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6
26
불멸자와의 거래 (1)
또옥.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계단 안쪽으로는 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았다.
뚜벅뚜벅.
그 어둠 속에서 환한 불빛 하나가 보였다.
주위가 어두운 탓에 빛조차 멀리 퍼져 나가지 못했다.
사용자의 주위만 밝혀 주는 것이 한계였다.
“후욱, 후욱”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엘런에게서 이상한 숨소리가 들렸다. 공기가 어딘가에 걸러지며 들어가는 소리였다.
‘아무래도 청결복은 숨쉬기가 불편하단 말이지.’
엘런은 보르단 상회에서 가져온 전신 청결복과 가면을 쓰고 있었다.
하메론이 정복한 이 두 번째 던전은 해리포드 던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하지만 그보다 사람들에게 더 잘 알려진 이름은 시궁창이었다.
이름에 걸맞게, 보통 사람이라면 참을 수 없을 만큼의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엘런도 가면이 없었더라면 당장 던전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엘런은 라이트 불빛에 의지해서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쿠워어.”
계단 아래쪽에서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첫 번째 층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타닥.
예상대로 얼마 있지 않아 커다란 공동이 나왔다.
그곳에는 구울이 득실대고 있었다.
하메론의 자서전에는 해리포드 던전에 대한 설명도 있었다.
엘런은 이 던전의 구조나 특징, 출현하는 몬스터까지 모두 알고 있었다.
“크륵.”
공동에 있는 구울들도 오랜만에 먹을 것이 들어와서 군침을 흘리는 것 같았다.
엘런은 그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
던전의 구조나 몬스터의 행동이 책의 설명과 너무나도 일치했기 때문이다.
그 설명을 토대로 미리 전술을 짠 만큼 설명이 다르면 곤란할 터였다.
‘한 번에 처리해야 마나를 아끼지. 디그.’
구울의 발밑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하지만 1서클의 디그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컸다.
엘런은 무영창의 능력으로 디그를 네 번 겹쳐서 쓴 것이었다.
“쿠워어어!”
하급 언데드인 구울은 통으로 불태워 버리지 않는 이상 계속 살아 있는 성가신 놈이었다.
물론 그 회복력을 제외하고는 어떤 장점도 없었다.
움직임조차 느려 터진 구울들은 엘런이 만든 구덩이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누군가 이 구덩이를 본다면 구역질이 나올 수도 있을 만큼 많은 구울들이 한곳에 모였다.
그것들은 서로를 짓밟으면서 밖으로 빠져나오려 했다.
‘내가 하고도 징그러워서 못 봐주겠군. 파이어볼.’
엘런이 구덩이 안으로 2개의 파이어볼을 쐈다.
화르륵!
“크에에에!”
한 녀석에게 적중한 파이어볼은 순식간에 옆으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구울은 자기 몸이 불타는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구덩이를 빠져나오려고 아등바등할 뿐이었다.
‘정말 역하군.’
악취에 시체가 타는 냄새까지 더해졌다.
가면의 정화 기능도 넘어선 것 같았다.
그의 코로 악취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엘런은 얼른 공동에서 벗어났다.
공동 반대편엔 다음 층으로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다음 층은 좀비였나?’
구울보다 조금 더 발전한 언데드 몬스터였다.
큰 차이는 없고 신체 능력이 더 높은 정도였다.
엘런은 좀비까지는 디그와 파이어볼로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갔다.
“크르륵!”
다음 층도 책의 설명과 일치하는 곳이었다.
엘런은 전과 같은 방법으로 다음 층을 돌파했다.
원래 던전을 정복할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나가는 것이 정석이었다.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생에서 엘런은 그런 레오나드를 말리지 못해 큰 변을 당했다.
‘지금은 완벽한 정보가 있으니까.’
던전에 대한 모든 트랩과 몬스터를 알고 있었다.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정보에 확신이 선 엘런은 계단도 성큼성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는 몇 개의 층을 파죽지세로 돌파했다.
파스스.
다음 층으로 내려가기 위해 계단을 밟은 엘런은 순간 멈칫했다.
계단이 부식된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의 다 왔나 보군.’
엘런은 가면과 함께 가지고 온 전신 청결복을 꺼내 입었다.
지금까지는 움직임이 불편해서 입지 않았지만, 이제부터는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사실 해리포드 던전의 위험 요인은 몬스터가 아니었다.
이곳은 오히려 하급 언데드만 우글거리는 던전이었다.
중간에 중급 언데드도 껴 있긴 했지만 다른 던전에 비해 훨씬 낮은 난이도였다.
이 던전이 위험도가 높아진 까닭은 바로 다음 층부터 있을 안개 때문이었다.
그 안개는 생물체라면 피부에 닿자마자 죽어 버리는 치명적인 독무였다.
하메론이 던전을 정복하러 왔을 때 함께 온 왕궁 사람들이 모두 이 독무에 당했다.
그는 회복 마법과 독 저항 마법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치명적인 독은 하메론이 손을 쓸 새도 없이 사람들을 죽여 버렸다.
왕궁 사람들 중에도 마법사는 있었지만, 높은 수준의 독 저항 마법과 회복 마법을 동시에 쓰기에는 마나량이 부족했다.
‘역시 불편하군. 마지막으로 마법진을 발동시켜야겠어.’
물론 이 독무는 30년 전에야 치명적인 것이었다.
하메론은 이 사건 이후 독자적으로 독 저항 마법을 고안해 냈다.
기존의 저항 마법보다 훨씬 강력했고 마나 소모량도 적었다.
3서클의 엘런도 거뜬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기이잉.
엘런은 미리 새겨 둔 마법진을 발동시켰다.
물론 마법진 없이 자신의 신체에 바로 걸어도 되었다.
하지만 매개체에 마법진을 그려 두면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마나를 아끼려는 오래된 습관이었다.
‘그럼 가 볼까?’
마법이 발동되는 것을 확인한 엘런은 다음 층으로 내려갔다.
아무리 보호 마법을 걸었다지만 치명적인 독무가 있는 곳이었다.
전과는 달리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스으으.
계단을 내려갈수록 독무는 짙어졌다.
이곳부터는 몬스터가 나오지도 않았다.
언데드 몬스터라도 이런 독성에서는 몸이 남아나질 않을 것이었다.
엘런은 독무가 그의 몸을 짓누르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나아갔다. 얼마 후에는 독무가 너무 짙어 손을 휘저으며 걸어가야 할 정도였다.
‘언제까지 들어가야 하는 거야?’
중간중간에 마법진을 새로 새겨가며 계단을 내려가자 커다란 문이 보였다.
‘드디어 다 왔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미쳤을 수도 있겠어.’
초록색 안개 속에서 겨우 방향을 잡아 가며 걸어가는 것은 생각보다 더 끔찍한 일이었다.
끼이익.
문에 손을 갖다 대자 의외로 쉽게 열렸다.
‘경량화 마법이 걸려 있는 건가?’
더욱 놀라운 것은 밖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독무가 문 안쪽으로는 전혀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마치 유리벽에 막혀 있는 것 같았다.
‘차단 마법까지. 책에서 읽은 대로 엄청나군.’
엘런은 이 던전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를 떠올리자 엘런은 몸이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잘도 이곳까지 들어왔구나. 독무를 보고도 기어이 여기까지 들어오고 싶더냐?”
갑자기 쇠를 긁는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나오셨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