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21
221
반등 (1)
해리포드 왕궁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하며 혼란의 도가니에 빠졌다.
시종이며 하녀, 근위병들까지 한 명도 빠짐없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이 마치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았다.
다다다다.
시종은 언제나 왕궁에 있는 듯 없는 듯 행동해야 한다.
왕이나 귀빈의 그림자처럼 존재하다가 그들이 필요할 때면 나타나 그들이 원하는 행동을 해주는 것이 시종의 미덕이었다.
그러나 그 시종의 미덕을 바로 시종장이 어기고 있었다.
그는 발바닥에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왕궁의 복도를 뛰어다녔다.
그러나 그가 이토록 바쁘게 움직이는 이유를 알게 된다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폐하, 상아탑주가 돌아왔습니다!”
시종장은 국왕이 있는 대전 앞에 멈추자마자 숨도 고르지 않고 큰소리로 외쳤다.
“뭣이? 그것이 정말인가?”
다른 국왕 같았으면 그런 시종장에게 호통부터 쳤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드의 국왕 알베르토는 호통을 치는 대신 직접 대전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것은 그가 특별히 관대한 성품을 지녀서가 아니라,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상아탑주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반응한 것이었다.
상아탑주 엘런은 악의 원흉인 하메론을 잡겠다며 동료를 모아 원정을 떠났다.
그가 그렇게 말하고 해리포드를 떠난 지 아직 3일밖에 흐르지 않았다.
때문에 알베르토는 그들이 이토록 빨리 돌아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상아탑주는 어디에 있는가? 그와 함께 간 듀크 경이나 라르트 경, 시스토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는 시종장을 향해 궁금했던 것을 한 번에 질문했다.
“소, 송구하오나 폐하, 지금 그들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습니다. 특히, 상아탑주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의식을 잃어 현재 왕궁 의무실로 이송했습니다.”
시종장이 곤란해하며 답변하자 알베르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렇다면 내가 당장 그곳에 가 봐야겠다. 왕세자, 너도 함께 가자꾸나.”
“예, 폐하.”
지금껏 알베르토의 옆에 붙어있던 로미우도 엘런이 의식을 잃었다는 소리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종장이 달려올 때보다도 빠른 걸음으로 의무실까지 갔다.
덜컹.
너무나 급한 마음에 알베르토는 노크를 하는 것조차 잊어버렸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종과 회복 마법사가 허둥지둥하며 국왕과 왕세자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온몸에 붕대를 두르고 있는 원정대원이 있었다.
“어떻게 된 건가?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야?”
알베르토는 그들의 상태를 보고는 더욱 충격받은 표정이 되었고, 그 이유를 엘런에게 물었다.
지엄한 국부의 명령이었지만, 엘런은 즉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의식을 잃은 채 침대 위에 누워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 송구합니다. 원정대는 폐하께서 원하는 결과를 얻어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엘런 대신 말을 한 것은 듀크였다.
그도 곳곳이 상처였지만, 적어도 엘런보다는 나은 상황이었다.
“듀크 경,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소?”
“소신도 아직 엘런에게 자세히 들은 건 아니지만, 하메론을 막는 데 실패했습니다. 소신들은 목숨만 구한 채, 엘런의 텔레포트로 이곳까지 도망쳐 온 것입니다.”
“아아.”
듀크의 보고를 들은 알베르토는 탄식을 내뱉었다.
자신도 알고 있었다.
엘런이 모은 원정대는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동부, 서부, 엘프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모인 최강의 연합 세력도 하메론을 막지 못한 것이다.
알베르토는 그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엘런은 그와의 전투에서 저렇게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분간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고 하니, 폐하께서도 그 후에 상세 보고를 듣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오, 그래야겠소. 탑주뿐만 아니라 경들도 부상이 심각해 보이니 다들 안정을 취하도록 하시오.”
알베르토는 그제야 침착함을 되찾았다.
엘런이라는 소리에 헐레벌떡 달려온 자신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한 그였다.
“여봐라, 이들 모두에게 개인 병실을 내주도록 하고 왕궁 회복 마법사들을 붙여 집중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 * *
“오늘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송구합니다, 왕세자 저하.”
로미우의 말에 왕실 회복 마법사는 송구하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아니다. 그대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는가. 왕궁 의무실에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니 고개를 들어도 좋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로미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병실에 누워 있는 엘런을 바라보았다.
그런 로미우의 눈빛에는 걱정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엘런, 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원정대가 해리포드에 도착한 지 벌써 2주가 흘렀다.
다른 이들은 왕궁 의무실의 집중적인 치료 덕에 완치에 가까운 회복세를 보였다.
몇몇 이는 몸이 쑤신다며 수련을 하러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엘런만큼은 전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특별히 의무실에서도 국왕과 왕족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무실장의 치료를 받았다.
그 덕에 의식도 회복하고 신체에 있던 상처 역시 거의 회복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는 몸이 회복되었음에도 기운을 전혀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초점을 잃은 눈으로 온종일 창밖만 바라보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되었다.
그가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아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그가 하메론과의 전투에서 겪은 일 때문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었다.
그의 안위를 걱정해 그를 찾아온 식구들 그리고 부모님까지도 그의 상태에 고개를 저었다.
‘얼른 기운을 차려야 할 텐데…….’
병실을 바라보던 로미우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우상이 저토록 무기력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더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에게 변화가 있다면 내게 즉시 알려 주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로미우는 마지막으로 엘런을 한 번 보고는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로미우가 왔다 갔나? 아닌가. 이것도 허상인가?’
한편, 엘런은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자신이 이렇게 생각했다면, 뒤이어서 들려올 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엘런은 지금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그 원인은 하메론에게서 도망쳐 나올 때, 자신을 대신해 희생한 프로뱅 때문이었다.
‘스승님,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셨습니까?’
그도 프로뱅이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메론에 비해 턱없이 약했기 때문이다.
자만심에 차서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더 준비를 하고 갔다면 그를 이길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엘런은 하루 종일 프로뱅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하메론의 위협이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다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그의 침공을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모든 인간, 아니, 엘프까지 다 힘을 합쳐도 그를 막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런 무기력한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는 죽음을 기다리는 소처럼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스승님께 마법을 배울 때가 생각나는구나.’
에니스라는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그는 전혀 힘들지 않았다.
프로뱅의 연구실에서 주인에게 직접 마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가 가장 열정적인 시기였던 것 같았다.
이런 궁상맞은 생각을 그만하려고 해도 쉽게 그럴 수 없었다.
종말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 대한 걱정보다 프로뱅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더욱 가치 있어 보이기도 했다.
그때, 엘런의 병실 창문으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엘런의 정보 단체, 아르곤의 수장인 가빈이었다.
그의 손에는 종이 한 뭉텅이가 들려 있었다.
“엘런 님, 오늘도 정기 보고를 그냥 넘어가시겠습니까?”
엘런은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딘가 넋이 나가 있는 것 같은 사람.
가빈은 도저히 이 인물이 자신이 알던 엘런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 아르곤에 쌓이고 있는 정보량은 계속 늘어 가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프로드 왕국이나 엘런 님께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제가 임의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이 정보의 최종 소비자는 엘런 님입니다.”
가빈은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을 엘런에게 토로했다.
스윽.
가빈의 질타에 엘런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는 생기라는 것이 조금도 존재하지 않았다.
죽은 생선의 눈깔을 본다면 딱 저런 눈빛이리라.
“가빈, 내가 답답하냐?”
“그렇습니다.”
“내가 왜 정보를 듣지 않으려는지도 알겠네?”
엘런의 물음에 가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 답답한 상관을 한 대 치고 싶었다.
“제 추측이지만, 엘런 님께서는 하메론과의 전투 이후로 모든 의욕을 잃은 것 같습니다. 이제 지치신 것 아닙니까?”
“그것도 그렇지만, 사실은 그게 다가 아니야.”
엘런은 힘없이 웃었다.
그것은 매우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나는 정보를 보기가 무서워. 거기에는 분명 하메론의 움직임에 대해 나와 있겠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 그와 조우하는 것이 두렵다. 그래서 과거에 사로잡혀 이렇게 병실에 누워 있는 거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렇게 말하는 엘런의 몸이 작게 떨렸다.
하메론에 관한 정보를 전해 듣는다면, 자신은 그를 막기 위해 나서야 한다.
알량한 자존심이라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가 자신의 주위 사람들을 위협한다는 것을 알고서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하메론 앞에서 자신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였던가.
엘런은 도저히 그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아예 정보를 보지 않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라도 죄책감을 덜고 싶었다.
“엘런 님의 예상이 맞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포기하신다는 것입니까? 알겠습니다. 저는 저대로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드르륵.
가빈은 처음에 이곳에 왔을 때처럼 창밖을 통해 병실을 빠져나갔다.
병실에 혼자 남게 된 엘런의 몸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 * *
가빈이 엘런을 만나고 간 지도 한 달 가까이 흘렀다.
그동안 세상에는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엘런만큼은 여전했다.
여전히 모든 의욕을 잃어버리고 두려움에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이제는 기다리는 이들도 지쳐 갔다.
게다가 상아탑주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이 밖에도 돌기 시작했다.
고센 제국이며 에다인 왕국에서도 슬슬 수상한 낌새가 보였다.
엘런의 전쟁 억지력이 점점 약화되어 간다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엘런은 여전히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똑똑.
엘런의 병실에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병실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드르륵.
이쯤 되면 돌아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상아탑주나 되는 인물의 병실을 마음대로 벌컥 열고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크의 주인은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곳의 문을 열었다.
‘시종장이었나?’
병실에 누워있던 엘런의 시선이 아주 잠깐 그를 향했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저벅저벅.
시종장은 그런 엘런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너 이 새끼,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