개였다.
그것을 지켜보던 이들의 입에서 탄식이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쿠워어어어어!”
저 멀리서 굶주린 몬스터들의 포효가 들려왔다.
지금은 구멍을 넘어 들려오는 것이지만, 그것은 곧 그들의 눈앞에 나타나 누런 이빨을 들이밀며 낼 소리이기도 했다.
포탈의 검은 아가리에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콰콰콰.
하늘에 구멍이 났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았다.
다만, 거기서 나오는 것들이 몬스터인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감을 느끼게 했다.
몬스터의 출현은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공간을 찢어 놓은 5개의 구멍에서 나오는 데도 한참이 걸릴 만큼 많은 수의 몬스터들이었다.
슈우우욱.
그리고 내용물을 싹 다 토해 낸 것인지 검은 구멍이 입을 다물었다.
“오오, 신이시여.”
판톤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싶은 심경이었다.
평원에 뿌려진 몬스터의 숫자는 최소한 10만은 되는 것 같았다.
몬스터들은 케롤 성 앞을 그야말로 빽빽하게 채우고 있었다.
그것도 오로지 하급 몬스터들로만 이루어진 오합지졸들이 아니었다.
트롤급의 상급 몬스터가 흔하게 보일 정도였다.
판톤은 에레네가 재림이라도 하지 않는 한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저들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계라는 곳이 이럴까?”
“세계가 멸망하려나 보군.”
다른 이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10만이 넘는 몬스터 대군의 위용은 그만큼 터무니없었으며 역겨웠다.
그때, 몬스터 대군 사이로 한 사내가 유유히 걸어 나왔다.
“저자는……?”
“릭?”
“저놈이 바로 그 악마 같은 놈이었군.”
릭의 입가에 기분 나쁜 웃음이 떠올랐다.
“꼭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말을 안 듣더라고. 그냥 처음 말했던 대로 성유물만 내놓았으면 쉽게 가고 좋잖아?”
그는 경멸을 잔뜩 머금은 눈빛을 한 채 연합군을 향해 말했다.
거리가 꽤 있었지만, 그의 말은 공간을 초월하는 것 같이 선명하게 들렸다.
그것은 케롤 성안에 있는 주민들에게도 똑같았을 것이다.
“이제 너희들은 이놈들의 먹잇감이나 되어라.”
밖의 상황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케롤 성의 주민들은 공포에 휩싸였다.
뒤이어서 들리는 몬스터들의 포효는 그들은 더욱 공황 상태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그게 더 나은 것일 수도 있었다.
밖의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고, 10만이 넘는 몬스터들을 직면하고 있는 병사들은 차라리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릭 체들턴.”
그들의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 때였다.
엘런이 앞으로 나오며 적의 이름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 역시 모두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열심히 도망쳐서 다시 제 발로 찾아오다니. 이번에는 도망칠 수 없게 다리를 분질러 놔 주지.”
“이, 이 새끼가…….”
엘런의 목소리가 들리자 릭의 몸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그의 얼굴에는 방금까지 짓고 있던 기분 나쁜 미소 대신 치욕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 네놈이 거기 있었구나. 내가 약속하지. 내가 절대로 네놈은 편히 죽여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화를 참으며 말하려고 애썼지만, 그의 목소리는 심각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한테 두 번은 진 놈이 어디서 그런 자신감이 나온 거지? 그리고 잊었나?”
엘런의 오른쪽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넌 항상 싸움 전에 그렇게 입을 놀렸지. 그 결과도 잘 알고 있겠지?”
“이 새끼가!”
릭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라도 되었는지 몬스터 대군이 케롤 성을 향해 돌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