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12
212
정예 (2)
* * *
쿠웅.
“크헉.”
두크르의 육중한 몸이 연병장 바닥으로 넘어졌다.
조금 전까지 극강의 모습을 보여 주던 그가 바닥을 구르고 있는 것을 보니, 왕실 근위병들의 표정에는 작은 웃음기가 서렸다.
“아직 멀었다!”
그러나 두크르는 호랑이의 피가 흐르는 수인이었다.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 훨씬 더 탄탄한 근육과 체력 그리고 인간 이상의 호승심을 가지고 있었다.
볼썽사납게 넘어져 있던 그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의 눈빛은 짐승의 그것처럼 매서워졌다.
‘완전 수인화獸人化?’
엘런은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수인의 최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완전 수인화.
그것은 족장들만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두크르가 하고 있는 것이다.
팟.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은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는 두크르가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엘런의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가는 공격.
분명 이것은 대련이었다.
그리고 그의 공격은 대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토끼를 사냥할 때도 최선을 다하는 법. 그는 대련에서도 상대를 전혀 봐줄 생각이 없었다.
그랬기에 두크르는 이번 대련에서 자신의 모든 힘을 사용할 생각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그가 호족虎族은 맞았지만, 적어도 이번 대련에서만큼은 호랑이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불쌍한 호족의 전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엘런이었다.
‘아이스 필드.’
쩌저저적.
엘런의 발밑에서부터 시작된 한기가 연무장 주변 바닥을 모두 빙판으로 바꿔 버렸다.
맨발인 두크르는 그 미끄러움을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쿵.
또다시 두크르의 몸이 바닥을 구르는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인탱글.’
휘리리릭.
얼음판을 뚫고 나온 덩굴들이 두크르의 사지를 묶어 버렸다.
그야말로 완전한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져, 졌다.”
그제야 비로소 두크르는 항복 선언을 했다.
이성을 잃은 것 같던 그의 눈빛도 다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그의 몸을 묶고 있던 덩굴들도,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을 만큼 미끄러운 빙판도 사라졌다.
“나도 그동안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은인은 훨씬 더 강해진 것 같지?”
두크르는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는 방금 전의 호승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엘런에 대한 반가움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많은 일을 겪고 왔거든.”
엘런은 두크르의 몸에 치료 마법을 걸어 주었다.
넘어지면서 생겼던 상처가 아물었다.
두크르는 여전히 신기한 눈빛으로 엘런이 행하는 ‘기적’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너는 어떻게 여기까지 와 있는 거야?”
“은인에게 말하지 않았나, 꼭 대륙 밖으로 나가 보고 싶다고?”
엘런은 호족의 마을에서 그들과 헤어지기 전 두크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언젠가 초원을 나올 일이 있다면, 프로드 왕국에 들른다는 것이었다.
엘런은 그저 겉치레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프로드 왕국에 와 있었다.
“은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초원을 벗어나야 했고, 혼자 힘으로 초원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다. 나는 밤낮으로 수련해 호족 최고의 전사 반열에 올랐지. 그리고 족장의 구슬을 내가 전수받았다.”
족장의 구슬은 족장의 힘을 훨씬 더 강하게 해주는 토속품이었다.
그것 역시도 고대 마법사가 만든 아티팩트와 같은 것이었지만, 그들은 그저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보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이토록 강해진 것이구나.’
원래도 어느 정도 강했던 그였지만, 지금의 그는 그랜드 마스터 정도의 힘은 발휘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여전히 은인은 강하군. 나도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겠다.”
그 말에 근위병들은 잔뜩 몸을 움츠렸다.
그가 훈련을 더 한다는 말은 자신들도 함께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 초청 교관의 기간이 얼른 끝나기를 바라는 생각뿐이었다.
‘내가 준 증패가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다.’
엘런은 무사히 이곳에 머물고 있는 두크르를 보며 생각했다.
이제 엘런의 이름이면, 프로드 왕국에서는 그 어떤 협조도 받을 수 있을 만큼이 된 것이다.
“이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이곳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렇게 답답한 것도 온몸에 걸치고 있어야 하고. 은인을 봤으니 이곳을 떠나도 괜찮을 것 같다. 나도 여행이라는 것을 해 보고 싶어서 말이야.”
엘런은 미련 없이 일어나려던 두크르를 잡았다. 그의 표정이 조금은 진지해졌다.
“두크르, 나는 그동안 낭족狼族의 주술사 굴트에게 술수를 벌인 자를 쫓아다녔다.”
“굴트라고 했나?”
굴트라는 말에 엘런은 크게 반응했다.
이미 굴트의 주술에 당한 적이 있었기에 그의 반응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 그런데 그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의 도움이 필요해. 네가 나를 도와줄 수 있겠나?”
두크르는 생각도 할 것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은인의 요청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인다.”
“목숨을 내놓아야 할 수도 있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는 것은 전사의 명예다. 그러니 은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엘런은 실소를 터뜨렸다.
이처럼 단순하면서도 정감 가는 모습에 그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 아닌가.
“그럼 나와 함께 가지. 이곳에 머물고 있으면, 내가 따로 연락하도록 하겠어.”
“알겠다. 그럼 그때를 위해서 나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두크르가 의욕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근위병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임시로 온 초청 교관이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가 봐야겠군.’
엘런은 그들을 뒤로한 채 텔레포트를 사용하여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가 사라진 자리 뒤로는 근위병들의 신음만이 남게 되었다.
* * *
슈슉.
일전에 해리포드로 돌아올 때와 같은 화려한 효과는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무엇’인가가 생겨났을 뿐이었다.
‘위치는 얼추 맞는 것 같고…….’
엘런이 나타난 곳은 나무가 잔뜩 우거져 있는 숲이었다.
방향을 잡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갖가지 나무가 얽혀 있었다.
엘런은 하늘과 나무의 방향을 바라보며 방향을 잡더니 이내 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차피 하메론 그자와는 1대1로 싸우는 구도를 만들 것이니까 다른 이들은 몬스터가 올 수 없도록 막아 주는 것과 혹시 모를 수발을 담당하는 일.’
특히, 후자가 더 중요한 일이었다.
하메론이 릭과 같은 수발을 더 두지 않았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고작 5서클 유저 정도의 마법사도 그토록 강하게 만들어 버리는 그였다.
그런 자가 더 있다면 엘런만으로는 힘들었다.
그랬기에 소수정예로 구성된 강력한 지원군이 필요했다.
‘한센, 아니 적어도 판톤 급은 되는 실력자들이 필요하다.’
알베르토로부터 최대한의 지원을 약속받은 만큼 왕실 병력은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랬기에 그랜드 마스터 듀크의 지원 역시도 미리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듀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어디쯤이었더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걸어가던 엘런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다시 위치를 가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한 번에 이곳까지 온 것이냐? 텔레포트란 정말 대단하군.
엘런이 서 있는 곳을 확인한 프로뱅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여기 말고는 더 대안이 없지 않습니까? 전 대륙에서 그들보다 더 강한 이를 찾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들이 동참해줄지 확신할 수 없구나.
‘일단은 말해 봐야겠지요. 전 대륙의 사활이 걸린 일인 만큼 무시하고 지나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는 방향을 잡은 것인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면서도 형형색색의 꽃들이 널려 있는 주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전히 이곳은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번이 세 번째 방문인데도 변함없이 아름답구나.
그렇게 그들이 꽃에 대해 말을 하며 약 30미터 정도 걸었을 때였다.
피융.
팍, 팍.
엘런의 발 앞에 화살 2개가 날아와 박혔다.
한 치의 오차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히 바로 발 앞이었다.
확실한 의미를 담은 경고 사격이었다.
그러나 엘런은 전혀 당황하지 않은 눈빛이었다. 아니, 오히려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엘프 로드 테오스 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는 침착하게 두 손을 위로 들며 말했다.
그러자 화살을 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는……?”
뒤로 질끈 묶은 베이지색의 긴 머리, 여성보다도 더 아름다운 외모, 그리고 양옆으로 길게 뻗은 귀.
“오랜만입니다, 가르노아 님.”
그는 엘프들의 파수꾼 가르노아였다.
엘런은 엘프의 숲으로 텔레포트를 해 온 것이었다.
“그대가 여기는 어쩐 일인가?”
가르노아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다는 듯 엘런을 보며 놀라워했다.
“엘프 로드님을 뵈러 왔습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그대의 표정을 보니 심각한 일인 것 같군. 알겠네, 내가 안내하도록 하겠네.”
가르노아는 들고 있던 활을 등에 메고는 엘런을 안내했다.
엘런이 원래 의도했던 엘프들의 마을 엘리너스는 바로 그가 길을 헤매던 곳 바로 뒤편에 있었다.
그 사실에 허탈해진 엘런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곳의 길을 알아본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왜, 그 페리스라는 엘프는 잘만 다니더구나.
‘그러고 보니…….’
엘런은 자신을 엘프의 숲까지 안내했던 페리스가 떠올랐다.
‘그 아이는 잘 있으려나?’
나이로 따진다면 전혀 아이는 아니었지만, 엘런에게는 여전히 여동생 같은 페리스였다.
엘런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가르노아는 그를 엘프 로드의 방까지 인도했다.
똑똑똑.
“테오스 님, 엘런이 찾아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게.”
덜컹.
문이 열리는 소리에서도 반가움이 가득 묻어나왔다.
“이게 누구인가. 엘런, 그대가 여기는 무슨 일인가?”
“오랜만입니다, 테오스 님.”
-여전하십니다.
이번에는 엘런뿐만 아니라 프로뱅도 그에 대한 반가움을 표했다.
“그대의 표정을 보니 그리 좋은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일세.”
엘런의 얼굴은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테오스는 역시나 그의 내면까지도 꿰뚫어 보았다.
“역시 테오스 님을 속일 수는 없겠습니다.”
“그동안 몰라볼 정도로 강해진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대가 해결하지 못하고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단 말인…… 아 참 내 정신 좀 보게.”
그는 말을 하다 말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너무 반가워서 이곳에 계속 세워 놓았군. 일단 안으로 들어가겠나? 거기서 그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예,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 * *
“……했던 것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엘런의 설명을 들은 테오스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마 전부터 느껴지던 세계수의 이상 징후는 바로 이것을 예견하는 것인 듯했다.
“혹시, 엘프들의 파수꾼을 지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엘런은 매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엘프는 인간계의 일에서 손을 완전히 놓고 숲으로 도망쳐온 자들이었다.
그 이유는 모두 인간들의 탐욕과 위협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인간계의 위험을 위해 도와 달라고 하는 것은 염치가 없는 행동이기도 했다.
“러셀, 가르노아, 준비하거라.”
그러나 테오스의 반응에 엘런의 그런 걱정이 무색해졌다.
그는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파수꾼 2명을 불렀다.
그리고 그들 역시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수가 얼마 전부터 이상 반응을 보이더군.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았네. 그리고 그게 그대의 걱정처럼 인간계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네. 그러니 우리가 도움을 주지.”
엘런은 작게 미소를 지었다.
테오스는 여전히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했다.
“이것 역시도 인간들의 욕심에서 비롯된 행동입니다. 엘프들은 아무런 관계가 없기도 하지요.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러는 그대도 엘프들만의 일인 이시르를 해결해 주지 않았는가? 우리도 그 은혜를 갚도록 하겠네.”
엘런은 몸을 일으켜 고개를 숙였다.
이것으로 자신이 최선으로 생각했던 소수 정예 인원은 모두 모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엘런 공, 그대에게 진 빚은 이번 일로 갚도록 하겠소.”
러셀이 엘런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엘런도 오랜만에 본 그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저번에 주신 세계수의 물은 정말 잘 이용했소. 그것으로도 빚은 전부 갚은 것이지. 이번에는 내가 부탁하는 입장이오.”
“그렇다면, 서약의 단도를 따라 엘리너스의 귀빈인 공을 돕는 것으로 하겠소.”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오.”
텁.
그들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테오스는 그런 그들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았다.
“그럼 숲을 안내할 페리스를 부르도록 하겠소.”
“아니, 그럴 필요 없소.”
엘런도 페리스를 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잠깐 실례하겠소.”
그는 곧바로 가르노아와 러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텔레포트.’
슈슉.
‘실로 엄청난 자로군.’
그리고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곳에 홀로 남은 테오스만이 놀라운 눈으로 그 현상을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