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37
237
최후의 전쟁 (4)
하메론의 표정은 보기 좋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것을 본 엘런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속이긴 누가 속였다고 그러지 ”
“네놈은 분명 죽었잖아.”
하메론은 엘런의 죽음을 인식한 후 인과율을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았다.
자기가 생각해도 중간계에서 엘런을 죽일 수 있는 자는 자신밖에 없었다.
그런데 멀쩡하던 엘런이 갑자기 죽었다니.
쉽게 믿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실타래를 뒤지고 뒤져도 엘런에 대한 실마리는 나오지 않았다.
마치 죽은 사람의 인과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정령왕들과 계약할 때 죽어 버린 줄 알았는데.”
엘런의 인과율은 마지막으로 정령왕들과의 계약을 하는 곳에서 끊겼다.
그래서 하메론은 엘런이 강해지겠다고 무리를 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그게 아니라면, 거의 모든 인과율의 실타래를 가지고 있는 하메론이 엘런의 인과율을 찾지 못할 수가 없었다.
“그럼 너는 저 동굴에 틀어박혀서 모든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나 ”
지금까지 의문점이 남아 있던 하메론의 표정이 이제는 완전히 분노로 돌아섰다.
엘런에게 조롱당했다는 사실이 궁금증을 덮어 버린 것이다.
“정말 자신이 신이라도 된 줄 알았나 보군. 그건 아무나 흉내 내는 게 아니라고.”
빠직.
하메론의 인내심이 끊기는 소리는 그곳에 있는 모든 이가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그런 엘런을 걱정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엘런의 활약을 기대하고 있었다.
항상 엘런은 이런 때에 나타나 영웅적인 활약을 해 주던 이가 아니겠는가.
엘런 역시도 그리 다급해 보이지는 않았다.
‘냉정하고 능글맞은 하메론보다는 분노에 휩싸인 하메론이 상대하기 더 쉽겠지.’
현재까지는 엘런이 의도한 상황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엘런이 리버에게 부탁했던 약은 임사 체험이 가능한 약이었다.
즉, 일정 기간 완전히 죽은 것처럼 위장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리버가 처음 이 약의 구상에 대해서 들었을 때, 그의 반응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이 곧바로 욕부터 하고 보았다.
자신은 인간을 살리는 사람인데 죽음으로 가는 약을 만들어 달라고 하니 자신의 자존심에 큰 상처라고 말했다.
하지만 엘런의 눈빛을 보니 그의 마음도 달라졌다.
그것은 안락사라도 하겠다는 눈빛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엘런이 요구한 임사체험 약은 너무나 많은 요건을 충족해야 했다.
먼저 완전히 죽은 것처럼 아무런 생명 반응도 일어나선 안 됐다.
의식을 잃은 상태 정도의 효과라면 하메론이 가진 인과율의 실타래에 보일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하는 시기에 깨어날 수 있어야 했다.
실시간으로 원할 때 깰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지정한 시간에는 일어날 수 있어야 했다.
마지막으로 깨어난 직후에는 별다른 후유증 없이 움직일 수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오히려 직후에 있을 하메론과의 전투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다.
매우 까다로운 조건들이었으며, 이 조건을 맞추는 약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엘런도 알고 있었다.
자신이 말하는 이 약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
그 누구라도 이런 약을 만드는 것은 무리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리버는 희대의 천재라고 불릴 만한 약학자가 맞았다.
“야, 내가 도저히 너를 죽이는 약은 만들 수가 없다. 양심이고 뭐고를 떠나서 네가 말한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게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아예 방법을 바꿨다.”
그 후에 이어진 리버의 설명을 들은 엘런은 손뼉을 쳤다.
“사물에다가 붙여 두는 약이다. 이 약을 사용하면, 일정기간 그 사물과 완전히 동화되어 버리지. 그리고 지정한 날짜가 되면 그때부터는 너도 서서히 의식을 찾고 네가 원할 때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을 거다.”
비록 임사체험을 할 수 있는 약은 아니었으나, 그가 준 것은 모든 면에서 엘런이 찾던 바로 그 약이었다.
그리고 그는 정령왕과 계약을 한 직후, 약을 마시고 검과 동화되었다.
그리고 정령왕들에게도 미리 이처럼 행동해 달라고 말해 놓은 후였다.
그리고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예상대로 하메론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부터는 인과율을 살피기보다는 마족들을 더 많이 소환할 방법에 대해서나 생각하기 바빴다.
그밖에도 그는 에레네를 죽이는 방법을 찾는 등 많은 일을 해 왔다.
그러나 그가 행한 모든 일 중에서 엘런에 대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미 죽은 것이 확실한 그에게 쏟을 시도가 아까웠던 탓이다.
그것이 이렇게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나를 가지고 놀았다 이거군.”
“전략이라고 해 두지.”
“전략이라……. 그렇다면 너를 포함해 이곳에 있는 모두를 죽여 주지. 그 전략이 얼마나 실패한 것인지 보여 주려면 이 수밖에 없겠지.”
하메론은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대답했다. 그러나 엘런의 대답은 여전했다.
“가능하긴 한 건가 ”
“잊었나 바로 이 동굴 안에서 네가 꼴사납게 도망쳤잖아.”
하메론은 아직도 엘런을 그때의 엘런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엘런은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을 통해서 성장했으나, 그 정도로 강해져 봤자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때보다야 훨씬 강해졌지.”
“그래 봤자다. 너는 이미 늦었어! 찢어라.”
부우우욱.
하메론의 명령 한 마디에 공간이 찢어졌다.
이것은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문자적인 표현이었다.
말 그대로 엘런이 있던 공간 하나가 찢어졌다.
그 공간의 틈으로 차원의 균열 같은 것이 보일 지경이었다.
“저게 마법사란 말인가.”
“저것이 공간의 이면이구나.”
그 탄성은 프로드의 마법사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이치에 대해서 누구보다 관심이 많은 자였다.
그랬기에 그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공간의 이면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공간의 이면을 하메론이 직접 뜯어서 보여 준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진리를 유일한 길잡이로 생각하는 마법사들은 자신들의 상황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은 채, 진리를 받아들이며 경탄했다.
그러나 그들과는 달리 엘런은 지금이 전투 중이었다.
저곳에 엘런이 있었다면 공간과 함께 어딘가가 찢겨 나갔음이 틀림없다.
슈슉.
하지만 엘런은 멀쩡했다.
하메론이 신을 이겼다면, 엘런도 이미 신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숙련된 기사의 육안으로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찢어지는 공간을 벗어났다.
“이건 또 어떻게 된 거야 ”
하메론은 그런 엘런의 모습을 보고는 더욱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어느새 원시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된 거냐 ”
“그런 건 네가 알 바가 아닌 것 같은데.”
엘런은 그의 말을 대충 넘기면서 하메론의 왼쪽을 노려보았다.
퍼엉!
그와 동시에 하메론의 왼쪽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공간을 찢는 것만큼이나 강력한 폭발이었다.
“큭.”
미처 거기에 대응하지 못한 하메론은 자신의 왼팔을 감싸 쥐었다.
팔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제법 되는 것으로 보아 꽤 큰 타격을 입은 것 같았다.
‘터져라, 부서져라.’
콰아앙!
쿠우우웅!
엘런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하메론을 향한 원시 마법은 계속되었고, 그는 그 공격을 피하기에 급급했다.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땅이 무너졌다.
하지만 그것들은 신기하게도 절대 연합군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땅이 폭발하면서 튀어나가는 돌조각조차도 신기하리만큼 병사들을 피해 갔다.
마치 누군가의 가호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다들 그것을 신기한 표정으로 보고 있을 뿐이었지 그 누구도 이 모든 것이 엘런 덕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디서 또 이상한 걸 배워 와서는……!”
치지지직.
전투가 시작된 후로 피하기만 하던 하메론이 갑자기 태세를 전환했다.
“사라져라. 뚫어라.”
하메론의 모습이 사라지더니 무엇인가 강력한 기운이 엘런의 복부를 향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엘런은 급하게 몸을 비틀었다.
촤악.
하지만 붉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다.’
자신이 공격의 주도권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하메론은 역시 만만하지 않은 상대였다.
원시 마법의 위력은 단 한 순간도 공격을 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끝까지 상대방을 몰아붙이다가 상대가 제풀에 지치면 그때가 바로 결정을 지을 수 있는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하메론은 그 흐름을 언제든지 끊을 수 있는 상대였다.
‘그렇다면 흐름을 끊지 못하게 더 세분화시켜야 한다.’
“이프리트 님, 트로웰 님, 엘라임 님, 도와주십시오.“
엘런의 말에 세 명의 정령왕들이 반응했다.
하메론을 향해 세 명의 정령왕이 각자 공격을 가한 것이다.
“저, 정령왕들이시다.”
“모두 엘런 공과 계약이 되어 있는 것인가.”
“하지만 트로웰 님은 테오스 님과 계약되어 있지 않았나 ”
“잠깐 동안 계약을 정지했다는 소문을 듣긴 들었네.”
이번에 그 정도로 놀란 것은 바로 엘프들이었다.
정령사인 그들에게 정령왕은 가장 높은 단계의 경지였다.
그런데 엘런은 그런 정령왕을 하나도 아니고 셋이나 계약했다.
어쩌면 그들의 눈에는 마법사들이 보는 9서클의 마법사보다도 더 높은 단계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제피로스, 이시르.”
그리고 엘런은 자신의 정령들도 불러냈다.
한 번에 5개의 정령을 부리는 것을 본 엘프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세계수의 선택을 받기라도 한 것인가 ”
“정말로 경이롭구나.”
“하지만 어쩐지 실피드 님이 보이지 않는데 ”
“그러게나 말이군.”
정령들도 프로드의 마법사들과 비슷했다.
평소에는 그저 고고하기만 한 줄 알았던 그들도 자신들의 관심사 앞에서는 열정적이었다.
화르르륵.
카가가가각!
쐐애액.
그러는 사이 엘런과 정령들의 협공이 시작되었다.
원시 마법 사이사이 들어가는 정령들의 도움 덕에 공격의 간격은 훨씬 더 촘촘해졌다.
“이런 젠장.”
그에 비례해 하메론의 몸에 있는 상처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정령왕들 따위는 말 몇 마디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말은 오롯이 엘런을 막는 데에만 쓰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원래는 귀찮게만 여겨졌어야 할 정려왕들의 공격이 계속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였다.
쩌저적.
하메론의 오른팔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소용없는 짓!”
그는 팔을 한 번 터는 것으로 자신의 오른팔에 붙어 있던 얼음 조각을 떨쳐 냈다.
그 과정에서 어쩐지 공기가 무겁게 느껴지긴 했으나, 그것마저도 불편한 정도였지 위협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엘런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촤악.
공기 중에 흩어진 물이 갑자기 뭉쳐지며 물이 되었다.
사람의 얼굴만 한 물방울이 형성된 지점은 정확히 하메론의 눈앞이었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액체의 공습에 하메론은 시야를 차단당해 버렸다.
콰득.
눈이 가려진 하메론의 발이 땅에 닿기 바로 직전, 땅이 꿈틀거리더니 그의 발목을 붙잡아 버렸다.
“이크.”
화르르륵.
그의 주위로 불꽃이 일어나더니 하메론을 집어삼켰다.
모든 것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그저 불편을 주는 자잘한 공격들이었지만, 그것이 이토록 유기적으로 이어지니 결국 하메론은 위험에 빠지게 되었다.
‘여기서 결정짓는다. 소멸하라.’
엘런은 불에 타고 있는 하메론을 향해 결정타를 날리고자 마음먹었다.
쿠궁.
케니프라에서 사용한 적이 있던 마법이었다.
그때는 어떻게 사용하였는지도 모르고 사용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원리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나의 점.
그 점으로 주위에 있던 모든 것들이 빨려 들어갔다.
점의 크기가 크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 주변에 있는 것은 어떤 것도 가리지 않고 점으로 수렴했다.
점의 주변이라는 것에는 하메론의 몸도 포함되어 있었다.
슈우욱.
구멍을 통해 물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소멸점이 있었던 지점은 아주 잠깐 동안 빈 공간이 되었다.
주변에 있던 병사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저 빈 ‘공간’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였다.
그러다 비로소 엘런이 마족의 수장을 잡았다는 것이 인식되었다.
“후우.”
엘런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겉보기에는 간단했지만, 하나하나가 수백, 수천 번의 계산한 끝에 나온 행동들이었다.
올비아 산맥을 공격하는 시기부터 올라가는 시간, 그리고 하메론이 나타나는 순간까지.
조금 전에 하메론을 잡는 그 순간마저도 모든 것이 엘런이 계산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계산은 인과율을 읽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정확했다.
‘그렇다면…….’
엘런이 승리를 외치기 위해 돌아섰을 때였다.
쿠쿠쿠쿵!
하메론이 은거하던 동굴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엘런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는 길게 늘어진 빛줄기가 보였다.
동굴에서부터 시작된 빛줄기는 소멸점이 있는 곳까지 길게 이어졌다.
엘런이 두 눈을 부릅뜨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소멸점이 있던 곳에서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