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20
220
하메론과의 만남 (4)
* * *
엘런은 한센과 아드리안이 있던 공동에 도착했다.
그곳에서의 치열했던 전투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몬스터의 사체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는 가장 먼저 한센과 아드리안의 시체가 있는지부터 확인했으나, 다행히도 이곳에는 오로지 몬스터들의 사체만이 있었다.
‘다행히 공동에서의 전투도 잘 마친 모양입니다.’
-그 녀석들이면 막을 수 있을 정도의 수였지. 이제 너만 빠져나가면 된다. 그럼 텔레포트로 빠져나갈 수 있겠지.
‘공동에서 여기까지는 그렇게 멀지 않습니다. 조금 더 서둘러야겠습니다.’
엘런은 공동을 확인하느라 늦췄던 속도를 다시 높이는 순간이었다.
촤르르르륵.
땅에서 뻗어 나온 검붉은 색의 물체가 그의 발목을 휘감아 버렸다.
‘이건……?’
엘런은 윈드 블레이드를 사용해 그것을 잘라 내려 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라도 벨 수 있을 것 같았던 바람의 검이 이 물체만큼은 베지 못했다.
그 말은 즉 엘런이 사용한 윈드 블레이드보다 이 물체가 더 강력한 마나의 집합으로 되어 있다는 의미였다.
‘설마, 하메론?’
엘런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뒤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하메론을 보았다.
‘벌써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그는 활주를 최대 속도로 사용하여 도주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하메론의 추적을 늦출 만한 트랩도 설치했다.
그런데 하메론이 벌써 자신을 따라잡은 것이다.
“그렇게 도망다녀 봤자, 이곳에서는 내 손바닥 안이라니까. 그래도 너, 확실히 빠르긴 빠르더라.”
하메론은 숨이 찬다는 듯한 몸짓을 했다.
“다행히 완전히 빠져나가기 전에 잡았네. 텔레포트라도 사용했으면 귀찮아질 뻔했는데 말이야.”
번쩍.
지금까지 웃고 있던 그의 눈이 번뜩였다.
“매몰돼라.”
엘런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하메론의 능력은 이미 파악했다.
그랬기에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벗어났다.
콰카캉.
그가 직전까지 있던 자리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불태워라. 찢어발겨라. 구속하라. 얼어붙어라.”
연달아서 하메론의 명령어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자연은 그의 말에 복종하기라도 하듯, 자신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재구성되었다.
“크아아악.”
엘런은 그 모든 자연의 공격을 받아넘길 수가 없었다.
어떤 곳에서는 불길이 치솟아 오르고 수증기가 얼어붙었다.
또한 공간이 찢어지는가 하면, 공기가 형태를 띠더니 발목이나 팔을 붙잡았다.
그 한 번의 연격이 지나가고 나자 엘런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연소하라. 동결하라. 접혀라. 뭉개라.”
하지만 하메론은 지치지도 않는 듯 계속해서 명령어를 내뱉었다.
이렇게 자연 자체를 움직이는 데 드는 마나는 어마어마하겠지만, 그는 성유물에서 뽑아낸 신성력을 바탕으로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다.
“커헉-.”
이번에도 엘런의 오른손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그의 몸은 어느새 화상, 동상, 타박상, 자상 등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눈가를 적셔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피를 닦겠다고 눈을 가렸다가는 곧바로 머리가 날아갈 수도 있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여기서 벗어나야 하지?’
엘런의 머리는 매우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는 못했다.
-엘런. 이 말을 들을 정신 정도는 남아 있나?
그때 프로뱅의 말이 머릿속으로 들려왔다.
직접 발화發話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하메론에게 대화 내용이 들릴 걱정도 없었다.
‘무슨 일입니까?’
-여기서 도망칠 방법이 있다.
‘도망칠 방법이라니요?’
엘런은 자기도 모르게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러느라 이마에서 흘러내리던 피가 눈으로 들어갔지만, 그에게 그런 건 상관없었다.
-너 어차피 여기서 저 녀석에게 이길 방법도 없지 않느냐? 그래서 조금 전에도 도망친 거였고, 그게 맞는 선택이다. 지금은 도망치고 후일을 도모해야 해.
‘그래서 그런 방법이 있긴 있습니까?’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하메론에게 고정되어 있었지만, 머릿속에서는 프로뱅과의 대화가 한창이었다.
-이대로 뒤도 돌아보지 말고 뒤쪽으로 도망치는 것이다.
비틀.
그 말을 들은 엘런은 무릎에 힘이 풀려 쓰러질 뻔했다.
한껏 기대했던 답변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그는 이 상황에서 장난이나 치고 있는 프로뱅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 모습이 하메론을 속이기에는 더 없이도 좋았다.
자신의 공격에 비틀거리는 엘런을 보고는 하메론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아까부터 엘런을 향해 뭔가 말을 하고 있었지만, 엘런의 정신은 오로지 프로뱅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지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이미 이렇게 따라잡혔는데 등을 보이고 도망을 치라니요. 그랬다가는 곧장 척추가 관통당할 것입니다. 화염을 이용해 시야를 차단하는 것도 이미 당했으니 두 번은 당하지 않을 겁니다.’
-그냥 가라면 가.
프로뱅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껏 그가 엘런에게 이토록 단호하게 말했던 적이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러도록 하지요.’
엘런도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어차피 이대로 버티고 있어도 그는 죽은 목숨이었다.
등을 보이고 죽을 수 없다는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프로뱅이 저토록 단호하게 말하는 것을 보니 정말 무슨 방법이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일단 엘런은 가장 가능성이 있는 것 같은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내가 신호를 줄 테니 그때 움직여라.
엘런의 다리 근육은 언제라도 튀어나갈 수 있도록 한껏 부풀어 올랐다.
감각들도 극도로 곤두서 주위에 있는 작은 변화에도 재빨리 반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프로뱅은 무엇을 준비하기라도 하듯 아무 말도 없었다.
“이제는 서 있기도 힘든 거냐? 그렇다면 이대로 죽으면 되겠군.”
하메론이 한동안 가만히 서 있는 엘런을 보면서 말했다.
그도 마지막 공격을 준비하는 것 같았다.
‘스승님, 제가 재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조금 위험한 상황 같습니다만…….’
엘런의 말에도 프로뱅은 묵묵부답이었다.
“짓눌러라.”
쿠쿵.
하메론의 말과 동시에 엘런 주변의 중력이 강해졌다.
그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있는 것이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엘런은 여전히 도망칠 준비를 거두지 않았다.
-지금이다.
‘빨리도 신호를 주십니다.’
엘런은 준비하고 있던 모든 수를 사용해 도주를 시도했다.
활주는 물론이었으며 이시르의 얼음 안개가 흩뿌려졌다.
조금 전처럼 화염이 뿜어져 나오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흙더미가 튀어 오르기도 했다.
그렇게 엘런은 그의 모든 시야를 차단한 채로 뒤쪽을 향해 달아났다.
“내가 두 번이나 당할 줄 아는 거냐? 흩어져라.”
엘런이 사용했던 모든 것이 사라지기까지는 1초도 걸리지 않았다.
‘젠장,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지.’
엘런은 그것을 보면서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하메론이 다음 공격을 이으려던 순간이었다.
화아악.
엘런이 착용하고 있던 목걸이에서 검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엘런이 사용한 것이 아니었기에 그도 놀란 눈으로 자신의 목걸이를 바라보았다.
“마나여, 그대는 빛. 그대가 없는 곳은 곧 캄캄한 어둠일지니. 나의 마나는 그대가 가진 속성과는 정반대이다. 따라서 나 그대를 몰아내고 세상을 심연으로 이끌겠노라.”
그 빛과 함께 긴 주문이 영창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프로뱅의 목소리였다.
‘이것은 머릿속에서 들리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프로뱅의 목소리를 직접 들은 것은 해리포드 던전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뿐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그의 목소리가 귀로 들려온 것이다.
“어비스(abyss)!”
우웅.
급기야 목걸이가 사라지더니 프로뱅의 모습이 실체화되었다.
깊게 눌러쓴 후드에 두 개의 안광이 번뜩이는 해골.
리치의 모습이 도망치고 있는 엘런과 하메론 사이에 나타났다.
“너는 해리포드 던전의 주인이군. 어디로 갔는가 했더니 저놈에게 딱 달라붙어 있었나?”
하메론은 그에게 알은체를 하며 말했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도 둘 다 한꺼번에 잡아. 이건 또 뭐야?”
동굴 전체가 어둠에 휩싸인 것이다.
마나를 이용해 시력을 최대화한다 하더라도 바로 코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정도로 어두웠다.
“쓸데없는 짓투성이! 흩어져라.”
하메론은 귀찮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이건 마나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그래서 그런지 너의 명령어가 통하지는 않는 것 같구나.”
프로뱅의 걸걸한 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츠팟.
그 뒤로 엘런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분명 동굴 밖으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그 정도는 단번에 걷어내 주마.”
쿠오오오오.
하메론에게서 엄청난 마나가 쏟아져 나왔다.
키에아스의 성유물을 흡수한 그의 마나는 아무리 퍼다 써도 끝이 없는 바닷물 같았다.
거기서 나온 마나가 프로뱅의 심연을 잠식해 나갔다.
“으윽.”
어둠 속으로 하메론의 마나가 들어오자 그는 고통스러워했다.
어비스는 심연과 자신이 동화되는 마법.
어둠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은 곧 자신의 몸이 사라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원래 같았으면 이 마법에 걸린 상대의 마나도 심연 속에 동화되어 사라지고 말 것이었다.
그러나 하메론이 가진 마나가 너무나 강대하여 오히려 자신이 잡아먹히고 있는 것이었다.
“귀찮게 하지 말란 말이다!”
콰아앙!
“젠장, 마도의 극한은 진짜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너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엘런.”
하메론의 외침과 함께 폭발음이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프로뱅의 목소리는 가려져서 들리지 않았다.
* * *
탁탁탁탁.
엘런은 계속해서 입구를 향해 뛰고 있었다.
마나란 마나는 모두 사용했다.
이제 그에게는 텔레포트를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나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무사하신 겁니까, 스승님?’
엘런은 분명 실체화하는 프로뱅을 보았다.
그는 다짜고짜 엘런에게 도망치라고 소리쳤다.
엘런은 도저히 그를 내버려 두고 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외침에 어쩔 수 없이 도망가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조금 전 뒤편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엘런은 자신이 상상하던 그 소리가 맞을까 봐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더욱 앞만 보고 달려 나갔다.
프로뱅까지 희생했는데, 여기서 하메론에게 잡힐 수는 없었다.
탁탁탁탁.
그리고 그의 눈앞에 동굴 입구가 보였다.
자신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다른 이들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반가움을 표할 수는 없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다.
그리고 단 한마디를 외쳤다.
“여기서 도망쳐야 합니다.”
다들 당황했지만, 엘런에게는 이 상황을 설명할 시간조차 없었다.
지금도 하메론의 기운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더는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모두 제게로 모이십시오!”
엘런의 외침에 원정대원 모두가 그의 주위로 모였다.
‘텔레포트!’
슈슉.
엘런이 마법을 사용함과 동시에 그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비미산에서 사라졌다.
“젠장.”
그리고 그 직후에 하메론이 동굴 입구로 뛰어나왔다.
그는 텔레포트 반응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일부러 그를 유인하기 위해 귀찮은 짓도 마다하지 않았던 하메론이었다.
그 모든 것이 이곳에서 엘런을 잡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웬 리치의 등장으로 그 계획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미 텔레포트를 사용했기에 그가 어디로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에게는 엘런을 처리하는 것 말고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확실히 처리하지 못해서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일단 난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여야겠군.’
하메론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슈슉.
그러고는 엘런들이 그랬던 것처럼 하메론의 모습도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