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45
45
참전 (6)
“전군, 진격!”
게르밀은 확성용 수정 구슬을 통해 전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둥. 둥. 둥.
그에 맞춰 커다란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척척.
병사들은 북소리에 맞춰 질서정연하게 진격했다.
그 모습은 대륙의 양대 국가 중 하나인 프로드 왕국의 군사력을 알 수 있게 했다.
“말을 타는 자세가 1, 2년 탄 솜씨가 아니군?”
엘런이 말을 타는 것을 본 제트는 감탄했다.
기사들은 사관 아카데미 때부터 승마술을 배운다. 하지만 주로 마차를 타고 다니는 마법사들은 따로 승마술을 배우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에 용병이었던 엘런은 마차를 타고 다니는 일보다 말을 타고 다닐 일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그는 임무 수행을 위해 승마술을 배웠다.
“스승님께 따로 배웠습니다.”
“초임 마법사들이 오면 매번 말 타는 것부터 가르치는 게 골치 아팠는데, 자네는 정말 마음에 쏙 드는군.”
“과찬이십니다.”
제트는 지금까지 부대로 전출을 온 마법사들을 보며 많은 문제점을 느꼈다.
‘턱없이 부족한 실전 능력, 군대라는 조직에 대한 부적응, 그러면서도 오만한 놈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어디서 저런 녀석이 나왔을까?’
엘런은 전쟁에 특화된 마법사 같았다.
뛰어난 전술과 전장에서의 빠른 상황 판단, 부하들을 이끄는 리더십 그리고 마법 능력까지, 그는 전투에서 필요한 모든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상급 부대에나 배치받는 전투 마법사가 이 말단 부대까지 온 것 같군.’
한편, 제트가 엘런에 대해서 속으로 칭찬하고 있을 때 그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분명 트라모레 평원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역사가 바뀌었다. 그런데 전쟁의 진행 상황은 똑같이 흘러가는 것이지?’
엘런은 이번 진격 작전을 들었을 때 의아했었다.
물론 큰 전투에서 승리했고 병사들의 사기도 최대로 올라 있는 상태였다.
이 상황에서 적국의 주요 도시를 치러 가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전투 또한 엘런이 이미 겪은 전투였다는 것이다.
과거에는 트라모래 평원 전투에서 패배한 프로드 왕국이 전세를 뒤집기 위해 고센 제국의 로슈를 급습했다.
‘멍청한 원수가 어떻게든 자신의 실수를 무마하려고 무리수를 던진 거였는데.’
이번에는 전투에서 승리한 프로드 왕국이 로슈를 공격하러 가고 있었다.
역사의 부분을 바꿨지만, 그 커다란 흐름은 바뀌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나에게는 잘된 일이겠지?’
미래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엘런의 경험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번 전투의 경과도 알고 있었다.
20여 년을 지니고 살았던 등판의 커다란 검상이 바로 이곳에서 얻은 것이었다.
‘로슈로 향하는 길에 있는 비명의 협곡, 아니지 지금 이름은 르와투르 협곡인가?’
프로드 제5군의 로슈 급습은 이미 고센 제국이 파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로슈로 가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르와투르 협곡에 매복해 있었다.
프로드군이 협곡으로 들어왔을 때, 그들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마법을 정통으로 맞아야 했다.
그 후에 그 협곡에서는 아직도 프로드군의 비명이 들려온다는 말이 돌았다.
물론 르와투르 협곡은 누가 보아도 매복 공격하기에 적격인 곳이었다. 이는 프로드군의 참모진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사전에 정찰대를 보내 조사를 했다.
하지만 정찰대는 그곳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거기에 개미굴 던전이 있을 것이라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어?’
고센 제국은 르와투르 협곡 전역에 걸쳐 연결된 던전을 발견했다.
던전의 입구는 작정하고 탐지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잘 숨겨져 있었다.
제국은 협곡의 전략적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 던전을 비공개로 소탕하고 전시를 대비해 비밀 매복지로 바꿔 놓은 것이다.
“원수님, 로슈에 도착하기 전에 꼭 지나가야만 하는 협곡이 있습니다. 여기 보이는 르와투르 협곡인데 매복하기에 너무나도 적합한 장소입니다.”
게르밀의 부관이 지도를 보며 그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조사를 하고 가자는 것인가? 적들은 저번 전투의 패배 때문에 혼비백산해 있을 테니 하루라도 빨리 공격해야 할 텐데.”
그의 말에 부관은 속에서부터 올라오는 욕설을 눌러 담았다.
아무리 가문의 덕으로 올라온 자리라고 해도 자리가 사람을 만들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몇 년 동안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게르밀 님의 말씀이 백번 옳습니다. 하지만 제가 용맹함이 부족해 겁이 나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정찰조를 보내고 바로 따라붙으면 진군 속도에도 크게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부대 한번 고려해 주십시오.”
오히려 변한 것은 자신의 태도였다.
어떻게 행동해야 게르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는지만 알게 되었다.
“하하하, 자네는 남자가 돼서 그토록 배포가 작단 말인가? 그러니 20년 가까이 군에 있으면서 아직 그 자리에 있지.”
‘나는 네놈과 달리 뒷배가 없어서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부관은 이 생각을 머릿속에 남겨 놓을 수밖에 없었다.
게르밀은 커다란 몸을 일으키며 말을 이어 갔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내가 어찌 무시할 수 있겠는가. 각 부대장을 모으도록.”
“예.”
게르밀의 명령을 들은 전령들이 각 부대로 달려갔다.
1, 2보병부대, 기병부대 그리고 마법 부대장이 모두 모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로슈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르와투르 협곡을 통과해야 하네. 즉 매복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지. 그래서 정찰조를 편성하겠네.”
“마법 부대 정찰소대인 2중대 3소대를 보내겠습니다.”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제트였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엘런에게 부탁을 들었다.
3소대원들에게 조사 진영을 가르쳤으니 실전에서 익히게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엘런에 대한 무한한 신뢰감과 마법 부대의 전력 강화를 위해 그는 그 부탁을 받아들였다.
“그래, 그럼 마법 부대에서 정찰조를 보내는 것으로 하지.”
게르밀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1보병 부대장 토니가 손을 번쩍 들었다.
“원수님, 정찰은 본래 보병의 임무입니다. 마법사들은 그저 보조하는 역할입니다. 이번 정찰조는 저희 1보병 부대에서 맡겠습니다.”
제트가 토니를 째려봤다. 하지만 토니는 씨익 웃을 뿐이었다.
‘마법 부대에 공을 다 뺏길 수 없지.’
1보병부대는 트라모래 평원 전투에서 마법 부대의 활약에 비교해 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토니는 공치사가 모두 마법 부대로 돌아가는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보고서에 올릴 거리를 만들려는 목적이었다.
“하긴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럼 1보병부대에서 정찰조를 맡도록 하게. 마법 부대에서는 보조 임무를 할 인원을 몇 명 파견해 주도록.”
토니는 평소 게르밀의 비위를 가장 잘 맞춰 주는 부하였다. 그래서 그는 너무나도 쉽게 토니의 손을 들어 주었다.
“예. 그럼 2중대 3소대 중 인원을 추려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제트는 그런 토니의 속셈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주요한 임무가 아닌 정찰조에서 굳이 원수에게 반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또한, 일부만이라도 실전 연습을 하고 오는 것으로도 부대 전력 강화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아니, 제트 자네는 나한테 너무한 거 아닌가?”
갑자기 토니가 시비를 걸듯 제트에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트는 그런 토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내가 모를 줄 아는가? 2중대라고 하면 마법보조사들이 아닌가?”
그 말에 제트의 표정이 더욱 굳었다. 토니는 턱을 치켜들었다.
“이토록 주요한 임무에 마법보조사가 뭔가? 시원하게 마법사로 보내 주게.”
“좀 적당히…….”
“그래, 마법 부대장. 신속한 임무 수행이 필요한 만큼 마법사를 파견하게.”
제트가 입을 열려는 순간, 게르밀이 그의 말을 가로챘다.
“원수님, 마법보조사라고는 하나 그들은 지금까지 정찰 임무를 수행해 오던 이들입니다. 정찰에서는 마법사들보다 훨씬 더 신속할 것입니다.”
쾅.
게르밀은 지도가 펼쳐져 있는 탁자를 내리쳤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그의 미간을 꾹 눌렀다.
“제트, 너는 지금 나를 무시한 것이냐?”
책상을 치고 미간을 누르는 것은 그가 극도로 자존심이 상했을 때 나오는 행동이었다.
“아닙니다, 원수님. 제 말은 그저…….”
“도대체 내가 무엇이 틀렸다는 것인가?”
제트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원수님의 판단이 옳습니다. 마법사를 보내는 것이 더욱 신속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서 토니에게 선수를 빼앗긴 2보병대장 힐이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모두가 이렇게 말을 하는데 어째서 자네만 고집을 부리고 있는 것인가?”
‘하나같이 엉망이로군.’
“알겠습니다. 1보병부대로 마법사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제트는 체념한 듯 말했다.
멍청한 지휘관과 아첨꾼들밖에 없는 이 부대가 운영되는 것조차 의문이었다.
“그럼 그렇게 알도록 하겠네. 1보병부대장과 마법 부대장은 돌아가는 대로 정찰조를 편성해서 출동시키도록.”
“예. 알겠습니다.”
* * *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1중대장 험프리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경들이 들은 대로네. 정찰조는 1보병부대에서 맡도록 했고 그곳에 1중대 인원을 보내기로 했네.”
“어떻게 고작 정찰 임무에 마법사가 간단 말입니까? 그러라고 있는 것이 마법보조사가 아닙니까?”
옆에 있던 부관도 험프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수님 지시 사항이니 그대로 따르도록 하게. 토니 그 친구, 우리를 견제하는 것 같더군.”
‘역사의 큰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고 해서 역사의 부분이 그대로인 것은 아닌가 보군.’
황당한 것은 엘런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에는 분명 2중대 3소대가 정찰 임무를 맡았었다. 만약을 대비해 적절한 핑곗거리로 제트에게 정찰 임무를 부탁까지 했다.
정찰을 가서 그들의 매복을 발견하기만 하면 현재 상황을 훨씬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다.
‘공에 눈이 먼 놈들.’
엘런은 회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어도 그 상황이 눈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이 부대의 지휘관 중 제정신이라고 할 만한 사람은 제트밖에 없었다.
그 혼자서 얼마나 고생했을지 예상이 갔다.
‘미리 발견하는 것은 이제 글렀고, 독자적인 방법을 생각해야 하나?’
그렇다고 마냥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르와투르 협곡을 또다시 비명의 협곡으로 만드는 것은 피해야만 했다. 그의 머리가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
“원수님께서 그러셨으면 방법이 없겠습니다. 1중대에서 마법사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겠지. 자네가 적절한 인원을 뽑아서 보고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