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10
210
성인의 탄생 (3)
* * *
동부 대륙, 프로드 왕국의 수도 해리포드.
그 화려한 도시 속에서도 왕궁은 도도하면서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마도 왕국이라는 명성답게 늦은 시간에도 라이트 마법이 왕궁 곳곳을 비추었다.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외감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왕궁의 불빛은 서서히 꺼졌다.
그러나 유독 라이트 마법이 꺼지지 않는 방이 하나 있었다.
그곳은 로미우 왕자의 집무실이었다.
사락.
책장이 한 장 넘어갔다.
다음 장을 읽는 로미우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의 표지에는 ‘에레네가 주신 축복’이라고 쓰여 있었다.
로미우는 엘런이 서부 대륙으로 넘어간다는 소리에 그동안 전혀 관심도 없었던 곳에 관심이 생겼다.
동부 대륙인들은 모두 자신처럼 서부 대륙에 대해 흥미가 전혀 없었던 것일까.
왕실 서고에서도 서부 대륙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어렵게 구한 자료들을 이용해 서부 대륙에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그는 의문이 들었다.
‘이토록 자원이 넘쳐나는 곳과 어째서 교역을 하지 않는가.’
서부 대륙에는 마정석 매장량이 매우 많았다.
마나를 담을 수 있는 그 돌은 신성력을 사용하는 그들에게는 전혀 필요 없는 것이었다.
그에 반해 동부 대륙에서는 아티팩트를 만들 때 필수적인 아주 귀한 자원.
거래를 하기에 가장 알맞은 조건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대륙을 종단하고 있는 두 산맥 때문이었다.
올비아 산맥과 피어 산맥. 그곳에 있는 몬스터들 때문에 대규모 상단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이었다.
‘만약 프로드 왕국에서 올비아 산맥에 적절한 상로를 하나만 확보해 준다면?’
그렇다면 올비아 산맥과 접해 있는 토마르 왕국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마정석을 공급받을 수 있을 것이다.
킨버 상단이 소유하고 있는 마정석 광산 덕에 프로드 왕국 내에 마정석이 그리 부족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정석이라는 것은 다다익선이 아니겠는가.
공급이 늘어난다면 그것을 가지고 더욱 도전적인 실험을 할 수 있을 테고, 그것은 곧 프로드의 국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정석 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회복 마법.’
로미우과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은 바로 그들의 회복 마법이었다.
그가 알기로도 회복 마법을 전문적으로 하는 마법사들은 동부 대륙에서 매우 귀했다.
그에 비해 서부 대륙의 ‘신관’이라는 자들은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회복 마법을 쉽게 한다고 한다.
그들의 신성 마법이라는 것은 마법과는 체계가 다르다고 하지만, 일단은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올비아 산맥의 상로 확보가 가장 중요할 텐데.’
지금까지 로미우와 같은 생각을 했던 지도자가 동부 대륙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마정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로 서부 대륙과 교류하려는 지도자들이 간간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올비아 산맥의 상로 확보를 해결하지 못했다.
로미우는 바르다이 왕국과 협조하여 올비아 산맥에 대규모 군단을 보낼 것을 생각했다.
그러나 험준한 산맥과 좁은 산길, 그리고 흔하게 출몰하는 대형 몬스터까지.
그곳은 대규모 토벌군을 보내기에는 제한 사항이 많았다.
‘선조들이 괜히 그들과 교류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지?’
꾸깃꾸깃.
로미우는 자신의 생각을 끄적거리고 있던 종이를 구겼다.
깊은 생각에 빠질 때면 자기도 모르게 종이에 생각을 쓰는 것이 그의 버릇이었다.
툭.
로미우가 종이를 구겨 바닥에 던질 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방금 했던 모든 고민을 단번에 종식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은 해결사, 바로 엘런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손을 이리저리 저으며 엘런의 얼굴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언제까지고 엘런에게 의지해서는 안 된다.’
수도 없이 다짐하는 사실이지만, 수도 없이 무너지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만큼 엘런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어떤 일이든 그가 있으면 해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그가 없는 경우를 대비해야만 했다.
그에 대한 의존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면 위험할 수도 있다.
‘아바마마와 함께 일을 논의해 봐야겠어.’
드르륵.
우두두둑.
그가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몇 시간을 앉아서 고민만 하고 있었더니 온몸의 뼈들이 새로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눈에 언뜻 사람의 형상이 보인 것 같았다.
‘응?’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알다시피 그의 집무실은 자기보다 높은 자가 아니라면 허락 없이 들어올 수 없었다.
그리고 자기보다 높은 자라고 한다면 현재 프로드 왕국에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언제 들어오신 거지?’
로미우는 얼른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사람의 형상을 직접 확인한 그의 눈은 찢어질 것 같이 커졌다.
너무 당황한 탓에 하마터면 딸꾹질까지 나올 뻔했다.
그곳에 서 있는 자신보다 더 높은 직위의 사람은 국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도 왕국 프로드에서는 왕세자라고 해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자가 있었다.
국법에서도 직위상 왕세자보다 높게 분류되어 있기도 했다.
“에, 엘런?”
그것은 바로 마법의 정점에 서 있는 자이자, 마탑, 이제는 상아탑이라 불리는 곳의 주인, 바로 상아탑주의 직위였다.
바로 로미우의 눈앞에는 상아탑주 엘런이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잘못 봤나?”
로미우는 양손으로 눈을 비볐다.
엘런은 지금 서부 대륙에 있어야 했다.
올비아 산맥의 경계에 있는 바르다이에 보내 놓은 정보원에게 복귀 소식을 전달받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집무실에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차라리 엘런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의 헛것이 보인다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이렇게 무례하게 만나 뵈러 온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귀에 똑똑히 들려오는 이 목소리는 엘런의 형상이 헛것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오른팔을 구부려 왼쪽 가슴에 올리는 마법사들의 경례까지 하고 있었다.
“저, 정말로 엘런이야?”
이쯤 되니 로미우도 믿지 않고 배길 수는 없었다.
“그렇습니다, 왕자님. 오랜만입니다.”
엘런이 씨익 웃으며 그의 말에 화답했다.
* * *
“어떻게 네가 여기에 있는 거야? 아직 올비아 산맥을 넘어왔다는 소식을 받지 못했는데?”
로미우와 엘런은 자리를 옮겨 응접실로 와 있었다.
왜 이곳에 있는지 보다 어떻게 이곳에 와 있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는 엘런이 또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을 사용한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나 엘런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설마……?”
엘런의 모습을 훑은 로미우는 그의 분위기가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에 엘런에게서는 강인함이 그대로 흘러나왔다.
그야말로 손짓 한 번으로 폭풍을 일으킬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반면, 지금의 엘런은 오히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어떠한 강인함도 느껴지지 평범한 청년의 모습.
그러나 로미우는 엘런이 가지고 있는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시커먼 바다를 보는 것 같은 고요함과 두려움.
그것은 알 수 없는 힘이나 대자연에 대한 본능적인 공포였다.
“그새 더 강해진 거야?”
그는 확신하지 못하는 듯 엘런에게 물었다.
“제가 괜히 서부 대륙까지 원정을 갔다 왔겠습니까? 폐하께 보여 드릴 성과 정도는 있어야지요.”
엘런의 말에 로미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안 그래도 괴물 같던 자신의 친구가 이제는 신이 되려고 작정한 것일까?
이제 엘런은 인류의 틀을 벗어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럼 아무런 소식도 없이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로미우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본 적 없이 그저 책으로만 전해져 오는 마법이었다.
“텔레포트? 그것도 위치가 미리 지정해야 하는 텔레포트 스크롤이 아니고?”
엘런을 쳐다보고 있는 로미우의 눈은 별보다 반짝거렸다.
그것은 흡사 할아버지에게 영웅의 서사시를 듣는 아이의 그것과 비슷했다.
“그렇습니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사용할 만큼은 되는 것 같더군요.”
엘런은 지금까지 로미우의 기대를 저버리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텔레포트는 8서클의 마법이었다.
고대 시대를 지나 마나의 농도가 옅어지며 더는 인류가 닿을 수 없는 경지라 여겨졌던 8서클.
신화로만 전해지던 그 경지에 닿은 자가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그자가 바로 프로드 상아탑의 탑주이자 자신의 친구였다.
로미우는 무엇보다 그 사실이 좋았다.
“8서클이라니. 이제는 그 누구도 프로드 왕국을 노릴 수 없게 되었구나.”
텔레포트를 사용하는 마법사가 있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전략적 가치가 있었다.
현시대에 장거리 공간 마법을 사용하는 경우는 모두 고대 시대의 유물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고대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반드시 사전에 위치를 지정해야 하는 텔레포트 스크롤.
활용성 측면에서는 좋긴 하지만, 고대 마법을 담고 있는 스크롤 자체가 보물처럼 여겨진다.
그 때문에 그것은 실제로 사용되기보다는 수집품처럼 묵혀두기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대인들이 만들어 놓은 위치이동 마법진이 그나마 사용되는 공간 마법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도 연결된 마법진이 없다면 공간 이동이 불가능하다.
그 모든 제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법은 오직 8서클의 텔레포트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원한다면 1분 안에 프로드 왕국 서쪽 끝에서 동쪽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저번에 있었던 고센 제국과의 2차 전투와 같은 비대칭 전력의 분배를 고려할 필요도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애초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 엘런이 그 왕국의 왕궁으로 텔레포트하면 되었다.
그러면 아무런 피해도 없이 전쟁을 종결시킬 수도 있었다.
“절차대로라면 국왕 폐하를 가장 먼저 뵈어야겠지만, 왕자님이 먼저 보고 싶어서 왔습니다.”
“정말이야?”
로미우는 감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물론, 마법을 시험해 볼 필요도 있긴 했습니다.”
엘런은 자신의 농담에 저렇게 크게 반응하는 릭을 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는 그의 팔목에는 ‘마지막 손길’이 채워져 있었다.
사실, 엘런은 벌써 예전에 8서클의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문제는 8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은 계산이 너무나 복잡하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천재적인 계산력을 가지고 있는 엘런조차도 온전히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복잡했다.
특히 텔레포트와 같이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마법은 더더욱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문제를 바로 ‘마지막 손길’이 해결해 준 것이었다.
에레네의 축복이 그대로 담겨 있는 팔찌는 엘런의 정신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게 해 주었다.
덕분에 엘런은 이프루에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왕자를 능멸하다니!”
로미우는 엘런의 몸을 툭 쳤다.
그의 손짓에는 반가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것을 받아주는 엘런의 표정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제가 내일 날이 밝는 대로 다시 폐하를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때는 모른 척해 주셔야 합니다.”
엘런의 눈짓에 로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일 봐.”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만.”
인사를 올린 엘런이 눈을 감았다.
파앗.
그리고 그의 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