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22
222
반등 (2)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전개에 엘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근 한 달간 가장 많은 감정이 들어 있는 눈빛이었다.
“지금 뭐라고 한 것인가?”
“말하는 건 까먹지 않았나 보군. 어째서 썩은 동태 같은 눈깔을 하고 여기에 누워 있는 건지 물었다.”
엘런은 자신이 잘못 들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재차 물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고서는 확실해졌다.
그는 시종장이 아니었다.
껍데기는 시종장이었지만, 속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너 누구냐?”
“빨리도 물어보네.”
그는 침대 옆에 놓여있던 의자에 대충 걸터앉았다.
“우리, 예전에 만난 적 있잖아.”
그 순간 시종장의 목소리가 변했다.
매우 괴기한 목소리였지만, 그것은 엘런이 예전에 들어 본 적이 있는 목소리였다.
어린아이 같으면서도 어른의 목소리이기도 했으며, 남자의 굵은 음성과 여자의 가는 음성이 동시에 담겨 있는 목소리.
“진리?”
진리의 문 뒤에 있는 존재.
마도의 극한을 알고 있는 존재.
바로 그가 이차원의 공간이 아닌 현실 세계에 직접 나타난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를 계속 ‘진리’라고 불렀지? 그런 건 아니야.”
여전히 그는 어린아이 같은 말투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너는 ‘진리’가 아니고 누구란 말이지?”
“뭐,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지.”
시종장은 손가락 3개를 펼쳤다.
“아주 오래전에는 신, 절대자.“
그가 손가락을 하나 접으며 말했다.
엘런도 ‘진리’를 신에 가까운 자라고 생각했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또 다른 이름은 ‘현재’.”
그러나 계속해서 그의 입에서 나오는 호칭은 하나같이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의 현재라는 이름에서 엘런은 자신을 뜻하는 과거와 하메론을 뜻하는 미래 사이에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엘런을 놀라게 한 것은 그의 마지막 손가락이 접힐 때였다.
“요즘은 ‘에레네’라고 불리기도 하더군.”
덜컹.
엘런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몸이 어찌나 격하게 움직였던지 침대가 다 흔들렸다.
하지만 그의 그런 반응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닐 정도로 시종장이 꺼낸 말은 놀라웠다.
“지금 에레네라고 했……습니까?”
“그래, 너희들이 만들어 낸 나의 이름이지.”
“에레네가 실제로 존재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갑자기 익숙하지 않게 존댓말을 하고 그러는 거야?”
에레네의 말에 엘런은 헛기침을 했다.
지금까지는 반말을 했다고 하더라도 상대는 절대자이자 신이었다.
그런 자와 대화를 하려니 자연스럽게 말을 높이게 되었다.
“듣기 거북하니까 원래대로 하지 그래?”
“그, 그렇다면 신관이나 크루세이더가 사용하는 힘도 모두 너의 것이었단 말……인가?”
“그렇지. 정확히는 중간계에 남아 있는 내 힘이 전달된 거다.”
그러고 보니 엘런은 신성력에서 어떤 끌림을 느꼈었다.
특히 성유물 마지막 손길을 보았을 때는 익숙함마저 느껴졌다.
‘내가 처음에 이차원으로 빠졌을 때, 그에게서 느껴졌던 기운과 비슷했기 때문이었구나.’
엘런은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는 듯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신탁은 에레네께서 직접 교황에게 내려주는 것이 맞았던 것인가?”
“쓸데없는 것이 더 궁금한가 보구나. 이러니 내가 그놈에게 잘못 골랐다는 소리나 들었던 것이겠지.”
에레네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포자기한 심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의 또 다른 이름은 ‘현재’. 이 세상의 인과율을 조정하는 존재다. 그리고 그 인과율 중 일부를 신탁을 통해 내려 보냈던 것이지. 그리고 교황과 그 신도들을 통해 인과율을 조정해 나갔지.”
만약 에레네교의 신도가 이 말을 들었다면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지금껏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신탁의 비밀이 바로 이곳에서 밝혀졌노라고 소리라도 지르면서 말이다.
아니, 그전에 에레네를 직접 만났다는 사실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느라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엘런도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미 에레네교와 접촉을 해 봤기에 에레네에 대한 호기심이 많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을 끈 것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놈이라면 혹시 하메론을 말하는 것?”
하메론이 자신에게 딱 저렇게 말을 했었다.
그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할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그것이 에레네와 관련이 있던 것처럼 들렸다.
“하메론? 그 녀석이 그런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지. 맞아, 그의 말대로 넌 내가 특별히 선택한 사람이다. 네가 과거로 돌아오게 된 것도 내가 인과율을 바꿔 주었기 때문이지.”
에레네의 입에서는 기절초풍할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엘런은 졸지에 자신이 겪은 회귀의 비밀에 대해서까지 모두 듣게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진리’라고 생각했던 존재가 에레네일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사실이었다.
“그럼 내가 주문을 영창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에레네, 너의 덕인 것인가?”
그것은 회귀와 함께 그가 가장 궁금했던 것이기도 했다.
“그건 너에게 내 힘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덕에 네가 가진 마나는 자연에 존재하는 마나와 완벽히 일치하게 되었지. 그러니 굳이 마나를 재구성하는 주문은 필요 없었던 것이고.”
그 답변으로 엘런은 무영창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째서 에레네교의 성인聖人이 될 수 있었는지도 증명할 수 있었다.
엘런은 능력을 가지게 되어서도 그토록 궁금했던 사실들이 이렇게 쉽게 풀려 나가는 것이 이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전에 가장 이상한 것은 바로 왜 자신이 선택되었는지다.
“어째서 내게 그런…….”
“어째서라……. 그건 네가 그 녀석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나로서도 도박이었던 것이지. 그리고 지금 네 꼴을 보고 있으니 그 도박은 완벽히 실패한 것 같군.”
에레네는 그보다 더 깊은 것은 없을 정도로 큰 한숨을 내쉬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절대자의 고뇌보다 더욱 깊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
엘런은 엘런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하나하나가 엘런으로서는 쉽게 믿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회귀를 하였고, 주문의 영창 없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몸이었다.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해 준다면 그도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일을 겪은 사람으로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위험한 순간에 도와주었던 것이군.”
“그런데 지금 네 꼴을 봐라. 내 선택은 확실히 틀린 거였다.”
에레네의 말에 엘런은 조금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억울한 감정도 올라왔다.
하메론은 언제나 괴물의 단계에 있는 자였다.
자신이 조금이라도 그에게 다가갔다 싶으면, 그는 더욱 괴물이 되었다.
그리고 그런 자에게 자신의 스승을 잃기까지 했다.
“하메론 같은 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나? 나는 너와 달리 한낱 인간이란 말이다.”
발악이라면 발악이었고, 핑계라면 핑계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인간으로서 가장 솔직한 감정이었다.
최강자를 향한 두려움, 그리고 그에 따른 무기력함.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그 누구였어도 똑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의 외침에 에레네는 잠깐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엘런을 지켜보았다.
엘런도 절대자의 시선을 회피하지 않았다.
“내가 무엇 하러 이자의 몸에 사념체를 집어넣어 너에게 보낸 것 같으냐?”
엘런은 퍼뜩 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아직 너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라니?”
“예전에 내가 맛보기로 사용하게 해 줬던 마법 기억나?”
에레네의 말에 엘런이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케니프라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혈마법사 네트와의 싸움에서 위기에 몰렸을 때, 그가 도와줬던 적이 있었다.
“원시 마법을 말하는 건가?”
“그래, 원래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빠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원시 마법을 배운다면 그 녀석과도 겨뤄 볼 수 있을 거야.”
원시 마법.
어째서인지 케니프라에서의 일이 끝난 이후로 원시 마법에 대한 기억은 머릿속 한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그 일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엘런은 자신이 원시 마법을 사용했던 때를 떠올렸다.
모든 마나가 자신의 의지에 맞게 재구성되던 마법.
어떤 수식의 계산도 마나의 운용도 필요하지 않았던 마법.
마법이라 부를 수도 없을 만큼 강력했던 마법.
그것이 바로 원시 마법이었다.
만약 엘런이 그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면, 이번에야말로 충분히 하메론과 겨뤄 볼 수 있었다.
“하메론이 사용하던 것이 원시 마법이었나?”
떠올리고 보니 하메론이 사용했던 기술과 아주 흡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서술어를 말했어야 했었고 원시 마법은 그저 생각하는 것만으로 가능했다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원시 마법과 흡사한 것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지.”
“그럼 그걸 나에게 가르쳐 준단 말인가?”
“그렇다.”
엘런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아직 설명이 충분하지 못한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소리지?”
엘런의 질문에 에레네의 눈가가 떨렸다.
그 변화는 일이 그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너는 어째서 내가 하메론과 싸워서 이기기를 바라는 것이지?”
그는 절대자이자 이 세상을 창조한 조물주 에레네였다.
그런 그가 어째서 자신의 피조물 두 명이 싸우는 것을 보길 바라는 것인가.
그리고 왜 하메론과 싸우기 위해 자신을 선택하고 이렇게 도와주기까지 하는가.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신중한 녀석인 걸 알고는 있었다만, 내가 이런 상황에 부닥치니 귀찮기는 하군.”
“굳이 내키지 않는다면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 하지만 내가 널 곧이곧대로 모두 믿을 수는 없겠지.”
물론 엘런은 에레네에게서 무조건 원시 마법을 배울 생각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까지 떨어져 있던 의욕이 되살아났다.
그러자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는 에레네에게서 어떤 불안감을 보았다.
절대자에게 무슨 불안이 있겠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일단 그의 눈에 포착된 이상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에레네에게서 현재의 모든 상황을 전해 들어야만 했다.
“신을 앞에 두었던 인간 중에 가장 당돌한 놈이로군.”
에레네는 조금은 체념한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메론에게서 이기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 그 정보의 대부분은 에레네, 네가 가지고 있겠지.”
하메론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일까, 아니면 스승의 복수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어찌 되었든 어느새 엘런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썩은 동태 눈깔에는 이제 총기가 가득 담겨 있었고, 그의 얼굴에서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그렇다면 모든 이야기를 전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