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35
35
심상치 않은 기운 (2)
그 후로 에니스는 조용할 날이 없었다.
“저녁 점호 태도가 왜 저 모양이야? 내일부터 저 새끼 작업량 더 늘려라.”
“예!”
날이 갈수록 감찰대원들의 꼬투리 잡기는 심해졌다.
“저 새끼들 요즘 왜 저러는 거랍니까?”
레브가 볼멘소리를 했다. 다른 수감자들도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저렇게까지 노골적으로 한 적은 없었는데 말이야.”
“이제는 숨만 쉬어도 식량 배급 줄일 판이야.”
그들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이렇다 할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충 감이 잡히는 것 같은데.’
상황 파악이 빠른 엘런은 대략적인 상황을 눈치를 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체적으로 강압적이긴 하지만 귀족파와 흑마법사파 수감자들에게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단 말이지. 일단 체들턴이 날 의식하고 있지는 않다는 거니까.’
엘런은 현재 상황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아직 프로뱅의 연구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라면 이곳에 더 있을 필요가 있었다.
“지금부터 취침에 들어간다.”
간수가 점호를 마쳤다.
“드디어 끝이네. 이건 뭐, 저녁 점호 때마다 피 말려서 살 수가 있나.”
“에잇! 더러워서 말이야.”
“잔말 말고 다들 누워. 우리만 조심하면 돼.”
복도를 밝히고 있던 불들이 꺼질 때쯤 브레디가 나섰다.
그의 말에 수감자들은 아무 말 없이 누웠다.
에니스 안에서 그의 말은 대부분의 수감자에게 있어 가히 절대적이었다.
귀족파들조차도 그에게는 한 수 접고 들어갈 정도였다.
‘정체가 궁금하단 말이지.’
그에 대한 생각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엘런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슬립.’
혹시 모를 경우를 생각해 브레디를 포함해 몇몇 예민한 이들에게는 슬립 마법을 걸었다.
‘굳이 세상모르고 자는 놈들에게까지 마나를 사용할 필요는 없지.’
엘런은 모두가 잠이 깊게 든 것을 확인했다.
‘언로크. 하이드.’
엘런은 철문을 열고 자신의 몸을 숨겼다. 간수들에게 기척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들키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곧바로 공용 세탁실로 갔다.
기사 출신 간수들이 지키고 있는 방을 빠져나가는 것까지는 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채굴장까지 가는 길에는 마법사 간수들이 있었다.
쿠르릉.
그는 공용 세탁실 바닥을 열었다.
그곳에는 굴이 파여 있었다.
엘런이 며칠간 디그 마법을 사용해 채굴장까지 연결해 놓은 것이었다.
그는 그곳을 통해 매일 밤 연구실로 갈 수 있었다.
* * *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모두가 잠든 캄캄한 밤.
여느 날처럼 엘런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차례차례 슬립 마법을 걸었다.
‘마지막으로 브레디군.’
엘런은 그에게 손을 뻗었다.
‘슬……!’
탁.
브레디가 엘런의 손을 잡았다.
엘런은 깜짝 놀랐다.
“무엇을 하려는 거지?”
브레디가 깨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엘런을 한 번 노려보고는 적의가 없음을 알고 손을 놓아주었다.
‘분명 평소 잠들었을 때와 같은 호흡이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내가 팔찌를 무력화시켰다는 것을 알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데.’
“잠이 들었나 확인해 봤습니다. 책을 읽으려고 했었거든요.”
“책? 어디서 난 거지?”
“간수들이 보는 것을 슬쩍해 왔습니다. 제가 밤에 잠을 잘 못 들어서 항상 책을 읽으면서 잤거든요.”
엘런은 재빨리 브레디의 눈치를 살폈다.
책을 반입하는 것부터가 금지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그의 선에서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엘런은 그가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지 아닌지 떠보는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가 줬겠지만, 요즘 같을 때는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괜히 불똥이 튀고 싶지 않으면 몸을 사리고 있어. 감찰보다 더 골치 아픈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엘런의 말을 들은 브레디는 몸을 뒤척이더니 옆으로 돌아누웠다.
엘런도 오늘은 연구실을 가기는 글렀다고 생각하고는 자리에 누웠다.
그때 브레디가 몸을 엘런 쪽으로 돌렸다.
“어떻게 이곳으로 왔다고 했지?”
“아카데미에 있다가 누명을 썼습니다.”
“누명?”
“예. 귀족 녀석 하나에게 뒤통수를 세게 맞았습니다.”
“그게 누군가?”
“릭 체들턴이라고, 체들턴가의 아들입니다.”
엘런의 말에 브레디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자네, 감찰대원들에게서 뭔가 다른 걸 눈치챈 것 같던데?”
“그게 무슨 말입니까?”
“감찰대원의 행동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하지 못했나?”
브레디의 말에 엘런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감찰대원이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대상이 한정돼 있긴 했습니다.”
일단은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정확해. 역시 자네는 남들과 다르군. 지금 감찰대원들은 흑마법사파와 귀족파 수감자들을 노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두 진영의 수장이 목표겠지.”
“그럼 그들을 처리한다는 겁니까?”
“아마 조만간 이런저런 혐의를 씌워 숙청하려 할 것이야.”
“그 정도의 일을 벌일 수 있다면 왕실이나 체들턴 후작가, 그론리드 공작가밖에 없지 않습니까?”
엘런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체들턴가와 그론리드가의 세력 싸움.
프로드 마법사의 양대 산맥이자 귀족파의 거두인 두 가문의 싸움은 이 시기부터 체들턴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체들턴, 그들이 이겼군요.”
“그래. 그 녀석들이 움직인 것이지. 문제는 그론리드 가문이 졌으면 흑마법파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라는 점이다. 그들을 비호하고 있던 세력이 그론리드였으니까.”
‘그론리드 가문이 여러 학파의 마법을 수용한다고 알았는데, 흑마법까지 받아들이고 있었군. 하지만 말이야, 여기서 내가 끼기는 좀 그렇단 말이지.’
엘런은 브레디의 의중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아직은 전 이곳에 있으려 합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소란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원합니다.”
그 말에 브레디의 눈빛이 달라졌다.
“다 알고 있는 듯하군. 그래, 난 흑마법파와 함께 봉기를 일으킬 거야. 하지만 어떻게 알았지? 내가 그들과 함께할 것을 말이다.”
그 물음에 엘런이 입을 열었다.
“그들이 당신의 말 한마디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당신과 마주치는 것도 매우 조심스러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그들 중 대부분보다 높은 사람이라 생각했죠. 그것을 위장하기 위해 중립 세력에 있는 것 아니었습니까?”
“과연. 솔직히 말하지. 이번 봉기에 자네의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네의 신체 능력은 이곳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하니 말이야. 체들턴에게 감정도 있지 않나?”
브레디는 몸을 일으키며 엘런에게 말했다.
주위가 캄캄했음에도 그의 눈빛은 달빛을 받아 빛났다.
그 안에는 결의가 담겨 있었다.
‘흑마법파 숫자는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어디에 믿는 구석이 있어서 봉기를 하겠다는 거지? 마법도 못 쓰는 마법사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엘런은 브레디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제 대답은 똑같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립니다. 조용히 있어 주십쇼. 저는 아직 왕정과 귀족의 관심이 이곳으로 끌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게 솔직한 그의 바람이었다.
아직 프로뱅의 연구실에서 얻어 갈 게 많았다.
그리고 아카데미를 떠난 이상, 여기만큼 조용히 수련할 수 있는 장소도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