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198
198
격돌 (2)
* * *
‘저런 건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 오는 거야?’
엘런은 공중에 떠 있었기에 지상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릭에게서 떨어져 나간 2개의 구체는 끔찍하게 생긴 괴물로 변했다.
그리고 녀석들은 자신이 떨어진 자리에서부터 대학살을 자행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센과 판톤을 비롯한 지휘관들과 특수부대원이 저 괴물들을 막으러 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들만으로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엘런은 9개의 마나 줄기를 휘두르고 있는 괴물들을 보며 생각했다.
척 보기에도 저들은 하나하나가 7서클 유저 마법사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센과 판톤이 나선다고 해도 녀석들을 막아 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에 비해 이성 없이 휘두르기만 할 줄 안다는 것에 희망을 걸어야겠다. 일단, 저것들은 저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원흉부터 처리한다.’
엘런은 릭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저들은 나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내 분신과도 같은 녀석들이다. 저런 잔챙이들만으로는 상대도 할 수 없겠지.”
릭은 엘런의 곤란한 표정을 읽은 것인지 곧바로 그를 조롱했다.
“굳이 하나하나 설명 안 해 줘도 될 텐데?”
“너도 곧 저놈들처럼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네 입을 막으면 된다는 거지?”
뿌드득.
릭의 이빨이 큰 소리를 내며 갈렸다.
그는 아카데미 시절부터 엘런에게 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분명 자신이 더 위대한 혈통을 타고났다.
혈통도 알 수 없는 평민 출신인 그가 마법사의 혈통인 자신보다 더 뛰어날 수는 없었다.
아니, 평민 출신뿐만 아니라 그 어떤 마법사도 체들턴 집안보다 더 뛰어난 마법사는 없어야 했다.
자신이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항상 자신에게 맞추고 순종했다.
체들턴 가문의 후광은 그 누구라도, 심지어 아카데미의 교장마저도 한 수 접고 들어갈 만큼 컸다.
그러나 엘런은 뭔가 이상했다.
티가 나게 반항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복종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놓고 불복하지는 않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자신의 속을 살살 긁었다.
그에게서는 마흔 살을 넘긴 것 같은 중년의 능글거림이 보였다.
그를 보면 항상 기분이 상했지만 이렇다 할 꼬투리를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었다.
결정적으로 마법 아카데미의 대전, 그것이 문제였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어디로 보든 자신이 엘런에게 패배한 것이 확실했다.
동년배에서 자신의 실력은 따라올 자가 절대 없다고 확신했던 생각이 깨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엘런이 신경 쓰였다.
엘런은 자신의 감정을 알고 그러는 것인지 더욱 자신의 속을 긁어 댔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그의 말 한마디만으로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르게 된 것이다.
“내리쳐라, 기가 라이데인.”
콰르르르릉.
이번에도 릭은 엘런의 도발에 넘어갔다.
그를 향해 선공을 날린 것이다.
맑았던 하늘이 순식간에 구름으로 뒤덮이더니 엘런을 향해 번개가 내리쳤다.
‘안티 매직 쉘, 3중첩.’
엘런은 특유의 무영창을 통해 빠르게 방어 마법을 펼쳤다.
번개와 충돌한 그의 방어막은 큰 충격 없이 릭의 마법을 흡수해 버렸다.
‘역시 서클이 오른 건가?’
엘런은 릭의 마법을 보고 생각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릭은 5서클 마스터였다.
그러나 방금 엘런을 공격했던 마법은 기가 라이데인.
그것은 6서클의 전격 마법이었다.
릭은 6서클의 마법을, 그것도 가장 짧은 영창으로 사용한 것이다.
체들턴 가문의 핏줄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소 6서클 마스터에는 도달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포탈을 사용했으니 9서클이라고 봐야 하나?’
엘런은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기각했다.
그가 몬스터를 소환할 때 9서클 이동마법 포탈을 사용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9서클이었다면, 애초에 기가 라이데인을 이용한 공격을 하지 않고 더 고위 마법을 사용했을 것이다.
‘저 괴물들에 대해 이야기한 것까지 함께 생각해 보면, 추정하건대 7서클 유저.’
엘런은 릭의 수준을 상정했다.
그리고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엘런 자신이 더욱 발전하지 않았더라면 자칫 릭을 이길 수 없을 수도 있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엘런도 극적인 성장을 이뤄 낸 후였다.
7서클 유저 정도는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옛 추억이 떠오르게 해 주지.”
후웅, 후웅.
엘런은 뒤에서 수많은 빛줄기가 생겨났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이었다.
슈우웅.
그 빛줄기들은 엘런의 손짓에 따라 릭을 향해 날아갔다.
“저놈의 무영창!”
방어할 타이밍을 빼앗긴 릭은 타고 있던 와이번을 이용해 그것들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곡예비행이 가능한 와이번이라 하더라도, 한 치의 빈틈도 없이 전 방향으로 날아오는 빛줄기들을 모두 피할 수는 없었다.
콰앙.
빛줄기는 무엇인가에 부딪힌 것인지 큰 충돌 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다른 빛줄기들이 같은 지점으로 날아갔다.
충돌 음과 함께 피어오른 연기가 사라지자 그곳에서는 상처를 입은 와이번이 보였다.
녀석은 날개가 찢어진 채로 겨우겨우 비행을 유지하고 있었다.
입에서 나오는 병든 강아지 소리는 녀석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암시했다.
와이번과는 달리 릭은 큰 상처는 없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에 긁힌 상처들이 많았다.
흐르는 피를 닦은 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관자놀이에 돋은 핏줄이 그의 감정 상태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는 방금 본 엘런의 공격에서 아카데미 때의 자신이 떠올랐다.
그때에도 엘런은 수십 개의 매직 미사일로 자신을 공격했다.
자신은 거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금기까지 어기며 고서클 마법을 사용했다.
그 상황을 다시 직면하게 되니, 자신의 몸에 입은 상처와 상관없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생겼다.
“어때? 우리의 추억이 떠오르는 것 같나?”
엘런은 쉬지 않고 그의 속을 긁었다.
“하메론의 밑에 빌붙어 콩고물을 받아먹고 살아도 우리의 우위는 변함이 없는 것 같군.”
릭의 얼굴이 울룩불룩해지는 것을 보면서 엘런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너의 말대로 혈통이 있는 거라면, 네놈의 혈통은 평민보다 못하다고 볼 수 있겠어. 나나 하메론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성유물을 다 모으기만 해 봐라. 그때는 네놈이고 그놈이고 모두 죽여 버릴 테니까.”
엘런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원래 전투 중에 입을 자주 여는 엘런이기는 했다.
그러나 이토록 심하게 상대의 속을 긁지는 않았다.
그것보다는 그냥 힘으로 누르는 것이 훨씬 빠르고 편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부터 끝까지 도발을 한 이유는 릭으로부터 정보를 캐내기 위함이었다.
“네놈이 하메론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이 성유물이었군. 그런데 이걸 어째? 두 번째 성유물을 통해 강해지기까지 했지만, 여전히 나한테는 안 되고 하메론이 오지 않으면 세 번째 성유물은 가져가지 못하겠는데.”
엘런의 말을 듣고 있던 릭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그의 몸이 들썩였다.
“크크크큭.”
릭은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이게 정말 내가 가진 힘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무슨 의미지?”
갑자기 분위기가 달라진 릭을 보던 엘런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하메론에게서 힘을 빌린 나조차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네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도대체 그 자존심은 언제까지 가져갈 생각이지?”
릭의 주위로는 아직도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엘런의 가장 기본적인 공격조차도 제대로 막지 못하는 그였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고 있었다.
“세 번째 성유물을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했나?”
그는 여전히 몸을 숙인 채 고개만 들어 엘런을 바라보았다.
엘런은 거기서 어떤 괴기함을 느꼈다.
“너는 지금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말만 뱉어 냈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난 직후, 그의 주변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쿠쿠쿠쿠쿠쿠.
엘런의 발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지진처럼 땅이 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알다시피 그들은 공중에 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공간의 진동이었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조차 위화감이 느껴지는 표현. 하지만 그것만큼 옳은 표현은 없었다.
엘런의 목 뒤로 찌릿한 무엇인가가 지나갔다.
“αΘΗΨΔФЖЗʤɤ”
릭의 입에서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튀어나왔다.
언뜻 듣기에는 중부 대륙의 수인들이 사용하던 고대어와도 비슷한 것 같았다.
그러나 엘런도 고대어에 대해서는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다.
릭의 입에서 나오고 있는 그것은 애초에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의 몸에서 검붉은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혈마법사들이 사용하는 마나 색깔과도 비슷했지만, 거기서 느껴지는 기운은 훨씬 더 괴기했다.
확실한 것은 절대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기운이었다.
피부에서 흘러나온 그 마나는 고치처럼 릭의 몸을 감쌌다.
‘아이스 캐논.’
이대로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다고 판단한 엘런이 릭을 향해 마법을 사용했다.
오우거의 머리통만 한 얼음 덩어리가 릭을 향해 날아갔다.
푸확.
그러나 결과는 그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그의 아이스 캐논은 검붉은 마나에 부딪히지도 않았다.
차라리 그것은 흡수되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다.
이시르의 힘까지 더해진 얼음 덩어리는 그대로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마나가 릭을 모두 감싼 후, 아주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마나들이 꿀렁이기 시작하더니 영원히 부서지지 않을 것 같던 고치가 사라져 갔다.
“크르르르.”
해체되어 가고 있는 고치 안에서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스스스.
그 소리가 엘런의 귀로 들려오는 순간, 그는 모든 털이 곤두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혈류량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도 느껴졌다.
몸에 변화가 생긴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저 일종의 ‘생존 본능’이라는 것이 자신을 향해 경고하는 것이었다.
‘저 안에서 등장하는 것은 생명에 커다란 위협을 줄 수 있는 존재이다. 피해야 한다.’
머릿속에서는 생존 본능이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하지만 엘런은 자신의 본능에 따르지 않았다.
여기서 도망친다면 더 위협적인 적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저 안에서 무슨 짓을 벌인 거지?’
엘런은 조금씩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기 위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마나를 순환시켰다.
온몸에 마나가 돌자 마음이 조금이나마 진정되는 것 같았다.
피윳.
무엇인가 아주 빠른 속도로 공기를 가르는 소리였다.
엘런의 주기술인 개량형 매직 미사일.
그것이 날아갈 때면 이런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엘런이 사용한 마법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포스 필드, 5중첩.’
엘런은 재빨리 방어막을 펼쳤다.
6서클의 방어 마법 포스 필드는 웬만한 공격은 거뜬히 막아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을 5개나 겹쳐서 사용했다.
그리고 5개의 반투명한 막에 가느다란 구멍이 뚫렸다.
“이런…….”
엘런은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몸을 틀었다.
지면을 밟고 있지 않았기에 급속기를 통한 빠른 회피도 사용할 수 없었다.
촤악.
주륵.
오른쪽 팔에서 불에 덴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정말 살짝 스쳤다고 생각했는데.’
엘런은 피로 붉게 물들어 버린 자신의 팔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아주 약간의 접촉만으로 이런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크르르르르.”
정면에서 다시금 낮은 울림이 들려왔다.
엘런은 자신의 오른팔로 향해 있던 시선을 정면으로 돌렸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인간이기를 포기한 거였군.”
그의 정면에는 릭으로 추정되는 괴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의 형상 어디에서도 릭의 이전 모습을 떠올릴 수는 없었다.
그것은 지상에서 한센과 도란이 상대하고 있는 끔찍한 괴물의 모습과 거의 흡사했다.
다른 점은 오직 눈, 코, 입의 형태를 가진 곳에서 검붉은 마나가 진득하게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거 정말 제대로 해야 살 수 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