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28
228
돌아오다 (2)
* * *
“어디를 갔다가 이제야 온 건가!”
라르트는 지금 자신이 헛것이라도 보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그만큼 현실성이 없는 상황.
1년간 자취를 감췄던 엘런이 눈앞에 있는 것은 실제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죄송합니다.”
라르트의 뒤에 있던 엘런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뒷모습에서는 무거운 책임감과 미안함이 풍겨져 나왔다.
“그리고 그 책임은 제가 반드시 지겠습니다.”
의지가 담겨 있는 목소리.
그 말에는 마법보다도 더 마법적인 힘이 담겨 있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한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게 하는 그런 신비한 능력이었다.
“인간의 뒷모습이 저토록 무거워 보인다니.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부관은 엘런의 뒷모습을 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렸다.
그 역시도 엘런의 어깨에 걸린 막중한 책임감이 보였기 때문이다.
라르트도 처음에는 부관과 똑같은 생각을 했었다.
지난 1년간 그는 도망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들이 모를 어떤 시련을 겪고 온 것이다.
오히려 그 무게감을 나눠 들 수 없는 자신들이 한심하게도 느껴지기까지 했다.
“스읍.”
엘런이 호흡을 한 번 들이마시더니 곧 그의 모습이 일렁거렸다.
엘런의 복귀전은 바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라르트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자네의 말대로 무슨 일이라도 있긴 있었나 보군. 도대체 1년 동안 어떤 일을 겪고 왔기에 저토록 강해진 것이지 ”
엘런의 무위야 워낙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고센 제국의 대군을 단신으로 가서 막아 낸 사실이며, 비대칭 전력이라 불리는 제국 이성을 손쉽게 제압한 것.
그 모든 것이 엘런의 압도적인 위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것은 그저 압도적이라는 말로 표현되지 않았다.
절대적인 그의 무력 앞에서 라르트는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보니 평소에 믿지도 않던 신이 떠올랐다.
퍼어엉.
콰아아앙!
한편, 마족과 전투를 벌이고 있는 엘런도 스스로의 힘에 놀라는 중이었다.
‘내가 이 정도였단 말인가.’
지금까지는 키에아스의 몸을 빌려 원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의 몸을 빌렸을 때는 원시 마법을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자신의 힘인지 그의 힘인지 구분할 방법은 없었다.
‘무너져라.’
쿠르르르릉.
그가 생각하는 대로 자연이 움직였다.
갑자기 땅이 푹 하고 꺼졌다.
땅이 무너지면서 마족들은 끝을 알 수 없는 지하로 빠져 버렸다.
지옥에서 올라왔다고 생각되는 그들이 땅 밑으로 떨어지며 비명을 지르는 모습.
그것을 보고 있던 프로드군도 이질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그것은 오직 키에아스만의 힘이 아니었구나.’
지난 1년간, 그가 사용했던 힘은 키에아스의 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 아니었다.
이제 엘런은 자연을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었다.
‘가속.’
슈웅.
주변의 풍경이 옆으로 길게 늘어진다.
아니, 늘어지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원래대로 돌아온다.
활주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
그가 키에아스의 몸에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속도였다.
그리고 이제는 활주를 사용하면, 오히려 느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속도에 익숙해졌다.
콰아아아앙!
온통 철갑으로 두르고 있던 기병대보다도 훨씬 큰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마족들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진 채로 허공에 흩어졌다.
“탑주님의 경지를 가늠할 수 있으십니까 ”
부관은 그런 엘런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물었다.
“나도 모르겠네. 그것은 서책에서도 읽어 보지 못한 경지라네. 어찌 되었든 1년 사이 그는 훨씬 더 큰 성장을 했네.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말일세.”
라르트는 아예 넋이 나가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는 그저 마법사로서 저런 진풍경을 보여 주는 엘런이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 말씀은 예전의 엘런 님보다도 더 높은 경지가 있다는 의미입니까 ”
“그래. 자취를 감추기 전 그는 현세대 최초의 8서클 마법사. 그리고 저 모습을 보니 나는 감히 장담할 수 있을 것 같네.”
라르트의 말에 부관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그는 라르트에게서 그다음에 나올 말이 무엇인지 예상할 수 있었다.
8서클보다 높은 단계의 마법사.
그것은 너무나도 현실성이 없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엘런이기에, 그리고 저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그는 감히 예상할 수 있었다, 실존하는지조차 논란이 있는 그 경지를.
“믿을 수 없지만, 그는 9서클의 마법사가 된 것이네.”
라르트도 부관과 똑같은 생각이었다.
“아…….”
결국, 자신이 예상했던 답변을 듣자 부관의 입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자연이 만들어 낸 장관을 볼 때의 순수한 감탄과도 같았다.
그 웅장함 앞에서 인간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숙여지는 것처럼.
자신이 그토록 바라던 신을 직접 만난 신도처럼.
그들은 저절로 움직이는 몸을 멈추지 않았다.
“9서클의 마법사 엘런이 돌아왔다.”
* * *
엘런의 등장으로 마족과의 전장은 금방 정리되었다.
자신들은 나름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마족을 저토록 쉽게 잡는 것이 허탈해질 만도 했다.
하지만 단 한 명도 그렇게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그가 보여 준 위력을 보면, 그런 생각을 가지지 않는 것이 당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금방 프로드 왕궁까지 전해졌다.
“상아탑주가 돌아왔다는 것이 사실이냐!”
마족의 등장 이후,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았던 알베르토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그동안은 마족의 등장보다 더욱 예상하지 못한 일은 없었지만, 엘런의 복귀 소식은 마족의 등장보다도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당장이라도 엘런이 있는 곳으로 가겠다며 왕좌에서 일어났다.
종말이 가까워진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보고 싶은 이가 아니던가.
그러나 그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폐하, 신의 불충을 용서하시옵소서.”
그가 찾아가기도 전에 먼저 엘런이 그를 찾아온 것이다.
“탑주, 정녕 상아 탑주요 ”
“소신이 했던 말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엘런이 양쪽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신하들이 군주에게 충성을 바칠 때 하는 한쪽 무릎을 꿇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였다.
그 행동에는 어떠한 결단도 충성도 의지도 없다.
그 행동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사죄였다.
엘런은 하메론을 잡으러 가겠다고 한 엘런에게 기회를 준 알베르토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었다.
“일어나도록 하시오, 보는 눈이 많으니.”
알베르토는 그런 엘런을 일으켜 세웠다.
그의 눈에는 엘런에 대한 원망 따위는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복귀를 반가워하는 감정만이 가득 차 있었다.
“상아 탑주, 그대가 아무 이유도 없이 1년간 자리를 떠날 사람이 아니란 걸 나는 잘 알고 있었소.”
“저는…….”
하지만 엘런은 여전히 그에 대한 죄책감을 쉽게 털어내지 못했다.
“그대가 1년간 사라진 이유, 그것은 잘 처리하고 왔소 ”
“그렇습니다.”
엘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1년간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던 원시 마법은 완벽하게 습득했다.
처음으로 자신의 몸에 직접 실험한 전투에서도 그 사실은 입증되었다.
“그것으로 나는 충분하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그대가 한 말은 반드시 지켜 주시오.”
알베르토는 왕좌로 돌아와 앉았다.
엘런이 돌아온 것을 직접 확인한 후에야 그는 여유를 찾은 것이다.
누군가의 존재만으로도 이토록 안도감이 드는 것은 엘런이 유일할 것이다.
“혹시 그대가 사라진 후의 소식에 대해서는 모두 들었소 ”
직전까지는 곤란한 일들이 많았지만, 엘런이 돌아왔으니 이제는 더 이상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마족이 나타났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보고받으셨겠지만, 조금 전에도 그론리드 공작이 이끌던 군을 지원하고 오는 길입니다.”
하메론이 마왕의 현신이라는 것을 안 이상, 지금 세계에서도 마족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것 정도는 엘런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가 놀랐던 점은 예상외로 그들을 잘 막아 내고 있는 프로드군이었다.
키에아스가 있었을 때야 워낙 마나 농도가 높을 때이다 보니 병사들의 수준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4서클 마법사가 되는 것조차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 그들이 전략이라는 것과 기술이라는 것을 적절히 사용하여 마족과 대등하게 싸웠다.
인간들은 각자의 시대에서 각자의 상황에 맞게 마족들과 겨루고 있었던 것이다.
“마족들도 골치였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라는 것이오.”
알베르토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말했다.
“무엇이 폐하를 근심케 하는 것입니까 ”
“고센 제국과 에다인 왕국. 그들은 그대가 사라졌다는 소식만 들리면 호시탐탐 프로드 왕국을 노리고 있소. 특히, 고센 제국은 옛 영광을 찾기 위해 더욱 적극적이지. 그들은 실제로 군사를 움직이기도 하였소.”
그 말에서 알베르토의 근심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우리는 그동안 마족을 상대하느라 많은 병력을 잃었소. 게다가 그들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라 병력을 더 돌릴 수도 없지. 그들은 우리가 완전히 비워놓은 뒤를 노리려는 것이오.”
엘런의 이마에 있던 혈관이 꿈틀거렸다.
“마족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병력만으로는 턱도 없소. 훨씬 더 많은 군이 있어도 모자랄 지경인데 그들이 저렇게 나오니 오죽 답답하겠소.”
엘런은 알폰스 황자를 떠올렸다.
체들턴 가문의 반란 때, 이미 자신의 명을 어긴 알폰스. 하메론 덕분에 목숨을 구해서인지 엘런에 대한 두려움은 많이 희석된 것처럼 보였다.
‘이번에는 완전히 재기 불가능하게 죽여 줘야겠군. 더불어 에다인 왕국 놈들까지도 말이야.’
엘런은 지금 상황에 인간끼리 전쟁을 일으키려는 그들의 태도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공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마족들이 나타나 판을 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연합군을 조직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족들의 퇴치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프로드 왕국의 뒤통수를 노릴 생각이나 했다.
“폐하, 그것은 심려치 마시옵소서. 소신이 당장이라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의 엘런에게는 이 일을 해결하는 데는 한 시간도 필요 없었다.
그들의 황궁으로 가서 자신의 힘을 조금만 보여 주면 끝이었다.
‘그 외에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순서대로 처리해야겠군.’
오랜만에 현대로 돌아온 엘런은 자신 때문에 발생한 모든 일을 정리할 계획을 세웠다.
“허허허, 그대가 그렇게 말해 주니 그 무엇보다 든든한 것 같소.”
“폐하, 앞으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사옵니다만,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모든 일이 끝나고 와서 폐하의 잔을 받으며 회포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엘런의 말에 알베르토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주변국, 마족, 하메론의 문제가 훨씬 급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간 강녕하십시오.”
슈슉.
엘런의 모습이 대전에서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에다인 왕국의 왕궁에서는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엘런의 귀환은 시작부터 이처럼 화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