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15
215
돌입 (2)
* * *
터엉터엉.
동굴 안에 발소리가 울렸다.
3개의 발소리는 엘런과 한센, 아드리안의 것이었다.
그들은 어둡고 좁은 동굴 안을 라이트 마법에 의존해서 걸어가고 있었다.
주변이 워낙 어두운 탓에 라이트 마법의 빛도 그리 멀리까지 뻗어 나가지는 못했다.
던전 같던 분위기와는 달리 동굴 안에서는 어떤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
전에도 진입하고 한동안 아무런 현상도 없는 던전이 있기는 했지만, 광범위 스캔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생명체의 반응이 하나도 잡히지 않은 곳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엘런은 이것이 하메론이 만들어 낸 던전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가 던전을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몰라도, 만약 그가 직접 이곳을 만들었다면 다른 던전들과 다를 수도 있었다.
‘우리가 이곳에 오도록 유도한 자다. 어떤 술수를 꾸몄을지 모른다.’
엘런은 그렇게 생각하며 탐지 마법에 정신을 더욱 집중했다.
아드리안과 한센도 긴장했던 탓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엘런의 뒤를 따라가기만 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오직 3개의 발걸음 소리만이 그들이 서로가 곁에 있음을 인지할 수 있게 했다.
그 정적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동굴에서는 어떤 반응도 감지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감지된 것이라고는 약 2km 전방에 있는 커다란 공동(空洞)밖에 없었다.
‘저곳은 무엇을 위한 공간이지?’
사실, 동굴 안에 공동이 있는 것은 그렇게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엘런은 하메론에 대한 긴장 탓에 아주 조그만 특이점이라도 의심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일행 간에는 정적이 흘렀다.
“동부 대륙에는 정말로 저토록 강자가 많습니까?”
결국, 이 긴 정적을 참지 못한 아드리안은 앞서 걸어가고 있던 엘런에게 물었다.
그는 엘런이 데리고 온 인물 중 젊은 청년 하나를 제외하면 나머지의 실력이 한센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한센은 서부 대륙에서 에레네의 검이라 불릴 정도로 자타공인 서부 대륙 최상의 실력자였다.
그러나 동부 대륙에는 그런 그에게 버금가는 실력자가 몇 명이나 되었다.
이것은 동부와 서부의 실력 차이를 단숨에 보여 주는 지표였다.
“서부 대륙과 비교하면 많다고 할 수 있소.”
엘런의 말에 아드리안은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그들의 말을 듣고만 있던 한센도 놀란 듯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모른 척하고 계속해서 걸어갔다.
“역사적으로 동부 대륙은 전쟁 때문에 정세가 안정되었던 적이 별로 없었소. 전쟁은 승리한 자가 패배한 자의 모든 것을 갖는 것, 바꿔 말하면 패배한 자는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는 말이오.”
아드리안은 엘런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한센도 아닌 척하면서 그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따라서 각국은 실력자를 키우는 데 사활을 걸다시피 했소. 나라의 존망이 걸려있으니 말이오. 게다가 많은 전투가 그들의 실전 경험이 책임져 주었으니 자연스럽게 실력자의 숫자가 늘 수밖에 없었소.”
아드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연합군 작전을 통해 얼마나 많은 이가 성장했던가.
지금까지 이론이나 머릿속에만 머물던 것을 실제로 사용하게 되었을 때, 비약적으로 올라가는 실력을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앞으로 동부 대륙과 정기적으로 교류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 봐야겠습니다.”
가만히 듣고만 있던 한센이 입을 열었다.
그는 에레네의 검이자 크루세이더이기는 했지만, 동시에 무인武人이기도 했다.
그도 당연히 무인 특유의 강해지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서부 대륙에서는 정점을 찍었기에 이제는 더욱 넓은 세상인 동부 대륙인들과의 교류를 통해 강해지고 싶은 것이었다.
“우리 프로드 왕국에서도 서부 대륙과의 교류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소. 이번 일이 끝난다면, 시범적으로 무인들의 교류를 해 보겠소?”
엘런은 로미우의 고민을 떠올렸다.
이번 기회에 에레네스와 정기적인 교류를 하게 된다면 분명 그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었다.
“성인聖人께서 명령하시는 것이라면 따르겠습니다.”
“그렇게 정나미도 없이 말하면 나도 별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소.”
한센의 사무적인 태도에 엘런은 기분이 상한다는 티를 내며 말했다.
“사실 저도…….”
한센이 말을 꺼내려던 찰나였다.
쿠드드득.
무엇인가 흙을 뚫고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동굴 속에서 들리는 소리는 엘런 일행의 말소리밖에 없었기에 그 소리는 그들의 귀에 아주 똑똑히 들렸다.
-크, 크, 크어어어…….
그것은 몬스터의 소리라기보다는 벌려진 입과 목구멍에서 바람이 새어 나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드디어 던전 같은 느낌을 내 주시는군.”
그것은 엘런이 용병 시절 던전 임무를 수행할 때면 지겹도록 들었던 소리였다.
그 소리의 주인은 밖에서는 몰라도 던전에서 만큼은 너무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몬스터였다.
“구울인가?”
한센이 엘런의 추측을 입으로 뱉어 주었다.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소리가 난 곳을 쳐다보았다.
쿠드드득.
-크으으, 크워어어어.
문제가 있다면 땅을 뚫고 나오는 구울의 소리가 수십 개 정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림잡아도 500마리 이상. 그마저도 한 방향이 아니라 양방향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좁은 동굴에서 양방향으로 500마리 이상의 구울에 둘러싸이는 것은 그들에게도 꽤나 위험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엘런 일행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드디어 모든 구울이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더 이상 땅을 뚫고 나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구울들은 라이트 마법의 범위 안으로 들어왔다.
“전부 다 나왔으니 슬슬 진행하면 되겠소.”
“그런데 인제 보니 그냥 구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드리안이 빛에 의해 모습을 드러낸 구울들을 보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그것들은 일반적인 구울보다 살점이 더욱 썩어 있었고, 손톱이나 이빨은 더욱 날카롭게 뻗어 있었다.
뚝, 뚝.
치이익.
입 밖으로 흘러나오는 타액에는 산성이 섞여 있기라도 한 것인지, 그것이 떨어진 자리에 있는 땅이 부식되었다.
여러모로 평범한 구울보다는 더욱 사납고 위협적이었다.
“그래 봤자 똑같소. 처음 등장하는 몬스터가 구울이었다니 이거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군.”
한센은 오히려 동굴에 들어온 직후보다도 표정이 풀려 있었다.
“그건 그렇지.”
아드리안도 한센과 마찬가지였다.
“엘런 님, 이번 일은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엘런 님께서는 애꿎은 곳에 마나를 사용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드리안과 한센은 그렇게 말하고는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았다.
“에레네시여, 그대의 빛은 세상의 규칙에 어긋난 자를 벌 할 지이니. 뒤틀려 버린 자들아 에레네의 품으로 돌아가 안식을 누려라.”
둘의 기도 내용이 똑같았다.
그것은 견습 사제들이면 누구나가 배우는 기도문이었다.
그러나 효과가 아주 제한적이기 때문에 실전에서 잘 사용되지는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한적인 상황에 딱 맞아떨어지는 자들이 있으니 어느 때보다 효과가 크겠지.’
그들이 기도를 하는 동안, 그들의 무기에서는 백색의 빛이 새어 나왔다.
“원복”
그리고 둘의 입이 동시에 떨어졌다.
그와 함께 새어 나오던 빛이 폭발하듯이 강렬해졌다.
-크어어어어어.
-크워어어.
그 빛에 닿은 구울들은 마치 풍화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500마리의 구울들이 어찌할 도리도 없이 가루가 되기까지는 한순간이면 충분했다.
“언데드라니 이 어찌나 불경한가.”
순식간에 구울들을 제압해 버린 한센이 통탄했다.
“다음에는 억지로 이승에 붙들려 있지 말고 에레네의 품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아드리안도 구울들의 원혼을 위로하는 말을 꺼냈다.
이것이 서부 대륙에서 언데드형 몬스터를 결코 볼 수 없는 이유였다.
언데드와 그들은 상성이라는 것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아무리 강력한 언데드라도 견습 사제 하나에 힘도 못 쓰고 사라질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동부 대륙과 달리 서부 대륙에서는 일찍이 언데드의 씨가 말라 버린 것이다.
그나마도 남은 언데드들은 어딘가에 쥐죽은 듯 숨어 살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그들의 눈에 걸렸다가는 곧바로 진정한 종말을 맞이하기 때문이었다.
신관이나 크루세이더들 앞에서는 불사의 몸도 소용이 없었다.
“하메론에게는 우리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것 같소.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를 상대로 언데드를 이렇게나 많이 준비했다는 것이 말이 되겠소?”
아드리안의 말에 엘런은 바로 동의를 하지 않았다.
‘내가 신관들을 데리고 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가?’
엘런이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더라도, 그가 서부 대륙에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다.
게다가 하메론은 토마르 정보원들에게 일부러 정보를 넘긴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그가 엘런이 신관과 함께 올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신관들이 언데드에 매우 강한 상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모를 리가 없었다.
‘뭔가 더 있다.’
그렇게 생각한 엘런은 구울 때문에 멈춰 두었던 광역 탐지 마법을 다시 사용했다.
그의 마나 파동이 동굴 전체로 퍼졌다.
그리고 그의 마나에 무엇인가 감지가 되었다.
“젠장, 아드리안 경, 한센 경, 앞으로 달려야겠습니다.”
엘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말씀입니까?”
“뒤에서 몬스터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들은 아직 엘런의 말뜻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뒤편에서 적게 잡아도 1,000마리가 넘는 몬스터가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언데드도 아닙니다. 앞쪽에서도 몬스터가 몰려오고 있지만, 그쪽에는 큰 공동이 하나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거기까지 우리가 먼저 가야 합니다. 여기서 포위당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제야 그들은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젠장, 구울로 광역 마법을 꺼 두게 하고 그 사이에 몬스터들을 소환시킬 생각이었군.’
구울이 등장하고 엘런 일행이 그것들을 완전히 정리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몇 분 남짓이었다.
그러나 하메론은 그 틈을 노린 것이다.
이제는 입구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늦었다.
그렇다고 앞에 있는 공동까지 달려가기에도 그리 넉넉하지는 않았다.
이것이 하메론이 계산한 것일 수도 있었다.
‘여기서는 나도 광역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저 둘이서 모든 몬스터를 처리하지도 못한다. 그의 수대로 놀아나면 나는 심각하게 마나를 소모한 채로 그와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엘런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충분히 예상되었다.
일단은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모두들 더 속도를 내시오. 전방에서 달려오는 몬스터보다는 더 빨리 공동에 도착해야 하오.”
“예!”
그의 외침에 한센과 아드리안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들은 최대한의 속력으로 전방으로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