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32
232
정령왕과의 계약 (1)
***
하메론이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계산에 넣었을 수도 있다.
이것은 엘런의 움직임을 아주 제한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보안에 신경 썼지만, 이것들이 모두 헛수고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자신의 행동을 모두 예상하고 있는 상대와의 싸움.
어쩌면 지는 결과가 정해져 있는 전투.
도저히 이길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이 전투에 대한 엘런의 대답은 오히려 간단했다.
‘이제부터는 그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간주하고 움직인다.’
더 이상 보안이라며 숨길 필요가 없었다.
치밀하게 준비하여 차례차례 터뜨려가겠다는 계획도 필요 없었다.
그가 알고 있어도 막지 못할 전략을 세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이제는 하려고 하는 행동을 애써 숨기지 않아도 됐다.
무엇보다 인과율에 대한 대비로 엘런이 생각해 놓은 한 가지가 있었다.
이것까지도 그에게 읽혔을 수도 있다.
인과율의 실타래가 변수를 어디까지 쫓아올 수 있는지 모른다.
‘될지 안 될지는 몰라도, 일단은 진행한다.’
자신의 공간에서 나온 엘런은 바로 리버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영감, 내가 말했던…….”
잔뜩 열이 오른 상태로 연구실 문을 열어젖혔던 엘런은 곧바로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리버의 연구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태풍이라도 불고 지나간 것 같은 연구실의 상황.
그것은 안에서 소란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리버가 연구에 한창 매진했을 때, 일어나는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리버가 연구에 매진한 정도였다.
‘이 영감 도대체 며칠 동안 잠을 안 잔 거야 ’
연구실이 이렇게 되었다는 말은 리버가 최소한 3일 동안은 잠을 자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가 연구실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그 연구를 끝냈다는 말이기도 했다.
‘완성을 했단 말일까 ’
엘런은 리버의 그러한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풀리지 않는 것이 있다면 자는 것까지 잊어버리고 연구에만 매진하는 지독한 열정.
그렇다면 이곳에 리버가 완성한 연구의 결과물이 있을 수도 있었다.
‘이건가 ’
연구실을 뒤지려던 엘런은 테이블에 있는 종이 뭉치를 보았다.
그것들은 이 난장판 속에서도 유일하게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하……. 이걸 결국 해냈구나.’
종이를 읽어 보던 엘런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최후의 보루이자 절대로 불가능한 부탁이라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엘런은 리버에게 이 일을 맡겼다.
그라면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지만, 사실은 자신의 수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모든 것까지 하메론이 가진 인과율에 보일까 ’
에레네가 말한 조건대로라면 하메론이 모를 가능성이 있었다.
이것이 사용되면 인과율에 심각한 간섭을 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하메론이 꼬여 있는 실타래를 모두 확인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꼬임의 시작점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리버 영감이 정말 말도 안 되는 걸 해 주었어.’
엘런은 연구실의 구석탱이에 쭈그려서 자고 있는 리버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신을 능가한 하메론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변수를 만든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러 가야겠는걸.’
그는 곤히 잠들어 있는 리버에게 담요를 덮 어준 후 곧바로 텔레포트를 사용했다.
조금이라도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슈슉.
그가 도착한 곳은 녹음이 무성하게 우거진 엘프의 숲이었다.
그것도 항상 하던 대로 엘프의 숲 외곽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나타난 곳은 엘프의 숲 한가운데, 엘리너스가 있는 곳이었다.
자신들의 보금자리에 인간이 불쑥 찾아온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불쾌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엘런으로서도 일부러 외곽에서 내부로 들어오는 수고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리고 이상 반응이 나타나자 곧장 파수꾼들이 달려왔다.
“엘런 공이 아니시오 여기는 어쩐 일로…….”
“요즘 바깥세상이 흉흉한 것 같은데 엘런 공께서 힘을 많이 써 주신다고 들었소.”
다행히 그들은 엘런을 알아보았다.
이제는 엘프의 숲에서 엘런을 알아보는 파수꾼의 숫자가 많았다.
가르노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시르를 봉인하는 순간 함께 있었던 이들은 모두 그를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엘런은 은인과도 같은 인물이었기에 다들 친절하게 다가왔다.
“이렇게 엘리너스 안까지 불쑥 찾아와서 미안하오. 내게 주어진 시간이 워낙 급해서 말이오. 안 그래도 그 일 때문에 러셀 공과 테오스 님을 뵈러 왔소.”
“아,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소 ”
파수꾼 하나가 엘런을 안내하려고 할 때였다.
“굳이 회의장까지 안내할 필요 없다, 우리가 직접 왔으니.”
그들의 뒤에서 테오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는 테오스와 러셀과 더불어 엘프들 중에서 원로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들은 꽤 긴 회의를 하고 나왔는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보였다.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무 말도 없이 찾아오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니네. 그대가 잠깐 동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대라서 그런지 아니면 인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그대는 잠깐 사이에 훨씬 강해져서 돌아오는군. 이번에도 많은 일을 겪고 온 것인가 ”
엘런은 속으로 역시 테오스라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는 따로 상황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때마다 많은 경험을 하고 와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대는 어쩐 일로 우리를 찾아왔는가. 우리와의 연합을 위해서 ”
“그런 이유도 있습니다.”
“그렇다는 말은 다른 이유도 있다는 말이로군. 그것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테오스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단은 내가 그대에게 제안할 것이 있네. 우리 엘프의 숲은 마족까지 등장한 시점에서 이 세계의 위기라고 판단하고 인간들과 연합할 것을 결정했네.”
엘프와 인간의 연합.
요즘 들어 역사상 유례없는 일들이 속출했다.
그중에서도 엘프와 인간이 연합한다는 사실은 역사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될 일이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는 그대가 없어 우리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가 없었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그대가 돌아왔다는 소문이 들리더군. 그래서 우리는 회의를 통해 그대의 관리 하에서 엘리너스의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네.”
무한한 신뢰에 가까운 말이었다.
사실상 엘런은 인간들 가운데서 엘프가 신뢰하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엘런도 엘프와의 연합을 배제한 것은 아니었지만, 인간에 대한 적대심을 생각해 보면 가능성이 작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마족들을 상대하는 데 절대적인 숫자가 부족한 이 시점에 그들의 연합은 아주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제가 책임지고 아무 일도 없도록 하겠습니다. 엘리너스의 연합. 그것은 세기의 연합이 될 것입니다.”
그랬기에 엘런도 테오스를 향해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엘프 회의도 이 사항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을 것이다.
저들의 안색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엘런은 거기에다 무리한 부탁을 하나 더 할 생각을 하기가 조금은 망설여졌다.
“그대가 그렇게 말해 준다면 우리도 안심이네. 그러면 그대가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
그것을 눈치채서이었을까. 테오스가 엘런에게 편하게 말을 할 기회를 주었다.
그의 배려에 엘런은 조금이나마 쉽게 입을 열 수 있었다.
“지성의 탑에 다시 한번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
지성의 탑이자 세계수.
그것은 엘리너스의 국보와도 같은 것으로, 자신이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무조건 들여 보내 줄 의무도 없는 것이었다.
“세계수라……. 그분을 다시 뵙고 싶은 게로군.”
“그렇습니다. 그분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대도 알고 있지 않은가. 세계수가 열리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한 달가량 남았네.”
그의 말대로 세계수는 일 년에 단 하루 동안만 열린다.
그 외에는 누구라도, 심지어 테오스조차도 세계수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엘런에게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여유가 없기도 했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시기가 아니더라도 도전을 한번 해 보겠습니다.”
“허허, 도대체 무엇을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알겠네.”
테오스는 흔쾌히 엘런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것은 분명 큰 배려가 맞았다.
세계수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부모와도 같은 것이 아니던가.
그것을 함부로 사용하겠다는 인간의 부탁은 엘런이 아니었더라면 단칼에 거절당했을 것이다.
저벅저벅.
엘런과 테오스는 함께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갔다.
세계수의 내부로 향하는 길은 당연하다시피 막혀있었다.
“여기서 어떻게 할 작정인가 이것은 누가 와도 열리지 않을 지인데.”
테오스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엘런이 급한 것은 알겠으나 안 되는 걸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분이 저를 알아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엘런은 세계수의 문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지이잉.
고오오오.
그리고 세계수의 문이 열렸다.
테오스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그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테오스가 이토록 놀란 것을 본 적이 있을까.
그는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놀란 상태였다.
“어, 어떻게…….”
그는 도무지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세계수의 문이 1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열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글쎄. 세계수께서 저를 알아보신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끼리 통할 만한 무엇인가 있었거든요.”
“허허.”
테오스는 그의 말에 멋쩍게 웃었다.
“이게 다 테오스 님 덕분입니다.”
엘런은 슬며시 미소를 짓고는 세계수가 열어 준 문을 통해 들어갔다.
***
세계수 안은 이전에 들어왔을 때와 확연하게 달랐다.
이전에는 탑과 같이 계속해서 올라가야 하는 구조였다면, 이번에는 곧바로 세계수가 있는 공간에 도달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하염없이 올라가야 하는 지성의 탑은 세계수의 악취미 같아 보였다.
“오랜만이로군, 과거.”
그리고 엘런의 앞에 세계수가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강대한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오랜만입니다.”
“호오, 이제는 내가 그리 두렵지 않나 보구나. 그러고 보면 이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군.”
세계수는 흥미롭다는 듯 엘런을 훑어보았다.
“창조주라는 사람까지 만나고 와서 그런지 세계수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습니다.”
“조금은 기분이 상하는데. 나는 과거의 네가 더욱 귀여운 것 같구나.”
그는 잠깐 투덜거리고는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지금은 그렇게 장난만 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것 정도는 그도 잘 알고 있었다.
“벌써 그까지 보고 온 것이군. 내가 문을 열어 준 것도 너에게서 그의 기운이 느껴져서이다.”
“당신께서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중간계의 균형을 관장하는 세계수여, 지금 당신의 균형이 깨지고 있습니다.”
엘런은 세계수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던 것이다.
신에게 필적하는 그까지 가세한다면 승산을 더욱 올릴 수 있었다.
“나도 미래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 녀석, 정말 강해졌더군. 이미 괴물이 되어 버린 그놈을 막을 방법이 그리 많지는 않다.”
세계수의 말에 엘런이 반색을 하며 되물었다.
“그럼 방법이 있기는 있단 말입니까 ”
“그는 중간계에서 최대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 하지만 에레네, 그나 나나 중간계에서 최대의 힘을 발휘할 수가 없지. 그것이 가장 큰 차이다.”
엘런은 세계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그리고 그 의견은 기각이었다.
그를 에레네나 세계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세계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것.
그러나 어떻게 그를 그곳으로 데려간단 말인가.
“그를 이곳까지 끌어들일 방법이 없습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에레네를 처치하고 자신이 신이 되는 것이긴 했다.
그러나 에레네가 천상계에서 버티고만 있다면, 그는 중간계를 모두 멸망시켜 버릴 것이다.
에레네야 중간계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여길 수는 있어도 엘런은 그렇지 않았다.
중간계를 지키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였다.
“그렇다면 달리 방법이라고 할 것은 네가 강해지는 것이겠군.”
“그것입니다.”
강해지는 것. 그것이 엘런이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했다.
“나도 내 정원사들을 지켜야겠지. 그래서 네가 생각한 방법은 ”
그도 최대한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표했다.
덕분에 엘런도 조금은 부담을 놓고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정령왕들과 계약하고자 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