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08
208
성인의 탄생 (1)
엘런의 손이 닿자마자 터져 나온 밝은 빛에 눈이 멀어 버릴 것 같았다.
그것은 감히 인간의 시력으로는 쳐다볼 수도 없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더 이상 버티고 있다가는 눈이 타 버리겠다고 생각한 추기경들은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그 가운데 오직 트리에스테만이 환한 빛 속에서 엘런을 끝까지 바라보고 있었다.
치이이익.
“크아아악!”
엘런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빛 속에서 들려온 소리만큼은 확실하게 들을 수 있었다.
무엇인가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고통에 찬 엘런의 신음이 터져 나왔다.
회의장 전체가 백색의 빛에 감싸졌을 무렵, 빛은 확장을 멈추고 다시 사그라졌다.
태양이 땅에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던 빛이 사라졌음에도, 회의장 안에는 아주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어떻게 된 것이지?”
“마지막 손길이 반응한 것일세. 성인聖人이 아닌 자가 팔찌를 착용하려 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난다고 하더군.”
“그래서 그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러더니 이내 추기경들의 말문이 트였다.
추기경들은 조금 전 일어난 변화의 결과를 아직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빛 때문에 좁아져 버린 동공을 돌려놓기 위해 눈을 껌뻑거렸다.
당장이라도 엘런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던 탓이었다.
아직 시력이 모두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물체를 분간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을 때, 그들의 눈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엘런이었다.
그의 몸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조금 전 들렸던 살이 타는 소리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의 몸에서는 탄내가 풍겨 왔다.
“역시, 버티지 못한 것인가?”
그런 엘런의 모습에 추기경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레네교에서 성인의 입지는 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존재였다.
다시 말해, 에레네교의 성서에서 신인 에레네 다음으로 높은 존재를 의미한다.
교황의 말대로 그가 마지막 손길을 착용할 수 있었더라면, 자신들은 그런 성인을 모욕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결코 가벼운 책임으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성인만이 할 수 있는 팔찌를 착용하고 있는 자.
그자를 성인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부르겠는가.
그러나 다행히도 주저앉아 있는 엘런을 보니 자신들이 우려하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호기롭게 팔찌에 손을 대더니 꼴이 좋군.”
“마지막 손길에서 나온 빛에 몸이 모두 타 버렸을 걸세.”
“한동안 팔찌 근처에도 가지 않겠군, 허허허.”
“교황님, 아무래도 잘못 짚으신 것 같습니다.”
“무슨 뜬금없는 성인 같은 소리인가 했습니다.”
그들은 엘런과 트리에스테를 조롱하면서도 얼른 그녀의 표정을 확인했다.
보나마나 분노와 창피함으로 얼굴이 울긋불긋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아무런 동요도 없어 보였다.
그녀는 오로지 엘런에게만 시선을 고정한 채, 그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그녀의 믿음에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것 같았다.
“후우…….”
그리고 그녀의 확고한 믿음은 곧 현실이 되었다.
“저들의 말대로 정말 몸이 타들어 가는 줄 알았습니다.”
주저앉아 있던 엘런이 몸을 일으킨 것이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던 그녀의 표정도 덩달아 밝아졌다.
물론 엘런이 몸을 일으킨 것 정도로 그녀의 표정이 밝아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의 눈은 엘런의 손목에 향해 있었다.
“서, 설마……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정말로 저자가…….”
반대로 그 모습에 추기경들은 말을 더듬거렸다.
그들의 안색은 시체보다도 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정말로 저자가 성인이라도 된다는 것인가?”
누군가 엘런의 팔목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의 오른손에는 마지막 손길이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초대 교황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교황도 성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 못한 마지막 손길.
그것이 엘런의 손목에 있다는 것은 그 의미부터가 달랐다.
“혹, 몸에 불편하신 점이라도 있습니까?”
엘런에게 말하는 트리에스테의 말투는 어느새 극존칭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무리 자신이 교황이자 에레네의 대리인이라고 하더라도, 성인보다 신에 가까운 자는 아니었다.
“교, 교황님, 어, 어찌 극존칭을 사용하십니까?”
공황상태에 빠진 추기경 하나가 트리에스테를 향해서 말했다.
그는 이 사실 자체를 믿고 싶지 않았다.
“지금 엘런 님의 오른손을 보고도 그런 말씀이 나오시나요? 저 팔찌를 착용하고 있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지 않으실 텐데요.”
추기경들은 아무런 말도 없어졌고, 반대로 그녀는 의기양양해졌다.
자신이 이계의 문에서 봤던 것이 결코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는 의미였다.
‘키에아스의 망토가 일으킨 반응. 그것은 분명히 성인에 대한 반응이었어요.’
그것을 알게 된 그녀는 엘런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게 되었다.
그간 자신이 그에게 행했던 행동들에 대해서도 깊게 반성했다.
“여러분들 앞에서 증명했으니, 이제는 엘런 님에 대해 아무런 말도 왈가왈부하지 않을 줄로 알겠습니다.”
회의장에서 그녀의 선언에 토를 달 수 있는 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괜찮은데?’
한편, 엘런의 관심은 추기경과 교황의 반응이 아니었다.
그는 오로지 팔찌를 착용함으로써 나타난 자신의 몸에 대한 변화를 살피고만 있었다.
‘처음의 고통은 상당했지만…….’
그는 팔찌에 손을 대자마자 휩싸였던 빛을 떠올렸다.
마치 태양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고통.
아무리 엘런이라고 하더라도 온몸이 타들어 가는 그 고통을 견디기는 힘들었다.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했을 그때, 갑자기 고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히려 그 빛이 따뜻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렴 상관없다.’
엘런은 자신의 고통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서는 그렇게 궁금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팔찌의 효과에 대해서 큰 호기심이 생겼다.
‘아드리안의 축복? 아니, 그 이상이다.’
지금 엘런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맑고 고요했다.
마치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혼자 명상을 하고 있는 기분.
팔찌를 착용하는 순간 머릿속에 떠다니던 잡념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어느 한 점에 몰입하기에 딱 알맞은 상태였다.
릭과 전투를 벌일 때, 아드리안은 엘런에게 이와 비슷한 축복을 걸어 준 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엘런은 정령왕들의 기술을 성공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마지막 손길’이 주는 효과는 아드리안의 축복을 한참이나 상회했다.
‘이런 상태라면 정령왕들의 기술을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겠어.’
엘런은 속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신기한 물건을 받았구나.
‘스승님도 눈치채셨습니까?’
프로뱅도 엘런의 몸에 일어난 변화를 눈치챘다.
그가 엘런과 완전히 연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토록 큰 변화는 눈치채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신이 훨씬 맑아진 느낌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나의 움직임도 달라졌다. 너의 몸 자체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엘런은 지금까지 맑아진 정신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었던 탓에 몸의 변화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프로뱅의 말을 들은 엘런은 급히 자신의 몸을 살폈다.
‘마나의 흐름이 훨씬 원활해졌어.’
자신의 몸을 타고 흐르는 마나.
그 흐름이 훨씬 더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어떤 것도 마나가 흐르는 것을 방해하지 않았다.
마치 몸이 새로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나의 질도 달라져 있었다.
훨씬 더 짙어진 마나의 농도.
이제는 같은 마나를 사용해서 같은 마법을 사용하더라도, 이전보다 최소 2배 이상의 위력을 낼 수 있었다.
엘런은 애써 흥분감을 감췄다.
-마나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을 봐야지. 그 흐름을 따라가 봐라. 아마 깜짝 놀라서 뒤로 나자빠질 테니.
프로뱅이 마나의 흐름만 살피고 있는 엘런에게 핀잔을 줬다.
‘그게 무슨…….’
-일단 한번 해 봐.
엘런은 그의 말대로 마나의 흐름을 따라갔다.
마나 하트에서 갓 나온 마나가 혈액과 함께 온몸을 순환하기 시작했다.
동맥을 따라 발끝까지 내려간 혈액은 다시 정맥을 타고 심장으로 돌아왔다.
‘혈액은 여기서 끝이고, 이제 마나는 심장 안에 있는 마나 하트로 들어가는…….’
마지막까지 마나의 흐름을 좇던 그것이 마나 하트로 들어가는 순간 깜짝 놀란 엘런은 프로뱅의 말대로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마나 하트의 크기가 달라졌다?’
엘런은 자신의 마나 하트가 이전보다 커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기존의 수련 법들처럼 아직 열리지 않은 마나 하트의 일부를 더 연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나 하트의 크기 자체가 커진 것이었다.
마나를 담을 수 있는 용량이 고작 일부가 열린 것과는 달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수련 법으로도 성공하지 못한 마나 하트 크기의 변화였다.
그랬기에 엘런과 프로뱅, 두 마법사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정말이지 무지막지한 물건이로군.
‘왜 이걸 국보라고 모시고 있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모든 마법사의 꿈을 이루어 줄 이 물건, 신성력과 관련된 물건이 어째서 마나와 연결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엘런은 그것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자신이 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메론과의 전투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성장은 달갑지 않을 수가 없지.’
성유물을 4개나 독식한 하메론은 릭보다 훨씬 강한 상대였다.
그런 그에게 대적하기 위해서는 엘런도 그에 맞게 강해져야 했다.
그 생각 때문에 마음이 급했었는데 다행히 이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척.
엘런이 자신의 몸 상태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을 때, 갑자기 교황이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느새 그녀는 추기경들과의 논란을 모두 잠재운 후였다.
“신과 가장 가까운 자, 엘런 님의 방문이 저의 대에 있어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그녀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엘런에게 예를 올렸다.
그런 행동들은 뒤에 있던 추기경들도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엘런이 ‘마지막 손길’을 낀 순간부터 그에게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트리에스테는 그런 그들의 현실 부정을 최대한 빨리 잡은 것이다.
“저희들의 무례를 부디 벌해 주십시오.”
회의장에 있던 모두가 자신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상황.
그리고 자신을 신처럼 대하는 행동.
엘런은 이를 중부 대륙에서 경험한 적이 있었다.
“되었으니 일어나십시오.”
“아닙니다. 저희가 지금껏 엘런 님을 알아 뵙지 못하고 저질렀던 무례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결코, 가벼이 넘기지 마시고 저희를 벌하여 주십시오.”
트리에스테는 그 어떤 때보다도 공손하게 엘런에게 말하고 있었다.
‘이 광신도들은 정말 못 말리겠군.’
엘런은 지금까지 그토록 자신을 의심하던 자들이 성인이라는 이름을 갖자마자 이렇게 변하는 것이 놀라움 따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의 태도는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 벌은 내가 차차 생각하도록 할 테니, 그만들 일어나십시오.”
“예, 언제든지 결정되시면 저희에게 말씀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제야 트리에스테가 몸을 일으켰다.
그 뒤를 따라 추기경들도 일어났다.
“그럼 이 회의는 모두 끝났다고 봐도 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원래는 엘런 님의 거취를 논하는 자리였으나, 이제는 저희에게 그럴 권리는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트리에스테의 독단적인 결정이었다.
그러나 추기경들도 반발할 수는 없었다.
감히 자신들이 성인의 거취를 논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에레네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해야 할 것이 생겨서 말입니다.”
엘런은 이 팔찌의 효력을 이용해 시험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마지막 손길’은 그가 연구하는 것들 중 막혀 있던 몇 가지 점들을 한 번에 풀어 줄 열쇠였다.
“이것으로 회의는 마치도록 하겠어요.”
팔찌를 착용한 엘런의 말 한마디에 그의 거취를 논하는 회의는 그것으로 종결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