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09
209
성인의 탄생 (2)
* * *
추기경 회의에서 뜻하지 않게 엘런이 성인이 된 후 며칠이 지났다.
엘런은 그동안 이프루 성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었다.
그들의 태도나 대우가 불손해서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엘런에게 더 많은 편의를 제공했다.
엘런은 지금까지 자신이 사용하던 귀빈실이 아니라 자신만을 위해 만들어진 방에서 지내게 되었다.
방의 크기는 직전까지 사용하던 귀빈실보다 최소 2배는 넓었다.
게다가 방 안의 가구는 모두 서부 대륙의 이름난 장인들이 직접 제작한 것들을 사용했다.
하나하나가 심미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걸작이라 불릴 만한 것들이었다.
침대는 또 어떠한가.
그가 아직 왕의 침실까지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대충 가늠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방 안에 있는 이 침대는 왕들을 위해 만들어진 침대 같았다.
자신만을 위한 하녀가 하루 종일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고, 모든 식사는 교황이 먹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나왔다.
성유물의 이관을 위해 이곳에 왔을 때도 교황청은 그에게 좋은 대우를 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의 엘런은 왕이나 교황이나 되어야 할 수 있을 것 같은 편의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그는 자신에게 좋은 대접을 해 주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는다.
오히려 빈약한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런데 그 정도가 너무 심하잖아.’
그의 방은 원래 귀빈실로 배정되어 있는 ‘방들’이었다.
엘런이 성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교황청에서 그 방들의 개조에 들어간 것이다.
두 개의 귀빈실이 합쳐지고 그 안에 가구들이 장인들의 걸작으로 채워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하루였다.
실로 경이로운 속도였다.
에레네교의 성인을 한낱 귀빈실에서 지내게 할 수 없다던 신도들의 결단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엘런을 부담스럽게 했다.
그가 복도를 지나갈 때면, 교황청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향해 절을 했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 교황청을 빠져나갔더니 사태는 더 심각해졌다.
‘엘런 님이다!’
‘성인께서 이프루에 강림하셨다.’
‘부디 모쪼록 저희를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소문이 어디서 어떻게 새어 나갔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프루 시민들이라면 아이부터 노인 할 거 없이 모두 자신을 알고 있었다.
그들 역시도 엘런을 보자마자 절부터 하기 바빴다.
일부 사람들은 감격스러움에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엘런은 그때부터 방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중간중간 하녀인 안나에게 바깥 상황을 전달받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던 중 각국의 왕들이 모두 교황청에 모였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이번 회의는 연합군의 성과를 보고하고 공치사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원래대로였으면 연합군의 총지휘관인 엘런이 반드시 회의에 참가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엘런이 불참 의사를 말하자 회의는 그가 없는 채로 진행되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오직 성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었다.
‘정말이지 못 말리는 사람들이라니까.’
엘런은 고급스러운 책상에 앉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의 주위에는 수백 장의 종이가 널려 있었다.
그 종이에는 수식이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았는지 그는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똑똑똑.
그가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때,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의 방에 노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자신의 담당 하녀인 안나일 것이다.
“엘런 님, 토마르 왕국의 국왕이 알현을 간청하고 있습니다.”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는 엘런의 예상이 맞았음을 증명했다.
‘그러고 보니 폐하가 이곳까지 왔는데 아직 얼굴도 내비치지 않았구나.’
엘런은 책상에 놓여 있는 종이들을 바라보았다.
수식들에 줄을 찍찍 긋거나 종이를 구겨 놓은 것이 마음대로 잘 진행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현 인류의 마법사들 중 과연 저 수식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엘런이 알기로는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너무 저곳에 집중하느라 폐하를 만나 볼 생각도 하지 못했군. 섭섭했을 수도 있겠어.’
엘런은 책상에 놓여 있던 종이 세 장을 들어 올렸다.
그곳에는 다른 종이들과 달리 수식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실마리는 찾았으니 말이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엘런은 직접 방문을 열어 주었다.
밖에는 늘 같은 자세로 서 있는 시종 안나가 있었다.
“폐하는 어디에 계신가? 내가 찾아가겠네.”
엘런이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안나에게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엘런의 말에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아닙니다. 제가 엘런 님을 직접 찾아뵈어야지요.”
라뷔에가 한쪽 무릎을 꿇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태도는 안나가 전한대로 ‘알현’을 하러 온 것 같았다.
“갑자기 그러시니 익숙하지가 않습니다.”
엘런은 양손을 들어 손사래를 쳤다.
교황을 만나는 것도 이런 태도 때문에 부담스러워 피하던 그였다.
그런데 라뷔에까지 이러니 정말로 이 순간에서 도망치고 싶어진 것이다.
“교황님 앞에서도 고개를 숙일 지인데 어찌 성인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이러면 제가 더 불편합니다.”
“아닙니다. 부디 저에게 성인께 인사를 드릴 수 있는 축복을 주십시오.”
엘런의 말에도 라뷔에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가 라뷔에 때문에 곤란해하고 있을 때였다.
“엘런 님, 그간 지내시며 불편한 점은 없으셨습니까? 혹시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저에게 말씀을 해 주십시오.”
복도 옆 모퉁이에서 트리에스테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엘런을 보자마자 얼른 무릎을 꿇었다.
“두 분 다, 정말 왜 그러시는 건지…….”
엘런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50년가량을 프로드 왕국에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국왕이라는 자는 그 얼굴을 한 번이라도 뵙는 게 어려운 존재였다.
회귀한 후에는 왕궁을 제집 드나들 듯 한다고는 하나 이런 태도는 영 불편했다.
“알겠으니까 일단 다들 들어오세요.”
“예, 알겠습니다.”
“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엘런의 거절이 반복되고 나서야 그들은 몸을 일으켰다.
“제가 성인도 못 알아보고 무례를 범했습니다. 부디 저의 미천한 안목을 용서해 주십시오.”
방 안에 들어와서도 라뷔에의 태도는 여전했다.
그는 의자에 앉아서도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있었다.
옆에 있던 판톤은 아직 익숙한 것 같지 않았지만, 국왕이 저러고 있으니 따라서 행동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다들 여기까지는 어쩐 일입니까? 회의가 길어져 체력도 많이 썼을 텐데 말입니다.”
엘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들의 용무를 물었다.
“저는 이번 회의의 결과를 엘런 님께 직접 보고 드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트리에스테는 서기관이 속기한 회의록을 살짝 들어 올리며 말했다.
서부 대륙에서 가장 고귀한 자가 자신만을 위해 방으로 회의록을 들고 왔다.
‘참 불편한 일이다. 얼른 이곳을 떠나야겠어.’
엘런은 그들의 태도에, 더 이상 이곳에 남아 있지 않기로 판단했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엘런은 시선을 라뷔에에게로 돌렸다.
“저는 두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 회의가 끝나자마자 이렇게 직접 찾아뵈었습니다. 첫째는 엘런 님께 소식을 전해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소식이라니요?”
엘런이 고개를 갸웃하며 그에게 되물었다.
“엘런 님께서 키에아스의 망토를 들고 떠나셨을 때부터 저는 성유물을 도난한 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의 표정이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라뷔에는 엘런과 같이 정보에 대해서 큰 가치를 두고 있는 인물이었다.
게다가 엘런은 그가 판톤을 필두로 한 조사대를 운용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라뷔에가 그들에게서 어떤 유의미한 정보라도 얻은 것 같았다.
“그래서 뭔가 찾은 것이 있소?”
“키에아스의 성유물 정도가 되면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흔적이 남기 마련입니다. 저희가 그것을 추적했더니 그 흔적은 올비아 산맥 비미산에서 멈추었습니다.”
그의 보고에 엘런도 엘런이었지만, 트리에스테가 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에레네스에서도 자체적으로 성유물 조사대를 보냈지만 아직 아무것도 발견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토마르 왕국의 조사대가 범인의 최종 위치까지 추적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충격적이었다.
“확실히 확인한 것입니까?”
“조사대원 중에 판톤 경이 있었더라면 더 깊이 들어가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실력만으로는 무리라고 판단해 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비미산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말에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연구의 실마리가 잡혔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가다듬으며 확실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다음 목적지도 명확해졌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제부터 엘런 님께서 어찌하실 것인지 여쭤보는 것입니다.”
말은 질문의 형식이었지만, 뜻은 남아 있어 달라는 것이었다.
만약, 엘런이 토마르 왕국에 남게 된다면 키에아스의 성유물을 잃은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성인이 자신들에게 있는데 성유물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에레네스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오히려 에레네스를 뛰어 넘을 수도 있는 기회였다.
“엘런 님, 회의가 있기 전, 이곳 이프루에 엘런 님을 위한 신전을 짓는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머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트리에스테는 어마어마한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의 이름을 딴 신전이라니.
그 현실감 없는 소리에 엘런은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서는 엘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성인을 모시는 것 자체가 감격인 소녀의 모습이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엘런은 이미 결정을 내린 후였다.
그들의 부담스러운 태도를 보고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결정을 내린 것이기도 했다.
“이곳에 온 원래 목적이던 약초도 챙겼고, 추가적인 목적이던 릭도 잡았습니다. 이제 이곳에 남아 있을 이유가 어디에도 없군요. 저는 이곳이 아니라 올비아 산맥에 있는 도난범을 찾으러 가야겠습니다.”
엘런이 그렇게 말하자 그들도 더 이상 그를 붙잡을 명분이 없어졌다.
그들은 애써 아쉬움을 감추며 엘런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말입니다, 그를 잡기 위한 실력자를 지원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제 혼자서는 무리일 것 같군요.”
엘런의 말에 시무룩하던 그녀의 입가가 조금은 올라갔다.
“아직 연합군은 해산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그 이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구든 원하는 자가 있다면 저희에게 의견을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게 다른 왕국의 인물이라도 상관없다는 말입니까?”
“엘런 님께서 원하시면 누구라도 지원할 것입니다.”
다른 이유도 없었다.
그저 엘런이 성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는 각 왕국의 실력자를 데리고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럼 한센 경, 판톤 경, 아드리안 경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