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30
230
준비 (1)
엘런의 보고를 받은 알베르토는 뛸 듯이 기뻐했다.
반강제적이기는 했지만, 동부 대륙의 첫 연합군이 창설되었다는 점도 고무적인 일이었다.
역사적으로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이 아니던가.
하지만 엘런의 행동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알베르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는 했지만, 엘런의 눈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았다.
그가 지난 1년간 키에아스를 통해 봐 왔던 마족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악랄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적응력은 인간 이상이다.’
지금은 마족들도 기상천외한 전술에 당하고는 있었지만, 곧이어 마족들 사이에서 지휘관이 등장하기 시작할 것이다.
지휘관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그들도 전술적인 움직임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에레네가 막고 있다고는 하지만, 정예 마족들이 넘어오는 것도 생각해야 했다.
그들이 넘어오면 전황은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전에 다른 것들도 얼른 준비시켜 놔야 돼.’
왕궁을 나온 엘런은 가장 먼저 자신의 저택으로 갔다.
그가 다른 차원에서 귀환한 후,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택이었다.
하인들까지 이미 엘런의 귀환 소식을 접하고 있었기에 그렇게까지 부산스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의 저택의 주인이 돌아온 것이니 다들 한껏 준비를 하고 그를 맞이했다.
식구들의 반응도 반가움의 표시였지 자신을 질타하는 자는 없었다.
다들 수고했다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는 것이 전부였다.
“너, 다시는 그따위로 사라지기만 해 봐라. 이제 다시는 약 같은 거 안 만들어 준다. 안 그래도 네가 부탁한 것 따위 폐기해 버릴까 싶었다고.”
리버만이 그에게 툴툴거릴 뿐이었다.
그럼에도 표정에서는 반가움이 잔뜩 묻어났다.
가빈과 카빈도 엘런이 돌아왔다는 사실에 모든 업무를 중단하고 저택으로 왔다.
킨버도 엘런이 없는 동안 저택을 잘 관리해 주고 있었다.
그루트 역시도 그동안 프로드군에게 양질의 무기를 공급하면서 프로드 왕국을 돕고 있었다.
“잘 돌아왔다.”
“걱정했었단다.”
이 조촐한 귀환 축하 파티는 엘런이 부모님과 포옹을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평소 같았으면 술과 음식이라도 내와서 파티라도 벌였겠지만, 지금은 마족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한가롭게 파티나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엘런의 생각이었다.
“그루트, 마정석을 이용해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서로의 말을 전달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겠나 ”
엘런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프로드군의 주요 전술을 강화하는 일이었다.
이미 그루트 덕에 병장기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전술적으로 강화할 요소는 있었다.
프로드의 우수한 전략관들 덕에 당장은 마족들을 상대할 좋은 전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이 전술을 기본으로 해서 더욱 광범위해져야 했다.
그러려면 언제 어디서라도 병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연락 수단이 필요했다.
“참으로 기발한 생각을 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으니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루트는 연구열이 불타오른 것인지 곧장 자신의 연구실로 들어갔다.
그가 만들어 낸 물건들은 단 한 번도 엘런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랬기에 엘런도 닫힌 연구실의 문에서 신뢰감을 느꼈다.
“리버 영감, 혹시 그때 내가 부탁했던 연구 상황 좀 알려 주겠어 ”
다음으로 찾아간 것은 리버였다.
그는 늘 하던 대로 자신의 연구실에 틀어박혀서 약품을 만지고 있었다.
“그거 말이냐 거의 마무리 단계다. 네가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그게 정말이야 ”
리버의 장담에 엘런은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자신이 에레네를 만난 직후에 곧장 리버에게 부탁한 일이 있었다.
그걸 말하면서도 그는 그리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탁했던 것인데 그럴듯한 성과가 있었고, 마무리 단계까지 왔다고 하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리버 영감은 더 엄청난 사람일 수도 있겠어.’
엘런은 약물을 배합하고 있는 리버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껏 자신이 부탁한 불가능에 가까운 연구들은 척척 해낸 그가 대단해 보였다.
“뒤에 있으니까 신경 쓰이잖아. 썩 나가. 할 일도 많은 놈이 말이야. 아니면 내 연구가 그리 믿기지 않냐, 그러고 감시하고 서 있게 ”
그는 엘런을 바라보지도 않고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엘런도 그 말의 의미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네가 말한 건 내가 잘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다른 일에 신경 써도 된다, 조심히 다녀와라, 라는 말을 꼭 그렇게 해야 해, 영감 ”
엘런의 말에 리버가 깜짝 놀라며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입을 오물거렸다.
뭔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자식이…….”
“알았으니까 부탁 좀 할게.”
엘런이 나간 방에서 걸걸한 목소리로 욕설이 한바탕 쏟아졌다.
“정정하시군.”
그는 가볍게 웃으며 저택의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새로운 식구인 서부 대륙의 한센 일행이 있는 곳이었다.
“엘런 님, 돌아오셨습니까 ”
그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한센이었다.
감각이 예민한 크루세이더답게 엘런의 발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이다.
“아아, 다행입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으십니까 걱정 많이 했습니다.”
아드리안도 뒤를 이어 엘런에게 인사를 했다.
“미안하오. 예상치도 못한 일을 겪느라 낯선 타지에 그대들을 내버려 두게 되었소.”
“우리는 괜찮습니다. 엘런 님께서 내주신 저택 덕에 힘들지 않았습니다.”
“것보다 판톤 경은 어디로 간 것이오 ”
엘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안 그래도 기척을 숨기는 것에 능하다 보니 매번 이렇게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것에 없는 것이었다.
“판톤 경은 서부 대륙에 가 있습니다.”
아드리안의 설명이 이어졌다.
“마족들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우리도 직접 그들을 보러 갔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정말 성서에서나 들었던 마족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동부 대륙인들처럼 고작 이야기 따위로 마족을 접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서에 기록된 천마전쟁에서 마족을 접했다.
그랬던 만큼 진짜 마족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나 위기의식이 동부인들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보통 사태가 아니라고 생각한 저희는 이것을 서부 대륙에 알려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적임자인 판톤을 보낸 것입니다. 아직 거기서 연락이 온 것은 없지만, 무사히 도착했을 것입니다.”
엘런도 거기에 동의했다.
판톤은 자신의 텔레포트를 제외하고는 가장 안전하게 동서부를 넘어 다닐 수 있는 자였다.
“나도 에레네스에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잘되었소. 내가 가서 상황을 확인하고 오겠소. 경들도 함께 가겠소 ”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엘런 님 덕분에 오랜만에 고향땅을 밟게 되겠습니다.”
텔레포트를 이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동 준비에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 출발하겠소. 어지러워도 조금 참으시오.”
슈슉.
엘런이 눈을 감자 공간의 왜곡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 * *
오랜만에 들린 이프루는 변함없이 신성함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미 에레네를 보고 온 엘런으로서는 더 이상 저번처럼 이프루에 큰 영감을 받지 않았다.
엘런은 이프루 교황청 건물 안이 아닌 바로 문 앞으로 이동했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나타난다고 하든 누가 뭐라 할 자는 이곳 서부 대륙에 없었지만, 그저 상대에 대한 예의 정도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공간을 불쑥불쑥 침범하는 것은 그리 예의 있는 행동이 아니었다.
“엘런 님,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그러나 엘런이 왔다는 소식에 평소에는 교황청 건물 밖으로 나오는 일이 거의 없는 교황이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길고 윤기 나는 금색의 머리카락은 여전했으며, 안 그래도 흰 피부는 햇빛을 받아서인지 훨씬 더 밝게 빛났다.
“한센 경과 아드리안 경도 잘 돌아오셨습니다.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엘런은 하마터면 넋을 잃을 뻔했다.
“마족의 등장과 관련해서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엘런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말했다.
“아, 안으로 드시지요. 제가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인지 크게 놀란 것 같지는 않았다.
엘런들은 그녀의 안내를 받아 교황의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판톤 경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직은 올비아 산맥 서쪽으로 내려오는 마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족의 등장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겠습니까 ”
그녀는 한 국가를 넘어 한 대륙의 통치자였다.
연약해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려는 모습이 돋보였다.
“마족의 등장으로 놀랐을 거라 생각됩니다. 키에아스의 성유물을 훔친 자를 기억하십니까 ”
엘런의 질문에 그녀의 얼굴에 노기가 감돌았다.
항상 차분함을 유지하는 그녀도 성유물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그자라면 매우 잘 알고 있습니다. 그자는 키에아스의 성유물뿐만 아니라 저희 에레네교의 성유물이란 성유물을 모두 훔쳐 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대비태세를 갖춘다고 하더라도 그는 보란 듯이 성유물을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것이 모두 자신의 잘못처럼 여겨졌던 트리에스테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의 부덕함으로 에레네교가 수천 년간 지켜온 성유물을 하루아침에 빼앗겨 버렸다.
그녀는 그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자를 이기지 못했으니까 말이지요.”
그 말에 트리에스테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이 아는 한 엘런만큼 강한 자가 없었다.
그런데 그를 이긴 존재라니.
아무리 대비 태세를 갖춘다고 해도 성유물을 가져가는 것을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어째서 마족과 관련이 있다는…… 설마 ”
그녀의 손이 파르르르 떨렸다.
엘런에게 아니라고 말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엘런은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그의 고개는 냉담하게도 위아래로 끄덕여졌다.
“그렇습니다. 성유물을 훔쳐 간 사람의 이름은 하메론, 마왕의 현신입니다.”
쨍그랑.
찻잔이 바닥에 떨어지며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트리에스테가 놓친 찻잔이 아니었다.
그녀가 놓친 찻잔은 카펫에 떨어진 덕에 무사할 수 있었다.
“마왕이 강림했다는 것입니까 ”
그 찻잔의 주인은 아드리안이었다.
그는 트리에스테보다도 더 놀란 표정으로 엘런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동굴에서 보고 온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에레네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꺼낼 필요가 없었다.
엘런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었고, 따라서 이유는 적당히 둘러댈 필요도 있었다.
“그럼 저희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
트리에스테는 마치 신탁을 구하는 자세로 엘런을 바라보았다.
“마족입니다. 인류의 적. 우리 인류는 그들 앞에서 한데 뭉쳐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예, 동서가 함께 연합을 하는 것입니다.”
엘런에게는 더욱 많은 병력이 필요했다.
그것은 단지 동부 대륙에서만 모아서는 턱도 없이 모자란 수였다.
“엘런 님의 명령에 따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