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
2
마법보조사 앨런 (1)
톡, 톡.
무엇인가 볼을 건드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으음.”
천근같은 눈꺼풀을 뜬 엘런은 자신의 잠을 깨운 원인을 찾았다.
구구구.
비둘기 한 마리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요 녀석!”
엘런이 책상에 엎드린 상태에서 베고 있던 팔을 뻗었다.
푸드득.
전서구가 그의 손가락으로 올라왔다. 전서구의 발목에는 종이가 묶여 있었다.
-새로운 의뢰. 보수: 상, 위험도: 중
쪽지를 확인한 엘런은 책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후두둑.
쿵!
푸드드득-!
그러자 어젯밤 잠들기 직전까지 읽고 있던 책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전서구는 그 소리에 놀라서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마법진 구성에 관한 수식.
엘런은 땅에 떨어진 그 책을 집어 들었다.
이미 다섯 번째 정독한 책이었다. 그를 방증하듯 책의 표지는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쏘옥.
엘런은 그 책을 책꽂이 세 번째 칸에 꽂아 넣었다.
그 칸은 다섯 번 이상 읽은 책들을 넣어 두는 칸이었다.
그 위로는 훨씬 더 닳은 책들이 한가득 꽂혀 있었다.
‘책꽂이를 더 사야겠어.’
이미 한쪽 벽면이 책장이었음에도 자리가 없어 밖에 꺼내 둔 책들이 널려 있었다.
모두 최소 세 번은 읽은 책들이었다.
스윽, 스윽.
책들을 옆으로 대충 밀어 둔 엘런은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는 부스스한 갈색 머리, 짙은 다크서클이 껴 있는 눈, 붉은색 자국이 생긴 이마를 가진 중년이 서 있었다.
“그 무엇보다 청결한 자여, 그대의 깨끗함은 나의 불결함을 씻어낼지어다. 클린.”
휘리릭!
엘런의 주위로 마나가 생겨나더니 그의 부스스한 머리부터 입가에 묻어 있는 침 자국까지 모두 깨끗해졌다.
주섬주섬 옷을 입은 엘런은 문밖을 나섰다.
의뢰를 맡겨 온 용병단은 엘런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엘런, 요즘 왜 이렇게 안 보였어?”
“한동안 돈이 넉넉했지.”
“크하하, 이제 돈이 부족해졌나 보군.”
“그래서 쪽지 받고 한걸음에 달려왔잖아.”
“다음에 술이나 한잔하자고.”
“그러지.”
일상적인 대화를 하며 용병단 건물로 들어가자 단장실에 있어야 할 단장이 바로 보였다.
“보조사 새끼는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얼마나 더 기다려야 돼?”
40대로 보이는 로브를 입은 사내의 말에 단장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오고 있을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있을 겁니다’라고 했나? 그럼 안 오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건가? 자네 지금까지 거래를 이렇게 해 왔어?”
사내의 말도 안 되는 트집에도 단장은 쩔쩔매며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고, 아닙니다, 마법사님. 얼른 그놈을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단장의 모습에 사내는 어깨를 쫙 폈다.
“마탑의 마법사와 거래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마법사가 마법보조사를 기다리는 꼴이라니, 나 원 참.”
‘하여튼 이래서 마법사 새끼들은 콧대만 높아서 상종을 하기가 싫단 말이야.’
하지만 그 마법사가 돈을 준다는데 어떻게 상종을 안 한단 말인가.
엘런은 찌푸렸던 인상을 풀고는 비굴한 표정을 지으며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죄송합니다. 제가 의뢰 소식을 듣자마자 이렇게 바로 왔는데 본의 아니게 마법사님을 기다리게 했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엘런은 거의 직각으로 허리를 굽혔다.
“그렇게까지 사과를 하니 나도 더 뭐라고 하지는 않겠어.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고작 이 반응을 받고 싶어서 이 깽판을 치는 거냐?’
엘런은 그의 옹졸함에 치를 떨었지만 겉으로는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유지하며 고개를 들었다.
“너! 너 설마 엘런이냐?”
“마, 맞습니다.”
“너 나 모르겠어? 레오나드야, 레오나드 콜먼!”
레오나드의 입가에 거만한 미소가 지어졌다.
‘어떻게 모르겠냐, 네놈을.’
레오나드 콜먼.
자신의 아카데미 동기로, 평민 출신이었던 그는 오로지 재능으로만 마법사가 된 케이스였다.
이론, 수식, 전술 어떠한 분야에서든 낙제점을 받은 이놈은 오로지 미칠 듯한 재능으로 모든 걸 커버하고 마탑에 들어가 마법사가 되었다.
마법사가 되면서 콜먼가에 입적하게 되어 성까지 가지게 된 것이다.
“반갑습니다.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엘런은 프로였다. 배배 꼬여 들어가는 속과는 달리 겉으로는 영광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법보조사로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난 믿지 못했어. 아카데미 시절 그렇게 열심히 하던 친구가 마탑에 못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 파하하하하!”
레오나드는 일부로 더 과장되게 웃었다.
“저 같은 놈이 무슨 마법사겠습니까? 제가 레오나드 님을 잘 보조하겠습니다.”
엘런은 치밀어 오르는 욕지거리를 억지로 삼키고는 말했다.
“아아, 아카데미 동기끼리 무슨 님이야? 그냥 불러도 돼. 친구 좋다는 게 뭐겠어?”
“그래도 레오나드 님은 마법사이지 않습니까?”
“그건 또 그러네. 뭐 네가 괜찮다니 그럼 계속 그렇게 부르도록 해, 파하하하하하하!”
“생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이번 임무에 대해서 설명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네가 들을 설명이 뭐가 있겠어. 그냥 날 보조해 주기만 하면 돼 설명은 가면서 대략적으로 해 줄게. 지금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빨리 출발하자.”
레오나드는 엘런의 어깨에 팔을 턱 얹고는 용병단을 나섰다.
* * *
이 빌어먹을 녀석에게 대략적으로 설명 들은 대로면 이번 의뢰는 마탑에서 새로 발견한 미니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었다.
마탑 쪽은 레오나드와 그의 제자 한 명이 나왔고 용병단 쪽에서 검사와 마법보조사를 파견하는 형식이었다.
“불태워라, 파이어볼”
퍼엉! 퍼엉!
두 개의 불덩이가 스켈레톤을 맞췄다. 불덩이에 맞은 스켈레톤들은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훗, 별것도 아닌 놈들이 까불고 있어. 저쪽에서 좀 쉬다가 가자고. 빛 좀 비춰 봐”
손을 툭툭 턴 레오나드가 엘런을 보며 말했다.
“마나여,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내리는 한 줄기 빛이 되어라. 라이트.”
화아악
밝은 빛이 동굴의 어두운 곳을 비췄다.
용병들은 새삼 마법이라는 것에 감탄을 하며 숙영 준비를 시작했다.
자신에게 장난스럽게 엄지를 치켜드는 용병들을 보며 피식 웃은 엘런은 자신도 숙영 준비를 시작하려 했다.
“어휴. 고작 1서클짜리 라이트를 쓰는 데 영창이 왜 그렇게 긴 거야?”
역시나였다. 마법사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항상 듣는 소리다.
“제가 마법에 영 소질이 없다 보니 영창을 줄이는 게 힘이 들어서 말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도 항상 정해져 있었다.
“마틴, 우리같이 마탑 시험을 통과한 마법사들과는 달리 아카데미만 졸업한 마법보조사들은 저렇게 수준이 떨어진단다. 너도 보조사를 보는 게 처음이니 내가 저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보거라. 언젠가 네가 써야 할 놈들이 아니겠느냐?”
하지만 이 녀석은 보통이 아니었다.
“예, 스승님. 그래도 저희가 저들 덕분에 쓸데없는 일에 마나를 소모하지 않아도 되니 유용한 존재들 아니겠습니까? 파하하하”
스승이나 제자나 똑같은 놈이었다. 엘런은 그 말을 들었으면서도 못 들은 척 용병들 쪽으로 갔다.
‘어째 이번 임무 피곤해질 것 같은데. 잘못 걸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