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13
213
정예 (3)
슈슉.
지금까지는 살면서 몇 번을 들을 수 있을까 싶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리만큼 자주 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엘런이 텔레포트를 시전할 때 나는 소리였다.
공간의 왜곡과 함께 엘런을 비롯한 5개의 인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틀.
“크흑, 이거 정말 고약하구먼. 자네, 실력이 영 별로일세.”
공간 이동의 부작용으로 듀크의 몸이 비틀거렸다.
물론, 공간 이동을 하면 속이 울렁거리고 균형 감각을 잃어버리는 부작용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듀크만큼 고도로 단련된 기사가 이 정도의 고통을 호소할 정도는 아니었다.
차라리 함께 데려온 시스토라면 이해할 수라도 있었다.
“앞으로 더 편히 모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엘런은 평소 엄살을 버릇처럼 입에 달고 사는 그의 버릇을 알고 있었다.
그저 딱딱한 분위기를 풀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가볍게 받아 주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그래, 그래. 앞으로는 주의하도록. 그건 그렇고 이곳은 어디냐? 아주 비밀스러운 곳인 것 같군.”
듀크는 그렇게 말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텔레포트로 온 공간은 아주 단순하게 생긴 방이었다.
가구라고는 중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원형 테이블 하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원탁에는 몇 명의 사내가 앉아 있었다.
창문이 하나도 없기는 했지만, 라이트 마법이 적절한 밝기를 유지해 주었기에 얼굴을 인식하는 데 불편함은 없었다.
“이번 하메론 원정을 떠나는 인원의 집결지 같은 곳입니다. 일단 이곳에 앉으시지요. 자세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엘런의 지시에 따라 듀크와 시스토, 두크르 그리고 라르트 그론리드는 빈자리에 착석했다.
“호오,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실력자들이로군.”
듀크는 앉아 있는 다른 이들을 죽 훑어보았다.
그의 시선은 한센을 비롯한 서부 대륙의 인원들부터 쫓았다.
라르트도 듀크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앉아 있는 모두가 최소한 그랜드 마스터에 근접한 이들이었다.
실력자와의 결투를 좋아하는 두크르는 원탁에 앉은 인원 구성에 흥분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하지만 시스토의 시선은 오로지 한 곳에만 꽂혀 있었다.
그곳은 듀크가 쳐다보고 있는 곳의 반대편이었다.
그는 동경하는 영웅을 본 것 같은 눈빛으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 엘프?”
시스토는 머리칼을 뚫고 올라온 그들의 긴 귀를 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의 혼잣말을 들은 듀크와 라르트도 얼른 그곳으로 시선을 옮겼다.
“시, 실제로 엘프라는 것이 존재했었던 것이구나.”
“나도 믿을 수가 없군. 엘런, 자네는 이들과도 교류를 하고 있었던 건가? 정말이지 가늠을 할 수가 없구먼.”
그들의 반응에 엘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엘프들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노골적으로 구경거리가 된 엘프의 기분이 상할 수도 있었기에 지금의 분위기를 환기할 필요가 있었다.
엘런은 앉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쨌거나 다들 이렇게 한 목적으로 뭉쳤으니 소개나 한 번 하시겠습니까?”
엘런은 손을 들어 먼저 한센들을 가리켰다.
“이들은 서부 대륙의 크루세이더와 신관입니다.”
“에레네의 종인 아드리안이오.”
“나는 판톤이라고 하오.”
“한센이오.”
그들의 소개가 이어졌고 듀크와 그론리드는 신기하다는 듯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도 서부 대륙의 신관과 크루세이더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듯 서부 대륙의 실력자를 만난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쪽은 제가 있는 동부 대륙의 마법사와 기사들입니다.”
“나는 듀크요.”
“마법사 라르트 그론리드이오. 잘 부탁하겠소.”
“정령사 시스토입니다.”
시스토는 자신을 소개하는 와중에도 엘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정령사다 보니 엘프에게 큰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엘런은 그다음으로 두크르를 지목했다.
“이자는 중부 대륙 출신의 전사, 두크르입니다.”
“은인의 말대로 나는 초원에서 온 호랑이 부족의 전사 두크르다. 다들 시간이 괜찮다면 나와 대련을 해 주었으면 한다.”
두크르는 자신에게 어울리는 걸걸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했다.
“중부 대륙으로 쫓겨난 야만인들이 바로 저들이었군.”
“이거 연구 거리로 제격이겠소.”
이번에는 그의 특이한 모습에 서부 대륙인들도 반응했다.
특히, 그들은 성서聖書에 나오는 중부 대륙의 쫓겨난 야만인이라는 대목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긍지 높은 전사의 부족이다. 야만인이라는 단어가 그리 듣기는 좋지 않군.”
한차례 신경전이 그들 사이를 오갔다.
이것은 엘런이 정예군을 모집할 때 가장 걱정했던 부분이기도 했다.
다른 문화권에서 모인 각자 다른 실력자들.
이들이 한 팀으로서 활동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충돌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마저 소개를 이어 가도 되겠소?”
그는 일단 그들의 신경전을 차단하고 새로운 곳으로 이목을 돌렸다.
현재의 신경전을 무마시키고 모두의 흥미를 끌 만한 이가 아직 남아 있었다.
“다음은 엘프의 숲에서 온 러셀 공과, 가르노아 공입니다.”
꾸벅.
엘프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그들은 여전히 인간에 대한 경계심이 남아 있었다.
그것을 배려한 엘런이 이름까지도 함께 소개해 준 것이다.
“엘프가 실제로 존재할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로 신비롭군.”
엘런의 예상대로 엘프들의 무뚝뚝한 반응에도 그들의 관심은 엘프들에게 쏠렸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렇다고 갈등의 소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엘런은 다음 단계를 빠르게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서로 입을 놀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갈등의 여지는 더욱 늘어나기 마련이다.
차라리 공동의 목적을 주고 전투를 벌이게 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었다.
“그럼 대충 소개는 끝났으니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엘런은 그러면서 지도를 한 장 펼쳤다.
그것은 라뷔에로부터 받은 올비아 산맥의 지도였다.
워낙 산세가 험하고 몬스터가 많은 탓에 완벽하게 지도를 그리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운영된 토마르 정보 단체의 경력이 그대로 녹아 있는 덕에 현재 구할 수 있는 올비아 산맥 지도 중 가장 우수한 것이기도 했다.
탁.
그중에서도 그는 남쪽에 있는 비미산을 가리켰다.
“이곳이 바로 하메론이 있는 곳입니다. 특히, 여기 있는 동굴에 은신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하지만 주변에는 몬스터들이 잔뜩 풀려 있어 접근조차 어렵다고 합니다.”
그곳에 있는 이들은 대륙도 국가도 사상도 모두 달랐지만, 하메론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깊게 공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원탁에 앉은 이들은 집중하여 엘런의 설명을 들었다.
“그럼 병력이 더 필요했던 것 아니냐?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쪽에는 저 친구들이 동쪽에서는 우리의 병사가 포위한 채로 조여 들어가는 식이 더 좋을 것 같은데.”
전쟁과 전투에 있어서만큼은 냉철해지는 듀크였다.
엘런이 처음에 생각했던 전략도 바로 그것이었다.
“저도 처음에 그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몬스터의 수가 상상 이상으로 많습니다. 게다가 모두 케니프라 때처럼 광폭화 되어 있기까지 합니다.
듀크는 케니프라의 몬스터들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보고를 들었기에 그들의 위력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었다.
”특히 비미산은 산세가 다른 곳보다도 더 험하고 길이 좁습니다. 날씨나 지형이 시시각각으로 바뀌어 지휘관들에게 혼란을 초래하기도 하지요. 따라서 양으로 몰아붙이는 포위 전략이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랬군. 그래서 소수 정예로 가는 선택을 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엘런은 굳은 결의를 가진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은 선택이군. 그럼 계속 설명해 주겠나?”
“예.”
듀크의 말을 들은 엘런은 자신이 구상한 전술에 대해 설명을 이어 갔다.
* * *
까아악, 까악!
평화로운 것 같은 분위기의 주변 풍경과는 달리 까마귀 소리가 아주 불길하게 들려왔다.
살랑살랑 기분 좋게 불어오던 바람 역시도 까마귀의 울음과 동시에 기분 나쁘게 변해 버린 것 같았다.
“젠장, 거 참 이상한 곳이군.”
듀크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가 분노에 찰 때면 습관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비미 산의 분위기는 한 시간 만에 몇 번이고 바뀌었다.
생기가 가득하다가도 어느 순간 보면 온통 죽은 나무들밖에 없었다.
심각하게 덥다가도 갑자기 추워지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몬스터들의 포효는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 숫자가 얼마나 많았는지 녀석들이 동시에 소리를 지를 때면 산 전체의 나무가 진동하기도 했다.
그 포효는 인간들로 하여금 투쟁 본능과 도주 본능을 동시에 일으키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지형이 계속해서 바뀌는 탓에 지도가 있어도 길을 찾기가 힘들었다.
엘런은 어째서 토마르 정보원들이 만든 지도가 허술할 수밖에 없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거의 다 와 가는 것 같소.”
그나마 저들이 없었으면, 진즉에 길을 잃어버리고 하메론 원정은 싸움도 하기 전에 끝날 수도 있었다.
러셀과 가르노아는 숲의 종족 엘프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도에 표시된 동굴을 향해 척척 찾아갔다.
척.
그때, 앞장서고 있던 러셀이 걸음을 멈추었다.
다른 일행들도 그의 지시에 맞춰 그 자리에 섰다.
그의 앞에는 판톤이 서 있었다.
“동굴이라도 발견한 것이오, 판톤 경?”
“이곳이 한계요. 더는 몬스터들을 피해서 갈 수가 없소. 말 그대로 빈틈없이 꽉꽉 차 있소.”
판톤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판톤의 능력은 자신의 기척을 완벽하다시피 지우는 것이었다.
덕분에 그는 정보 수집 능력에 매우 뛰어났다.
엘프들이 길을 인도하면 판톤이 주변을 둘러보고 몬스터가 없는 방향으로 안내했다.
엘런 일행은 그런 방식으로 비미산 중턱까지 아무런 전투 없이 올라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산에 올라갈수록 몬스터의 숫자는 더욱 많아졌고, 그에 따라 지나갈 수 있는 통로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괜찮습니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산 중턱부터는 절벽이 있는 곳이 많으니 몬스터들이 쉽게 올라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즉 이미 몬스터의 4분의 1은 피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메론과의 길고 힘든 전투를 예상한 엘런은 최대한 불필요한 전투를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이제부터는 작전대로 하는 것이오?”
“다들 부탁드리겠습니다.”
판톤의 물음에 엘런이 긍정했다.
그러자 판톤과 그론리드, 가르노아와 두크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들은 미리 이야기라도 돼 있던 것처럼 2개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나머지 일행은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들의 활약이 나타나기까지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콰아아앙!
콰앙!
2개의 폭음이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산 전체를 울리는 굉음에 비미산에 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쿠우우웅.
쿠르르르릉!
연달아서 2개의 폭음이 또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처음 들려왔던 위치와는 또 다른 곳이었다.
자세히 들어 보니 몬스터들의 고통에 찬 비명도 들리는 것 같았다.
그 후로도 폭음과 비명은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면 그에게 예고는 제대로 날려 준 것 같습니다.”
엘런은 몸을 푸는 것 같은 동작을 하며 말했다.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