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34
234
최후의 전쟁 (1)
* * *
“흐음.”
끈 하나를 들고 가만히 앉아있던 하메론이 애매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에 내포된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그는 들고 있던 끈을 계속 더듬었다.
그의 눈은 지그시 감겨 있었지만, 그는 지금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그 행동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탁.
끈을 통해 본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을까.
그는 신경질적으로 끈을 바닥에 던졌다.
그러더니 어느 한쪽을 째려보았다.
“당신이 골라서 그런가 왜 이렇게 귀찮은 짓을 많이 하는 것이지 ”
그 말투에서는 짜증과 귀찮음이 잔뜩 묻어났다.
“무엇을 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잘해 주고 있나 보군. 조심해라. 저놈은 특별해. 네가 세우고 있는 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할 수 있는 변수라고.”
그렇게 말한 것은 굵은 쇠사슬에 온몸이 꽁꽁 묶여 있는 사내였다.
아니, 사내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이상했다.
사내 같으면서도 소년인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노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어이, 지금 농담하는 거지 저놈이 내 계획을 막는다고 지금 네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나는 이 세상을 창조한 에레네마저 무릎 꿇게 한 존재라고.”
남녀노소를 구분할 수 없는 존재.
그는 바로 창조주 에레네였다.
그러나 그는 이 세상을 창조한 존재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몰골이었다.
쇠사슬에 온몸이 묶인 채로 무릎을 꿇고 있었고, 몸 곳곳에는 치명상들이 보였다.
정황상 그는 하메론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이곳까지 붙잡혀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저놈은 내가 선택하기 전부터도 내 인과율에서 벗어나던 녀석이었다. 원래 최고의 마법사로 군림했어야 할 녀석이 바닥에서 빌빌거리고 있었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아마, 네가 보는 인과율에서도 많이 벗어날 거야.”
에레네의 조롱에 하메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에레네의 말은 그의 노력을 완전히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러고 보면 너도 저 녀석의 변수에 몇 번 당하지 않았던가 그럴 때마다 네 운이 안 좋았으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겠지.”
“에레네, 너는 지금 내 기분을 망칠 때가 아닐 텐데 ”
하메론도 능글맞은 것으로는 자신이 있었다.
항상 우위에 있는 자리에서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 얼마나 익숙한 일이었던가.
하지만 상대는 이 세상의 창조부터 존재해 왔다.
그런 그에게 능글맞음을 견주는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어차피 네가 나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하잖아. 이거, 아는 사람들끼리 왜 이래 ”
“젠장.”
하메론은 한마디의 욕설과 함께 몸을 돌렸다.
에레네를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마족들을 소환해 냈다.
일정 기간 후부터는 지휘관급 마족들도 소환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중간계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진 에레네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게다가 중간계가 인질인 이상, 이전처럼 무작정 도망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그리고 하메론이 계획한 일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인간의 영혼 50만 개를 대가로 연 마계의 문을 막기 위해 에레네가 모습을 드러냈고, 하메론은 그와의 전투에서 쉽게 승리할 수 있었다.
이대로 그를 죽이고 자신이 창조주의 자리를 꿰차면 목적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지를 잘라도, 몸을 완전히 부숴 버려도, 심지어 몸을 완전히 불태워 버려도 불가능했다.
어떤 수를 써도 그를 죽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그를 이곳에 잡아 둔 것이다.
‘저놈이 믿고 있는 것은 엘런. 분명히 그놈에게 단서가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에레네는 엘런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이렇게 완전히 구속당한 상태에서도 그가 자신과 중간계를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았다.
‘저놈만 잡으면 해답이 나오겠지.’
하메론은 다시 한 번 엘런의 인과율을 읽었다.
그 실을 따라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보고 또 봐도 엘런은 자신에게 패배하는 장면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엘런의 행동은 자신이 본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동·서부를 돌아다니며 연합을 만들었고, 정령왕들과 계약까지 했다.
물론, 정령왕 4명을 상대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자신에게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에레네를 죽일 순 없지만, 다른 방법이 있긴 하지.’
모든 게 계획대로였고 자신은 엘런을 처리하기만 하면 끝이었다.
하지만 무엇인가 찝찝한 느낌이 계속 남아 있었다.
‘인과율에서 벗어난다는 에레네의 말이 매우 신경 쓰인다.’
에레네가 스쳐 지나가면서 남긴 말.
“그는 원래부터가 인과율에서 벗어난 놈이었다.”
처음에는 마지막 손길 덕분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중간계의 인과율에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에레네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어찌 되었든 저놈까지 처리하고 나면, 에레네까지 완전히 처리할 수 있겠지.’
하메론은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눈을 부릅떴다.
지금 당장이라도 엘런을 처리하러 갈 생각이었다.
탁.
그리고 들고 있던 끈을 놓고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 자식 뭐야 ”
그는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재밌는 게 있으면 나도 들려주지 그래 ”
에레네도 하메론의 반응에 큰 관심을 보였다.
지금껏 그가 이 정도로 격한 반응을 보여 준 적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 대신 몇 번이고 인과율을 계속해서 읽었다.
툭.
몇 번이고 확인한 끝에 그는 실을 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잘 떼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이렇게라도 이 황당함을 풀고 싶었다.
“이놈, 죽었다.”
* * *
“포격 명령이 떨어졌다.”
그론리드는 귀에 꽂혀 있는 작은 구슬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들었다.
거기서는 전략관 로미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마법 부대는 대규모 포격을 준비하라.”
그의 명령에 마법 부대원들은 다들 자신의 스태프를 뻗었다.
그러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크어어어어.”
“끼이익!”
올비아 산맥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자 바르다이 왕국의 수도인 발리체.
발리체의 성벽을 뒤로하고 수많은 마족들이 괴성을 내질렀다.
그들은 마법 군단의 마나에 반응하기라도 한 듯, 광기가 어린 모습으로 그들에게 달려들려 했다.
“흩어진다.”
그런 그들을 제어한 것은 일반적인 마족들보다 덩치가 훨씬 더 큰 녀석들이었다.
외관은 마족과 다름없었지만, 그들은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공격할 것 같던 마족들이 그들의 명령에 즉시 복종했다.
오직 정면으로만 전진하던 녀석들이 산개해서 달려들었던 것이다.
“표적이 흩어졌습니다.”
“확실히 지휘관 놈들이 있으니 훨씬 더 전략적으로 싸우는군.”
그들은 마족의 지휘관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등장한 저들은 일반 마족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들이 통제되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프로드군이 사용하던 전략의 대다수가 잘 먹혀들지 않게 되었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하면 된다. 모두 포격을 시작하라.”
슈우우웅.
콰앙!
쩌저저적.
퍼어엉.
이윽고 프로드군의 진영에서 형형색색의 마법들이 뿜어져 나왔다.
마법 부대의 진정한 위용이 이 자리에서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콰아아앙.
쿠웅!
마법 부대가 날린 마법은 마족들이 조금이라도 뭉쳐 있는 곳이면 어디든 상관하지 않고 떨어졌다.
하지만 마족들이 워낙 잘 산개해 있다 보니 마법 자체의 효과는 많이 떨어졌다.
이전이었다면 이 단계에서 마족의 5분의 1은 처리하고도 남았어야 했다.
그에 비해 현재는 마법에 죽은 마족의 수가 8분의 1도 되지 않았다.
“여기서 저희는 뒤로 빠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론리드는 어딘가를 향해 보고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그의 보고를 받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수고하셨소. 모든 마법 부대는 병력을 후퇴시키시오.”
대신 보고에 대한 답변은 귀에 꽂아 놓은 구슬에서 들려왔다.
“모든 병력들은 후퇴한다.”
그론리드의 지시에 따라 마법 부대는 신속히 뒤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제 기병들이 나설 차례다.”
로미우의 목소리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다음 명령을 이어 갔다.
“모두 돌격하라. 기억하라! 이것은 인류를 위한 전쟁이다.”
고센 제국의 기마부대.
그들은 잠자는 것을 제외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생활을 마상에서 한다고 할 정도로 지독한 훈련을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의 가장 선봉장에 있는 것은 제국일성 데이브였다.
그가 검을 높게 치켜 들자 기병들이 움직였다.
두두두두.
말발굽 소리에서도 그 육중함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그것은 비단 올비아 산맥 동쪽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었다.
“에레네께서 말씀하셨다. 마족은 세상의 악이며 내가 너희를 구원할 것이다. 마족과 싸우는 너의 곁에 항상 내가 머물 것이다. 에레네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줄로 믿고 모두 돌격하라.”
올비아 산맥 서쪽에서도 동쪽과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마족들을 향해 마법이 쏟아졌고, 마족이 어느 정도 접근하자 기병들이 나섰다.
두두두두두두두.
제국군만큼 능숙하지는 않았으나 그들의 뒤에는 우수한 신관이 있었다.
이들의 축복 덕에 말을 탄 크루세이더들은 가지고 있는 능력보다 훨씬 더 우월한 기마병이 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올비아 산맥의 북동쪽과 북서쪽에서도 모두 같은 일이 일어났다.
말발굽 소리와 전사들의 함성이 산에 부딪혀 메아리로 돌아왔다.
기마병이 달려가며 피어오르는 흙먼지는 올비아 산맥 어디서라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풀 플레이트 아머로 완전무장한 기마병들은 마족들을 처참하게 짓밟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콰드득, 우직.
뼈가 으스러지고 근육이 뭉개지는 소리가 들렸다.
명색이 마족들일진대 인간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머리통이 박살난 마족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면 그 몸은 순식간에 찢겨져 버렸다.
1만에 가까운 기마병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는 시체를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문자 그대로 무로 돌아간다는 표현이 알맞았다.
그렇게 마족들을 휘젓고 다닌 기마병들의 속도가 점점 줄어갈 때였다.
“기마병들은 후퇴한다. 마법사들은 엄호를 한다.”
로미우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의 목소리는 모든 기마병 지휘관들의 귀에 똑똑히 전달되었다.
그들의 귀에는 그루트가 만든 연락 아티팩트가 꽂혀 있었다.
그것을 통해 로미우는 수십 킬로미터씩 떨어져 있는 병력들의 상황을 파악하고 한 부대처럼 지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마법사의 엄호를 받으며 기병들이 모두 후퇴했다는 이야기가 로미우에게 들려왔다.
“이제 본대가 들어간다. 모든 적을 섬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