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44
44
참전 (5)
“디르크 님이 패배하셨다.”
그 한마디의 위력은 엄청났다.
그 말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고 제국군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뭣들 하고 있어? 지금 다 허수아비 됐잖아.”
가쁜 숨을 몰아쉰 엘런은 큰 소리로 외쳤다.
그에 반응해 프로드 왕국의 병사들이 움직였다. 그의 활약을 본 병사들에게 그의 말은 제5군 원수의 명령과도 같았다.
“끄아악!”
“살려 줘.”
그때부터는 일방적인 살육이었다.
물론 제국군에는 디르크 만큼은 아니더라도 우수한 기사들이 있었다.
그들도 디르크의 패배를 보고 사기가 꺾이긴 했다. 하지만 고작 사기 때문에 이토록 쉽게 물러날 실력은 아니었다.
“으으. 도망쳐야 해.”
“저 괴물 마법사한테 모두 죽을 거야.”
“저리 비켜!”
문제는 일반 병사들이었다.
기사들보다 훈련량이 적은 병사들은 누구보다도 사기에 영향을 받았다.
군사의 대부분인 병사가 후퇴하니 기사들도 따라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모두 베어 버리겠다.”
“모두들 무기를 들고 싸우란 말이다.”
기사들은 어떻게든 대열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은 몰려드는 병사 탓에 물거품이 되었다.
후퇴하는 적만큼 잡기 쉬운 상대도 없었다. 프로드 왕국의 병사들은 신이 나서 그들을 추격했다.
트라모래 평원의 전투는 그렇게 원래 역사와는 완전히 반대로 흘러갔다.
“부대원들 인원 파악하도록.”
추격이 끝난 후 엘런이 가장 먼저 한 것은 생존한 부대원들의 파악이었다.
비록 한 달이긴 했지만 많은 것을 가르쳤다.
그런 그들을 잃는 것은 큰 타격이었다.
잠시 후, 파악을 마친 다즈가 엘런에게 왔다.
“4명이 전사했으며 3명이 부상입니다. 그중 캐릭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생각보다는 적군.’
진영이 무너진 순간에 최소 7명이 전사할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조별로 전투에 임한 부대원들의 호흡이 예상보다 좋았다.
“다들 수고했네. 다즈, 자네가 통제해서 다친 이들은 의료반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정비를 하도록. 나는 보고를 올리러 가 봐야 하거든.”
“예. 부상자들은 이미 의료반으로 옮겨 놨습니다. 남은 병력을 정비시키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지.”
엘런이 간 후에도 부대원들은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살아 있긴 한 거지?”
“그런 것 같습니다.”
“다 소대장님 덕분입니다.”
“정말 말도 안 되긴 했지.”
그들은 아직 현실성이 없었다. 배리어가 깨졌을 때만 해도 꼼작 없이 죽는 줄 알았다.
경험이 많다고 한들 이토록 불리한 전투는 처음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은 살아남았다.
“저분만 따르면 우리 항상 이렇게 생존할 수 있지 않을까?”
누군가 던진 그 말에 3소대 인원들은 모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상으로 2중대의 피해 보고를 마칩니다.”
전사한 헥터를 대신해 1소대장인 모글이 보고를 마쳤다.
“다들 수고했네. 이번 전투에서 피해가 많이 컸군. 아마 레미 자네가 아니었다면 패배를 면치 못했을 걸세.”
제트의 말에 엘런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보면 볼수록 대단한 부하야. 전투적으로도 우수하지만, 행정적인 면도 그에 못지않아.’
제트는 엘런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새로 하게 되었다.
초임 마법사는 대개 일을 배우는 시간이 필요했다. 군이라는 조직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그 절차를 익히는 데 오래 걸렸다.
‘전술을 공부해 전투에서 활용하는 초임 마법사는 종종 봤다. 하지만 전투가 끝나자마자 인원을 파악해 보고 체계를 따라 보고한 초임 마법사가 있었던가?’
제트는 그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이토록 확실하게 임무를 수행한 초임 마법사는 지금까지 없었다.
당장 이 회의실에 있는 누구와 비교해도 양쪽 측면에서 뒤떨어지지 않았다.
“내 자네의 공은 확실하게 치하해야겠지.”
그는 성과에 있어 논공행상이 확실한 인물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던 다른 간부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엘런이 이룬 성과는 모두가 보았다. 그에 걸맞은 조치가 있을 것이 확실했다.
“이번에 공석이 된 2중대의 지휘관 자리를 자네에게 주지.”
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그의 말은 엘런의 성과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실로 파격적이었다.
엘런은 이제 막 부대에 들어온 초임 마법사였다. 게다가 그는 공식적으로는 4서클 유저에 불과했다.
그런 그가 중대장이 되는 것은 그의 실력과 상관없이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제트 자작님, 그것은 너무 파격적입니다.”
“레미, 그자는 입대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자입니다. 아직 경험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여기저기서 제트의 결정에 대한 반박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제트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자네들 지금 경험이라고 했나?”
마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기에 부관을 포함한 간부들의 말을 들은 그였다.
하지만 그는 뼛속까지 무인이었다. 마법이 아닌 일에 대해서는 그만의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우리는 제국과의 대마법전에서 완벽히 패했네. 우리가 이전에 있었던 몇 번의 전투에 눈이 멀었기 때문이었지. 그 위기 속에서 누가 전세를 뒤집었는가.”
제트의 일침에 간부들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자네들 중 전투가 끝나고 보고 체계를 따라 보고를 한 자가 몇 명이나 되는가? 레미는 초임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절차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켰네. 이래도 경험이 없다고 할 텐가?”
간부들을 향해 혀를 쯧 하고 찬 그는 엘런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네에게 전시 한정이긴 하나 중대장의 임무를 임명하겠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엘런은 제트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그의 얼굴은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수하에 60여 명의 마법보조사가 생기는 것이었다. 앞으로 구사할 수 있는 전술이 훨씬 늘어난다는 의미였다.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렇게 꽤 큰 소란을 일으킨 전후 보고가 끝났다. 엘런이 회의실 밖으로 빠져나오자마자 소대장들이 그를 따라왔다.
“중대장님, 축하드립니다.”
“중대장님 덕분에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돈도 없고 뒷배도 없어 최전방 중에서도 마법보조사 부대를 맡은 마법사였다.
그들의 부대는 전쟁 내내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던 중 엘런의 압도적인 무위를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다.
‘신의 재능이라 불리는 하메론이 저런 모습일까?’
전쟁 중에 변방의 부대까지 그 이름이 흘러들어 올 정도로 유명했지만, 아직 그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전장의 엘런은 가히 신의 재능이라 불리기에 손색이 없어 보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아니, 더 높은 곳을 보기 위해서 저분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갑자기 새파란 후임이 부대를 맡게 돼서 혼란스러우실 텐데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2소대장 글레트러가 말했다.
“그래도 제가 후임인데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지금은 전쟁 중입니다. 어느 때보다 직위가 우선시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글도 글레트러를 거들었다.
“이거, 원.”
엘런은 곤란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알겠네. 자네들이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지. 하지만 자네들의 경력을 항상 존중하겠네.”
“예. 감사합니다.”
두 명의 소대장은 엘런을 향해 경례했다.
그들은 이로써 안전과 승진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럼 중대원들에게 인사도 해야 하니까 다들 막사로 돌아가지.”
덜컹.
“중대장님에 대하여 경례!”
엘런이 문을 열자마자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어떻게 안 거야?”
그는 벌써 부대원들이 알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모글과 글레트러도 당황했다.
눈치 빠른 그들은 회의를 마치자마자 중대 막사로 전령을 보내긴 했다.
하지만 부대원들이 이토록 반갑게 맞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 다들 잘 부탁하네. 난 입대한 지 한 달 정도밖에 안 된 초임 마법사이네. 거기에 불만을 가질 인원이 있을 것도 알지. 하지만 난 전투에서 자네들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야.”
“와아아아아.”
그 말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두 소대장도 처음으로 보는 반응이었다.
엘런은 엄청난 실력을 갖췄으며 전투에서 가장 앞장서서 싸웠다.
그가 구한 생명은 두 손으로 셀 수 없었다.
마법보조사 부대원들에게 있어 엘런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그들은 엘런을 지휘관으로 인정했다.
“정말 긴 하루였군. 오늘은 푹 쉬게. 내일부터는 바로 부대 재정비에 들어갈 테니 말이야. 소대장들과 다즈는 소대원들 전력 파악해서 내일 나한테 보고해 주도록.”
“해산!”
* * *
“이러다가 이번 승리의 공이 전부 그놈에게 돌아가겠어.”
트라모레 평원 전투가 있고 일주일이 흘렀다.
제5군 회의실에는 앉아 있기에도 벅차 보이는 몸을 가진 사내가 화를 내고 있었다.
그는 의자를 내리치며 말을 이어 갔다.
“말해 봐. 이번 승리가 정말 그놈 한 명 덕분이야?”
그는 제5군의 원수인 게르밀이었다. 그의 포동포동한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패색이 짙어졌을 때 그의 활약 덕분에 전열을 유지하고 나아가 저희가 반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국군의 소드마스터 디르크도 그가 막았습니다.”
“제트, 그럼 자네는 전장에서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건가? 자네도 내가 가문의 입김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게르밀은 제트의 말에 얼굴이 더 붉어졌다.
“아닙니다. 그자가 어떻게든 제국군의 공격을 막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게르밀 님의 지휘가 없었더라면 저희 군의 반격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때 1보병대장이 잽싸게 말했다.
“그러한가? 하긴 이 몸의 지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지. 수도로 보낼 보고서는 그렇게 보내도록 하게.”
게르밀은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싱글벙글한 모습이었다.
“아마 아버님께서도 원수님의 활약을 듣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기병 부대장이 말하자 그의 입은 귀에 걸릴 것 같았다.
“아버지가 날 인정해 주시겠군.”
그의 누런 이는 보는 이의 기분을 당장이라도 나쁘게 했다.
‘어찌 이런 지경이 되었는가? 이렇게 해서 어떻게 제국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제트는 게르밀과 그 밑의 부대장들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가 얼른 보고를 올리고, 각 부대는 보급받고 정비 끝나는 대로 바로 진군 준비하게. 승기를 잡았을 때, 더욱 몰아붙여야지.”
게르밀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더 많은 공을 세울 생각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