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28
28
불멸자와의 거래 (3)
엘런은 리치에게 자신이 겪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저는 어떤 마법사의 계략으로 죽기 직전의 순간까지 간 적이 있습니다. 그의 마법에 당한 저는 의식은 점점 흐려져 갔고 죽음을 직감했습니다. 그 순간 제 눈앞에 커다랗고 검은 문이 나타났습니다.”
검은 문이라는 말에 리치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엘런은 리치가 그 문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검은 문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가까이 가자 그 거대한 문이 점차 열렸습니다. 문 안쪽에서는 빛이 새어 나왔었는데, 동시에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 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저는 동료의 도움으로 간신히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주문의 영창을 생략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진리의 문이 실재했던 것인가? 마도의 극한에 도달하게 되면 비로소 볼 수 있는 문이 있지. 고대 사람들은 그것을 진리의 문이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네놈이 본 것이 그것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진리의 문?”
엘런이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었다.
일전에 그는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었다.
하지만 그 어떤 책에도 그런 문에 대한 설명은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나도 리치가 되어 몇십 년을 마법만 연구하며 알아낸 사실이지. 진리의 문은 이단으로 취급되어 관련 문서를 찾아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엘런이 살던 때도 왕실이나 마탑에 의해 특정 분야의 마법 서적을 불태우는 경우가 있었다. 진리의 문에 대한 책을 찾아볼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랬었군요. 마탑에서 통제했으면 찾아볼 수 없었을 만합니다. 하여튼 저는 그 진리의 문 덕분에 이 능력을 얻었습니다. 문제는 부족한 마나량입니다. 주문 없이 마법을 쓸 수 있어도 마나량이 부족하니 그 능력을 전부 발휘하지는 못했습니다.”
엘런의 말에 리치는 껄껄 웃어 댔다.
“역사상 그 누구도 닿지 못한 경지에 오른 놈의 불평이로구나. 물론 마나량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엘릭서 같은 것이 있다. 하지만 네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 테지? 획기적으로 마나량을 올릴 방법이 하나 있다.”
엘런은 그 말에 작게 감탄했다.
지금은 서로가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어 거래를 하는 중이었다.
물론 리치의 제안은 당장이라도 그 방법에 대해 추궁하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용병 시절부터 거래 중에는 감정의 전부를 보여 주지 않았다.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엘런은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엘프의 숲에 대해 알고 있나?”
“출입 금지 지역인 동쪽 숲 말입니까?”
고대에 엘프가 그곳에 살았다고 전해지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은 지역이었다.
그 숲은 울창한 나무에 가려 햇빛이 한 줌도 들어오지 않아 대낮에도 어두컴컴했다.
무엇보다 그곳에서는 마법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식의 계산에 방해를 받기 때문이었다.
왕실은 위험성 때문에 숲 전체를 출입 금지 지역으로 지정했다.
“그렇지, 그 엘프의 숲에는 지성의 탑이라는 것이 있지. 그곳에 가면 너의 마법적 재능을 단번에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성의 탑?’
엘프는 마법보다 정령술을 다루는 존재들이었다.
마법에만 몰두한 엘런은 그들에 대해서 아주 기초적인 것들만 알고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마법적 재능을 올려 주는 탑이 있다면 그것을 엘런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 무엇보다 간절하게 원하지 않았던가.
“그런 것이 있다면 어째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까? 귀족 놈들이 알았다면 기를 쓰고 그곳에 갔을 텐데.”
“철저하게 숨겨져 있기 때문이지. 나도 그곳을 발견한 건 우연이었으니까 말이야.”
“우연이라면……?”
“나는 수련을 위해 대륙을 누비던 중 엘프의 숲에 간 적이 있었지. 당시에도 그곳은 출입 금지였지만 나는 궁정 마법사 지위를 이용하여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숲 안은 예상보다 훨씬 위험한 곳이었어. 얼마 지나지 않아 방향감이나 시간 감각을 상실했다. 마법까지 사용할 수 없으니 길을 잃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 탑을 발견하게 됐지. 놀랍게도 그 탑에는 수백 년 전 사라졌다고 알려진 엘프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엘프? 그들이 아직까지 있단 말입니까?”
리치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엘프들이 살던 시절의 기록이 있긴 했지만, 그들은 어디까지나 전설 속의 등장인물이었다.
“나 또한 엘프를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들은 마법보다는 정령술을 다룬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들의 마법은 인간보다 훨씬 진보되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정체되어 있던 내 마법적 재능을 깨울 수 있었다.”
과거뿐 아니라 현재까지 엘런의 한계가 된 마법적 재능.
그것을 한 번에 끌어올릴 수 있는 곳이 실제로 존재했던 것이다.
“지성의 탑이라……. 당신의 말대로라면 저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겠군요. 그 탑은 숲 어디에 있습니까?”
“위치는 알려 줄 수 있지만 원래 그곳은 자격이 있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때 우연히 내가 들어가게 된 것은 당시 결계를 조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자격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엘프로드의 인정을 받은 본인이 아니라면 탑에 들어갈 수 없지.”
엘런의 머리가 재빠르게 굴러갔다.
리치가 있어야만 지성의 탑에 들어갈 수 있다.
본인을 동행해야 했다.
하지만 리치를 밖으로 데리고 다녔다가는 흑마법사로 잡혀 가기 딱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제가 당신을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에 리치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라. 애송이, 내가 너를 그곳에 데려가 주겠다. 너 또한 내 염원을 이뤄 주겠느냐?”
리치는 거래 조건을 반복했다.
같은 내용이었지만 그 말투에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약속하죠.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염원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엘런의 말에 리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고대어인가? 나도 그쪽으로 많이 공부했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걸.’
리치가 말하는 주문은 상당한 수준의 고대어로 되어 있었다.
고대어 주문은 그 매개 효과가 좋아 효율적으로 마법을 구현할 수 있었다.
피이잉.
리치의 몸에서 검은 마나가 빠져나왔다.
그 마나는 하나같이 리치의 가슴 앞에 모여들었다.
검은 구의 형태로 모인 마나가 새로운 형태를 띠기 시작했다.
‘목걸이?’
검은 구체는 이윽고 작은 목걸이가 되었다.
“이것을 차고 다녀라.”
목걸이에서 리치의 목소리가 들리자 엘런은 깜짝 놀랐다.
“이곳에 스스로 봉인되신 겁니까?”
“그런 셈이지. 이러면 밖을 돌아다니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우우웅.
엘런이 목걸이에 손을 대자 검은빛이 그를 휩쌌다.
-빨리 안 차고 뭐 하고 있느냐?
갑자기 머릿속에서 리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귀로 들리는 것과는 달랐다.
-놀랄 것 없다. 너와 계약된 것이니.
“형태를 변환하는 마법은 8서클의 마법이 아닙니까? 당신은 8서클의 경지에 오른 것입니까?”
인간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가 8서클이었다.
즉 이 리치는 인간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말이었다.
-아쉽게도 나는 바로 그 밑이다. 물론 이 마법은 8서클이지만 고대어의 힘을 빌려 사용했지.
“그런 것이군요. 하지만 아카데미에는 아티팩트는 착용할 수가 없습니다만.”
아카데미 학생은 표면적 공평성을 위해 아티팩트의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물론 귀족들의 편의나 미용을 위한 아티팩트는 공공연히 허용됐다.
하지만 엘런은 평민이었다.
-걱정 말아라, 웬만한 애송이들은 절대 눈치채지 못할 테니.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름이 무엇입니까? 앞으로 함께 가는데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상하지 않을까요? 저는 엘런입니다.”
엘런은 목걸이를 차며 물었다.
-이름이라는 것을 쓰는 것도 오랜만이군. 프로뱅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프로뱅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