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42
242
결전 (2)
* * *
무차원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투.
모든 시공이 100년 동안 멈춰 있는 이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은 단 두 개의 개체뿐이었다.
그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부딪혔다.
그들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의 공간을 일그러졌고 커다란 구멍들이 여기저기 생겨났다.
마치 우주에서 별이 생성되는 과정을 재현하는 것 같은 전투였다.
초현실적인 전투.
그들은 한 차원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3차원에서 벗어난 움직임은 그저 상하좌우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한 발 내딛는 것은 곧 다른 차원으로의 도약이었고, 상대는 그것을 추적했다.
밖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3차원에 나타나는 현상이 전부였기에 전황을 파악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러던 그들의 움직임이 동시에 멎었다.
“후우.”
“헉, 허억!”
그들의 상태로 보면 초현실적인 전투는 이미 한쪽으로 기운 것 같았다.
“왜 그래 그 오만한 태도는 어디 가셨나, 하메론 ”
승기를 잡은 것은 엘런 쪽이었다.
비교적 멀끔한 엘런과는 달리 하메론의 몸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나 있었다.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만 하면 이상한 것들을 배워 오는군. 퉷.”
하메론은 입가에 모인 피를 뱉었다.
당연히 엘런을 정도는 이길 것으로 생각했던 그로서도 지금의 상황은 당황스러웠다.
엘런이 원시 마법의 언령을 사용하는 것은 수만 년은 존재한 신처럼 자연스러웠다.
그에 비해 자신은 어린아이에 불과할 정도였다.
‘무차원의 틈에서 어떻게 굴러먹고 왔기에!’
이대로 가다가는 자신의 패배는 자명했다.
그러나 하메론은 크게 걱정스러운 표정은 아니었다.
조금 전의 격돌로 당황하긴 했지만, 하메론은 여전히 자신에 차 있었다.
그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수천 년을 기다려 온 순간이다. 에레네마저 손에 넣은 마당에 고작 네놈 따위에게 방해받을 수는 없지.”
“아직도 입을 놀릴 힘은 남아 있나 보군. 역시나 믿는 구석이 있다는 건가 ”
“네가 아무리 강해졌다고 한들 에레네의 절대 방어를 깰 순 없다.”
이 세상의 물질로는 절대 뚫을 수 없는 절대 방어.
그것이 하메론의 믿는 구석이었다.
“이대로 절대 방어 속에서 세상을 마저 창조하겠다.“
일단 세상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붕괴시키는 것은 훨씬 복잡하다.
주신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리고 엘런은 절대 방어 안에 있는 자신을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에레네에게 했던 것처럼 사로잡는 것까지라도 가능하긴 할까.
‘천마전쟁 때부터 연구한 끝에 만들어 낸 속박술이고 봉인술이었다. 그걸 저런 핏덩어리가 해낼 수 있을 리가 없지.’
이대로 절대 방어 속에서 세상을 완전히 만들어 낸다면 그다음부터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
자신은 그 세상 속 누군가로 숨으면 되는 것이다.
고작 인간에게 꽁무니를 뺀다는 것이 자존심 상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의 목적은 마계보다도 더 마계 같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내 승리다.”
그러나 그 안도감은 엘런의 다음 말로 인해서 곧바로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어디 한번 해 봐.”
엘런은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하메론을 쳐다보았다.
그는 등골을 타고 오르는 전류에 몸을 떨었다.
전투에 미쳐 있는 마족에게도 생존 본능이라는 것이 살아있던 것이다.
그러나 하메론은 생존 본능이 말하는 경고를 무시했다.
본능의 외침 그 이상으로 확신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허풍을 부리는군!”
지잉.
하메론의 몸이 반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였다.
그 안에 들어가서야 그는 비로소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에레네가 살아 돌아와 이 절대 방어를 뚫을 수 있는 물질을 만들지 않는 이상, 이곳은 절대적으로 안전했다.
‘그리고 그 에레네는 바로 내 몸속에 있지.’
하메론은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위협적인 적 앞에서도 이토록 안정적인 것이다.
“또 쥐새끼처럼 거기에 숨었구나.”
엘런은 방어막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에게로 걸어왔다.
“허세를 부리는 꼴이 아주 우습구나. 네가 이 세상에 속한 이상 이곳은 뚫지 못할 텐데 말이다.”
하메론의 목소리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나는 이 안에서 세상을 마저 만들도록 하지. 너도 거기 앉아서 내가 만든 가장 이상적인 세상을 구경하도록 해라.”
지잉.
그의 눈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그것은 인과율을 조절하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그는 장인이 걸작을 만드는 것처럼 심혈을 기울여 조각들을 맞추려 했다.
그 자세에서는 어떤 경건함마저 느껴졌다.
“하메론, 그 안이 정말 안전하다고 생각하나 ”
“대꾸할 가치도 없군. 너는 평생 밖에서 주둥이나 놀리고 있어라.”
조롱의 의미가 가득 담긴 하메론의 웃음이 아직 완벽하게 창조되지 않은 공간으로 뻗어 나갔다.
“이시르, 제피로스.”
엘런의 입에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들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원래는 마땅히 이곳에 있어야 했으나, 차원의 붕괴로 존재가 지워진 이들.
지직.
지지직.
공간 속에 생긴 노이즈.
그 노이즈는 점차 어떤 형상을 띠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시르와 제피로스가 이 미완성된 세상 속에 나타나고 있었다.
게다가 그 형상은 지금까지의 이시르와 제피로스와는 어딘가 달랐다.
바람 그 자체와 같은 느낌을 주는 실피드나 물 그 자체의 느낌인 엘라임, 그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런 정령왕들보다도 더 깊고 강대한 기운을 품고 있었다.
엘런과 하메론을 제외한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이 세상에 당장이라도 바람과 얼음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들의 존재감은 지금 정령왕들을 한참이나 상회했다.
“너…… 너 지금 뭘 한 거지 ”
절대 방어의 공간 속에 있던 하메론의 표정은 아주 압권이었다.
절대로 믿을 수 없는 것을 본 사람의 표정.
인과율을 읽을 수 있으며 자칭 신이라 칭하는 그가 지을 표정은 절대 아니었다.
“어째서 지워졌던 존재가 튀어나오는 거지 ”
차원이 붕괴되며 조각조각 난 개체들은 그 존재가 사라져 버렸다.
거기에는 정령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세상 속에서 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주신의 힘을 가지고 있는 하메론밖에 없었다.
“그야 내가 존재하게 했으니까.”
엘런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숨을 쉰 것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기적이라 칭하기도 힘든 일을 해낸 것이다.
“그딴 걸 한낱 인간에 불과한 네가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메론의 눈은 여전히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창조라는 것은 창조주를 몸에 담고 있는 자신에게도 아직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 인간 놈이 그걸 너무나 쉽게 해내는 걸 쉽게 인정할 수는 없었다.
“너를 죽이는 데 다른 존재는 더 필요 없겠지.”
하지만 엘런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진리를 담고 있을 것 같은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제 할 말만 할 뿐이었다.
스스스.
엘런의 의지가 이시르와 제피로스에게 전해지자 그들도 거기에 반응했다.
그들의 몸이 점차 주변으로 스며들어 갔다.
그것은 마치 공기 중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콰앙!
그리고 이내 하메론의 절대 방어에서 커다란 충격음이 들렸다.
방어막 안에 있는 하메론 마저도 골이 울리는 커다란 충격음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절대 방어는 이전과 똑같았다.
여전히 자신의 절대성을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엘런과 하메론 사이를 차단했다.
“큭큭큭!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것을 뚫진 못하는군.”
하메론은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던 불안감을 저 멀리 치워 버렸다.
직접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
저 알 수 없는 정령의 조합도 이 방어막을 뚫지 못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아니.”
하지만 그의 대답에도 엘런은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마치 이 상황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간을 본 거다.”
콰아아앙!
이번에는 더 큰 충격음이 들렸다.
머릿속까지 파고드는 소리에 하메론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 이유는 엘런의 말 때문이었다.
“됐군.”
엘런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그것은 무엇인가 대 발견을 한 학자의 표정이었다.
‘창조.’
엘런은 소리를 내지 않고 입을 움직였다.
“뭣이 ”
그의 입 모양을 읽은 하메론의 입에서 괴성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지금 그는 목소리가 이상한 걸 생각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저 자식이 정말로 창조 마법을 사용한다는 것인가 ’
그런 하메론의 물음은 이어지는 주변 환경의 변화로 답변이 되었다.
파직!
파지지직.
파지직.
이시르와 제피로스가 스며든 공간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어났다.
처음에는 작은 스파크 정도로 보였다.
전기 계열 마법을 쓰면 주변에 생겨나는 스파크, 딱 그 정도였다.
그러나 그 스파크는 점점 더 강해지더니 어느새 번개라도 불러낼 것 같은 정도의 위력을 뿜어냈다.
엘런이 노린 것은 번개에 가까운 스파크가 아니었다.
번개가 찢어 놓은 공간의 틈 안에서는 또 다른 세상이 보였다.
언뜻 보이는 그 세상에는 이곳과는 달리 세상에 있어야 할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즉, 이전에 바로 이 세계와 비슷한 형태였다.
단, 한 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틈 안의 세계가 바로 태초의 세계라는 것이다.
‘나와라.’
엘런은 그 공간을 향해 명령했다.
의식을 통한 명령 전달.
그리고 공간은 엘런의 명령에 응답했다.
파바바바밧.
얼음과 바람이 섞여 있는 형태의 칼날.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그 물질들이 벌어진 틈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이 에레네가 똑같은 물질을 만들지 않는 이상 절대 뚫리지 않을 거라고 했나 ”
“그, 그건…….”
엘런의 목소리가 이처럼 섬뜩하게 들린 적이 있을까.
지금까지 자신이 조롱하면 조롱했지 단 한 번도 그가 이토록 위협적으로 다가온 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그 물질, 내가 만들어 주지.”
씨익.
하메론의 눈에는 그것이 악마의 미소처럼 보였다.
애초에 마왕의 현신인 자신이 악마의 미소를 떠올리는 것이 웃기기도 했다.
하지만 절대 악인 그조차도 두려워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주신조차도 동등하게 여기거나 오히려 하대했던 그가 두려워하는 것.
자신조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이 없는 그것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잠깐만! 내가 거래를 제안하겠어. 너도 신이 되고 싶지 않나 ”
절대 방어 안에 들어가 있는 그는 매우 초라해 보였다.
그만큼 절실해 보이기도 했다.
“닥쳐.”
피슛!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하메론의 절대 방어에 칼날들이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