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31
31
내가 무릎을 꿇었던 이유 (1)
“피고인 엘런은 흑마법을 연구한 증거가 확실한 바 에니스 유배를 선고한다.”
마탑의 재판장이 판사 봉을 세 차례 두드렸다.
하루 전, 엘런은 난생처음으로 마탑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마탑에 들어온 이유가 흑마법이라는 혐의에 대해 재판받기 위해서였다.
과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간 지 3일 만에 재판 날짜가 잡혔다.
바로 그다음 날 마탑으로 옮겨졌고 지금 재판을 받았다.
‘그놈들이 손을 쓰고 있는 것이겠지?’
왕실을 제외한다면 마탑에 이토록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곳은…….
‘체들턴 가문 녀석들이지.’
분명 제시되는 증거들은 하나같이 허술하고 작위적이었다.
하지만 판사들은 그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여기에 엘런은 아무 이의도 제시하지 않았다.
-그리고 혹여나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로스에 있는 너의 부모에게 피해가 가지 않길 바란다면 말이야.
유진의 이 협박 때문이기도 했다.
과거에 자신을 위해서 뒷바라지를 하던 부모님이었다.
하지만 아무런 보상을 받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 이번 생에서만큼은 그분들을 지켜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에니스를 꼭 가야만 할 이유가 생겼거든.’
비단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엘런은 마탑으로 이송되고 나서 프로뱅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흑마법사로 판결받으면 어디로 이송되는 거지?
“항의한다면 한 달 정도 여기서 조사받다가 풀려날 겁니다. 아무리 체들턴이 뒤에서 밀어준다고 해도 증거 자체가 너무 빈약해요. 항의하지 않으면 에니스로 가겠죠.”
-에니스? 거기가 흑마법의 유배지가 되었구나.
“원래는 마탑 흑마법 연구소가 있던 곳이었는데 탄압 이후에 유배지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프로뱅 님도 흑마법을 하셨으니 그곳에 계셨습니까?”
-그렇지. 에니스에는 내 연구실이 있어. 생전에 결계를 확실히 쳐 뒀으니 그대로 보존되어 있을 거다. 거기엔 쓸 만한 물건들과 마법 서적이 있을 거다. 아, 무엇보다 지성의 탑에 들어가려면 거길 꼭 들러야겠지.
엘런은 프로뱅의 말을 기억했다.
* * *
“호송 날짜가 나올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한다.”
마탑의 간수는 철창 속으로 엘런을 밀어 넣었다. 간수는 아카데미 때보다 훨씬 권위적이었다.
쿠르릉.
감옥의 철창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는 이 소리가 익숙하기까지 했다.
-이의를 제기하지 않더군.
간수가 가고 감방에 혼자 남게 되면 항상 프로뱅이 말을 걸었다.
“어차피 에니스로 가야 했다면서요. 거긴 도시 전체가 감옥화되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못 들어갑니다.”
-흑마법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나 보구나. 활용도가 아주 좋은 마법인데 말이야.
“일단 에니스까지는 순순히 가야겠죠. 부모님의 안전도 확보하면서 저들의 눈과 귀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체들턴의 감시 속에서는 어떤 대처도 위험했다.
아카데미에서는 프로뱅에게 마법을 배울 수 없었다.
유배지에 보내는 것으로 그들은 엘런에 대한 관심을 끊을 것이었다.
* * *
엘런의 사건은 그 후로도 빠르게 진행되었다.
선고를 받은 지 이틀 만에 호송이 준비되었다.
‘텔레포트 마법사까지 이렇게 구해 온단 말이야? 어지간하네.’
물론 이곳은 고위급 마법사들이 상주하는 마탑이기는 했다.
하지만 텔레포트를 사용할 만한 고위급 마법사를 이틀 만에 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죄인 엘런의 호송을 위한 텔레포트를 실시하겠네.”
백색 로브를 차려입은 마법사가 텔레포트용 마법진에 섰다.
엘런 또한 포승줄에 묶인 채 그 마법사 옆에 섰다.
주위에는 마탑의 마법사들이 모여 있었다.
이미 마탑에서도 꽤 유명한 엘런이었다.
아카데미 신성의 흑마법 연구는 그들에게도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유진, 저 새끼는 무슨 낯짝으로 여기까지 온 거야?’
엘런은 마법사들 사이에 있는 유진을 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유진은 얼른 눈길을 피했다.
“세계의 법칙이자 구성인 마나여, 나 그대의 체계를 허물고자 하노라. 공간 속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질지어다. 텔레포트”
백색의 마법사가 주문을 외우자 그에게서 나온 마나가 마법진으로 스며들었다.
후우웅.
그러자 마법진이 밝은 빛을 냈다. 빛은 점점 더 강력해졌다.
“으윽.”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밝은 빛이 터져 나올 때쯤 엘런은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우우우웅.
공간의 일그러짐을 느낀 엘런은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제야 시야가 회복되는 것 같았다.
“마탑으로부터 연락받았습니다. 에니스의 책임자 가이아입니다.”
백색의 마법사는 익숙하다는 듯 가이아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네, 호송되기로 한 죄인이 이자라네.”
가이아의 시선이 엘런을 향했다.
엘런도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검은 머리를 뒤로 넘긴 모습이 아주 깔끔해 보였다.
“알겠습니다. 이제부터 저 죄인의 신변은 저희 쪽에서 넘겨받겠습니다.“
“잘 부탁하네.”
가이아의 옆에 있던 2명의 간수가 엘런을 잡았다.
백색의 마법사는 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제 그곳에는 가이아와 엘런 그리고 간수 2명이 남아 있었다.
“팔찌부터 채우도록.”
짤그랑.
간수 하나가 팔찌를 엘런에게 채워 주었다.
에니스로 오는 이들은 마법적 금기를 어긴 이들이었다.
즉 대부분 마법을 사용할 줄 알았다.
그래서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특수한 팔찌를 달아 놓는 것이었다.
“이자의 방을 배정해 주어라.”
“예.”
간수들은 엘런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에니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책에서 읽은 대로구나.’
캉. 캉. 캉.
수감자들이 마석을 캐는 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그 옆에는 기사단 복장을 하고 있는 책임자들이 보였다.
방까지 가는 내내 그 풍경은 계속되었다.
‘프로드 왕국 마석은 여기서 다 캐내는가 보군.’
철컹.
문 앞에 도착한 간수가 두꺼운 철문을 열었다.
“여기가 너의 방이다.”
엘런은 아무런 말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소란이 일어나지 않게 적당히 하도록.”
간수들은 그 말을 남기고는 금방 사라져 버렸다.
‘적당히 하라고?’
간수의 마지막 말을 엘런이 곱씹고 있을 그때.
쉬익!
문이 닫히자마자 밥그릇 하나가 엘런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엘런은 고개를 살짝 틀어 그 그릇을 피했다.
‘이게 그 유명한 신참 길들이긴가?’
엘런은 가소롭다는 눈빛으로 밥그릇을 던진 남자를 쳐다봤다.
“어쭈?”
엘런의 도발에 커다란 덩치의 사내가 일어났다.
엘런은 이전 생에서 용병이었다. 용병들의 세계에서 이런 기 싸움은 흔한 일이었다.
“뭐?“
엘런이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었다.
“이 어린놈의 새끼가 돌았나?”
‘회귀 전까지 더하면 내가 너보다 더 살았어, 새끼야.’
그 사내는 엘런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느려.’
아무래도 마법사인지라 육체 능력이 형편없었다.
주먹이 날아오는 게 훤히 보였다.
턱!
엘런은 사내의 주먹을 손쉽게 붙잡았다.
남자는 공격이 막히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꽈악!
엘런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으아악!”
그러자 남자가 비명을 내질렀다.
엘런은 시끄러운 녀석의 입을 막기 위해서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엘런의 공격이 깔끔하게 명중했다.
남자는 그대로 땅을 뒹굴었다.
순간 주위가 조용해졌다.
“어디 신참이 건방지게!”
잠시 후.
엘런의 행동에 다른 사내가 일어섰다.
이대로 신참에게 기선 제압을 당해 버린다면 이곳의 서열이 꼬이고 만다.
쉽게 말해 개족보가 되는 것이다.
휙휙-.
그 사내는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며 엘런을 위협했다.
“나는 방금 나가떨어진 녀석과 달라.”
사삭!
사내는 빠른 속도로 짓쳐 들어왔다.
‘무게 중심이 형편없어.’
엘런은 비웃었다.
남자는 속도에 치중한 나머지 무게 중심이 너무 앞으로 쏠리고 말았다.
타악!
엘런은 가볍게 몸을 틀면서 녀석의 발을 걸었다.
쿠당탕!
사내는 꼴사납게 넘어졌다.
퍼억!
엘런은 힘을 실어서 남자의 얼굴을 걷어찼다.
결국 결판이 금방 나 버렸다.
에니스에 있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마법을 공부한 이들이었다.
마법을 공부하는 이들 중에 체술을 단련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실전에 투입되는 마법보조사들도 기초적인 체술만을 배운다.
그런 그들이 엘런을 이길 수는 없었다.
“우리 방의 방칙을 알려 줘야겠습니다.”
“야, 저놈 꽤 강한한 것 같으니까 다 같이 달려들어.”
“신참, 너는 죽었다.”
나이도 어려 보이는 신참에게 자신의 동료가 당하자, 다른 사내들도 몸을 일으키려 했다.
“잠깐.”
그때 맨뒤에 앉아 있던 한 사내가 그들을 제지했다.
“이름이 뭐지?”
“엘런.”
엘런의 반응은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그의 반응에 주변에 있던 사내들이 발끈하는 것이 보였다.
“규칙을 어겨서 들어왔을 텐데 여기서라도 규칙에 순응하면서 살아라. 우리도 따로 건들지는 않겠다. 너희들도 이만 됐다.“
그의 말에 당장이라도 엘런을 공격할 것 같던 사내들이 씩씩거리며 제자리에 앉았다.
그의 말이 절대적인 것 같았다.
‘이곳의 방장인가? 뭐 하는 녀석이지?’
엘런은 다른 녀석들의 실력은 척 보아도 알 수 있었다. 피라미나 다름없는 녀석들이었다.
그러나 방장이라 여겨지는 그의 실력은 단번에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일단 지금은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에 대해서 궁리하는 게 중요하니까.’
엘런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녀석을 피해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오자마자 기선 제압에 성공했군.
“…….”
투명한 목걸이로 변한 프로뱅이 말을 걸어 왔지만, 엘런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 참, 이거 나한텐 독방이 더 편하군.
엘런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 정도로 프로뱅에게 뜻이 전달되었다.
-이해한다. 그렇다면 듣기만 해라. 여기까지 오는 길에 내 연구소가 있는 곳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