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19
219
하메론과의 만남 (3)
* * *
“가만 안 둔다고?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네가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몰라도, 나는 언제든지 너를 그곳에 집어넣을 수 있어. 그런데 네까짓 게 나를 가만두지 않으면 어쩌겠다는 거냐?”
하메론은 여전히 엘런이 우스워 보였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짜증이 났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봤던 장면과 어긋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강하지도 않으면서 예상에서만 벗어나니 더욱 짜증이 나는 것 같았다.
“꿰뚫어라.”
피융.
어떤 낌새도 없었다.
주문을 외운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현상만큼은 확실하게 나타났다.
엘런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는 비수.
어디서 나타났는지도 몰랐지만, 비수는 자신의 피를 머금은 채로 땅에 박혔다.
만약 그가 몸을 비틀지 않았더라면 비수는 그대로 심장에 박혀 버렸을 것이다.
그가 인식하기도 전에 자신의 본능이 목숨을 구해 준 것이다.
“도대체 그런 기술들은 어디서 배워 오는 거냐?”
하메론은 엘런의 괴기스러운 회피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 공격으로 분명 그의 심장을 꿰뚫었어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계속해서 자신이 봤던 장면과 다르게 흘러갔다.
“그딴 건 네가 알 필요 없지.”
엘런의 손에서도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평범한 인챈트–파이어를 넘어선 마법.
8서클의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법은 하나하나가 신의 권능과 비슷하게 보였다.
화르륵.
앞으로 뻗어 나간 불이 하메론을 집어삼키려 했다.
그러나 불길이 코앞까지 왔음에도 그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코웃음까지 치고 있었다.
“사라져라.”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엘런이 뿜어낸 화염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정말이지 정체를 가늠할 수 없는 힘이었다.
“이딴 짓거리는…….”
하메론이 반격을 이어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항상 미소를 유지하던 그의 미간에는 내 천자로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무엇인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어디로 간 거야?”
하메론이 공격을 가하려고 했던 지점에는 엘런이 없었다.
원래 그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은 어설프게 만들어진 분신 하나만이 남아 있었다.
쿠쿠쿠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하메론에게서 엄청난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그에게서 나오는 마나만으로 주변에 땅이 움푹 파이기까지 했다.
“건방진 새끼, 조금 전까지는 입을 그렇게 놀리더니 처음부터 도망칠 생각이었다?”
하메론이 이토록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항상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표정은 이제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후우, 아니지.”
그러던 그는 자신이 너무 흥분했음을 알아차렸다.
계속해서 자기가 본 장면에서 벗어나는 엘런 때문에 순간적으로 욱하는 감정이 올라왔다.
그러나 자신은 이미 키에아스의 성유물을 흡수했다.
자신이 각성하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은 엘런이 자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놈은 내가 만든 던전 안에 들어와 있다. 즉 내 손바닥 안이라는 것이지.’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고, 도망쳐 버린 엘런을 잡을 만한 방법들이 떠올랐다.
‘어차피 출구는 하나밖에 없고 그 녀석은 그곳으로 갈 것이다. 그렇다면, 양쪽에서 막으면 되겠지.’
다시 여유를 찾은 하메론의 얼굴도 원래의 혈색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모두 동굴 앞으로 집결하라.“
우웅.
하메론의 말이 마나의 형태가 되어 산 전체로 퍼져 나갔다.
“수색하라.”
또, 그에게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던 마나가 방향성을 띠고 움직였다.
엘런이 탐지 마법을 사용했을 때처럼 그의 마나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도망치는 그 녀석을 잡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일이겠지.’
하메론의 표정은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 * *
‘일단은 벗어난 것 같습니다.’
한편, 하메론에게서 도망친 엘런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숨을 골랐다.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도망쳤기 때문에 체력이며, 마나며, 모두 이만저만 소모된 것이 아니었다.
-도대체 그놈은 무슨 짓을 한 거지?
‘키에아스의 성유물, 그 힘을 흡수한 것일 겁니다. 릭이 강해졌던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3개를 한 번에 흡수하니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군요.’
엘런은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몸이 떨려 오는 것을 느꼈다.
-마법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마법 명을 외치지 않았다. 마법 이상의 새로운 기술일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말하는 대로 전부 이루어지는 그 능력은 정말로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메론이 사용하는 것은 마법 같으면서도 마법이 아니었다.
마법이라면 영창을 단축시킬 수는 있어도 마법 명만큼은 절대로 생략할 수 없다.
게다가 그가 힘을 사용할 때, 어떠한 마나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법은 마법사의 체내에 있는 마나를 주문의 영창을 통해 물질계에 구현시키는 행위.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마나 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 반응의 시간이나 강도는 줄일 수 있더라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반응이 그에게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 마법적인 현상은 일어났다.’
그가 내뱉는 말. 그것의 내용에 맞게 자연이 스스로 왜곡되는 것 같았다.
‘이래서는 싸울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랬기에 엘런은 도망을 택한 것이다.
1퍼센트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 목숨을 걸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후일을 도모하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나가는 것이 문제다. 이곳에서는 어째서인지 텔레포트도 안 되지 않더냐? 그렇다면 나갈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다. 이곳을 만든 게 그자이니 분명 출구가 있는 방향으로 올 것이다.
‘그것이 가장 문제입니다.’
엘런은 도망치자마자 텔레포트를 사용하려 했지만, 계산 방해가 워낙 많아서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사용 가능한 이동 마법은 블링크가 고작이었다.
‘출구를 이용해서라도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그들이 위험해집니다.’
일단 공동空洞의 정리가 끝나는 대로 한센과 아드리안도 다시 입구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별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쯤 모두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저기 트랩들을 설치해 가며 최대한 빨리 입구 쪽으로 나간다.’
찌릿.
엘런이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려 할 때였다.
모든 것을 녹여 버리는 태양 같은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그것은 하메론이 뿜어내던 기운이었다.
벌써 그가 여기까지 쫓아왔단 말인가.
‘아니, 그것은 아니다. 그가 가까이 있다면 이 이상의 기운이 느껴져야 한다.’
그는 바로 코앞에서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신 바로 앞에 서 있는 인간의 기분을.
아직 그 말도 안 되는 강대한 기운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엘런이 즐겨 사용하는 탐지 마법일 것이다.
‘탐지 마법의 기운조차도 이토록 강력하다니. 더더욱 위험하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해.’
타앗.
엘런은 또다시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물론 중간중간 트랩을 설치해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그의 추격을 늦출 수 있다면, 방대한 마나 소모도 감내할 용의가 있었다.
그렇게 쫓고 쫓기는 그들의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 * *
채앵.
콰아아앙.
-키에에에에엑.
-쿠워어어어.
푸슉.
모든 전장의 소리가 이곳에 모여 있었다.
검이 단단한 손톱과 마찰을 일으키며 나는 소리, 광역 마법이 지상에 떨어지는 소리, 몬스터의 포효, 그리고 화살이 두꺼운 가죽을 뚫고 들어가는 소리까지.
이것만으로도 이곳에서 얼마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언제까지 몰려오는 거지?”
“엘런 말이 맞았군. 이곳을 안 지키고 있었더라면 우리는 동굴 안에서 보기 좋게 포위당했겠어.”
라르트와 듀크는 쉴 새 없이 몬스터를 상대하고 있었다.
처음에 엘런 일행이 던전에 들어갔을 때만 하더라도 이곳은 아무 일도 없이 평화로웠다.
바깥쪽에서 몬스터의 주의를 끌고 있는 교란조 덕에 이곳까지 녀석들이 몰려오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흐르고 교란조의 활동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최대한 전투를 피하고 교란만 시킨다고 해도 한계점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더 이상은 무리요.”
처음 등장했던 이는 안내역을 마치고 가르노아와 합류했던 러셀이었다.
그들은 숲의 길을 찾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하는 바람에 가장 먼저 지친 것이다.
뒤를 이어 다른 교란조도 하나둘씩 등장했다.
그러자 목표를 잃은 몬스터들은 슬금슬금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어떤 진동이었다.
동굴에서부터 흘러나온 것이 분명한 진동.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 진동이 있었던 직후부터 몬스터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으윽.”
그러던 중 시스토가 무릎을 꿇었다.
아직은 부족한 실력 탓에 그의 몸 이곳저곳에는 전투로 인한 상처가 많았다.
지금까지는 억지로 버티고 있다가 결국 이렇게 탈이 나버린 것이다.
“라르트, 이 녀석부터 뒤로 빼.”
“알겠네.”
라르트는 시스토를 동굴 입구로 피신시켰다.
그러나 그의 상태는 회복 마법 한두 개로는 치료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투가 끝나기까지 기다리기에는 출혈량이 많았다.
“치료는 내가 맡겠소.”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동굴 안쪽에서 아드리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공동에서의 방어전을 마치자마자 엘런이 말한 대로 동굴의 입구까지 온 것이었다.
“때마침 등장해 주었군. 고맙소.”
“밖의 상황도 만만치는 않군.”
아드리안과 함께 온 한센이 주변들 둘러보았다.
자신들이 공동에서 싸웠던 형태와 비슷했다.
“이거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소.”
“그래도 엘런이 올 때까지는 막아야 하오.”
“하지만 경들도 느끼고 있지 않소?”
다들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때, 한센만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지금도 느껴지고 있는 이 기운, 이것은 엘런 님의 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이 기운은 누구의 것이겠소?”
한센의 말은 그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도 속으로는 한센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요? 엘런은 이 정도에 당할 녀석이 아니오. 그러니 댁들도 잔말 말고 저놈들이나 막고 있으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으로 충분하오.”
듀크의 벼락같은 호통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모두의 의지가 꺾여 버릴지도 몰랐다.
듀크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와중에도 휘두르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나도 은인이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은인이 얼마나 강한지는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두크르도 듀크처럼 몬스터들이 있는 곳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그래, 일단은 엘런 공을 믿고 이곳을 확보하는 게 우선일 것이오.”
가르노아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동의했다.
그는 등 뒤에서 화살을 꺼내 몬스터에게 정조준했다.
피융.
화살이 쏘아져 나갔고 옆으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우리도 쉴 수는 없겠소.”
판톤의 말에 한센도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어떻게 되었든 이곳에서 엘런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려면 이 몬스터들부터 처리하는 것이 순서였다.
그 후로 한 시간이 더 흘렀다.
그들은 점점 더 한계 상황에 몰려가고 있었다.
검을 휘두를 힘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뼈마디 하나하나가 이젠 무리라고 소리를 치는 것 같았다.
아무리 대륙의 최강자들이 모인 원정대라고는 해도 이 정도의 물량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잡은 몬스터의 수만 해도 만 마리는 넘어갔을 것이다.
이미 인간이라 부르기도 뭣할 정도의 성과였다.
그러나 각각이 일당만을 해 주고 있음에도 뒤에 있는 몬스터의 수가 더 많이 남아 있었다.
“크흑.”
그들의 몸에도 상처들이 생겨났다.
온몸을 피로 적시고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바로 그때였다.
탁탁탁탁.
동굴 안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최후방에서 전투 지원만 하고 있던 시스토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발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엘런 님!”
그는 엘런의 얼굴을 보고는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 소리에 모두가 동굴을 바라보았다.
“엘런!”
“무사히 돌아온 것이오?”
그들도 이제 이 지긋지긋한 전투가 끝이라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곧 지금까지보다 더 굳어 버렸다.
“어떻게 이렇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오?”
엘런의 몸 상태는 자신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몸에서 살색이 보이는 부분은 없었다.
온몸이 피로 적셔져 있었고, 그러는 와중에도 피는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화상 자국이며 동상 자국까지, 세상의 모든 상처가 엘런의 몸에 모여 있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합니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어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