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38
238
최후의 전쟁 (5)
* * *
그 엄청난 풍압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눌 수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으아아악!”
단순히 폭발의 여파만으로, 그것도 소멸점에서 끌어당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위에 있는 병사들을 날려 버릴 정도로 강력한 풍압이었다.
“어째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중간계에 저토록 어마어마한 자가 있었다니.”
“이거 우리가 전부 힘을 합친다고 해도 무리일 수도 있겠군.”
“강력한 기운이 몰려오고 있어요!”
마지막 엘라임의 외침에 엘런들은 즉시 그 자리에서 양옆으로 몸을 던졌다.
쿠콰콰콰.
만약 그들이 몸을 던지는 타이밍이 조금만 늦었어도 산산조각이 났을 것이다.
그들이 있던 곳을 지나간 강력한 붉은 촉수가 그렇게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생긴 것은 그저 붉은 색깔의 촉수에 불과했지만 엘런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스쳐도 죽을 수 있다.’
붉은 촉수는 그만큼 강력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그 줄기는 소멸점으로부터 뻗어 나오고 있었다.
그렇다면 촉수의 주인을 굳이 찾을 필요도 없었다.
쿠콰콰콰콰.
또 다른 촉수가 소멸점에서 튀어나왔다.
피를 잔뜩 머금어서일까.
촉수는 인간의 피보다도 더욱 피의 색깔을 품고 있었다.
엘런은 도저히 그 공격을 막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휘어져라. 휘어져라. 휘어져라.’
혹시 몰라 사용해 본 원시 마법도 전혀 먹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의지를 담아도 촉수는 제 목표를 노리고 달려올 뿐이었다.
‘위험하다.’
엘런은 어쩔 수 없이 몸을 옆으로 던졌다.
자신이야 이렇게 피할 수라도 있었지만, 문제는 뒤쪽에 있었다.
콰아아아앙!
“끄아아악.”
병사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자신이 피하면 뒤쪽에 있는 병사들이 그대로 피해를 입어야 한다.
가뜩이나 그들은 하메론의 마법에 걸려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였다.
그저 앉아서 날아오는 촉수를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엘러도 최대한 그런 상황을 막고 싶었지만, 애당초 저 공격은 막을 수가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부욱.
엘런이 사용한 소멸이 그대로 찢겨 나갔다.
찢겨 나갔다는 표현 말고는 다른 서술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메론은 소멸점을 찢고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형상은 완전히 멀쩡했다.
마치 그 안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까지 나에게 당한 공격마저도 모두 치료된 건가 ’
겉으로 드러난 상처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 나타났을 때보다 더욱 멀쩡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건 훨씬 나중에 사용해야 했던 것인데…….”
하메론은 고개를 숙인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얼핏 듣기로는 숨겨 둔 힘이 있었다는 것 같았다.
‘숨겨 놓은 힘이라니……. 도대체 얼마나 큰 힘을 숨겨 뒀기에 힘이 단숨에 2할가량이 늘어나는 거지 ’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대한 차이였다.
이제 겨우 하메론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보란 듯이 한 단계를 더 올라가 버렸다.
“지금 사용하면 안 됐다고.”
그러는 동안에도 하메론의 중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엘런은 그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면서도 먼저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의 실제 힘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로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되레 당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츠츠츠츠.
잠시 후, 그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났고, 정체 모를 기운이 그를 감쌌다.
‘여기서 움직여야 하나 ’
하지만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건 옆에 있던 정령왕들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의 존재와 비슷한 수명을 자랑하는 그들조차도 이 정도의 위협은 느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피드, 그대와 제피로스의 힘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결국 엘런은 움직임을 선택했다.
이대로 기다리고 있는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엘런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제피로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런 그에게서는 남다른 기운이 풍겨 나왔다.
정령왕보다도 더욱 정령에 가까운 것이 있을까.
그 물음에 대한 답변으로 지금의 제피로스가 제격이었다.
고대 정령과 정령왕의 융화. 그것이 엘런이 끝까지 숨겨 놓던 패였다.
그러나 엘런의 행동보다는 하메론의 것이 더 먼저였다.
“내가 저런 놈에게 이 힘을 사용하기 위함이 아니란 말이다!”
그것은 분노에 가득 찬 짐승의 울부짖음이었다.
하메론은 마치 날파리를 내쫓듯이 팔을 휘저었다.
차이점은 그가 날파리처럼 여긴 이들이 정령왕들이라는 것이다.
“크윽!”
그는 그 한 번의 몸짓으로 정령왕들을 날려 버렸다.
엘런 역시 그저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벅찰 지경이었다.
“이미 시작돼 버린 것 막을 수는 없겠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철저하게 짓밟아 주마.”
하메론의 얼굴에서 체념과 동시에 야망이 함께 스쳐 지나갔다.
콰콰콰콰콰.
그가 두 팔을 뻗자 동굴에서는 강둑이 터지기라도 한 것처럼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 기운은 원래 하메론의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저 기운은…… ’
엘런은 단번에 그 기운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너무나도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기운에 놀란 것은 비단 엘런만이 아니었다.
“시, 신성력이다.”
“어째서 신성력이 저기서 나오는 거지 ”
“저 동굴 안에 신관이라도 잡혀 있는 건가 ”
“아니, 어떤 신관도, 심지어 교황님마저도 저토록 강대한 신성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네.”
서부 대륙 연합군들에게서 의문에 가득 찬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동굴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힘은 분명 자신들의 힘인 신성력이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방대한 신성력이라면…… 설마 ’
그중 유일하게 엘런만이 저 동굴 안에 있는 이를 추측할 수 있었다.
‘에레네가 잡혀 있는 것인가 ’
하메론에게 인과율의 실타래를 추가로 빼앗겼다는 이야기를 전해 준 후부터는 자신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에레네.
‘그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아니고, 나타날 수 없었던 것이었구나.’
지금까지는 정예 마족들을 막느라고 그런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저 힘을 막아야 한다.’
엘런은 불과 몇 초에 불과했던 생각을 정리하고는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저 힘이 모두 흡수되기 전에 그를 저지해야만 했다.
지금은 총공세가 아니면 방법이 없었다.
‘제피로스!’
휘이이잉.
하메론에게로 강력한 바람이 불었다.
그것은 그저 강력한 바람만이 아니었다.
윈드 블레이드보다도 날카로운 예기를 품고 있는 칼바람이었다.
다른 마법이나 정령의 공격처럼 바람의 일부가 뭉쳐져서 예기를 품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람의 본질이 칼날처럼 날카로워진 것이었다.
정령왕 실피드와 고대 정령 제피로스가 합쳐진 정령.
그것은 이제 정령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 즉 자연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바람이 엘런의 의지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위를 다른 정령왕들의 공격이 덮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엘런은 정령의 힘 외에도 원시 마법까지 사용해 하메론을 공격했다.
아무리 하메론이라도 이 정도의 공격이라면 더 이상 편하게 앉아 신성력을 흡수할 수 없을 것이다.
원시 마법에 사용되는 마나는 자연에서 끌어다 쓰는 것이 문제없었지만, 정령 친화력이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특히, 정신력이 문제였다.
지금 엘런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마지막 손길의 한도를 한참 벗어난 공격들이었다.
그러나 엘런은 공격의 고삐를 한시도 놓지 않았다.
땅이 뒤집어지고 마그마가 튀어 올랐다.
그 위로는 우박이 떨어지고 주위로는 칼바람이 불었다.
이곳은 지옥보다 더 지옥 같은 곳이었다.
연합군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크크크크크.”
그러나 그 생지옥 속에서도 하메론의 웃음은 끊이지 않았다.
아무런 피해가 없다는 듯 광기에 찬 웃음만이 칼바람 사이를 뚫고 나왔다.
“헉헉.”
순간적으로 많은 정신력을 쏟아부은 탓에 엘런의 몸이 잠깐 휘청거렸다.
그렇게 엘런의 공격이 끝나자 병사들은 드디어 생지옥 속을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지점에 멀쩡한 것은 없었다.
생물, 무생물을 상관하지 않고 무엇이든지 무사할 수 없었다.
그 속에서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 하메론밖에 없었다.
그는 반투명한 막 안에서 지루하다는 눈빛을 한 채 엘런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여전히 동굴에서부터 이어지는 신성력의 줄기는 끊이지 않았다.
엘런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야 너는 모르고 있었나 아무래도 그가 절대 방어에 대해서는 말해 주지 않았나 보군.”
그는 자신이 두르고 있던 막을 두드리며 말했다.
저 보호막이 그 속에서도 멀쩡할 수 있게끔 만들어 준 것 같았다.
“어차피 이 세상도 붕괴될 판국인데 이 정도는 가르쳐 줘도 되겠지 이것은 절대 방어다. 약해진 에레네가 나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이기도 하지. 동시에 내가 그를 죽일 수 없었던 이유이기도 해.”
에레네라는 단어에 엘런보다도 서부 대륙의 연합군들이 더 먼저 반응했다.
“이 절대 방어의 원료는 최초의 물질. 그것은 마나의 근원이기도 하지. 이것을 뚫으려면 에레네가 창조에 사용한 그 최초의 물질이 있어야 한단 말이야. 네 말대로 우리는 창조주가 아닌데 그런 걸 구할 수 있을 리가 있나.”
하메론의 입가에 그려진 비릿한 미소는 이 전쟁의 결말을 말하는 듯했다.
“나도 네가 없어진 동안 많은 연구를 거듭했다. 궁여지책으로 나온 것이 바로 그의 힘을 흡수하는 것이지. 아직 완성되려면 시간이 훨씬 더 필요하지만, 위급한 상황인 만큼 사용할 수밖에.”
“이미 늦은 건가.”
엘런도 체념한 것처럼 말했다.
설마 에레네가 저곳에 잡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의 힘을 모두 흡수한 하메론이라면 원래보다 2배가량 강해졌을 것이다.
‘저놈이 절대 방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내가 이길 방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막막했다.
지난 1년을 잠도 자지 않고 오직 원시 마법 연구에만 매진했다.
모든 것이 하메론을 잡기 위함이었다.
원시 마법 외에도 얼마나 많은 수를 따져 보고 계산했던가.
그리고 다시 만난 하메론은 자신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가 비로소 승리를 확신했을 때, 전황은 또 한 번에 뒤집혔다.
쨍그랑.
하메론이 자신의 보호막을 스스로 깨고 밖으로 나왔다.
정령왕들은 어느새 주변에 쓰러져 있었다.
엘런의 정신력과 정령 친화력이 바닥을 보이는 지금 그들도 역소환 지경까지 몰려 있었다.
“이건 지금 사용할 것이 아니었는데, 너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야 계획이 앞으로 100년은 늦춰지겠어.”
그는 엘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이제 인간보다는 마족에 가깝게 변해 있었다.
드디어 본 모습이 보이는 것이었다.
“내가 꿈꾸는 더 완벽한 세상을 만들려면 훨씬 더 많은 준비가 필요했는데 말이야. 이제 주신이 없어졌으니 차원 붕괴가 시작되겠어.”
에레네가 완전히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는 온전히 하메론에게 흡수당해 버렸다.
주신이 없어졌다는 말은 차원을 유지할 사람이 없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털썩.
털썩.
엘런의 생각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신성력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서부 연합군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힘을 빌려줄 신이 사라졌으니 자신에게 있는 힘도 사라졌다.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다.
쿠쿠쿠.
다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사이 귀를 터뜨릴 것 같은 굉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한 방향에서 들려온다고 보기도 힘들 정도로 전 방위에서 들려왔다.
세상 전체가 울린다면 딱 이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붕괴된 조각을 짜 맞추는 건 힘들겠지만, 일단 내가 살아야 신이 될 테니.”
그렇게 하메론의 목소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