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25
225
원시 마법 (2)
채앵, 챙.
슈우우우우웅.
콰아앙!
푸슉.
포탈로 몸을 던진 엘런은 즉시 의식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의 의식이 돌아올 때쯤, 주변에서는 전투가 한창인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엘런으로서는 마치 전장 한복판으로 던져진 기분이었다.
그는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컥.”
그와 동시에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더니 자신의 눈앞으로 한 남성의 몸이 쓰러졌다.
그는 마지막까지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이고 있었는지, 표정에서는 전의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아직 상황이 전부 파악되지 않은 엘런이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이었다.
누군가 그의 몸을 부축했다.
“괜찮으십니까? 마족들로부터 기습을 당했습니다.”
기습이라니.
듣기만 해도 마음이 절로 조급해지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마족?’
마족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그 마족을 말하는 것인가?
엘런이 살던 시대에 마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도 그저 이야기나 책으로나마 전해 들은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자신을 부축하고 있는 이자는 그런 마족들에게 기습을 당했다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엘런은 어째서 자신이 전장 한복판에 와 있는 것인지, 또 이자는 왜 자신을 상관 대하듯 대하고 있는지 물어보려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 없었다.
휙.
그의 몸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일어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고개까지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흐읍.’
엘런은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눈에 비친 장면은 도저히 담담하게 볼 수가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그는 자신이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저게 진정한 마족이란 말인가?’
엘런은 산전수전을 다 겪어 보았노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가 전장의 모습을 보고 역겨움을 느꼈던 적은 마법 보조사로서 처음 전쟁에 불려 갔을 때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썩 내키지는 않더라도 전장의 모습을 보고 끔찍하다거나 역겹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곳의 모습은 그 옛날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책에 있는 그림으로 보는 것과 실제로 보는 마족의 모습은 천양지차였다.
엄밀히 말해 책에 나온 그림은 외형적으로는 마족을 잘 묘사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만큼은 조금도 담아 내지 못했다.
그들의 머리에 달린 뿔은 그저 뼈가 툭 튀어나온 느낌이 아니었다.
호랑이의 아가리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어서 보는 녀석의 이빨 같았다.
고작 뿔이 그만큼 위협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등에 돋아있는 흉악한 날개는 악마惡魔라는 말이 왜 붙었는지 알 수 있게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벌이고 있는 전투는 고작 팔다리가 잘려 나가는 것이 아니었다.
내장이 모두 녹아내린 것일까.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입속에 손을 집어넣고 있는 시체가 있었다.
시신경이 연결된 채로 눈이 튀어나와 있는 시체도 있었다.
그 외에도 묘사하기조차 거북한 시체들이 즐비했다.
그것은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마족도 포함되었다.
이곳의 인간들은 마족에게 학살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게 밀리지 않고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자도 보였다.
이곳의 인간들은 엘런이 있던 곳의 인간들보다 전투력이 월등히 높았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 거지?’
이제 상황 파악은 된 것 같았다.
그는 지금 마족과 인간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전장에 떨어졌다.
마족의 편을 들 일은 없을 테니, 자신은 분명 인간의 편에 서서 기습당한 그들을 구출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이게 엘런이 원시 마법을 배우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이 사람들이 원시 마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인가?’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들이 입고 있는 복식을 보아하니 결코 대륙에서 볼 수 없는 자들이었다.
에레네의 세계에서 넘어온 것이니 차원을 넘나들거나 시대를 역행하는 것 정도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터.
‘이들을 도와주고 답례로 원시 마법을 배운다.’
그렇게 판단한 엘런은 마족들을 향해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항상 하던 대로 마나를 순환시켜 서클을 활성화하려 했다.
그러나 곧 엘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서클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체내에 마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바깥세상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충만했다.
하지만 그 마나는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 것처럼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가만…….’
엘런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쭉 돌이켜보았다.
몸을 일으킨 것도, 고개를 돌린 것도 자신의 의지대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하려고 했으나 되지 않았던 행동들이 있었다.
마나의 순환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에게 몸을 조종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이었다.
이번에도 그의 입술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치지 않았는가? 나는 괜찮으니 그들부터 먼저 챙기도록 하라. 저들은 내가 막겠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나이가 꽤 많이 든 사람의 목소리였다.
20대의 청년인 엘런으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음성이었다.
턱을 간질이는 낯선 수염도 느껴졌다.
엘런은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이토록 수염을 길게 기른 적이 없었다.
이런 단서들이 모이자 엘런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가능성밖에 남지 않았다.
‘내가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는 건가?’
이 추측이 아니라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도, 목이 쉬어 있는 노인의 목소리도, 길게 기른 턱수염도 모두 설명이 되지 않았다.
엘런은 조금 더 머리를 굴렸다.
자신이 포탈에 뛰어든 직후 이 상태가 되었다.
즉, 그 포탈이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의 몸으로 들어오는 통로였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자는 누구란 말인가.
그것을 알려 준 것은 자신을 향해 급히 달려오던 병사였다.
“키에아스 님, 좌측에서 마족들이 더 소환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도 한계입니다.”
그의 이름을 들은 엘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자는 엘런이 들어 있는 몸을 보고 키에아스라고 불렀다.
에레네교의 성인 키에아스.
서부 대륙의 모든 국가에서 왕의 증표로서 가지고 있는 키에아스의 성유물의 주인.
엘런은 지금 그의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꽈악.
엘런이 모든 파악을 끝낸 그때, 그를 부축하고 있던 이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키에아스 님, 어쩔 수 없습니다. 키에아스 님이라도 이곳에서 도망치셔야 합니다. 이 발트론이 앞장서겠습니다. 부디 무사히 이곳을 빠져나가 이프루까지 가 주십시오.”
피를 토하는 것 같은 고함이었다.
그 강인한 의지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그의 얼굴에는 주름이 잔뜩 생겼다. 아니, 그것은 주름보다는 힘줄처럼 보였다.
성서에 나온 그대로였다.
발트론은 키에아스를 따라나서 천마 전쟁에 참여했던 기사였다.
그는 화산을 집어삼킨 것 같은 목소리와 불같은 성격으로. 서부 대륙의 무인들에게 인기가 많은 성인이었다.
발트론은 죽음을 각오하기라도 한 것처럼 검을 뽑아 들었다.
안 그래도 그는 거대한 몸집을 자랑했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검은 그 몸집과 너무나도 잘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들었다면 몸 전체가 가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무식하게 힘만으로 달려드는 투사가 아니었다.
그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포위망 중 가장 약한 곳을 찾아내 파죽지세로 돌파하여 키에아스의 퇴각로를 확보할 생각이었다.
터억.
그러나 그의 각오와 의도를 눈치챈 키에아스는 그를 말렸다.
“너희들이 나설 필요는 없다. 내가 하지.”
이것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말이 있을까.
성서에 나온 성인들 중 가장 강하다는 키에아스.
에레네의 축복을 받은 그였다.
바로 그가 이 혼란을 종결시키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는 자신을 부축하고 있던 발트론에게서 벗어나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와 동시에 주변의 풍경이 가로로 길게 늘어진다.
너무나 빠른 속도 탓에 주변 사물이 정확하게 인식되지 않았다.
뒤편에서 발트론이 그를 말리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순식간에 저 멀리 사라졌다.
도저히 노인의 발걸음이라고 볼 수 없는 속도.
더군다나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졌다.
활주 덕에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데 익숙한 엘런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속도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던 엘런은 그제야 마족이 코앞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이, 뭐 하는 거야? 바로 앞에 마족이 있잖아.’
이대로면 그들과 부딪히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콰아아아앙!
엘런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키에아스와 마족 무리가 충돌했다.
직후, 이게 과연 육체가 부딪혀서 낼 수 있는 소리일까 싶은 굉음이 터져 나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속도를 받은 키에아스의 몸은 마족의 몸뚱이를 그대로 박살 내 버린 것이다.
단 한 번의 충돌로 마족들의 진영이 모두 흩어졌다.
“모두 내 뒤로 모이도록 하라. 생존자는 어떻게든 뭉쳐있으라. 내가 구하러 가겠다.”
그의 목소리는 천둥처럼 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인간들은 마치 구세주를 본 것처럼 키에아스에게로 달려왔다.
그리고 마족들이 그들의 등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물론, 그것을 가만히 둘 키에아스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한 것은 아니었다.
퍼엉.
우직.
오히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만큼은 그것과 완전히 대비되었다.
사람들을 뒤쫓던 마족들은 그대로 몸이 터져 버리거나 뭉개졌다.
불타는 마족들이 있는가 하면, 얼어붙어 버린 마족, 돌처럼 굳어 버린 마족까지.
이 모든 것이 키에아스가 눈을 한번 감았다 뜨는 동안 이루어진 것들이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키에아스의 시선이 닿는 곳에 있는 마족은 누구라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죽는 방법 역시도 제각기였다.
동시에 이토록 많은 마족을 학살하는 것은 성서에 적어 놓아도 말이 안 된다며 코웃음을 칠 정도였다.
키에아스의 몸에 들어가 있는 엘런은 이 모든 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이것이 원시 마법이라는 것인가?’
키에아스와 일체화된 엘런은 그의 의지 역시도 느낄 수 있었다.
마족이 눈에 들어오고, 그 후 녀석을 처리할 방법을 생각한다.
이 과정만으로 마나가 움직이고 그의 의지를 마나 스스로가 실행한다.
직접 사용해 본 적이 있어서인지 훨씬 빨리 이해되었다.
‘체내에 있는 마나가 아니라 외부에 있는 마나를 그대로 사용한다?’
지금까지 엘런이 알고 있던 그 어떤 마법과도 반대되는 개념이었다.
마나를 사용자의 의지에 맞게 정제하는 정제소가 바로 마나 하트였다.
그런데 키에아스는 애당초 자신의 체내에 있는 마나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사용하는 마법의 원천은 바로 지척에 널려 있는, 모든 물질의 기본적인 구성 성분인 자연의 마나였다.
이것은 마치 바닷물을 끌어다 불을 끄는 것과도 같다.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를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는 마나의 고갈을 걱정할 것도 없이 마법을 사용해도 되는 것이었다.
‘원리는 알겠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무엇이지?’
키에아스의 의지를 읽은 덕에 원시 마법의 원리는 깨달았으나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파각.
엘런이 생각에 잠긴 사이 키에아스는 닥치는 대로 마족들을 학살했다.
“키이익, 후퇴다, 후퇴.”
“도망친다!”
마족들은 자신의 패색이 짙어지자 후퇴를 택했다.
그리고 키에아스는 마족의 몰살이 목표가 아니었는지 더 이상 추격을 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그런 키에아스에게 몰려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매우 익숙한 상황일 수도 있었다.
‘저들 중에는 키에아스와 같은 마법을 사용하는 자가 없는 건가?’
‘다들 언어를 내뱉는 것으로서 마법을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나처럼 의지만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자는 현재 이곳에 없으며 찾기도 힘들 것이다.’
‘그렇군. ……에?’
갑자기 키에아스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자, 엘런은 당황했다.
그는 엘런이 자신의 몸에 들어온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까?’
‘에레네께서 말씀하시더군. 그대에게 나의 능력을 전수하라고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