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17
217
하메론과의 만남 (1)
* * *
하메론은 여느 때처럼 후드를 깊게 눌러 쓰고 있었다.
그의 얼굴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지만, 엘런은 그가 하메론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용케도 여기까지 왔네.”
그리고 그 후드의 남자는 엘런의 추측을 직접 확인시켜 주었다.
그의 입가는 지금의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곳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었던 것인가?”
“쥐새끼라는 표현은 사양해 주겠어? 난 나름대로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거든.”
“닥쳐라.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든 간에 그것도 이제 끝이다.”
지금까지 뒷모습만을 보여 주고 있던 하메론이 몸을 돌렸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조금은 쉬고 하는 게 어때? 내가 차라도 꺼내 줄까?”
“또 어쭙잖은 짓을 하는군.”
‘아이스 캐논.’
엘런은 나불거리고 있는 하메론의 입가를 향해 얼음 덩어리를 날렸다.
겉보기에는 투박하게 생긴 얼음 덩어리였지만, 실상은 이시르의 힘까지 더해져 스치기만 해도 동상을 입을 수도 있는 위협적인 공격이었다.
만약 하메론이 방심하고 수준 낮은 방어 마법을 펼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승부가 날 수도 있었다.
“차단하라, 얼티미트 실드.”
촤르르르륵.
하메론도 재빠르게 그에 대항했다.
그는 엘런의 공격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인지 꽤 강력한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루이스 체들턴처럼 극도로 단축시킨 영창이었다.
그러나 구현된 마법은 그와 비교할 수가 없었다.
콰앙.
얼음 덩어리가 하메론의 보호막에 닿는 순간, 마법 자체가 마나 단위로 다시 해체되었다.
-7서클의 마법을 저렇게 줄여서 쓰다니. 조심해라, 엘런. 저놈은 이미 8서클에 닿은 게 틀림없다.
엘런도 프로뱅의 경고에 동의했다.
그는 처음부터 하메론이 8서클 이상의 경지에 도달했을 거라고 예상했다.
7서클의 얼티미트 실드를 저토록 쉽게 사용하는 것을 보니 그 예상이 맞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승산이 없지는 않습니다.’
엘런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자신 역시도 마나량으로는 진즉에 8서클에 올라 있었다.
이제 마지막 손길 덕에 8서클 마법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엘런이 생각했던 최악의 경우는 하메론이 9서클이라는 것이었다.
실존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서클.
그가 그 경지에 도달했다면, 엘런의 패배는 이미 정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런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물론 같은 8서클 안에서도 여러 단계가 있긴 하겠지만, 엘런의 무영창 능력과 정령술까지 합친다면 싸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일단은 네가 예상한 범위 안이긴 하구나.
‘그렇습니다.’
프로뱅에게 대답한 엘런은 활주滑走를 사용했다.
그는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의 속도로 하메론의 뒤로 넘어갔다.
“그 기술은 질리지도 않냐?”
하메론은 엘런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도 시큰둥하게 말했다.
“뛰어넘어라, 블링크.”
슈슉.
그도 8서클의 마법사였다.
더군다나 7서클의 마법 정도는 최단 시간 안에 사용할 수 있는 신의 재능도 있었다.
7서클의 마법 중에서도 가장 어렵다고 할 수 있는 블링크.
그는 그것마저도 쉽게 사용했다.
“이곳에 있었구나.”
엘런을 따라잡은 그의 눈이 반달 모양으로 휘어졌다.
그것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이 아니라 섬뜩함을 불러일으키는 미소였다.
“징벌하라, 스톤 크래쉬.”
콰카카카카.
그러자 거대한 돌덩이가 엘런을 덮쳤다.
루이스와의 대전에서 엘런이 그가 사용한 스톤 크러시를 보고 ‘운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돌덩어리라고’ 표현했었다.
하지만 이번 것을 보니 그것은 그저 돌덩어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하메론이 소환해 낸 것은 땅덩어리라는 표현이 적합했다.
저것에 짓눌려 버린다면, 문자 그대로 뼈도 못 추릴 무지막지한 크기였다.
‘이시르, 제피로스.’
엘런은 자신을 따라잡은 하메론의 공격을 피하느라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있었다.
하메론도 그것을 노리고 엘런에게 피할 엄두조차 나질 않는 공격을 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엘런에게 공중에서 활주를 사용하는 것 정도는 쉬운 기술에 속했다.
특히 그는 지금 텔레포트를 쉽게 사용할 수 있을 만큼의 정신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지금의 상태에서는 더욱 빠르면서도 정교한 활주를 사용할 수 있다.
츠팟.
콰가강.
허공에 발을 디딜 만한 얼음 길을 만들어 낸 엘런은 거대한 땅덩이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가 자신에게 드리운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순간, 돌덩이는 땅에 추락했다.
실로 간발의 차였다.
‘7서클의 공격 마법을 저 정도의 위력으로 이토록 쉽게 사용한다니.’
엘런의 왼쪽 팔에서 뜨거운 액체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스톤 크러시에 스치면서 생긴 상처였다.
그는 무영창과 정령술을 너무 과신했다가는 자칫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피해? 이동술이 꽤나 정교하게 발전했잖아? 내가 알기로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나라고 항상 멈춰 있었겠나?”
“그래, 너의 성장 속도는 인정해야겠어. 하지만 그래 봤자다.”
스윽.
하메론은 자신이 쓰고 있던 두건을 벗었다.
빛에 드러난 그의 눈은 여전히 반달 모양으로 휘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는 왼쪽 입꼬리만 귀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누가 보기에도 엘런을 얕잡아 보는 듯한 모습이었다.
“내가 너를 얕잡아보긴 했어. 너도 알다시피 지금까지는 너, 너무 약했잖아.”
하메론은 특유의 과장된 몸짓을 하며 엘런에게 말했다.
엘런의 성질을 긁으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럼 지금은 과거의 나와는 달라졌다는 뜻인가?”
“아, 그런 건 아니야. 원래부터 하고 있던 기대가 워낙 낮아서 거기에 맞춰서 생각했던 것이거든. 지금도 약한 것은 마찬가지야.”
한껏 조롱이 담긴 말투.
하지만 엘런은 그의 도발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엘런은 그의 성격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세간에 알려진 ‘신의 재능’이라는 말과 달리 어린아이와 같은 면이 있었다.
유치하고 지기 싫어하며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성격.
그랬기에 그는 전투 내도록 상대를 도발했다
‘하메론과 내 사이에는 그리 큰 실력 차이가 없다. 나도 지금까지 마나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아껴 두었다. 여기서 내가 동요할 필요는 없다. 침착하기만 하면 돼.’
엘런은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그 말을 되뇌었다.
하메론의 의도대로 넘어가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나는 전혀 불리할 것이 없다. 무영창과 정령술. 그것을 잘만 이용하면 내가 이길 수도 있다. 오히려 저 녀석의 방심을 내 무기로 삼으면 된다.’
엘런이 자신의 말에 별 반응이 없자 하메론은 재미없다며 발을 툭툭거렸다.
“너 너무 여유 부리는 거 아닌가?”
“뭐?”
낄낄거리고 있던 하메론의 웃음이 뚝 멈추었다.
엘런의 말에서 엄청난 위기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라그나 블라스트. 2중첩.’
땅에 그려진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초고온의 화염.
엘런이 루이스에게 당할 뻔했던 바로 그 마법이었다.
“아뿔사.”
화르륵.
오망성 모양을 한 지옥의 아가리가 열렸고 시뻘건 화염이 하메론을 집어삼켰다.
엘런은 호크아이까지 동원하여 마법이 적중하는지 지켜보았다.
‘걸렸다.’
하메론은 확실하게 라그나 블라스트의 화염 속에 휩싸였다.
그곳에서 빠져나오는 어떤 움직임도 확인할 수 없었다.
‘급하더라도 마법진을 그려 놓고 빠져나오길 잘했어.’
엘런은 거대한 땅덩어리를 피하는 도중에 하메론의 발밑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를 낸 덕인지 하메론이 눈치채지 못했다.
덕분에 팔에 약간의 상처가 생기긴 했지만, 이 정도 성과의 대가라면 충분히 싼값이었다.
-아직 아니다. 화염을 잘 봐라.
잠깐이나마 안심하고 있던 엘런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러고는 아직도 불을 내뿜고 있는 마법진을 바라보았다.
‘화염이 굴절되고 있다.’
라그나 블라스트의 화염은 직선으로 뻗어 올라가는 마법.
하지만 어느 한 곳의 화염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올라가고 있었다.
그곳은 정확히 하메론이 있던 자리였다.
‘말도 안 돼.’
라그나 블라스트는 7서클 마법 중에서도 화력면에서는 가장 강력한 마법이었다.
게다가 두 번이나 겹쳐서 사용했다.
이것은 8서클의 방어 마법 1개로도 완벽한 방어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엘런이 아닌 이상에야 3개의 방어 마법을 사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것은 영창을 극도로 단축시킨 하메론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물론, 엘런은 하메론에게 그런 시간 따위를 주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에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은 기껏해야 8서클의 방어 마법. 그게 아니라면…….’
엘런의 눈이 번쩍 떠졌다.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9서클의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는 것인가?’
궁극의 마법사라고 불리는 9서클의 마법사.
그것은 고대시대에도 존재가 극히 드물어 실존하는지조차 논란이 많은 경지였다.
만약 하메론이 9서클의 방어 마법을 사용해 라그나 블라스트를 막은 것이라면, 엘런은 하메론의 실력을 한참이나 잘못 가늠하고 있었다는 의미였다.
툭툭.
“이런, 이런. 정말 큰일 날 뻔했어. 이런 건 언제 그려 뒀대?”
그리고 그는 엘런의 근심을 확인시켜 주기라도 하듯 멀쩡한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었다.
“어떻게…….”
“뭐가? 그 공격에서 어떻게 무사했냐는 말인가?”
하메론은 별것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네가 라그나 블라스트를 2개나 사용했잖아. 이건 8서클 방어 마법으로도 완전히 막는 건 불가능하고, 그럼 9서클의 방어 마법으로 막는 건 당연한 이치 아니야? 아니면, 너에게는 이것도 어렵냐?”
엘런의 두 손이 떨렸다.
자신이 가장 우려했던 그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상대가 9서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8서클과 9서클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였다.
게다가 자신은 이제 막 8서클이 된 마법사였다.
그 차이는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젠장, 9서클이란 경지가 존재했단 말이야? 그렇다면 왜 지금까지 그 권능을 사용하지 않은 거지? 신과도 같은 경지일 텐데?’
그는 아주 잠깐 동안 자신감에 찼던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상대는 9서클의 마법사.
일반적인 공격 따위는 모두 무시해 버릴 최강의 마법사였다.
엘런은 처음부터 전력 분석 자체를 잘못하고 온 것이다.
9서클이라면 굳이 이렇게 귀찮게 일을 꾸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자신의 오산이었다.
수많은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대부분이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다는 것이었다.
도저히 9서클의 마법사를 이길 수 있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다. 그래도 이대로 당해 줄 수만은 없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 나에게도 전력을 뒤엎을 수 있는 특수 능력들이 있다.’
엘런은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동시에 흐트러졌던 정신도 다시 집중 상태로 변했다.
그러자 당황한 탓에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 녀석 온전히 막아 낸 게 아니다?’
정말 자세히 봐야 알 수 있을 정도였지만, 하메론의 옷 곳곳에는 탄 자국이 있었다.
몸에도 화상 자국이 조금씩 보였다.
이름으로만 전해지는 9서클의 방어 마법 ‘리젝트’가 저런 흔적 따위 남길 리는 만무했다.
‘나를 속이고 있는 건가?’
엘런의 머릿속에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리젝트가 아니라 8서클의 방어 마법 앱솔르투 배리어를 사용하고 얼른 회복 마법을 사용한 것일 수도?’
평소 정신적인 공격을 즐겨하는 하메론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저 녀석이 9서클이 아니라면 저놈은 조금 전과 같은 수준의 공격에 당황했을 것이다. 더 몰아붙여 봐야겠어.’
츠팟.
그렇게 생각한 엘런은 다시 한 번 활주를 사용했다.
이번에는 특정한 곳으로의 이동이 목적이 아니었다.
이동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
잠깐도 멈추지 않고 이동하는 것을 통해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키려는 것이었다.
‘프로즌 템페스트. 압축. 사출.’
동시에 엘런은 자신의 새로운 공격 마법을 사용했다.
8서클의 얼음 계열 마법.
전체적으로 블리자드와 같은 방식이었지만, 그 위력만큼은 블리자드를 훨씬 웃돌았다.
즉 8서클의 방어 마법 한 장으로는 막을 수 없을 공격이라는 의미었다.
그런 얼음 조각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차단하라, 앱솔루트 배리어.”
예상대로 하메론은 8서클 방어 마법을 펼쳐 들었다.
그는 9서클 마법을 단숨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앱솔루트 배리어로 한두 개의 얼음 조각을 방어한 그는 나머지 것들을 몸을 움직여 회피했다.
‘저 녀석, 나를 동요시키기 위해 연기를 한 것이다.’
그 증거로 하메론의 종아리에는 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주변으로 퍼진 동상의 자국.
프로즌 템페스트 조각이 낸 상처가 확실했다.
엘런에게 처음 들었던 감정은 괘씸함이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는 ‘어째서?’라는 것이다.
“이것도 눈치챈 거야? 생각보다 더 대단하네, 너.”
“무슨 의도지?”
“내가 다 말해 줄 수는 없지.”
하메론은 슬쩍 웃으면서 말했다.
어쩐지 기분 나쁜 미소였다.
“그런데 뭐, 목적은 성공한 것 같아. 이 상처가 조금 아프긴 하지만 말이야.”
그렇게 말한 하메론은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뒤를 돌았다.
그러고는 두 손을 하늘로 뻗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허공에 흩어졌다.
쿠쿵.
그러자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물체가 갑자기 그들의 앞에 나타났다.
‘저, 저건……?’
그 물체를 확인한 엘런은 곧바로 하메론을 저지하려 했다.
“이미 늦었어.”
하메론의 그 말이 엘런에게는 사형 선고처럼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