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34
34
심상치 않은 기운 (1)
“작업 시간 끝날 때까지 휴식해라.”
오늘은 특히 작업을 빠르게 끝낸 엘런.
간수는 입구에 자리를 잡고 앉더니 곧바로 졸기 시작했다.
어젯밤 동료들과 밤새 카드놀이를 한 것이 원인이었다.
“여기란 말이죠?”
엘런은 입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통로로 들어왔다.
거리는 멀지 않아 대화 정도는 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교묘하게 시야만 벗어나 있어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간수의 감시를 피할 수 있었다.
-벽면에 손을 대라.
프로뱅의 지시에 따라 엘런은 손을 동굴 벽면에 손을 댔다.
우우웅.
동굴 벽면의 진동이 그의 손을 타고 느껴졌다.
쑤욱.
이질적인 진동이 멈추고 나자 엘런의 손이 벽면으로 빨려 들어갔다.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하기보다는 벽면을 통과한 것 같았다.
“이곳이 스승님의 연구실입니까?”
프로뱅의 연구실은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하지만 모든 물건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직 그대로 남아 있구나. 하긴 웬만해선 찾기 힘든 결계였으니까 말이야. 난 마탑에 있을 때 이곳에서 연구했었다.
프로뱅도 몇십 년 만의 방문이었다.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그때와 비교해서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무엇을 챙기면 되나요?”
척 보기에 눈에 띄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이 흑마법과 관련된 책이라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라 할 수 있었다.
-오른쪽 재료 보관실 쪽으로 가 봐라. 거기에 쓸모 있는 것이 있을 테니.
엘런은 프로뱅의 말에 따라 재료 보관실로 갔다.
온도 조절 마법이 걸려 있어 그런지 온기가 전해졌다.
-거기 왼쪽에 파우더. 그것부터 챙겨라.
엘런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천에 싸여 있는 가루가 있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그 가루를 들어 올렸다.
사락.
싸여 있는 천을 풀어 보니 금빛의 가루가 있었다.
하지만 뭔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건 무슨 가루죠?”
-그건 디스펠 파우더다. 아티팩트에 걸려 있는 마법 효과를 상쇄시키는 파우더지. 최상급 디스펠 파우더니 너의 손에 채워져 있는 팔찌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거다.
프로뱅의 설명을 들은 엘런은 그제야 재료학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 기억이 났다.
‘디스펠 파우더, 직접 보기는 처음이군. 매우 귀한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것도 최상급이라니.’
엘런은 다시금 프로뱅에 대해 놀라는 중이었다.
마법사의 왕국이라 불리는 프로드에서 궁정 마법사까지 지냈으니 당연할 만도 했다.
‘하메론은 얼마나 대단한 놈이었길래 스승님을 눌러 버릴 수 있었던 거지?’
하메론의 행적을 따라가면 갈수록 그의 능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휴식 시간 내에 끝내려면 서둘러야 할 거다.
“아, 그렇죠.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프로뱅의 재촉에 엘런은 엄지와 검지로 가루를 집어 들었다.
스르륵.
그러고는 디스펠 파우더를 팔에 채워져 있는 팔찌에 뿌렸다.
츠츠츠.
팔찌가 황금빛으로 빛나더니 기계적인 소리가 났다. 그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마법식이 해제되고 있는 것이다.
곧 그 빛이 사라졌다. 겉보기에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라이트.’
화아악.
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져 있었다.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 마나를 밖으로 방출하는 것 자체가 막혀 있었는데. 효과가 확실하잖아?’
엘런은 손바닥 위에 떠올라 있는 구체를 보며 감동을 했다.
전생을 포함해 50여 년을 마법과 함께 살아온 그였다.
그런 그에게 마법이 없는 몇 주간의 생활은 팔다리를 하나씩 떼어 놓고 있는 것 같았다.
-만족스러우냐? 그럴 만도 하지. 내가 혈마법사로 모함받을 때도 마법을 봉인당해 봐서 이해한다.
프로뱅의 말에 엘런은 얼른 라이트를 해제시켰다.
“이제 프로뱅 님께 마법을 배울 시간도 더 확보할 수 있겠군요. 그런데 증표는 어디에 있습니까?”
-너의 팔찌부터 해제시킨 이유가 그것 때문이다. 책상에 너의 마나를 주입해 보거라. 나와 계약을 맺었으니 너의 마나에도 반응할 것이다.
다시 서재로 돌아온 엘런은 책상에 마나를 주입했다. 오랜만에 손끝으로 마나가 방출되는 것을 느꼈다.
끼이익.
엘런의 마나가 스며들자 책상 왼쪽 아래 서랍이 저절로 열렸다.
“이건?”
-서약의 단도다. 엘프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지. 고대 시대에 인간과 계약을 맺을 때 사용하던 방식이야. 양쪽의 피를 머금은 칼이 증표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 칼을 보여 주면 엘프들은 동족이 한 약속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게 있으면 지성의 탑도 들어갈 수 있겠군요.”
-그렇지. 그 단도에는 지성의 탑의 출입에 관한 서약이 되어 있다.
‘하이드.’
엘런은 서약의 단도를 보이지 않게 숨기고는 허리에 찼다.
“이제 나가야겠습니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는 것도 위험하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으니 언제든지 올 수 있으니까요.”
-여기 있는 것들은 네가 다 사용해도 좋다.
엘런은 연구실에 있는 방대한 마법 서적과 아티팩트들 그리고 귀한 마법 재료들을 보았다.
하지만 수감자라는 신분이다 보니 이것들을 다 챙길 수는 없었다.
그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연구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여전히 쉬고 있네.’
수감자들은 저마다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었지만, 오직 브레디만이 명상을 하고 있었다.
엘런은 자신이 잠깐 사라진 것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 그는 레브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엘런, 방금 간수가 말해 줬는데 말이야, 내일부터 왕실 감찰대가 온다고 하더라.”
레브는 잔뜩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감찰대?”
“그래, 이제 우리 당분간은 이렇게 쉬는 시간도 못 가질 거다. 오히려 감찰이 나왔으니 더 굴리겠지.”
레브의 말에 엘런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감시하러 온 건가?’
* * *
“수감자 복장 상태가 왜 이 모양이지?”
“그게 무슨 의미입니까?”
“이 새끼 식량 배급 줄여라. 이렇게 교화 의지도 없는 놈들한테 주는 빵도 아깝다.”
“예!”
감찰대원의 말에 간수는 군기가 바짝 든 상태로 대답했다.
“넌 굳은살이 없는 거로 봐서 열심히 일하지 않은 게로구나.”
감찰대원은 다른 수감자를 붙잡았다.
“난 귀족이었기에 굳은살이 없는 것이오. 그대가 말한 것은 잘 지킬 터이니 넘어가 주시오.”
감찰대원이 붙잡은 수감자는 귀족파 중 한 명이었다.
“어이, 그게 어쨌다는 거지? 넌 지금 귀족도 아니고 수감자일 뿐일 텐데?”
감찰대원의 말에 수감자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지금 뭐라고 하였소?”
“이 새끼도 똑같이 식량 배급 줄여. 이거 에니스 기강이 왜 이렇게 해이해진 거야?”
“예!”
감찰대원이 지나갔음에도 그 수감자는 그 표정 그대로였다.
‘저것들 내가 목표가 아닌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 중에는 엘런도 있었다.
‘무엇을 노리고 저러는 거지?’
엘런은 꼬투리 잡히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