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38
38
5년 후 (1)
까앙, 까앙.
곡괭이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
모든 채굴장에서는 수감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중 단 한 곳에서만 곡괭이 소리 대신 말소리가 들렸다.
빠른 속도로 작업을 끝내 버린 엘런의 조가 들어간 채굴장이었다.
“간수장이 방 검사를 지시했대. 엘런, 넌 조심해야겠다. 가지고 있는 책 많지 않아?”
돌멩이에 걸터앉은 레브가 말했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상관없어요.”
엘런은 바닥에 뭔가를 쓰느라 레브를 바라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하긴 너라면, 뭐. 그런데 질리지도 않냐? 어떻게 한 번을 안 쉬고 공부를 하냐?”
레브는 괜히 툴툴거리며 엘런에게 돌멩이를 던졌다.
탁.
엘런은 눈을 돌리지도 않은 채 자신에게 날아오는 돌멩이를 쳐 냈다.
“계속 방해하면 브레디 님 부릅니다.”
“죄송합니다. 브레디 님만큼은 부르지 말아 주라.”
브레디란 말에 바로 조용해지는 레브였다.
“저보다 나이가 네 살이 많으면서 어떻게 변함이 없어요?”
“끙.”
엘런의 구박에 레브는 앓는 소리를 냈다.
“또 엘런 공부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나?”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레브의 몸이 굳었다.
“저는 그저…….”
“분명히 엘런의 수련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너는 5년간 변함이 없구나.”
“죄송합니다, 브레디 님.”
목소리의 주인공은 브레디였다. 그는 간수들의 의심을 피하고자 평소에 엘런을 낮춰 부르고 있었다.
“미안하다, 엘런. 그나저나 혹시 그 소식 들었나?”
엘런은 바닥에 쓰고 있던 식을 멈추지 않았다. 조금만 더 하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무슨 소식을 말씀하는 겁니까?”
브레디는 입구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간수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간수는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졸고 있었다.
“고센 제국이 프로드 왕국에 선전포고를 했다더군.”
쓱.
타악.
엘런은 끄적이고 있던 나뭇가지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계속 긴장 상태를 유지하더니 결국 터졌나 보군요. 혹시 전황이 어떤지 아십니까?”
“자세히는 모르네만, 일단 팽팽한 상황인 듯해. 고센도 주변국들 때문에 모든 병력을 프로드로 보낼 수는 없겠지.”
탁탁.
엘런은 엉덩이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브레디 님,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준비하겠네.”
5년이다.
에단 그론리드가 탈옥하고 나서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 그가 사라졌을 때 에니스는 발칵 뒤집혔다.
지금까지 단 한 명의 탈옥도 허락하지 않았던 곳이 뚫린 것이다.
책임자 가이아의 명령으로 수감자 전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다.
간수들은 수감자들의 방을 전부 뒤졌고 수감자들을 일일이 조사했다.
에단의 탈옥 직후 공동세탁실에 있는 입구도 막아 놓았기에 그들은 아무것도 건지지 못했다.
간수들은 수감자 중 누군가 마법을 쓸 수 있다는 경우의 수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결국 수감자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것으로 일은 마무리되었다.
에단이 그론리드 가문 본가에 있다는 소문이 들려왔지만 공작가를 직접 조사할 위인은 없었다.
조사가 끝난 후부터 엘런은 매일 밤 프로뱅의 연구실에서 집중적으로 훈련을 받았다.
그 외에도 브레디의 도움으로 다른 수감자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련에 매진할 수 있었다.
-지성의 탑까지 가는 것은 무리이니 급한 대로 이것으로 마나를 채우거라.
연구실에는 다량의 최상급 엘릭서가 있었다.
하지만 한 번에 그것들을 다 복용했다가는 혈관이 모두 터져 버렸을 것이다.
대신 그는 몸이 받쳐 주는 대로 엘릭서를 복용했다.
엘릭서 말고도 연구실에는 마탑에서도 보기 힘든 마법 서적들이 잔뜩 있었다.
엘런은 생전에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마법 서적이었다. 게다가 이번 에는 대마법사라는 스승도 있었다.
-이 정도면 5서클 마스터는 되는 것 같구나. 놀라울 정도로 빠른 성장이다. 너의 그 참담한 마법적 재능만 아니었다면 훨씬 더 성장했을 텐데 말이야.
바로 어젯밤에 프로뱅에게 들은 말이었다. 아카데미에 있었다면 절대 이루지 못했을 성장 속도였다.
그곳에서 5년이었다면, 이제 4서클의 마법사가 되어 있을 터였다.
‘드디어 전쟁도 시작되었다. 이제 수면 위로 드러낼 때가 됐어.’
그는 이 시기에 전쟁이 날 것을 알고 있었다. 프로드 왕국과 고센 제국의 전쟁, 엘런이 마법보조사로서 처음 참여했던 전쟁이었다.
‘다시는 전쟁에 참여하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지.’
그 날 밤, 공용 세탁실에 3명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고든 님, 이번 전쟁을 계기로 분위기를 확실히 끌어올 수 있을 것입니다.”
베르디는 엘런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꼭 성공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그의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았다.
“너 가고 나면 여기가 또 발칵 뒤집히겠군. 며칠간 조사받으려면 귀찮을 텐데 말이야.”
레브는 엘런을 힐끔 쳐다보았다.
“더는 괴롭힐 사람이 없어 심심하겠군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쿠르릉.
엘런은 공용 세탁실의 바닥을 열었다. 그러자 땅굴이 드러났다.
‘이제는 이 방향인가?’
지금까지는 연구실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제는 에니스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잘 다녀오시길.”
베르디의 말을 끝으로 엘런은 땅굴로 들어갔다.
* * *
웅성웅성.
“자자, 전쟁 나기 전에 얼른 식량을 챙기세요. 육포입니다, 육포.”
“피난 시에 꼭 필요한 두툼한 담요입니다.”
여기저기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돈으로 바꾸려 애쓰고 있었다.
-이곳에 다시 돌아오다니. 오랜만이군.
‘그러게요. 다시 돌아왔네요, 해리포드로.’
엘런은 이제 머릿속으로도 프로뱅과 대화할 수 있었다. 프로뱅은 계약자의 마나가 강해질수록 그 연결도 강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소란스러워.
‘동감입니다. 이렇게 시끌벅적한 것은 오랜만이라 정신이 없습니다. 얼른 방을 잡아야겠군요.’
딸랑.
방을 구하기 위해 들어간 여관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내일 병사 모집이 있다지?”
“거기서 좋은 병과만 가 봐. 전쟁 중에 공 세우는 건 일도 아닐 거다.”
모두 해리포드에서 있을 병사 모집에 지원하기 위한 사람들이었다.
폐쇄적인 신분 사회 속에서 평민이 한 번에 신분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공을 세우는 일밖에 없었다.
물론 엘런도 같은 이유였다.
체들턴 가문과 대적하기 위해서는 권력이 필요했다.
그 권력을 잡기 위해 가장 빠른 길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일이었다.
“남는 방이 있을까요? 돈은 얼마든지 상관없습니다.”
엘런의 말에 주인은 물이 묻은 손을 앞치마에 슥 닦으며 주방에서 나왔다.
“아, 예. 운이 좋으시네요. 남는 방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주인장이 열쇠를 꺼내 엘런에게 주려고 했다.
타악.
갑자기 누군가의 손이 그 열쇠를 가로챘다.
“그 방은 내가 묵도록 하지.”
거구의 사내가 열쇠를 잡고는 빙빙 돌리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엘런의 표정이 굳었다.
“죄송하지만, 제가 먼저 왔습니다.”
그 말에 사내는 고개를 돌려 엘런을 보았다. 그는 한껏 표정을 찡그리며 엘런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 꼬마 녀석이, 혼나고 싶지 않으면 썩 꺼지고 딴 방 알아봐. 여기는 나 본 님께서 묵을 테니까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