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11
211
정예 (1)
* * *
엘런이 로미우를 찾아간 다음 날, 해리포드 왕궁의 정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숫자도 숫자였지만,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면 더욱 깜짝 놀랄 수 있었다.
궁정 대신부터 프로드 왕국군 총 사령관, 왕실 기사단장, 상아탑의 임시 탑주를 맡고 있는 그론리드 공작까지.
명실상부 프로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분야의 최고위자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프로드 최대 규모의 회의인 전 귀족 회의에서도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모이는 일은 보기 힘들었다.
특히 그중에는 마법사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다.
원래 상아탑 소속 마법사들은 기사나 병사들과 달리 집단생활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마탑 시절부터 이어져 왔던 특성이다.
어쩌면 개인의 연구와 수련을 중시하는 마법사라는 직종의 특성일 수도 있었다.
그런 이색적인 조합에서도 가장 위는 당연히 프로드의 국왕 알베르토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왕세자 로미우뿐만 아니라 주변 왕국의 대사들도 있었다.
한자리에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아주 상반되었다.
알베르토와 로미우는 의기양양한 표정인 반면, 고센 제국이나 에다인 왕국의 대사들은 불안함을 감춘 채 억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제 슬슬 시간이 됐군.”
알베르토는 정원 가운데 높이 솟아 있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그에 맞춰 대사들의 거짓 미소도 점점 사라져 갔다.
찰칵.
초침이 한 바퀴를 돌면서 분침이 한 칸 움직였다.
모든 시곗바늘이 12를 가리키는 순간이었다.
쿠쿵.
왕궁의 정원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건?”
“큭.”
“실로 엄청나다.”
그 소리와 함께 찾아온 마나의 폭풍.
마나를 체화하고 몸으로 느끼는 기사나 마법사들은 그 강렬한 폭풍에 신음을 흘렸다.
콰가가가가.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아니, 그것은 그냥 빛이 아니었다.
고농도의 마나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는 것이다.
“와아.”
귀족 하나가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소리를 냈다.
처음으로 무지개를 본 아이들의 반응과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들은 평소 공기 중에 있는 마나를 보기 어렵다.
그들이 마나를 볼 수 있는 기회는 기껏해야 기사들이 사용하는 오러나 마법사들의 마법이 전부였다.
그러니 그들의 놀라는 반응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사실, 이처럼 쏟아져 내리는 마나를 보는 것은 이곳에 있는 그 누구에게라도 처음일 것이다.
그 장대한 모습에 사람들은 절로 경외감을 가졌다.
슈웅.
하늘에 구멍이 뚫렸다고 착각이 들 정도이던 마나의 폭포가 끝났다.
그러나 사람들의 표정은 이전보다 훨씬 더 극적으로 변했다.
안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크게 뜬 눈.
턱이 빠진 것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흘러내린 입.
뭔가 흥미로운 것을 봤을 때처럼 벌렁거리는 콧구멍.
그 모든 것은 바로 마나의 폭포 안에서 나타난 하나의 형상을 향한 반응이었다.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나타난 자는 당연하게도 엘런이었다.
“아아, 정말이었구나.”
“8서클이라는 경지는 정말로 있는 것이었어.”
“내가 살아생전 텔레포트를 보는구먼.”
“탑주님의 한계는 어디까지란 말인가.”
마법사들의 반응은 특히 더욱 감격에 차 있었다.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경지에 올라 있는 엘런을 보자, 마법사들의 가슴 속에서 울컥거리는 검정이 올라왔다.
“정말로 상아탑주가 8서클이란 말입니까?”
대사들의 표정은 마치 나라를 잃은 것으로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8서클의 마법사였다.
고대 시대를 지나면서 아무도 닿을 수 없었던 그 경지.
그가 손을 한 번 놀리는 것만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히 예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대로 고센 제국은 쇠퇴의 길을 걷게 되겠구나.’
고센 제국의 대사 이렐은 속으로 한탄을 내뱉었다.
그렇다고 그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프로드 왕국에 8서클의 마법사가 나타났다는 ‘비보’를 본국에 전달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요란하게도 등장하는구먼.”
가장 상석에 앉아 있던 알베르토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부심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척.
엘런은 그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알베르토를 향해 마법사의 경례를 올렸다.
“신 엘런 베리타티, 서부 대륙 원정을 무사히 마치고 복귀했음을 신고합니다.”
엘런의 보고에 알베르토도 직접 몸을 일으키며 응답했다.
“상아탑주의 복귀를 환영하오. 이루고자 했던 모든 일들은 이루었소?”
“폐하께서 살펴 주신 덕에 모두 이루고 왔습니다.”
알베르토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졌다.
이것은 그가 생각한 완벽한 그림이었다.
‘역시, 그대는 내가 미워할 수가 없다. 어쩜 이리 내 마음에 쏙 들게만 행동하는 것인가.’
엘런이 8서클을 달성하고 텔레포트로 이곳에 돌아온다는 소식에 알베르토는 서둘러 이 자리를 마련했다.
현 인류 중 최초라 할 수 있는 8서클 마법사의 탄생을 알리는 자리인 만큼 최대한 공식적으로 치를 예정이었다.
주변국들에도 이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었다.
‘이 정도면 만족스러우십니까?’
그리고 엘런 역시도 알베르토의 생각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가 이곳으로 좌표를 잡고 텔레포트를 하는 순간,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곳의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고는 화려한 시각적 효과를 더한 것이다.
그런 시각 효과를 만드느라 마나 소모가 극심했지만, 그의 재치 덕분에 애초에 알베르토가 기획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효과를 가지고 올 수 있었다.
“그대의 지금 모습만 보아도 그런 것 같군. 문헌으로만 전해지던 8서클의 경지를 직접 달성했으니 말이오.”
알베르토는 두 팔을 높게 쳐들었다.
“이것은 왕국의 범주를 뛰어넘어 전 인류의 경사와도 같은 일이 아니겠소? 그대가 가진 순수한 지식에 대한 열망, 나는 그것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싶소. 돌아온 것을 환영하오, 상아탑주.”
그 순간, 주변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주변국의 대사들만이 그 분위기를 온전히 즐기지 못한 채, 불편한 표정으로 엘런을 축하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날에 있었던 엘런의 등장은 모든 음유시인들에게 전해져 시로써, 노래로써 전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 * *
엘런이 화려하게 등장하고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알베르토의 배려로 엘런은 공식적인 일정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가? 이리도 빨리 오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야.”
그리고 이틀 후, 알베르토는 정식으로 보고를 듣기 위해 그를 불렀다.
엘런의 재기 무대는 성공적으로 치렀으니 제대로 된 이야기와 성과를 들을 차례였다.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서부 대륙에서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들었는지 내게 말해 주게.”
“올비아 산맥을 건너간 후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엘런이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자 알베르토의 얼굴에 작지만 기대감이 서렸다.
옆에 있던 로미우는 목을 쭉 내밀고 엘런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했다.
엘런은 자신이 서부 대륙에서 보고 겪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보고했다.
우연히 라포를 만나 멘도사의 위치를 알게 된 것, 그곳에 잠입했던 순간, 그리고 토마르 왕국의 기사가 된 것.
모든 이야기가 영웅의 모험담처럼 들렸고, 그들은 한시도 엘런의 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릭과 하메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지금까지 흥미롭게 듣고만 있던 알베르토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도망친 릭과 하메론이 그곳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릭은 잡았고, 하메론은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저는 그가 올비아 산맥의 비미산에 숨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어찌할 생각인가?”
알베르토는 엘런에게 의견을 구했다.
상대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
“그를 잡아야겠지요. 하지만 케니프라 산맥 때처럼 광폭화된 몬스터들이 그곳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모두 상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알베르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엘런이 하는 말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대가 이토록 빨리 온 이유를 알겠군. 내가 무엇을 해 주면 되겠는가?”
“지원이 필요합니다.”
“3개 군단이면 되겠는가? 얼마든지 지원해 주도록 하겠다.”
그 말에 엘런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게는 그토록 많은 병력이 필요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의 목표는 하메론을 잡는 것이었다.
굳이 시간을 들여 병사를 모아 몬스터 전체와 싸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괜한 병사들의 희생을 피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리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소수정예만 지원해주셔도 충분합니다.”
알베르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엘런이라면 그런 선택을 할 줄 알았다는 듯한 미소였다.
“우리가 그대에게 지는 빚이 많다. 모든 프로드를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과찬이십니다. 저 또한 그에게 갚아 줘야 할 빚이 있습니다.”
엘런은 브레디의 모습을 떠올렸다.
엘런은 자신 때문에 마법사로서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었던 그에게 큰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알겠다. 복귀하자마자 쉴 틈도 없군. 프로드를 위해서, 이 대륙을 위해서, 그대에게 부탁하겠네. 하메론, 그자를 잡아 주게.”
척.
엘런은 대답 대신 경례를 올렸다.
알베르토는 거기서 그 어떤 말보다도 신뢰를 느꼈다.
“아, 그러고 보니 그대를 기다리고 있던 자가 있다.”
알베르토는 뭔가 떠올랐다는 듯 돌아서는 엘런을 잡았다.
“신을 기다리는 자 말씀입니까?”
엘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리 생각하고 있던 원정대에게는 자신이 직접 찾아갈 생각이었다.
자신을 찾아올 만한 자가 누가 있단 말인가.
로미우도 뭔가 떠올랐다는 듯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들의 반응에 엘런은 더욱 궁금증을 가졌다.
“아마 근위대 연무장에 있을 것이다. 그의 모든 일상은 거기서 이루어지니 말이야. 직접 가서 확인하게, 그대의 인연 중 하나이니.”
“명을 받들겠습니다.”
그렇게 정식 보고를 마친 엘런은 곧장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탁, 탁, 탁.
연무장에 가까이 가자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도 들렸다.
신입 근위병들은 훈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쿠웅.
“으으윽.”
그리고 연무장 중간에는 고참 근위병들이 모여 있었다.
엘런의 시선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져, 졌습니다.”
“더 강한 사람은 없는가? 분명 은인은 이것보다 훨씬 강했는데 말이야!”
“오늘 훈련 대전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지. 너희들은 더 훈련하고 와.”
짐승의 포효와도 같은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엘런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 상대 내가 해 주지.”
그때, 엘런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모두의 이목이 엘런에게 쏠렸다.
당연히 그 안에는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른 이의 시선도 있었다.
“아, 드디어 왔군, 은인. 어디를 갔다 온 건가?”
그의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 그려졌다.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두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