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41
241
결전 (1)
* * *
“하아, 하아.”
한 남성의 매우 가쁜 호흡이 들려왔다.
듣는 사람까지도 함께 급해지는 그런 호흡이었다.
“이제 나 넘어가도 되겠지 ”
“그래, 이 정도면 나도 한은 다 풀렸다.”
“한이 이렇게나 깊었으면서 어떻게 살아간 거지 ”
“말했잖아. 하루하루가 죽을 것만 같았다고.”
내용상으로는 누군가와의 대화였다.
하지만 누군가 그를 보았다면 미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을 했을 것이다.
그의 대화 상대는 바로 그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이 짓도 이제 지친다고.”
“몇 명이나 거쳐 왔다고 그랬지 ”
“모르겠다. 세는 것도 포기했어.”
사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것은 한을 풀은 덕에 지어진 미소인지 아니면 자신의 대화 상대가 한 말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역시 나인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다니는군.”
“닥쳐. 똑같은 사람인 것처럼 말하지 마라.”
“알겠다. 갈 길이 급하다고 하지 않았나 얼른 가 봐야지.”
“아, 맞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자신과의 대화를 끝낸 것인지 사내가 호흡을 고르느라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고마웠다.”
“별말씀을.”
“이번에는 정말로 너의 한을 이루길 바란다. 아니, 내 한이라고 해야 하나 ”
“너의 간절한 기도까지 있었으니 기대는 해 봐도 되겠지 ”
쿠쿠쿠쿵.
지이잉.
커다란 소리와 함께 사내의 머리 위로 빛줄기가 쏟아졌다.
지금까지는 육체에 서려 있는 한 때문에 발동되지 않던 디멘션 텔레포트가 발동된 것이다.
콰아아아.
쏟아지는 빛줄기는 사내의 형상을 넘어 주변에 흩뿌려진 시체들마저 집어삼켰다.
툭.
빛줄기가 사라지고 나자 사내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멈칫.
그러나 몸에 남아 있는 원래의 의식이 재빨리 발을 내디딘 덕에 넘어지는 꼴은 면할 수 있었다.
“음…….”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녀석은 잘 갔으려나 ”
그의 얼굴에는 그리움이 묻어나왔다.
1년 전, 갑자기 자신을 찾아왔던 또 다른 자신.
처음에는 자신의 한을 풀어 주겠다느니, 그래야만 자신이 돌아갈 수 있다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만 해 댔었다.
그러더니 정말로 이렇게 자신의 한을 풀어 주었다.
평생을 기사로 살아온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던 마법의 세계.
그 경이로운 세상을 알려 준 또 다른 자신에게, 태어날 때부터 지고 있었던 한을 풀어 준 자신에게…….
‘감사를 전하며, 너의 한도 꼭 풀어내길.’
스릉.
엘런은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하늘을 향해 진심을 담아 존경을 표하는 경례를 올렸다.
* * *
‘이 정도면 썩 괜찮은 것 같은데 ’
하메론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것은 마치 신이라는 존재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보며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지금 그는 문자 그대로 한눈에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에레네 놈의 권능만 익숙했다면 이까짓 것 금방 끝내 버렸을 텐데.’
하메론의 얼굴에는 짜증이 그대로 드러났다.
엘런의 방해 때문에 세상이 붕괴되어 버린 지 100년도 넘게 지났다.
주신을 잃은 세상은 차원의 단위로 조각조각 나뉘어 버렸고, 하메론은 급하게 조각들을 주워 담았다.
나중에 다시 끼워 맞출 때도 빈 조각이 없을수록 일이 빨라질 것이었다.
그러나 산산조각이 나 버린 조각들을 다 잡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던 만큼 준비가 확실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놓친 조각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거기에 엘런의 조각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놈 때문이라도 비미산에 있는 조각들은 혼신을 힘을 다해 수거했는데, 결국 가장 중요한 엘런의 것만 놓치게 된 것이다.
‘차원의 조각으로 흩어졌으면 내 통제 밖에 있게 된다.’
엘런은 인과율에 변수를 일으킬 수 있는 존재.
그런 그를 지켜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솔직히 말해 걱정은 조금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확신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생긴 걱정이었지, 실제로 다가올 위협 때문은 아니었다.
그가 놓친 조각들은 무차원의 틈을 떠돌다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것은 엘런의 조각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무차원의 틈 속에 떠돌아다니는 수억, 수조 개의 쓰레기 중 하나가 되어 버렸겠지.’
하메론은 그렇게 생각하고 자신이 생각한 세상을 만들어 갔다.
인과율의 실타래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조각을 끼워 맞추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인과율을 읽어 가며 거기에 맞게 차원을 끼워 맞추면 됐다.
마치 그림 맞추기 같은 느낌이었다.
특히 시간이 오래 걸렸던 곳은 바로 빈 조각이 있는 곳이었다.
빈 조각은 인과율을 통해 추측하고 그것을 직접 창조해 내야 한다.
차원을 창조한다.
그야말로 오로지 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에레네의 힘을 어설프게 흡수한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것을 익히는 데 이토록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거의 완성되어 간다.’
그저 만족스러워하던 그의 눈빛은 어느새 환희에 차 있었다.
차원이 붕괴된 탓에 이 세계의 모든 시간이 정지되어 있었지만, 하메론만큼은 예외였다.
그는 흐르는 100년의 세월을 모두 인지하며 살아왔다.
마왕의 현신인 그에게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짧은 시간도 아니었다.
이제 곧 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의 눈가에 즐거움이 가시질 않았다.
‘이제 저곳에 살 주민들만 배치하면 되는 것인가 ’
가장 원초적인 약육강식의 세상이 완성 직전에 놓여 있었다.
이제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살아갈 생명체만 두면 되었다.
그가 창조한 세상에서는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가지면 되었다.
그것을 지킬 힘이 없다면 목숨을 잃으면 된다.
거기에는 어떠한 도덕도 법도 필요 없었다.
인간이고 엘프고 몬스터의 경계도 없었다.
물론, 처음에 그곳에 놓일 생명체들은 혼란에 빠지겠지만 결국 세상에 익숙해지게 될 것이다.
“피와 살육이 판을 치고 모두가 서로를 죽이며 원하는 것은 얻는 세상. 그 대상에는 나까지도 포함될 것이다. 모두가 신이 되기 위해 올라오는 모습이라니…….”
그의 몸이 희열에 차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그의 눈에는 환희가 아니라 광기가 감돌았다.
“이 얼마나 경이로운 세상인가.”
그의 눈에는 감정이 그대로 시시각각 드러났다.
“흐흐, 그럼 첫 번째 존재들을 집어넣어 볼까 ”
원래 성격이 그런 걸까, 아니면 신이 되면 그렇게 되는 걸까.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놀이를 하듯 말했다.
그때, 그의 ‘창조 놀음’에 찬물을 끼얹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듣기만 해도 아주 개 같은 세상이로군.”
빠직.
하메론의 이마에 혈관이 도드라졌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였지만, 그는 이게 누구의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너는 왜 죽지를 않지 ”
그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에게 말했다.
“나도 내가 신기할 정도야. 이 정도면 내가 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군.”
뿌드득.
“내 앞에서 잘도 신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꺼내는군.”
이가 갈리는 소리가 지금 그의 감정 상태를 그대로 보여 줬다.
“글쎄, 너도 신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그건 하메론의 힘이 아니라 에레네의 힘인 거잖아.”
“너 이 새끼!”
그의 화를 담은 마나가 엘런을 향해 날아왔다.
그저 순수한 마나의 공격.
그것은 마법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다만, 그 위력만큼은 엘런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엘런의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그려졌다.
퍼엉.
공기를 찢으며 위력적으로 날아가던 마나가 힘없이 터져 버렸다.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말이 딱 잘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그동안 많은 걸 하고 온 모양이로군 ”
“그럭저럭 많은 일들이 있었지.”
우주보다도 무한한 무차원의 틈을 넘나들며 자신의 차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자신이 꿈꾸던 가장 완벽한 세상에서 탈출한 엘런은 곧바로 자신이 있던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대신 그는 또 다른 자신이 있는 차원으로 넘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다시 언령을 외쳤지만,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는 이내 이유를 찾아낼 수 있었다.
자신이 차원을 넘나들 때마다 특히 그를 끌어당기는 차원이 있었다.
그 육체가 가지고 있던 한이 너무 깊은 탓에 자신의 혼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그 몸에 들어가면 육체가 가지고 있는 한이 풀릴 때까지는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때부터 엘런의 고생길이 시작되었다.
각 차원에는 수많은 자신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생활 형태는 모두가 달랐다.
성공한 마법사가 있는가 하면, 쓸쓸히 죽어 가고 있는 마법 보조사가 있기도 했다.
심지어는 기사인 자신이나, 상인인 자신, 시종인 자신도 있었다.
그들의 몸속에 들어간 엘런은 자신의 마법을 사용할 수 없었다.
그 육체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이용해서 그들의 한을 풀어 주어야 했다.
‘도대체 몇 명이나 거쳐 간 건지, 얼마나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군.’
한 명 한 명 거쳐 간 시간은 천양지차였다.
어떤 이는 쉽게 한을 풀 수도 있었고, 어떤 이는 몇 년이 넘게 걸린 이도 있었다.
가장 길게 걸린 것은 대현자로 있던 엘런이었다.
그는 마도의 극한이라는 깨달음을 얻고 싶어 했다.
그걸 깨우치는 데만 40년이 넘게 걸렸다.
“처음에는 늦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었는데 말이야. 하메론, 너를 보니 안심이 되는구나. 아직 내가 늦지 않았어.”
쐐애애액.
방금 전, 하메론이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공격이었다.
순수한 마나의 덩어리가 공기를 찢어 버리며 하메론에게 날아갔다.
“이놈이……!”
하메론도 정면으로 맞섰다.
콰아아아앙!
서로의 마나가 중간에서 격돌했다.
워낙 강력한 공격들인 탓에 커다란 소리와 함께 주변에는 폭풍이 일어났다.
“큭.”
그리고 신음을 흘린 것은 바로 하메론이었다.
그에 비해 엘런은 멀쩡히 서 있었다.
하메론은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위력이며 분위기가 자신이 알고 있던 그가 아니었다.
“어디서 이런 힘을…….”
“말했잖아,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엘런은 무차원의 틈에서 영겁에 달하는 시간을 보내고 온 것과 다름없었다.
거기서 그가 깨달은 것들만 해도 인간의 한계치를 훨씬 넘어섰다.
그는 이제 대현자의 몸에서 깨달았던 마도의 극한조차도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 정도의 경지가 되어 있었다.
“그 말은 즉, 드디어 너를 이길 차례가 되었다 이거지. 맨날 지는 것도 이젠 지긋지긋하더군.”
“나를 이긴다고 했나 ”
우두두둑.
하메론은 몸을 이리저리 꺾었다.
100년간 같은 자세로 앉아 있었던 탓에 몸이 비명을 질렀다.
“차라리 그 상태로 돌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
엘런도 정신을 집중하기 위해서 눈을 슬며시 감았다.
번뜩.
그리고 이 최후의 전쟁을 마치기 위한 마지막 발걸음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