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14
214
돌입 (1)
아주 먼 옛날.
마법이 융성하였던 고대 시대가 열리기도 전의 먼 옛날에는 몬스터 역시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산중山中을 주름잡는 것은 명실상부 호랑이였다.
빠른 발과 날카로운 이빨, 용맹함을 가진 호랑이는 산중의 모든 짐승과 인간에게까지도 두려움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런 호랑이를 신처럼 여겼고, 그들을 우상처럼 숭배하는 종족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몬스터라는 존재가 등장했을 때부터 호이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가진 이빨은 몬스터들의 두꺼운 가죽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호랑이가 아무리 빠른 다리를 가졌다고 해 봤자, 몬스터들의 그 거대한 몸집에서 나오는 발길질에 힘도 쓰지 못했다.
그나마도 먹잇감으로 생각했던 고블린 같은 작은 몬스터들도 서로 뭉쳐 호랑이를 몰아내고는 했다.
이제 쉬운 먹잇감을 잃은 그들은 멸종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앙!
그것은 몬스터의 포효가 아니라 짐승의 울음소리였다.
수천 년간 쌓여 있던 호랑이의 한을 담은 울부짖음이 비미산에서 터져 나왔다.
크르르륵.
트롤은 오금이 저리는 느낌 탓에 움직이기를 주저했다.
평소였다면 전혀 신경도 쓰지 않을 호랑이의 포효였다.
자신이 내지르는 소리에 곧 깨갱 소리를 내며 도망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뭔가 달랐다.
지금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저자는 호랑이와 인간을 반반 섞어 놓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자신이 잡아먹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 생각이 들자 트롤은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졌다.
팔다리가 떨어져도 멀쩡히 걸어 다니는 녀석이 생존 본능에 지배당한 것이다.
“어딜 가는가.”
족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완전 수인화獸人化.
족장의 구슬을 받은 두크르는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도망치는 트롤을 보고는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그의 손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돋아나 있었다.
콰아아앙!
그의 손은 트롤의 바로 앞에 떨어졌다.
그 진동에 트롤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두크르는 그런 트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크르르르릉!
녀석은 다가오는 두크르를 보며 두려움에 가득 찬 울음을 냈다.
하지만 두크르는 멈추지 않았다.
쩌억.
벌어진 그의 입에는 날카로운 송곳니가 빛을 반사했다.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발견한 그는 당장이라도 트롤의 살점을 취할 것만 같았다.
“두크르 님, 이동해야 합니다. 엘런 님께서 포위가 될 수도 있으니 한곳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라고 했지 않았습니까?”
그런 그를 말린 것은 시스토였다.
그 역시도 직전까지 전투를 벌이느라 조금은 지쳐 있는 기색이었다.
“그렇지.”
두크르는 엘런의 지시 사항이라는 말에 이성을 되찾았다.
짐승의 위력과 본능을 따르는 완전 수인화라고는 해도 엘런이라는 이름은 그것마저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들이 다른 곳으로 방향을 잡으려는 때였다.
갑자기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판톤의 형상이 나타났다.
“지금 엘런 경의 일행이 동굴의 위치를 찾았소. 우리도 그에 맞춰 움직여야 하오.”
그는 계속해서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닌 탓인지 숨이 차 보였다.
교란 조와 본대의 연락책을 맡은 만큼 그의 활동량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알겠소. 그쪽으로 움직이도록 하지.”
타앗.
그들은 곧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판톤은 가르노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슈우우웅.
화살 하나가 숲속에서 커다란 궤적을 남겼다.
그 궤적을 나타내는 붉은 선은 바로 화염이었다.
산에서 불화살을 쏘는 것은 그리 좋지 못한 행동이었다.
자칫 산 전체로 불길이 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의 정령을 다루는 가르노아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화르륵.
쿠워어어어어.
온몸에 불이 붙은 웨어울프는 고통 속에 몸을 뒹굴었다.
‘이제 다음 장소로 옮길 차례인가?’
그는 엘런의 지시에 따라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했다.
“잠깐 기다리시오.”
그때, 그의 앞에 판톤이 나타났다.
가르노아도 그의 인기척을 인지하지 못했기에 그의 등장에 조금은 놀란 것처럼 보였다.
“엘런 경의 일행이 동굴 위치를 찾았소.”
“그렇다면 거기에 맞춰서 움직여야겠군. 알겠소.”
가르노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움직였다.
교란 조가 엘런 일행보다 앞서 나가서 몬스터들을 분산시켜 줘야 했다.
본대는 하메론과의 전투를 위해 힘을 아껴야만 하기 때문이다.
태애앵.
피유웅.
달려 나가는 가르노아에게서 불화살 하나가 쏘아져 나갔다.
화살이 떨어진 자리에서는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 * *
“다들 확실히 잘해 주고 있는 것 같소.”
“전략이 제법 통하고 있군.”
“이대로 동굴까지 가면 되겠소.”
한편, 엘런이 있는 본대는 교란 조의 도움을 받아 몬스터와의 조우를 최소화하며 움직일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폭음과 몬스터의 비명은 교란 조가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말해 주었다.
“저들이 고립되지 않게 잘 움직여야 할 텐데 말입니다.”
엘런은 조금은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지금까지는 잘해 주고 있었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것은 비미산에 있는 모든 몬스터를 불러들이는 행동이었다.
이곳에는 나무 반, 몬스터 반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몬스터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순식간에 그들에게 고립이 될 수 있었다.
‘특히 시스토가 걱정이군. 가지고 있는 능력은 충분한데 겁먹거나 흥분하지 않았으면.’
엘런은 가장 어리면서도 약한 정령사인 시스토를 걱정했다.
전투 지속력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는 정령사였다.
그랬기에 엘런은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시스토를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이다.
다만, 자신의 선택이 그를 다치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었다.
“거의 다 온 것 같소.”
그러는 와중에도 러셀은 숲의 길을 읽으며 척척 나아갔고, 곧 동굴이 있는 곳 근처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쪽이군.”
그는 잠깐 멈칫하더니 나무가 우거져 있는 곳을 들췄다.
그러자 그 뒤에는 똑같은 숲의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잠깐이나마 기대했던 이들이 그 모습에 실망하며 한숨을 뱉었다.
“결계인가?”
-결계군.
그러나 엘런과 프로뱅의 반응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이미 엘프의 숲에 걸려 있는 결계를 봤기 때문일까.
그들은 곧바로 거기에 결계가 쳐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소. 이 정도면 그리 힘들지 않은 수준의 결계라오. 그리고 꽤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군.”
러셀은 결계 속에 사는 엘프인 만큼 결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곳을 이리저리 훑어보더니 나무와 돌, 바닥 등 전혀 관련성이 없어 보이는 것들에 손을 가져다 댔다.
누가 그 모습을 본다면 생태 조사를 나온 조사원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쩌적.
파사사삭.
그러나 결과는 놀라웠다.
모래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결계가 사라진 것이다.
뒤편에는 지금까지 보이던 숲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과연.”
“이런 곳에 숨겨 놓았군.”
특히, 커다란 동굴 하나가 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로 하메론이 있다고 추정되는 동굴이었다.
“엘런 공, 혹시 저자는 우리가 온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이오?”
결계 뒤편으로 발을 내딛던 러셀이 엘런에게 말했다.
“예상이야 하고 있었을 것 같소만. 왜 그러시오?”
“이 결계는 생성된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소.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동굴을 숨기지 않고 있다가 우리가 오기 바로 직전에 결계를 쳤다는 의미이오.”
그의 말에 엘런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
그의 말대로 토마르의 조사대원들은 이 동굴을 지도에 그려 넣었다.
러셀에게야 쉬웠지만, 조사대원들은 이 정도 수준의 결계를 뚫고 들어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일부러 그랬다는 것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는 조사대원이 그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이곳에 유인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그렇다면 이 결계는 시시한 장난질에 불과하겠군.’
엘런 정도면 이 결계에 대해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조잡한 결계를 펼쳐 두었단 말은 자신을 도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자식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자신을 도발한 하메론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나 그다음으로 든 생각은 걱정이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원정이 성공할 확률을 더더욱 줄어든다.
하지만 엘런은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자신이 그의 예상 안에서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쳐들어올 것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런 인원 구성을 가지고 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겠지?’
하메론은 엘런이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즉, 대륙을 누비며 정예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을 모아왔다고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허를 찔린 것은 내가 아니라 너일 것이다.’
엘런은 확신을 찾기 위해 작게 웃음을 지었다.
“엘런, 어떻게 할 것이냐? 네가 생각한 전략이니 네가 지시해라.”
이미 동굴 앞에 도착해 있던 듀크가 엘런을 향해 물었다.
그것이 엘런을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예.”
그렇게 말한 엘런은 동굴 안을 살펴보았다.
호크아이까지 사용해 보았지만, 안쪽에는 계속해서 긴 동굴만이 이어져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느껴지는 분위기에는 괴기함이 잔뜩 묻어나왔다.
‘이건 마치 던전을 보는 것 같군.’
엘런은 동굴을 보면서 용병 시절부터 완수하고 다니던 던전의 모습을 떠올렸다.
여느 유적이나 동굴과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느껴지는 분위기만큼은 확연히 다른 던전의 모습.
그것이 이 동굴에서도 동일하게 느껴졌다.
“듀크 님, 그론리드 님 입구를 부탁하겠습니다.”
엘런은 몬스터들이 동굴 입구로 들어오는 양동 공격을 막고자 했다.
게다가 혹시 모를 도주에 있어서도 입구를 확보해 두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알겠다.”
“칫, 우리는 입구에나 있어라 이거군.”
듀크와 라르트는 엘런의 지시대로 동굴 입구 앞에 섰다.
프로드의 공작 2명을 고작 보초로 세워 놓았다는 것을 알면 경을 칠 일이었다.
하지만 엘런은 지금껏 수많은 던전에서 입구 확보를 우선 사항에 뒀었다.
자칫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만큼 실력자를 배치해 입구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하메론과의 싸움은 나 혼자서 진행할 테니 말이야.’
그렇게 생각한 엘런은 동굴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엘런.”
듀크가 그 뒷모습을 보며 그를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몸조심해라. 이곳은 내가 확보하고 있을 테니까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쳐.”
그의 말에 엘런은 가볍게 웃음을 지었다. 듀크 덕분에 무겁기만 했던 기분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뒤를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여기라면 몬스터 1천 마리가 온다고 해도 지킬 수 있을 테니.”
“그럼.”
그렇게 엘런과 한센, 아드리안만이 하메론이 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