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16
216
돌입 (3)
타타탓.
“헉, 헉.”
가쁜 숨소리와 짧은 간격으로 울리는 발소리는 지금 그들이 얼마나 다급한 상황인지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공동이 보이오.”
엘런의 말소리 뒤로 몬스터들이 내지르는 포효가 들렸다.
그 소리에 엘런 일행은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다.
전방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직 뒤쪽보다는 멀리서 들렸다.
그것은 다행히 녀석들보다 먼저 공동에 도착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늦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서두른 보람이 있었습니다.”
공동에 도착한 일행은 아직 몬스터가 들이닥치지 않은 것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최종 목표는 하메론이었고, 몬스터들은 그곳으로 가는 길목임에 불과했다.
그랬기에 그들은 몬스터들에게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잘 이길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마나 소모를 최소화하면서 몬스터들과 싸워야 했다.
그런데 극도로 불리한 지형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그들이 이길 수는 있되 잘 이길 수는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엘런, 한센, 아드리안 모두가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그들이 공동에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에 이토록 안도하는 모습을 보여 준 것이다.
“전방에서 오는 무리에 돌진적인 몬스터가 많소. 그러니 한센 경이 전방의 통로를 막아 주시오. 후방은 아드리안 경에게 부탁하겠소.”
그리고 이제부터는 공동에 먼저 도착한 그들이 지형적인 유리함을 이용할 차례였다.
“알겠습니다.”
그들은 엘런의 지시대로 공동 입구를 막아섰다.
비록 한 사람이 그곳에 서 있는 것이었지만, 그 기세만큼은 1,000마리가 넘는 몬스터 군단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쿵쿵쿵쿵쿵.
자칫 동굴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착각할 뻔했다.
동굴 전체를 울릴 만큼 큰 소리가 공동으로 들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 방어 태세를 갖추시오.”
엘런의 말과 함께 한센은 검을 뽑아 들었고, 아드리안은 봉을 꺼냈다.
한센이 지키고 있는 전방에서는 철갑 코뿔소가 돌진해 왔다.
철갑 코뿔소는 부딪히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마을의 목책 정도는 단숨에 날려 버릴 수 있는 강력한 뿔과 육중한 몸을 가진 몬스터였다.
돌격대장으로서는 아주 제격이었다.
스릉.
한센은 그런 녀석들 앞에서도 전혀 겁을 먹지 않고 검을 뽑아 들었다.
‘이런 지형에서 아주 적절한 기술이 있지.’
날카롭게 벼려진 그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에서 우로 그어지는가 하면 아래에서 위로 치켜 올라가기도 했다.
검의 끝에 서려 있는 빛의 궤적을 통해서야 겨우겨우 검로劍路를 읽을 수 있었다.
아무것도 베지 않고 허공을 가르기만 하는 것 같은 몸짓.
그랬기에 거친 숨을 내뿜으며 달려오는 철갑 코뿔소들은 어떤 위기감도 느끼지 못했다.
녀석들은 오히려 뿔을 더 높게 치켜들며 한센의 몸을 꿰뚫고자 했다.
“내 아들아, 걱정하지 말라. 내가 휘두른 검은 만 리를 뻗어 죄인 알리오를 처단할 것이니. 너희는 그 시체를 찾아 나의 제단 앞에 묻어 영靈까지 심판받게 하라.”
그의 입에서 성서의 구절이 흘러나왔다.
뚝.
그리고 현란하게 공간을 수놓던 그의 검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알리오의 의심.”
훙.
마지막으로 한센은 검을 정면을 향해 찔러 넣었다.
마치 걸작을 그려 낸 화가가 마무리로 그림에 점을 찍는 것 같아 보였다.
“꾸웨에에에엑.”
그리고 이어진 것은 철갑보다 단단한 녀석들의 피부가 찢기는 모습이었다.
평생 피라는 것을 잘 흘리지 않고 살던 녀석들은 자신의 그런 모습을 믿을 수가 없었다.
불에 덴 것 같은 느낌 역시도 처음 느껴 보는 종류의 고통이었다.
멈칫.
선봉대장 역할을 하던 철갑 코뿔소가 인간의 공격에 당한 것을 보자, 몬스터들의 움직임도 주춤거렸다.
한센은 기술 하나로 저 많은 몬스터의 돌진을 지연시킨 것이다.
‘저건 검기를 날리는 것과 비슷한데?‘
그 모습을 본 엘런은 한센의 기술에 관심을 가졌다.
동부 대륙과 달리 서부 대륙의 크루세이더들은 검기를 날리는 기술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기보다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한센은 성서의 전승을 보고 독자적으로 그 기술을 만들어 낸 것이다.
‘동부에 있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해졌을 텐데 말이야.’
그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후방에 있는 아드리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드리안도 보조 마법 위주의 신관임에도 불구하고, 몬스터의 돌격을 잘 저지하고 있었다.
‘이게 그가 준비한 것의 전부일까?’
엘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메론이 보낸 몬스터들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다.
엘런이 마지막으로 감지 마법을 사용했을 때만 하더라도 분명 아무런 반응도 감지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시체 상태인 언데드야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 많은 몬스터의 생명 반응이 감지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
엘런은 하메론이 포탈 마법을 통해 녀석들을 이곳에 보냈다고 추측했다.
녀석들을 보낸 시기 자체는 아주 적절했다.
갑자기 튀어나온 언데드, 그 언데드에 강한 신관과 크루세이더.
일행이 방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방심한 틈을 타 빼기도 들어가기도 어려운 거리에서의 포위 작전까지.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는 전술이었다.
위력이 떨어지는 몬스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작전임에는 반박할 여지가 없다.
엘런이 조심성이 없어 감지 마법을 조금만 늦게 사용했다거나 한센이나 아드리안이 조금만 약했더라면, 일행은 이 작전에 완벽히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엘런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게 아니었다.
‘굳이 왜 이렇게 한 거지?’
앞서 말했듯, 이것은 전력 자체가 떨어지는 몬스터들을 이용한 최선의 전술은 맞았다.
그러나 엘런은 하메론이 왜 굳이 전력이 떨어지는 몬스터를 사용했는가가 의문이었다.
‘상대는 성유물을 4개나 가지고 있다. 릭 정도는 아니더라도 그저 그런 마법사만 데려오는 것으로 지금보다 훨씬 강력한 전력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엘런이 소수 정예의 동료들을 데리고 온 것도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렇게 몬스터의 처리보다도 하메론의 하수인을 맡아 줄 인원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몬스터 물량으로만 밀어붙이는 전술을 택했다.
엘런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양측 공동 입구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붉게 물든 눈을 보니 광폭화된 것은 맞는데, 어쩐지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단 말이야.’
몬스터들은 입구를 뚫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케니프라 때나 케롤 성 때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지는 않았다.
마치 뚫겠다는 시늉만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설마.’
엘런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는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성유물을 사용해 강력한 하수인을 만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몬스터만을 이용해 방어를 하고 있고, 그마저도 시간을 끄는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
여러 가지 단서가 엘런이 한 추측의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그놈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그래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이 분명해.’
그가 엘런을 피해 다닌 것도 어떤 준비 때문이었다.
엘런은 그가 성유물을 가져갔을 때쯤 이미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는 지금 궁여지책으로 몬스터를 보내 시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으로 오도록 유인한 것은 하메론 바로 그 자신이 아니었나?’
유인을 한 장본인이 아직 손님을 맞이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머리가 복잡해진 엘런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도저히 그의 의도를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 본능이 시키는 대로 한다. 이대로 뻔히 보이는 지연 전략에 당해 줄 마음은 없다.’
결국, 엘런은 결정을 내렸다.
그는 고개를 들어 공동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곳에 들어올 때부터 제피로스를 이용해 바람의 흐름을 읽어 두었다.
공동 속에서 보이는 바람 길은 크게 세 가지였다.
하나는 한센이 지키고 있는 전방의 통로, 두 번째는 그들이 들어온 후방의 통로였다.
‘그리고 마지막은 바로 저곳이지.’
엘런은 바라보고 있던 천장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을 찾았다.
그곳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있었다.
주변이 워낙 어두운 탓에 육안으로 그것을 구분하기는 어려웠다.
엘런도 제피로스를 이용해 대략적인 구멍의 위치를 알고 있었기에 찾을 수 있었다.
양측 통로는 몬스터에 의해 막혀 있었기 때문에 엘런이 지나갈 수 있는 곳은 바로 저곳 하나밖에 없었다.
“한센 경, 아드리안 경, 나는 이대로 하메론을 찾아내겠소. 그대들의 실력에 이 정도 지형적 이점을 가지고 있으면 저 녀석들을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이곳을 정리하는 대로 엘런 님을 도우러 가겠습니다.‘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들의 등에서는 책임감이 엿보였다.
’레비테이션.‘
타앗.
엘런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그러고는 곧장 통로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이렇게 궁여지책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그의 준비도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게 틀림없다. 서둘러야 해.‘
* * *
-이곳은 내가 있던 해리포드의 던전과 비슷한 구조인 것 같구나.
엘런이 한창 통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을 때, 프로뱅이 말을 걸었다.
‘해리포드 던전은 층 형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원래는 단순한 층 형식은 아니었지. 내가 조금 변형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곳도 딱 그런 느낌이구나. 그렇다면 녀석의 은신처는 내가 있던 곳과 비슷한 곳에 있지 않겠나?
그 말에 엘런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안 그래도 하메론의 은신처를 찾을 수 없어 답답해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에 그의 말이 더욱 반가웠다.
‘그럼 스승님은 그놈이 어디에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기다려 보거라. 내가 한번 볼 테니.
그렇게 말한 프로뱅은 정신을 집중하기라도 하는 듯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던전에 숨었을 때 불사의 힘을 최대한 이용하여 해리포드 던전을 훑고 다녔지. 그리고 은신처를 할 만한 곳을 찾았다. 하메론 그자도 똑같은 방식을 사용했더라면, 지하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지하라……. 하지만 동굴의 길 자체가 지하를 향하고 있지 않습니까?’
엘런의 반응에 프로뱅이 혀를 찼다.
-해리포드의 던전도, 이곳도 모두 개미굴 형식이다. 나는 그곳을 일부러 나에게로 향하는 한 가지 길만 제외하고 전부 닫아 놓았지만, 이놈은 반대로 잘못된 길 하나를 제외하고 모두 닫아 놓은 것 같구나.
엘런은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동굴이라는 곳의 특성 상 나 있는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이곳이 개미굴 형식의 던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부터……?’
피융.
빛줄기 하나가 땅 밑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땅속 깊숙이 내려가긴 했지만, 땅 자체를 완전히 관통하지는 못했다.
피융, 피융, 피융.
엘런은 같은 자리에 매직 미사일을 몇 번 더 쏘았다.
그럴수록 땅은 더욱 깊게 파여 갔다.
퐁.
후확.
그러다 어느 순간 막혔던 것이 뚫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구멍을 통해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은 그곳에 어떤 새로운 공간이 있다는 의미였다.
불어오는 바람의 양이나 세기로 봐서는 아주 커다란 공간으로 추정되었다.
‘이곳이다.’
엘런은 곧장 그 통로를 향해 몸을 던졌다.
바닥이 시커먼 탓에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알 수 없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착지 직전에 페더폴 마법을 사용해 충격을 줄였다.
그러고 나서 그가 가장 먼저 하려고 했던 것은 라이트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찾았다.”
그가 내려온 곳은 불빛이 필요 없을 만큼 밝았기 때문이었다.
“하메론, 드디어 네놈을 잡을 수 있겠군.”
그리고 그의 앞에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하메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