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3
3
마법보조사 앨런 (2)
“에반이랑 네이슨이 위치를 바꿔서 움직이자. 생각한 것보다 통로가 좁네.”
20년간 마법보조사로서 많은 던전을 클리어한 엘런은 한마디로 전문가였다.
그는 던전을 돌 때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많은 전술과 진영을 연구했다.
덕분에 그가 함께하는 임무는 사상자가 한 명도 없는 경우가 많았다.
“알겠어.”
용병들도 당연하다는 듯 엘런의 지시를 따랐다.
그들 사이에서도 엘런의 실력은 유명했다.
던전은 고수익이었지만 그만큼 위험도가 컸다.
하지만 엘런이 함께하면 그 위험은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원래대로 간다.”
불만이 잔뜩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오나드는 던전에 들어왔을 때부터 모두가 엘런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모두가 저 보조사 새끼 말을 따르고 있잖아.’
10대의 나이에 마탑에 들어간 뛰어난 마법사인 자신을 무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혹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까?”
“누구 맘대로 진영을 바꾸는 거지? 이 파티의 리더는 마법사인 나야. 모든 판단은 내가 한다.”
엘런은 짜증이 치밀었다.
던전의 성공은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있었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진영을 만드는 것은 던전의 성공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저놈의 마법사는 그렇게 중요한 것을 그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트집을 잡고 있었다.
물론 마법사들과 함께 임무를 하다 보면 종종 이런 트집을 잡는 인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절부터 전혀 능력은 없고 오직 마나 감응력만으로 마탑에 들어간 저 녀석은 특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통로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네이슨은 대검을 사용하기 때문에 전방에 서면 다른 용병들의 움직임이 제한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욕을 한 바가지 부어 주고 싶었지만, 상대는 마법사였다.
이 일을 계속하고 다니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저 친구가 서도 될 것 같은데?”
“하지만…….”
“언제부터 보조사가 마법사한테 말대꾸를 할 수 있었지?”
참을 수밖에 없었다. 20년간 던전을 돌아다녔고 던전에 대해 연구했어도, 또 눈앞에 있는 이 녀석이 지랄 맞아도 참아야 했다.
“죄송합니다.”
“네가 아카데미 동기라서 봐주는 거다. 앞으로는 조심해. 이제 움직이자고.”
“예.”
이 모습을 보고 있던 용병들도 분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쨌든 마법사가 바꾸지 말라고 했으니 바꾸지 않아야 했고, 움직이자고 했으니 움직여야 했다.
“어디에도 존재하는 마나의 흐름을 느끼나니, 그대는 나의 오감이 되어 반응하라. 디텍트.”
엘런의 마나가 앞으로 퍼져 나갔다.
‘이 정도면 트롤이군. 3마리다.’
“앞쪽에 트롤 3마리가 있습니다.”
“트롤 정도야 우습지. 얼른 통과하자고.”
던전을 돌 때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것이 정석이었다.
몬스터보다 더 위험한 것이 함정이었다. 하지만 그걸 말한다고 알아들을 놈이 아니었다.
‘내가 잘 파악하는 수밖에.’
레오나드가 눈치채지 못하게 한숨을 쉰 엘런은 앞으로 나아갔다.
“화염이여, 꿰뚫어라. 파이어 랜스.”
화르륵!
“쿠워어!”
쿵!
거대한 트롤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저렇게 짧은 영창으로도 파이어 랜스 3개를 동시에 쓰는 걸 보면 재능이 무섭긴 무섭구나.’
성격은 어떨지 몰라도 레오나드의 재능은 진짜였다.
실제로 주문을 영창하는 동안 마법사를 지키기 위해 있는 용병들은 전투를 한 번도 벌이지 않았다.
‘저 정도면 전략 따위는 씹어도 되긴 하겠다.’
한 명이라도 살려 보겠다고 몇 달을 방구석에서 전략을 연구한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레오나드와 그의 제자는 진영을 무시하고 앞서 나갔다.
“레오나드 님, 어떤 함정이 있을지 모릅니다. 제가 확인해 볼 테니 쉬고 계십시오.”
“어떻게 3일 내내 같은 소리를 하냐? 내가 던전을 몇 번 안 돌아보긴 했어도 고작 함정 따위에 걸려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보조사 놈들은 하나같이 겁이 많군.”
“스승님, 실력이 없으면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한 번 걸리면 다 죽는 거라고! 던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 좀 닥치고 있어라!’
엘런은 속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물론 직접적으로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디텍트 주문을 영창하려 했다.
그때였다.
퍼엉!
귀를 찢을 듯한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엄청난 열기가 덮쳐 왔다.
“보호해다오, 실드!”
짧은 영창 탓에 실드 마법이 제대로 발현되지 않았다.
군데군데 뚫려 있는 구멍으로 열기가 들어왔다.
쨍그랑!
제대로 발현되지 않은 실드가 이내 깨져 버렸다.
“쿨럭!”
엘런은 충격 탓에 피를 토했다.
‘어떻게 된 거지?’
엘런은 겨우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 버린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더 앞쪽을 보자 그곳에는 놀란 눈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는 레오나드가 보였다.
“이, 이, 이 마법사 새끼가! 내가 조심해야 한다고 했잖아!”
그 모습에 순간 이성을 잃은 엘런은 소리를 질렀다.
“그, 그게…….”
자신의 발밑에 그려져 있는 마법진을 내려다본 레오나드는 말을 더듬었다.
방금 전, 발을 내딛는 순간 발동된 마법진은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자신은 실드를 펼쳐서 살아남았지만 아직 마법에 미숙했던 마틴은 미처 실드를 펼치지 못했다.
“어, 어떡하지?”
그 말을 들은 엘런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저걸 말이라고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겠네, 진짜!”
다시 피를 한 움큼 토한 엘런은 몸을 일으켰다.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 오던 동료들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하지만 이곳에서 슬퍼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폭발 소리를 들은 몬스터들이 언제 몰려올지 몰랐다.
“이번 임무는 실패야.”
“실패?”
“그래, 실패. 얼른 여기서 벗어나야 해.”
레오나드는 그답지 않게 눈을 끔벅이더니 물었다.
“자, 잠깐. 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그, 그래, 너! 네가 경력이 많잖아. 어떻게든 해 봐.”
엘런은 미간을 찌푸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레오나드, 지금 네가 저지른 상황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그, 그치만…….”
레오나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대로는 돌아갈 수는 없었다.
얼마 안 있어 교수 임용이 있다.
여기서 자신이 실수한 것들이 드러난다면 교수 임용이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분명히 날아갈 것이다.
용병들 따위가 죽은 것 정도야 상관없지만 문제는 마틴이었다.
‘제자 따위야 얼마든지 다시 만들면 되는 거지만.’
마탑에 오른 마법사가 스승의 불찰로 인해 죽었다. 이 부분은 분명히 교수 임용에 치명적일 것이었다.
‘저 녀석만 없어지면 된다.’
저 녀석만 없으면 보조사의 실수로 사고를 당했다고 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넘길 수 있을 것이었다.
“베어 버려라, 윈드커터.”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레오나드는 지체 없이 마법을 날렸다.
콰앙!
엘런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마법을 보고는 몸을 던져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너만 없으면 아무도 몰라. 불타올라라, 버닝핸드.”
쿠쿠쿵!
엘런은 얼른 몸을 일으켜 불덩이를 피했다. 목표를 잃은 불타는 손은 바닥과 충돌해 폭발을 일으켰다.
스으윽.
폭발 탓에 둘 사이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저 새끼 진짜 미친 건가?’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엘런은 무작정 도망쳤다.
멀쩡한 상태로 싸워도 상대가 되지 않는데 지금 상태로는 죽을 게 뻔했다.
화르륵!
불길이 그런 엘런의 뒤를 쫓았다.
* * *
얼마나 뛰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마법을 피해 가며 앞으로 달려가기만 했다. 이미 내상을 입은 몸은 점점 둔해져만 갔다.
피융!
등골이 싸늘해지는 느낌과 함께 자신의 가슴팍을 꿰뚫고 지나가는 빛줄기가 보였다.
‘어어.’
순간 세상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쿠웅!
몸이 바닥과 부딪치며 커다란 충격이 전해졌다. 곧바로 가슴에서 불에 덴 것 같은 고통이 올라왔다.
“허억, 허억!”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폐가 뚫린 것 같았다.
“베어 버려라, 윈드 커터.”
흐릿해져 가는 의식 사이로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휘우웅.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무엇인가 자신의 팔을 베고 지나갔다.
비명조차 지를 힘도 없었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자신의 오른팔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모든 게 억울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평민의 아들로 태어나 마법사가 되겠다며 아카데미에 입학한 것부터였을까.
자신의 재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도 노력하면 그들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부터였을까.
자신이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이 생각났다.
어떻게든 마법이라는 것을 써 보겠다며 수식을 머릿속에 때려 넣었다.
보조사로 일하며 번 돈의 대부분은 책을 구하는 데 사용했다.
덕분에 영창이 길긴 하지만 3서클 마법까지 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마나량 탓에 번번이 마탑 시험에 떨어졌다.
그러는 사이 아카데미 동기들은 마법사가 되었다.
그때쯤 현실을 알아 가기 시작했다.
노력으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을 인정하기 싫었다.
그걸 인정하게 되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눈앞이 점점 흐려져 갔다.
내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존재가 나를 죽이기 위해 다가온다.
‘개새끼.’
레오나드가 원망스러웠다.
처음부터 그가 자신의 말을 들었다면 이런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때늦은 후회만 들었다.
기이잉.
그때 엘런의 눈앞에서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쿠쿠쿠!
주위가 진동하더니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구멍의 안쪽은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저게 뭐지?’
마법으로 생성된 것은 분명한데 왜 갑자기 생겨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저기로 떨어지면 죽을까?’
죽을 것이 확실했다.
어디까지인지 모를 바닥에 떨어지는 순간, 자신의 몸은 산산조각 날 것이었다.
레오나드도 당황한 것인지 발걸음 소리가 멈췄다.
고개를 돌려 그를 보려 했지만 시야가 흐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계였다.
죽음의 문턱이라는 것에 서 있는 것 같았다.
‘마법사 새끼에게 죽어 줄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사에게 죽는 것은 너무 억울했다.
‘차라리 아무도 찾지 못할 정도로 깊은 구덩이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는 것이 더 낫다.’
타앗!
엘런은 즉시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