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37
37
심상치 않은 기운 (4)
엘런은 브레디의 발언에 놀라고 말았다.
“브레디 님이 흑마법파에서 높은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수장이었을 줄이야. 전혀 몰랐습니다.”
이어서 브레디는 또 하나의 사실을 밝혔다.
“엘런 님, 사실 브레디라는 이름은 가명이었습니다. 저의 본명은 고든 아르벨입니다. 고든이라고 불러 주시면 됩니다.”
‘너도나도 가명을 써 대는군. 그런데 이름이 익숙하단 말이지.’
엘런의 기억 속에는 고든 아르벨이라는 이름이 분명히 남아 있었다.
계속해서 기억을 곱씹을수록 희미했던 기억이 선명해졌다.
에니스에 관한 자료는 대부분이 비공개였기 때문에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고든 아르벨의 이름은 분명히 있었다.
에니스 2차 봉기.
고든 아르벨을 주축으로 수감자들이 일으킨 반란이었다.
자세한 경과는 모르지만, 그 반란은 완벽하게 제압당한다.
이곳의 간수들은 중앙에서 쫓겨나듯 파견 나온 사람들이지만, 엄연한 기사들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감찰대원으로 파견 나가 있던 체들턴 가문 사람들이 봉기를 제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운다.
“고든 님, 이번 봉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늦춰야겠습니다.”
엘런의 말에 고든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런 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이대로는 에단 그론리드가 숙청당할 것입니다. 그럼 흑마법사들이 재기할 기회가 없어집니다.”
엘런은 그의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서 조리 있게 설명했다.
“체들턴 가문이 현재 정권 싸움에서 유리한 상황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완전하게 정계를 장악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론리드 공작가는 그렇게까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지원하는 세력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론리드 공작가.
그들은 마법의 진리 탐구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가문이었다. 누구도 마법사가 될 수 있으며 어떤 것도 마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해하지 않는 선의 모든 마법학파를 지원했다.
그런 그론리드가 위협에 처한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도움받은 자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실제로도 릭 체들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전까지 수많은 마법학파의 지원으로 체들턴 가문은 완전히 승리하지 못했었다.
즉,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는 의미였다.
“아직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에니스에서 에단 그론리드를 숙청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론리드 가문의 몰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엘런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브레디가 이내 입을 열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엘런 님의 명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 긍정적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엘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꺼냈다.
“스승님의 유지를 잇기 위해서는 제가 더 강해질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승님은 마지막으로 제게 이 연구실로 가라고 했습니다.”
“예. 수련에 불편이 없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에단 그론리드를 만나 볼 수 있을까요?”
“예. 내일 있을 휴식일에 자리를 만들겠습니다.”
* * *
에단 그론리드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그의 시선은 엘런의 위아래를 훑고 지나갔다.
“브레디에게 들었다. 자네가 날 보자고 했다고?”
“예. 저는 엘런이라고 합니다. 에단 님께 제의드릴 것이 있어서 만남을 청했습니다.”
에단의 눈에 불신이 떠올랐다.
“자네가 무슨 제의를 한다는 거지?”
“곧 있으면 숙청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말에 에단은 주위를 살폈다.
휴식일이었지만 곳곳에 간수들이 있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제가 에단 님을 탈출시켜 드리겠습니다.”
에단은 엘런과의 거리를 더 좁혔다.
“탈출이라니? 자세히 이야기해 보아라.”
그도 자신이 숙청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론리드 가문의 일원이긴 했지만, 주요 일원도 아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것도 에니스 안이라면 가문도 자신을 도와주지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 바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5군 마법 부대장이신 제트 자작님께 직접 신고드리면 됩니다.”
있습니다. 주위에 보는 이가 많으니 자세한 방법은 탈출하는 날 제가 찾아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나가기만 한다면 가문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가?”
이렇게 기다려 봤자 결과는 죽음이었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엘런에게 말한 것이다.
“체들턴 놈들이 저를 협박하기 위해 부모님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제 부모님을 체들턴으로부터 지켜 주십시오. 그거면 충분합니다.”
“부모님? 그 정도는 쉽지. 내가 나가면 자네의 부모님을 내가 데리고 있겠네.”
엘런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론리드의 보호에 들어가 있다면 부모님을 따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오늘밤 제가 찾아뵙겠습니다.”
“좋네.”
* * *
철컹.
모두가 잠든 시간, 굳게 닫혀 있던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언로크?’
그 시간까지 잠들지 않고 있던 에단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분명 언로크 마법에 의해 문이 열리는 소리였다.
‘마법을 사용한다고?’
그는 자신의 손에 채워져 있는 팔찌를 보았다. 그에게서 모든 것과 같은 마법을 앗아 간 팔찌였다.
“잠들어라, 슬립.”
엘런은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에단 외에 모두에게 슬립 마법을 건 것이다.
“가시죠.”
“어떻게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절그럭.
엘런은 왼팔을 들어 보였다.
“어쩌다 보니 불량품이었나 봅니다.”
에단은 그 말뜻을 이해했다.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군.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지. 얼른 가지.”
민감한 부분은 묻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일단 탈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법이 있다면 이곳을 탈출할 가능성이 훨씬 높았다.
“감춰라, 하이드.”
엘런이 주문을 외우자 두 명의 모습이 투명해졌다.
쿠르릉.
그들은 공용 세탁실 바닥을 열었다.
그동안 엘런은 틈틈이 땅굴을 이어 왔다.
개미굴처럼 이어진 이 굴은 에니스 밖까지도 이어져 있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을 해 놨군.”
엘런이 만들어 놓은 굴을 따라 걷던 에단은 기가 찼다.
에니스의 땅 밑에 이런 것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땅 밑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요. 그들이 팔찌를 너무 신뢰한 것도 잘못입니다.”
‘저놈은 뭐 때문에 이곳에 온 거지? 속셈이 있어서 온 것 같은데.’
에단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계속해서 엘런을 따라갔다.
꽤 오랫동안 걷는다고 생각할 때쯤, 앞서가던 엘런이 발걸음을 멈췄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부유해라, 레비테이션.”
부우웅.
엘런과 에단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곧이어 그들의 몸은 천장까지 닿았다.
탁.
천장에 도달한 엘런이 주먹으로 천장을 쳤다.
쿠르릉.
그러자 천장이 열리며 그 틈으로 달빛이 들어왔다.
“이곳은?”
밖으로 나온 에단의 눈에 보인 것은 나무가 우거져 있는 숲이었다.
“에니스 근처에 있는 숲입니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하루만 가시면 대도시인 빈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아침이 밝으면 즉시 거기까지 수배령이 떨어지겠죠.”
사르륵.
엘런은 품에서 천 주머니를 꺼냈다. 묶여 있는 입구를 풀자 금빛 가루가 보였다.
“그것은 디스펠 파우더?”
마법에 정통한 에단은 그것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것도 최상급입니다. 그 전에…….”
엘런은 다시 천 주머니를 묶었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감히 확인할 만한 것을 청해도 되겠습니까?”
“확인?”
팔을 뻗으려다 괜히 머쓱해진 에단은 머리로 손을 가져가며 말했다.
“에단 님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단 님의 약속을 증명할 만한 증표가 있으면 합니다.”
“허허허, 나를 못 믿겠다?”
에단은 과장된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제가 에니스 안에 있다 보니 걱정이 되어 그럽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런의 공손한 태도에 에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로서는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거래를 아는 자로군. 내 목숨을 빚진 것은 사실이니 이걸 주지.”
그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론리드 가문의 인장이 새겨져 있는 손수건이었다.
“이것은 가문의 일원이 도움을 받았을 때 주는 것이지. 그를 귀빈으로 대우하겠다는 의미다. 이것으로도 확신하지 못하겠는가?”
“충분합니다. 에단 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손수건을 받아 든 엘런은 에단의 팔찌에 디스펠 파우더를 뿌렸다.
츠츠츠.
에단의 팔찌가 빛나며 마법식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자네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유군. 이런 것은 어디서 난 건가? 에니스는 어떤 외부와의 접촉도 없을 텐데?”
“채굴장에서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은 다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끝까지 신비주의로군. 알겠네. 이번 일은 잊지 않도록 하지. 자네의 부모님도 걱정 말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엘런은 고개를 숙였다.
에단이 빈에만 도착한다면 그곳에서부터는 그론리드 가문에서 손을 써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덩달아 부모님의 안전도 확보할 수 있었다.
‘이제 에니스에서 성장하는 것만 남았군.’
프로뱅에게서 배우는 마법들은 하나같이 효율적이고 전투적이었다.
또한, 그의 연구실에는 많은 영약과 엘릭서가 있었다.
체들턴가의 감시로부터도 멀어져 성장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이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릭 체들턴.’
그는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