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06
206
모함 (1)
그 후 교황 트리에스테의 이름으로 서부 대륙 전체 지도자 회의가 소집되었다.
그녀로서도 이번 사태가 전 대륙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대륙 최초의 연합군, 그들에 대한 공치사도 협의해야 했다.
4개의 성유물을 잃어버리며 결과적으로는 실패한 것 같았지만, 헬라 왕국의 수복부터 케롤 성 방어전까지 그들이 해낸 것들을 찬찬히 살펴보면 기적에 가까운 것들이 대다수였다.
여기에 대해서 이견을 달 수 있는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그 때문에 이번 회의는 각국의 국왕들뿐만 아니라, 대신들 그리고 에레네스의 추기경들까지 모두 참가하는 최대 규모의 회의가 될 예정이었다.
덕분에 엘런은 뜻밖의 휴식을 취할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을 적대시하는 자들이 득실대는 에레네스, 거기서도 수도인 이프루에서 머무는 것이라 불안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연합군 작전으로 인해 엘런을 보는 에레네스의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연합군에 참전해 엘런과 함께 싸웠던 이들은 이제 그가 마법사라는 것을 신경도 쓰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제쳐 두고도 엘런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연합군 창설 이래로 단 한 번도 편하게 쉰 적이 없는 그였다.
항상 전략을 짜고, 신관들의 고유 특성을 외웠으며 그것도 아니면 수련에 빠져 살았다.
게다가 그렇게 치열했던 릭과의 전투 후에도 그를 심문하느라 휴식을 취하지 않았다.
그 후 곧바로 성유물 이관까지 했으니 이렇게라도 강제적인 휴식을 가지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달리기만 하다가 이런 시간을 가지니 내심 좋기도 하군’
그야말로 망중한(忙中閑)이었다.
너무나 치열하게 달려온 탓에 그는 침대에 눕는다고 생각하니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일단 몸을 눕히고 나니 더 이상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정확하게는 움직이기가 싫었다.
엘런의 정신은 계속해서 해야 할 일들을 찾았지만, 그의 몸은 모든 활동을 거부했다.
‘그래도 이틀을 이러고 있어서 그런지 슬슬 불안해지기도 한단 말이지.’
사흘째가 되는 날 엘런의 마음속에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국왕들이 도착하려면 빨라도 닷새는 더 걸릴 것이었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가만히 있지를 못한 것이다.
-지금껏 그렇게 달려왔으니 몸이 성할 리가 있나. 지금은 아무 생각하지 말고 쉬어라.
그의 생각에 답을 해 준 것은 프로뱅이었다.
그의 말투에서는 엘런에 대한 걱정이 한껏 묻어나왔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하메론은 성유물을 통해서 훨씬 더 강해졌을 겁니다. 저도 이렇게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것이 엘런의 마음속을 채우고 있는 것은 불안감의 원인이었다.
그는 한 수 아래라고 생각했던 릭에게도 고전했다.
그 전투를 복기하면 복기할수록 상황이 훨씬 더 어려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령왕들이 사용하던 기술을 재현할 수 없었다면, 자신이 패배할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릭보다 훨씬 더 강한 하메론을 이기려면, 자신도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눈치 때문에 마법을 크게 사용할 수도 없고, 그 왕국 놈들이 올 때까지는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는 것 아니냐?
프로뱅의 말에 엘런은 하는 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프로뱅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불안한 마음에서 나오는 습관적인 생각 같은 것이었다.
‘예, 그냥 간단한 훈련이나 이론들만 공부해 가면서 쉬어야겠습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모든 걸 놓고 쉬면 안 되는 것이냐?
‘어찌 그러겠습니까? 이 정도는 숨 쉬는 것같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려서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엘런은 7서클이 되어서도 그리고 그 이상의 실력이 되어서도 항상 수련을 빼지 않았다.
조금의 자만심이 생긴 적은 있지만, 그것은 원래 그의 기준으로 자만심이 생긴 것이었다.
타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그는 인류 최고의 경지에 올라가서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마법사였다.
수많은 현자가 말하는 훌륭한 마법사의 자질,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엘런이었다.
-나도 소싯적 수련 중독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왔지만, 너한테는 도저히 비벼 볼 수가 없겠다.
프로뱅은 그런 엘런의 결정에 치를 떨었다.
‘이 정도면 제 선에서는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그렇게 엘런이 프로뱅과 투덕거리고 있을 때였다.
똑똑.
“베리 님, 쉬는 중에 죄송합니다. 하녀장 안나입니다.”
이곳에 온 후로 줄곧 엘런을 담당하던 하녀장이 그의 방문을 두드린 것이다.
“괜찮으니 들어오게.”
엘런도 프로뱅과 말할 때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을 지워 버렸다.
그 대신 대외적으로 알려진 냉철하고 다부진 그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쩐 일인가?”
“교황님께서 추기경 회의를 개최하셨습니다. 그 회의에 베리 님도 참석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급히 결정하게 되어 미리 말씀을 못 드린 점에 양해를 구한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녀의 말에 엘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며칠 후면 전 대륙 회의가 있을 것인데 굳이 지금 회의를 개최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그저 뜻을 전하는 미천한 종이기에 교황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였습니다.”
안나는 엘런의 질문을 사전에 차단해 버렸다.
그로서도 굳이 하녀장에게 이유를 물을 것까지는 없었다.
‘이 시점에서 회의라…….’
최대 규모의 회의를 앞에 두고 급히 회의를 소집했다.
그리고 그 과정조차 자신에게 말하지 않다가 결과만을 통보해 왔다.
게다가 추기경 회의였다.
추기경들은 에레네스에서 그 누구보다 자신을 견제하는 세력이 아니던가.
그가 생로레일에서 한 행동까지 생각하면 여러모로 감정의 골이 깊은 상태일 것이다.
엘런의 직감으로는 그리 좋은 의도가 아니었다.
토마르 왕국에서 지원 세력을 보내기 전에 자신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짐작 가는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짐작하는 게 맞는다면, 엘런의 휴식 시간도 끝이 될 수도 있었다.
‘어쨌든 가 보면 알겠지.’
이틀이기는 했지만, 그는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또한 이곳에서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상대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여차하면 큰 전투를 벌여도 상관없었기에 그는 자신 있게 회의장으로 나갈 수 있었다.
“회의장으로 안내를 부탁하겠네.”
* * *
“……!”
“……?”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한두 명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해리 포드 시장통에 가도 이 정도로 시끄러운 날은 찾기 힘들 것이다.
엘런의 귀에 들리는 것은 말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소음에 가까웠다.
“듣고는 있는 것이오?”
자신의 말을 듣고 있지 않은 것을 눈치챈 것인지 한 사내가 목이 찢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엘런은 한숨을 내쉬며 의식으로나마 막고 있던 귀를 열었다.
“그대가 연합군의 총지휘관이라고 하더라도 추기경들을 위협할 수는 없는 것이오.”
“이곳에는 엄연히 교리가 있거늘 어찌 그대의 마음이 가는 대로 한단 말이오?”
추기경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엘런은 당장이라도 저놈들의 주둥이를 쳐 버리고 싶었다.
본디 장군의 주적은 적국의 장수가 아니라 그의 나라에 있는 정치인이라고 했다.
정치인은 항상 군인에게 질타를 가한다.
그 결과가 좋든 안 좋든 그것은 그들의 상관이 아니었다.
그러나 엘런은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자신이 일으킬 행동에 결과를 예상할 줄 알았고, 그 결과가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행동하지 않았다.
저들은 늘 하던 질타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한 소리 듣고 넘어가 주면 되는 것이었다.
생로레일에서 소동을 벌였을 때 이미 각오했던 상황이기도 했다.
또한 정치인의 질타는 일이 성공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들은 누구보다 자신의 안전에 예민한 자들이다.
안전에 위협이 조금이라도 남았다면, 엘런을 이토록 몰아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엘런이 없다면 그들의 안전을 지켜줄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이토록 말을 쏟아낼 수 있는 이유는 안전에 위협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연합군의 성공을 위해 에레네스의 최정예를 선별하여 보내 주지 않았소?”
“만에 하나 몬스터들이 생로레일 쪽으로 오면 어쩔 뻔했소?”
“텅 빈 에레네스는 그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했을 것이오. 그렇다면 에레네스의 신도들은 몬스터에게 희생당했겠지.”
“우선순위를 똑바로 아시오! 교황님이 계신 에레네스가 가장 우선이오.”
하지만 듣고 있던 엘런도 슬슬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한 이들이 하는 소리라서 그런지 더 아니꼽게 들렸다.
그의 표정이 점차 굳었다.
추기경들은 엘런의 분위기가 변한 것을 감지했다.
정치판에서는 눈치가 빠른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들은 엘런의 분위기에 맞춰 목소리를 조금씩 줄였다.
‘베리 경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잘 참아 주었네요.’
지금까지 그들을 지켜보고만 있던 트리에스테도 이제 상황이 정리되겠다고 생각했다.
“반성하시오! 그렇게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가는 뒤가 좋지 않을 것이오. 우리가 이 문제를 순순히 넘어갈 것 같소?”
그러나 아직 연륜이 쌓이지 않은 정치인들은 적절한 시기를 놓치고는 한다.
바로 젊은 추기경 부시가 그 예시였다.
모두가 조용하고 있는 상황. 그래서였는지 부시의 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돋보였다.
“순순히 넘어가지 않으면 어쩔 것이오? 내가 보기에, 안하무인으로 행동해서 뒤가 좋지 못할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소만.”
엘런이 얼굴만큼이나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치에 닳고 닳은 몇몇 추기경은 그 목소리만으로도 큰 위기감을 느꼈을 정도였다.
“그런다고 내가 겁이라도 먹을 것 같소?”
그러나 부시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옆에 있던 다른 추기경들이 그를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그대가 릭이라는 자와 개인적인 관계가 있다고 하더군. 그대만 보면 그가 꽥꽥 소리를 질렀다고 하니, 그것은 원한 관계였겠지.”
부시는 스티어드의 국왕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을 떠올렸다.
그것은 엘런과 릭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이것을 혼돈의 씨앗이라는 것과 잘 엮으면 단숨에 자신의 입지를 올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애초에 모든 일이 그대로부터 시작되었소. 따지고 보면 그대가 동부 대륙에서 이곳으로 건너온 것부터가 이 참극의 시작이 아니겠소? 어떻게 생각하시오, 혼돈의 씨앗?”
그러자 추기경들 사이에서 술렁이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엘런의 분위기를 살피고 있던 이들이 하나둘씩 부시의 편으로 붙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타면 부시와 함께 입지를 굳힐 수 있다.’
‘모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다.’
그렇게 생각한 추기경들이 부시의 말에 동조를 하고 나섰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내용을 말하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네놈이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았겠군.”
“그러면서 우리의 말을 듣지 않고 나섰던 것인가?”
“교황님의 신탁이 틀린 게 하나도 없군. 너는 서부 대륙에 학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들의 말은 어느새 하대로 바뀌어 있었다.
순식간에 추기경들은 엘런의 눈치를 살피는 이들과 상승기류에 탑승하려는 이들로 나뉘었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소. 그대는 어찌 스티어드 왕국의 성유물이 스탱 성에 있는지 알았으며, 또한 그자들은 어떻게 알았다는 것이오?”
결정타는 스티어드 왕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은 부시의 몫이었다.
“얼마 전에 스티어드 왕국에서 릭과 내통하고 있던 귀족 하나를 잡았다고 하였소. 그렇게 보면 아주 그림이 착착 맞아떨어지는 것 같지 않소? 둘 다 동부 대륙 출신에 마법을 사용한다라…….”
부시는 엘런을 바라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이를테면, 그대들이 서로 짜고 연극을 벌이고 있다거나 말이오. 그렇다면 그거야말로 ‘혼돈’이겠군.”
부시의 선동은 효과가 꽤 컸다.
전혀 근거도 없는 말들이었지만, 그들의 입맛에는 너무나도 알맞은 이야기였다.
“망상이 지나치군.”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멘도사를 찾아 친화력의 비약을 만들었고, 릭을 잡기도 했다.
반쪽짜리기는 하지만 하메론의 계획도 막았다.
자신이 이곳 서부 대륙에 굳이 있을 필요도, 이 일에 대해 해명해 줄 마음도 없었다.
이제부터는 개인적으로 활동해도 문제가 되지도 않았다.
“교황님,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저들이 그렇게 생각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제가 알 바가 아닙니다. 그자는 저 혼자서 찾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출입구 쪽으로 몸을 돌리자 뒤에서는 추기경들의 야유가 쏟아졌다.
그리고 부시는 의기양양한 표정을 한 채로 그들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잠깐! 모두들 그만하세요. 이제부터 그대들의 공격적인 발언을 허용하지 않겠어요.”
그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한 것은 지금까지 잠자코만 있던 트리에스테였다.
“제가 설명할 테니 모두 조용히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