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31
231
준비 (2)
“들었나 서부 대륙의 맹주인 에레네스가 프로드 왕국과 연합을 하기로 했다더군.”
“요즘 그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
“그렇다면 이제 서부 대륙과의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겠군. 이보게, 지금이 인생 역전할 기회라네. 그쪽으로는 다들 생각이 없어 보여서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이제 시작이로군.”
동부의 대표인 프로드와 서부의 대표인 에레네스가 연합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어떤 곳을 가더라도 연합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소문이 새어 나갔는지도 몰랐지만, 소문이 전해지는 속도만큼은 상상을 초월했다.
동부와 서부의 연합.
지금껏 같은 지역에서도 연합을 하지 않았던 그들이 함께한다는 것은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은 맞았다.
누군가는 이것을 역사책에 기록될 사건으로, 또 다른 이는 그저 일회성에 그치는 지나가는 일로, 또 누군가는 지금이 단숨에 인생 역전할 기회로 생각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사람들에게는 마족의 등장만큼이나 놀라운 일인 것이다.
마족의 등장과 관련한 소문보다도 동서 연합의 소문이 더 빨리 퍼지는 것을 보면, 사람들의 관심이 어디에 더욱 쏠려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 길었던 역사 속에서 누구도 성공시키지 못한, 아니, 제의조차 없었던 동서의 연합.
그것이 이루어진 것은 전적으로 엘런의 공이었다.
그는 텔레포트를 이용해 동과 서의 물리적 제약을 쉽게 넘어 버렸다.
사실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단순히 사신이 오가는 것조차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연합의 이야기가 나오기는 힘들었다.
그들 사이에 있는 정서적 제약 역시도 동부의 상아탑주이자 서부의 성인인 엘런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양쪽 모두 엘런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기 때문에 협상에서 어려운 점도 없었다.
그 후로도 엘런의 준비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엘런은 쉴 새 없이 대륙을 넘나다니며 양쪽의 의견을 조율했다.
특히, 하메론이 인과율의 일부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보안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이곳은 정말 볼 때마다 신기한 것 같군.”
알베르토는 위아래를 구분할 수 없는 백색의 공간을 거닐며 말했다.
벌써 세 번이나 왔음에도 허공에 발을 내딛는 다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집무실에서 편히 말씀을 드려야 했었는데 송구합니다.”
“아니다. 그대가 하메론에게서 이 일을 숨기려면 어쩔 수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경의 말이라면 뭐든지 따를 테니 심려치 말라.”
이곳은 엘런이 만들어낸 이차원의 공간이었다.
에레네는 하메론이 가지고 있는 인과율의 실타래가 중간계에 한정된다고 하였다.
즉, 그는 어디까지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중간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면 미래까지도 읽을 가능성이 있는 존재였다.
‘그리고 다른 차원에서 생긴 변수는 감지할 수 없다고 했지.’
에레네로부터 얻은 가장 유용한 정보 중 하나였다.
사라졌던 자신이 돌아왔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그가 알아도 큰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그가 알아서는 곤란했다.
분명 그는 자신이 빠져나갈 만한 탈출구를 마련할 것이다.
그래서 엘런이 궁리한 해결책이 바로 이차원의 공간이었다.
그는 키에아스로부터 권능이라는 원시 마법을 전수받음으로써 9서클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가히 신에 필적한다고 할 수 있는 9서클의 마법사.
게다가 이미 이차원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엘런이었기에 새로운 차원을 만드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완전히 독립적인 새로운 차원을 만들어 내는 것은 오로지 신의 영역이었다.
엘런의 공간은 임시적인 것으로서 단순히 일회용으로 사용되고 금방 붕괴되어 버리는 차원이었다.
어차피 하메론의 감시만 피하면 되었기 때문에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그럼 연합은 최종 승인된 것인가 ”
“그렇습니다. 세부 사항들 역시도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알베르토의 눈이 어느 때보다 초롱초롱했다.
미지의 대륙이라 할 수 있는 서부 대륙.
비록 작금의 위기 상황 때문이기는 했지만, 그들과 교류를 한다는 사실은 모험을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 나라의 국왕으로 있게 된다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수밖에 없었다.
태평성대(太平聖代)라는 것도 결국에는 안정적인 상황을 의미한다.
그랬기에 그는 물리적으로든 정책적으로든 새로운 도전을 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서부 대륙과의 교류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언젠가는 그들의 지도자와 직접 만나 보고 싶군. 이렇게 이야기로만 전해 듣고 있으니 더욱 궁금해진다.”
“폐하, 그것은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하메론을 잡은 후에 제가 직접 서부 대륙으로 모시겠습니다.”
알베르토도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고 있겠다. 그리고 나는 이걸 읽으며 준비를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인가 ”
그는 엘런에게서 받은 종이 몇 장을 들어 올렸다.
거기에는 연합에 관한 세부 협의 사항들이 적혀 있었다.
그것은 엘런이 이 공간에서 직접 작성한 것이었다.
“그렇습니다. 잘 검토해 보시고 폐하의 승인만 떨어진다면 당장이라도 연합군이 결성될 것입니다.”
“경이 어련히 잘했겠지만, 그래도 내가 꼼꼼히 읽어 보겠다.”
“또한, 왕자에게도 보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마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엘런의 입에서 나온 왕자라는 말에 알베르토의 눈에 걱정이 담겼다.
로미우는 마족이 나타난 이후로 국정에서 거의 손을 뗀 상태였다.
그는 지금 왕실 전략관들과 함께 마족들에 대항할 전술을 만드느라 밤낮없이 일하고 있었다.
실제로 프로드의 이번 전술 개발도 그의 공이 컸다고 한다.
아마 이번 연합군을 가장 기뻐할 자는 병력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로미우일 것이다.
엘런 덕에 3배에 가까운 병사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되었다.
“왕자가 아주 좋아하겠군. 요즘 들어서 나도 얼굴을 잘 보지 못했지만, 이걸 핑계 삼아 한번 봐야겠다.”
“왕자는 반드시 성군이 될 것입니다.”
“그 옆에 경이 함께 있어 주기를 바란다.”
쿠쿵.
그들 사이에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을 때, 엘런의 공간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인 건가 ”
“그렇습니다. 폐하의 집무실로 통하는 포탈은 저곳입니다.”
“그럼, 계속 수고해 주게.”
슈슉.
알베르토가 포탈로 들어서자 그의 몸은 텔레포트를 하기라도 한 것처럼 공간에서 사라졌다.
엘런은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여기저기 쩍쩍 갈라지던 공간의 붕괴가 멈추었다.
“아무리 프로드의 국왕이라고 한들 너에게는 한낱 인간인데 네가 숨어 있을 필요가 있나 ”
그는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서 말했다.
“아직은 인간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게 안 익숙해서 말이야.”
이곳은 엘런이 만들어 낸 공간이었다.
그의 허락이 없다면 누구도 공간 안으로 들어오거나 나갈 수 없다.
다만, 상대가 신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는 있었다.
“어쩐 일이지 ”
“원시 마법을 배우고 나서 꽤 강해졌구나! 어때, 키에아스 녀석이 잘 가르쳐 줬어 ”
모습을 드러낸 에레네는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이 행동했다.
그러나 엘런의 눈에는 그의 장난스러운 말투보다 외형이 먼저 들어왔다.
“너…… 힘을 많이 빼앗긴 건가 ”
그 말에 에레네의 움직임이 잠깐 멎었다.
에레네의 형상을 하나로 규정하기는 어려웠다.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형상은 매우 흐릿해져 있었다.
“그래, 내가 너에게 온 건 안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꿀꺽.
엘런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신이 말한다, 안 좋은 일이 있다고.
신에게 안 좋은 일이라고 한다면, 인간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 아니겠는가.
그는 긴장한 채로 에레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네가 사라진 1년 동안 나는 하메론이 더 이상 허튼짓을 할 수 없도록 막았어. 하지만 그는 내 예상보다 훨씬 더 강해져 있더군.”
“네가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인가 ”
에레네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온전히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져 있었어. 이번에는 그 녀석도 정말 벼르고 벼른 것 같다.”
“지금도 도망 다니고 있는 중이로군.”
그의 눈앞에 있는 것은 에레네의 현신이 아니었다.
사념체가 엘런의 공간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의 모습이 흐릿해지고 있는 것은 그 연결이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눈치도 빨라. 하지만 이 짓도 이제 못 하게 될 것 같다.”
에레네는 뭔가 짐작이 가는 것이라도 있는 듯 힘없이 말했다.
“어쨌든, 무엇보다 네게 가장 안 좋은 소식을 전해 주려고 이렇게 무리를 했어.”
“그게 무엇이지 ”
“인과율의 실타래를 몇 개 더 빼앗겼다.”
쿵.
엘런의 공간이었기에 그의 감정 상태가 반응이라도 하는 것일까.
공간 전체에 커다란 충격음이 울려 퍼졌다.
“나로서도 지휘관급 마족이 넘어올 수 없도록 막는 것조차 힘들었어. 그런데 녀석은 그동안 내 실타래를 가져가 버린 거지.”
“그 말은, 내가 이곳에서 하고 있던 일들도 전부 그의 계산에 포함된단 말인가 ”
“그럴 거야.”
에레네의 무책임한 태도에 엘런은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째서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물건, 그것도 가장 중요한 신의 물건인 인과율의 실타래를 도난당할 수 있단 말인가.
눈앞에 있는 이자가 신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후우.”
하지만 그것은 매우 순간적인 감정일 뿐이었다.
엘런도 알고 있었다, 하메론이 얼마나 강한지를, 그리고 에레네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도.
아직까지 지휘관급 마족들이 나타나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마계와 중간계를 잇는 통로.
에레네는 그곳을 막고 있었다. 그것도 하메론의 눈을 피해 가면서 말이다.
지휘관급 마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면 엘런이 이처럼 한가롭게 연합을 구상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어째서 자신이 신의 해결사 노릇을 하게 된 건지 처량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이러고 있을 필요도 없었던 것이군.”
“내 모든 실타래를 가지고 간 것도 아니고 그가 그것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것도 아니야. 어쩌면 모를 수도 있지.”
결국에는 행운에 맡기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보통 행운이 필요할 때, 신에게 맡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신이 운에 맡기자고 말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아니, 난 그런 운 따위에 맡길 수 없다. 확실한 것이 아니라면 하메론, 그놈을 잡을 수 없어.”
“신이라는 자로서 면목이 없네. 하지만 나로서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가 그것을 말할 때, 그의 모습은 어린아이가 되어 있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말을 하기에 놀랍도록 적절한 시기였다.
“됐다.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겠어.”
“생각나는 거라도 있는 것이야 ”
에레네는 기대를 품은 눈으로 엘런을 바라봤다.
“인과율이라는 것을 생각하다 보니 좋은 방법이 하나 떠오르긴 하는군. 하지만 너에게 알려 줄 수는 없겠어. 이걸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계획이 더 들통 날 확률이 높아지니까. 거기에는 너도 포함되겠지.”
엘런이 이토록 절망적인 소식에서 조금은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만에 하나라는 생각으로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그에게 보인다면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구상해 두었다.
“너도 음흉한 면이 있단 말이야. 알겠어. 나로서도 어떻게 됐든 하메론만 막으면 되는 거니까.”
지지직.
그 말을 끝으로 에레네의 사념체는 완전히 사라졌다.
아직 할 말이 더 남았던 것 같은데 급하게 연결을 끊어 버린 것 같기도 했다.
‘무엇하나 쉬운 게 없군. 하지만 네놈의 그 방심을 이용해야 하니 나에게도 기회가 될 수 있는 건가 ’
엘런도 다른 방법에 대한 고민을 하느라 그것에 대해 더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일단 움직인다.’
결론을 내린 엘런은 급하게 포탈 밖으로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