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29
229
돌아오다 (3)
에다인 왕국의 수도 스람.
그곳에 가면 거대하고 화려한 왕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에다인 왕국은 국력 면에서 동부 대륙의 패자였던 고센 제국이나, 신흥 패권 국가인 프로드 왕국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국왕의 탐욕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왕궁만큼은 그들에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10년 전, 고센 제국을 다녀온 국왕이 노발대발한 덕에 스람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이 건축될 수 있었다.
그러나 뱁새가 황새를 따라 하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는 법.
에다인 왕국은 이 왕궁을 짓고 나서부터 추락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크고 화려한 왕궁을 짓기 위해 거둬들인 특별세는 백성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했다.
게다가 몇 년 전, 프로드 왕국을 치겠다며 전쟁까지 일으켰으니 국가 경제가 파탄이 날 대로 나 버린 것이다.
여기저기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그것은 수도인 스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배를 굶은 아이들의 울음이 들려왔고, 그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못한 부모들의 가슴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빵 한 덩이라도 좋습니다, 제발.”
“아니, 저는 반 덩이라도 주십시오.”
“우리 먹을 것도 없다고 하지 않았나!”
거지들은 밥이라도 달라며 구걸을 하고 있었지만, 먹을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남들을 도울 여유를 가지기는 힘들었다.
“거지 새끼들이 또 기어 나온 건가 ”
“이크!”
대로변에서 귀족이 나타나자 구걸하던 거지들은 서둘러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어디 한번 그 상판대기를 들이밀기만 해 봐, 그냥 죽이지는 않을 테니까. 더러운 놈들.”
거지들은 며칠이나 굶었음에도 자신들의 식욕을 억제했다.
귀족들에게 구걸을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끔찍하게 죽지도 못하고 살지도 못할 바에는 차라리 굶어 죽겠어.’
거지들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그런 것이었다.
“어이. 너도 빨리 좀 달려. 전하께서 개최하신 파티다. 이게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데 늦어서야 되겠나 ”
“예, 예!”
드르르륵.
귀족의 재촉에 마차의 바퀴가 훨씬 더 빨리 굴러가기 시작했다.
툭.
그와 동시에 마차에서는 빵 4개가 땅에 떨어졌다.
그것을 본 거지들의 눈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그들은 빵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휴, 고작 빵 쪼가리에 저렇게 달려드는 꼴이란. 교양도 없어.”
귀족은 혀를 차며 왕궁으로 들어갔다.
“카난 백작님, 잘 오셨습니다.”
왕궁 밖의 모습과는 달리 안쪽은 오히려 프로드 왕국보다도 더 성대한 파티가 열리고 있었다.
열 명의 연주자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고, 테이블에는 술과 음식들이 한가득 올라와 있었다.
“아, 오셨소 아주 아름다운 밤이오.”
“그렇소. 오늘 전하께서 프로드 왕국에서 전쟁을 선포한다고 하셨지 않소 ”
“잠시 후 전하께서 프로드 왕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할 것이오. 그들은 마족인지 뭔지를 막고 있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 뒤통수를 훤히 열어 놓고 있겠지.”
“아주 좋은 시기가 아니겠소 하하하하.”
여기저기서 프로드 왕국을 공격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번 전쟁에서 이기면 자신들이 어떤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주상 전하 납시오!”
그때 시종의 우렁찬 목소리가 파티장에 울렸다.
쿵쿵쿵쿵.
그러자 거대한 발걸음에 단상이 흔들렸다.
흔들리는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걸음 한 번에 몸에 있는 모든 살들이 출렁거렸다.
얼굴에 붙은 살은 찌다 못해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런 것도 왕이라고 귀족들은 무릎을 꿇어 충성을 표했다.
어쨌거나 자신들을 이토록 호의호식하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저자였기 때문이다.
“과인은 프로드 왕국에 선전포고를 하기로 했다! 이번 프로드 왕국 공격에서 잘한 사람에게는 작위를 올려 주도록 하겠다.”
왕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언행.
말만 들어 본다면 그는 부잣집의 철없는 어린아이 같았다.
귀족들도 저런 자의 말을 듣고 있노라니 무릎을 꿇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저런 멍청이가 국왕의 자리에 있어야 자신들의 마음대로 나라를 굴릴 수 있었다.
이럴 때 조금 참으면 결국에는 자신들에게 이득이었다.
그걸 모르는 멍청이는 이 파티장 안에는 없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프로드 놈들의 땅에 전하의 깃발을 꽂겠습니다.”
“그래그래! 아주 좋구나, 하하하하하하.”
국왕의 볼살이 출렁거렸다.
광대뼈가 살에 파묻혔기에 그가 웃고 있다는 것은 벌어진 입을 통해서만 알 수 있었다.
“국왕이 하는 짓거리를 보고 있으니 어떻게 국왕이 되었나 싶군. 전생에 무슨 짓을 해야 너처럼 인생을 날로 먹을 수 있는 거지 ”
누군가 귀족들의 의견을 대표해서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런 말을 한 자의 목숨이 걱정되기도 했다.
“뭐라 하였느냐 ”
“아니지. 네 행동을 보면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에 가까운 것 같네.”
몇몇 귀족들은 그 통쾌한 말에 웃음을 터뜨릴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국왕을 보고는 억지로 그 웃음을 참아 냈다.
여기서 웃음을 참지 못했다가는 곧바로 작위를 박탈당할 것이다.
“어,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과인에게 그런 불경한 소리를 하는 것이야 ”
쿵쿵쿵.
그는 단상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모욕한 인물을 찾았다.
“나다.”
국왕을 모욕한 자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 주변에서는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어떤 귀족의 이마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고, 누군가는 얼른 몸부터 숨기기도 했다.
마족을 처음 보더라도 이처럼 격한 반응을 볼 수 있을까.
그러나 적어도 당장 그들에게는 마족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맞기는 했다.
얼굴은 몰라도 그의 상징은 알고 있었다.
검푸른색의 로브와 길게 뻗은 백색의 스태프.
음유시인들이 워낙 많은 노래를 만든 덕에 그것만 보고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엘런이 어떻게 여기에.”
“저자는 분명 1년 전에 실종되었다고 들었는데.”
“우리를 속였단 말인가 ”
귀족들은 갑작스러운 엘런의 등장에 혼비백산하였다.
자신들은 지금 프로드 왕국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자리에 와 있지 않았던가.
그가 그것을 알고 이곳에 왔다면 자신들은 꼼짝없이 죽은 목숨이었다.
“네가 감히 과인보고 몬스터라고 하였느냐 내 너를 가만두지 않겠다. 여봐라, 얼른 저놈을 묶어서 내 앞에 대령하라!”
그러나 국왕만큼은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바보는 용감하다고 하였다.
그는 지금 저자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저토록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었다.
“어허, 너희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어서 저 건방진 놈을 내 앞에 무릎 꿇게 하란 말이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명령에도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
누구나 다 자신의 목숨은 소중한 것이었다.
“대체 왜들 움직이지 않는 것인가 ”
결국 폭발한 국왕이 귀족들을 돌아보며 역정을 냈다.
“그, 그자는 바로 에, 엘런입니다. 현 인류 최초의 8서클 마법사인…….”
쿠당탕!
누군가 그의 무지함을 깨닫게 해 주자 그의 거대한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 어, 어쩐 일로 이곳에 온 것인가 ”
그는 국왕이라는 자신의 신분도 잊어버린 것인지 아주 공손한 자세로 엘런을 맞이하고 있었다.
“프로드 왕국에게 선전포고를 할 것이라 들었는데 말이야. 그게 사실인가 ”
“그, 그렇지 않네. 나는 그저…….”
국왕의 눈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적절한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는 것 같았다.
임기응변조차 능하지 못한 국왕을 보며 귀족들은 이마를 짚었다.
짜악!
피부와 피부가 맞닿는 경쾌한 소리가 들렸다.
그곳을 바라보고 있는 모든 이의 눈동자가 커졌다.
특히 국왕은 왼쪽 뺨이 퉁퉁 부어오른 뺨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이 어찌나 컸던지 커다란 왕궁 전체가 울리는 것 같았다.
짜악!
“조용히 해.”
엘런은 이번에 그의 왼쪽 뺨도 반대쪽과 똑같이 만들어 주었다.
“흐, 흐끅!”
국왕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으로 엘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터져 나오는 비명은 딸꾹질로 대신했다.
엘런은 그를 걷어찬 후 단상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대로 이 수준에 맞지 않는 왕궁을 날려 버릴 수도 있는데 하지 않겠다.”
엘런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귀족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파티장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돌았다.
“지금은 마족이 나타났다. 공공의 적이 나타난 이 시점에 전쟁을 하고 있을 수도 없지. 그래서 폐하께서는 너희들에게 연합군을 제안하셨다. 함께 인류를 구원해야 하지 않겠나 ”
귀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국왕.”
엘런은 옆에서 울음을 참고 있던 국왕을 불렀다.
“예, 예!”
“인류를 구원하겠나 ”
“그, 그렇다네. 당연히 그래야지. 모두들 잘 들었지 안 그래도 우리가 모아 놓은 군대가 있었지 않은가. 그들을 보내면 되겠네.”
엘런의 손을 슬쩍 들어 올리자 국왕은 즉시 반응했다.
이미 신의 경지에 접어든 엘런의 힘을 본능적으로 느꼈기 때문일까.
국왕은 그가 자신뿐만 아니라 이 나라 전체를 단숨에 날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앞으로 열흘을 줄 테니 그 안에 병사들을 프로드 왕국으로 보내라.”
“아, 알겠네.”
국왕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뜩이나 부어올라 더 두툼해진 볼살도 그에 따라 격하게 움직였다.
“혹시나 허튼짓이라도 했다가는 이 나라는 지도상에서 없어질 거다.”
짜악.
그러고는 다시 한 번 국왕의 오른쪽 뺨을 때렸다.
슈슉.
엘런의 모습이 사라졌다.
직후, 왕궁 파티장에서는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분노에 찬 국왕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엘런이 텔레포트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이상, 자신들은 그가 말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에다인 왕국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받은 엘런은 고센 제국을 다음 장소로 정했다.
‘에다인 놈들이야 국왕이 겁 많고 멍청하니까 이렇게 쉬웠지만, 여기는 고생 좀 하겠군.’
에다인 왕국과 고센 제국은 전혀 달랐다.
알폰스 황자라면, 에다인 왕국에서 했던 대로 했다가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 수도 있었다.
‘설득을 해야 하나 ’
엘런은 방법에 대해 고민하면서 고센 제국의 황궁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들어간 엘런은 자신의 고민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게 다 무엇이오 ”
“보면 모르겠소 역모(逆謀)라는 것이오.”
황궁으로 들어가 황자만 조용히 설득시키려던 엘런은 그 광경에 움직임이 멈춰 버렸다.
황궁에는 기사들이 황족 모두를 제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냔 말이오.”
그는 직접 황자의 몸을 묶고 있는 제국일성(帝國一星) 데이브에게 물었다.
그는 황자에게 경례를 한 후, 엘런 쪽을 돌아보았다.
“마족의 등장에 대해서 들어서 알고 있지 않소 나는 지금이 국가끼리 전쟁을 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오.”
“그렇기는 하다만…….”
그 대답에 엘런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황태자께서는 프로드가 마족과 싸우고 있는 이때가 그들을 칠 적기라고 판단하셨소. 물론, 나도 그 생각에는 이의가 없소.”
그럴 만했다.
패권 회복을 꿈꾸고 있는 고센 제국이라면 프로드군의 8할이 남부로 내려가 있는 이 시점이 공격할 가장 좋은 시기였다.
동부에 가까이 있는 해리포드의 특성상, 단숨에 수도까지 치고 들어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 후가 문제요. 프로드 왕국이 사라진다면, 마족은 누가 상대할 수 있겠소. 지금은 현재의 이득이 아니라 미래의 존망을 걱정해야 할 때요.”
엘런의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데이브의 입에서 듣게 되니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웬만해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제국일성 데이브가 저런 성격이었단 말인가.’
아르곤에서도 정보를 캐내기가 어려운 그였다.
이번 고센 제국 설득에서 가장 큰 고비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일이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그래서 역모를 일으켰단 말이군. 그럼 이후는 어쩌려고 했소 백성들이며 귀족들이 역모를 쉽게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이고 그것을 수습하는 과정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은 최우선 사항은 마족이오. 그들을 잡을 때까지만 무력으로 귀족들의 입을 막을 생각이었지. 엘런, 지금은 연합이 필요할 때요. 나 혼자서는 마족을 막을 수가 없소.”
엘런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자신이 할 말을 모두 데이브가 하고 있었다.
“나야말로 같은 생각이오.”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자로군.”
평소 정의감과 충성심이 투철하다고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예상외로 일이 쉽게 풀리자 엘런은 맥이 풀렸다.
“내가 지원군을 준비해 두었소. 당장이라도 출발할 수 있소. 그러니 부탁하겠소. 마족으로부터 이 대륙을 구해 주시오.”
데이브가 엘런에게 고개를 숙였다.
황제와 황태자는 그런 데이브를 보며 뭐라고 말을 했지만, 입이 막혀 있는 탓에 내용이 들리지는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들이 매우 분노했다는 것이었다.
“마족을 꼭 막아 주시오. 그때까지는 고센 제국과 프로드 왕국은 휴전이오. 그리고 나도 그대들을 지원하겠소.”
“누구 마음대로 휴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대의 마음을 잘 알겠소.”
엘런도 의지가 느껴지는 그의 눈빛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병력들은 바로 프로드 왕국을 향해 출발시켜 주시오. 그대도 함께해 준다면 고맙겠군.”
“알겠소. 그리하리다.”
생각지도 못하게 일을 끝낸 엘런은 해리포드로 돌아왔다.
‘한 번도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던 데이브가 저런 선택을 한다라…….’
어쨌든 병사가 많아지는 것은 좋은 것이었다.
무슨 의도가 있든 간에 자신의 힘은 그 이상이었다.
방심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방심을 하더라도 그는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가 인간적인 호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잘 사용하면 되고, 꿍꿍이가 있는 것이라도 병사는 내가 잘 이용해 주지.’
엘런은 이 사실을 보고하기 위해 대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폐하와 로미우 왕자의 근심을 덜어 줄 수는 있겠어.’
이제 본격적인 마족과의 전쟁 준비를 시작할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