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48
48
역전재판 (1)
“사베, 자네 대원수님을 맞을 준비 다 했나?”
“그건 자네가 알아서 좀 해 주면 안 되는가? 알다시피 나는 내일 중요한 일이 있으니 말이야.”
사베는 각종 군사 규정을 찾아보고 있었다.
내일 있을 군법회의.
그때 제트와 엘런을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그 모습을 본 바젤은 헛웃음이 나왔다.
사베가 이토록 집중한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내일 그들을 처리하는 것이 좋은지 잘 모르겠네.”
바젤은 몸을 돌리며 지나가듯 툭 던지며 말했다. 그라면 분명히 놓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내일 군법회의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건가?”
바젤은 속으로 웃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듣고 본인의 의견인양 게르밀에게 보고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게나. 그들을 가둬 둔다고 해서 그들의 활약이 감춰지지는 않는단 말이네. 오히려 부대 내에서 소문만 왕성해질 뿐이겠지. 나 같으면 더 결정적일 때를 노릴 것 같군.”
“결정적일 때라면?”
평소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던 바젤이었다. 그런 그의 말을 들으니 솔깃해지는 것 같았다.
“바로 대원수님께서 참가하는 군법회의야. 그곳에서 그들의 죄를 드러내는 것일세. 그렇다면 대원수님께서는 그들의 공을 치하하는 것을 보류하시겠지. 우리의 실책도 드러나지 않고 말이야.”
바젤은 일부러 ‘우리의 실책’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그의 예상대로 사베는 거기서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군. 역시 자네는 치밀하단 말이야. 하지만 대원수님께서 우리의 억지스러운 재판을 보고 가만히 계시겠나?”
‘자신들도 이것이 억지라는 것은 알고 있나 보군.’
바젤은 사베가 보고 있던 규정집을 가리켰다.
“그러니 시간이 더 필요한 것 아니겠나? 규정은 어떻게 이용하는가가 더 중요하지. 이를테면 저들은 독자적으로 군사조직을 움직였네. 전시임을 고려하면 심각한 군사적 위협이 될 수 있지.”
바젤은 사베가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았다.
바젤의 말에 어느 정도 설득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군. 빠져나갈 틈 없는 완벽한 판을 만들어 대원수님 앞에서 심판받게 해야겠어. 내친김에 그들의 공까지 우리가 가져가야겠군.”
사베는 곧장 게르밀에게 달려갔다. 그런 그를 본 바젤을 큰 한숨을 내쉬었다.
‘저토록 아둔한데 어찌 제5군을 맡길 수 있겠는가? 어찌 됐든 그들에게 시간을 벌어 주기는 했군. 이제는 다음 단계를 준비할 차례인가?’
* * *
“전원 차렷! 대원수님에 대하여 경례!”
그 말에 따라 양쪽으로 도열해 있던 병사들이 일제히 경례했다.
“다들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군.”
마차 안에 타고 있던 대원수 아카드는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다.
“어려운 전투에서 승리한 이들입니다. 그들의 눈빛에 사기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아카드가 부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마차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오는 이가 있었다.
“오, 오셨습니까? 제5군 원수 게르밀 즈벳이 인사드립니다.”
게르밀은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숨을 몰아쉬었다.
드르륵.
마차의 창문이 열렸다. 그것을 본 게르밀은 얼른 자세를 고쳐 잡았다. 어릴 적부터 그를 야단치던 아카드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너의 아버지와는 자주 뵈었는데 이렇게 너를 보는 것은 오랜만이구나.”
그 말을 하는 아카드의 표정은 그리 반가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도 게르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능력도 없으면서 즈벳 가문의 입김으로 현재의 자리를 겨우 지키고 있는 인물, 그것이 아카드가 그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저의 아버지를 반이라도 닮았으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을 것을.’
그의 아버지 알렉스 즈벳은 프로드 왕국의 대제독이었다. 그는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유능한 지휘관이었으며 평소 공과 사가 확실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유일한 실수가 바로 저 게르밀이었다.
그는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겠냐는 생각으로 무능한 자기 아들에게 지휘권을 준 것이다.
‘아직 이러고 있으니 그분도 결국 후회했었지.’
원수라는 자가 격식도 없이 헐레벌떡 뛰어나와 상관을 맞이하는 것을 보며 아카드는 씁쓸함을 느꼈다.
“대원수님, 일단 여독을 푸시지요. 여기 계시는 내내 편안하시도록 저희가 준비했습니다.”
아카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게르밀은 연신 굽실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전시니 그런 것은 생략하겠네. 바로 로슈 점령 작전 회의나 시작하지.”
“예, 알겠습니다.”
게르밀은 주눅 든 표정으로 뒤로 돌아섰다.
그러다 뒤에 있던 사베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종이를 흔들어 보였다.
그의 의도를 알아차린 게르밀은 다시 몸을 돌려 아카드에게 다가갔다.
“대원수님, 혹시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군법을 어긴 이들의 재판을 실시해도 되겠습니까?”
“전시에 군법을 어기는 것은 중대하게 다뤄야 할 일이지. 웬일로 바른 소리를 하는구나?”
아카드는 원리와 원칙에서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특히 전시와 같은 비상 상황에서의 규율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예,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카드의 허가가 떨어지자 게르밀의 표정은 비릿하게 바뀌었다.
“제5군 참모진들과 각 부대장 그리고 레미를 불러오게.”
그는 사베에게 들은 계획을 떠올렸다.
사베는 그날 게르밀에게 달려가 바젤에게 들은 계획을 설명했다.
물론 바젤의 이야기를 쏙 뺀 채로 마치 자신이 생각한 것인 양 말했다.
‘이번 기회에 대원수님께 나의 가치를 확실히 보여 드릴 수 있겠군.’
그는 혼자만의 망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바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게르밀의 명령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참모진이 회의실에 모였다.
게르밀은 상석에 앉아 있는 아카드에게 눈짓으로 허락을 구했다.
“시작하게.”
“예. 작전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군 규율을 어긴 사건에 대한 군법회의부터 진행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치 미리 연습한 것처럼 바로 사베가 종이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제5군 마법 부대 소속 제트 카네로, 레미는 르와투르 협곡 진입 전 상관에게 어떠한 보고도 없이 독자적으로 군사 작전을 펼쳤다.”
종이를 읽던 게르밀은 고개를 들어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제트와 레미는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길길이 날뛸 것을 예상했지만 꿀 먹은 벙어리여도 괜찮았다. 그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조사해 본 결과, 이는 합리적인 증거도 없이 추측에 불과한 사실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다. 이에 그들은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예상하고 독자적인 행동을 하였다.”
아카드의 표정도 굳었다.
전시에는 명령체계가 더욱이 확립되어 있어야 했다.
추측에 의한 독자적인 군사 작전은 자칫 전투의 큰 패배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였다.
“이는 전시임을 고려했을 때, 군 기강에 중대한 위협을 나아가 전쟁의 승패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판단된다. 따라서 이들을 군사감옥에 투옥할 것을 명한다. 이의가 있는가?”
말을 마친 게르밀은 다시 그 두 명의 얼굴을 보았다. 그때 엘런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변론을 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주위에 있던 참모진들이 코웃음을 쳤다.
“평민 출신이 너무 나서는 것이 아니꼽긴 했었어.”
“네 녀석이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군법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엘런은 그들의 이야기를 완전히 무시하며 아카드를 쳐다보았다.
끄덕.
아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저희가 왜 독자적으로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었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5군 전체에 퍼져 있는 군 기강 해이와 비리 때문입니다.”
그의 말에 회의장이 술렁거렸다.
“저놈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억지를 부려도 유분수지, 지금 무슨 모함을 하는 것인가?”
하지만 게르밀의 반응은 여전히 침착했다. 자신이 이길 것이라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다.
“그 상황에서 저희가 아무리 작전을 설명한다 한들 듣지를 않았습니다. 사전에 정찰조를 보낼 때도 협곡 정찰에 특화된 형태의 구성이 아닌 자신들의 임의로 구성했습니다. 이 때문에 매복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자신들의 치부를 꺼내자 게르밀과 토니의 표정이 굳어졌다. 최대한 숨기고 싶은 이야기를 엘런이 꺼낸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한 것이었다. 이에 대한 답변 또한 준비되어 있었다.
“보병대 또한 정찰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부대이네. 나의 판단은 내 전술이 근거가 된 것이지 다른 이의 청탁이 있어서가 아니야.”
“물론 그것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른 분이 도와줄 겁니다. 준비한 것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엘런의 말이 끝나자 지금까지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젤이 일어났다.
“바젤, 자네가 왜?”
옆에 있던 사베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나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게.”
바젤은 사베의 집무실에서 발견한 장부를 꺼냈다. 그 장부를 본 사베의 눈은 찢어질 것 같았다.
엘런의 입가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사베와 게르밀은 과거에도 비리 문제로 직위를 해제당했었다. 그 문제가 밝혀진 계기는 바로 사베가 작성하던 장부가 하인에 의해 공개되면서였다.
엘런은 그가 전쟁 동안에도 장부를 작성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바젤과 함께 그의 집무실로 잠입해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과거에 그들이 처벌받을 때는 전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단순히 직위 해제 선에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이것은 제5군의 원수 게르밀 즈벳님과 그의 부관 사베 세넌의 비리가 기록되어 있는 장부입니다.”
바젤은 그것을 아카드에게 건네주었다.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그 장부의 정체를 아는 사베만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카드는 받아 든 장부를 읽어 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돈을 주고받은 내역뿐만 아니라, 누구를 어느 직위에 앉혀 준 것인지조차 적혀 있었다.
아카드의 표정이 확연하게 찡그려졌다.
“모함입니다. 그것은 제 것이 아닙니다.”
사베의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렸다.
그의 반응을 본 게르밀은 의아해했다.
“서, 설마? 사베, 자네!”
“모두 조용.”
아카드의 말은 회의장의 술렁거림을 한 번에 잠재웠다.
“이것은 마나로 써진 것이군. 검정 마법을 통해 바로 알아보도록.”
‘장부가 있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고, 그것을 어떻게 발견한 것이지? 최소 5서클은 되어야 풀 수 있는 잠금 마법이 걸려 있었는데?’
사베는 장부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마나를 사용해 내용을 기록했다.
그리고 항상 잠금 마법이 걸려 있는 가방에 넣어 놓았다.
제5군에서 그 마법을 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왜 저들의 손에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추가로 증인들이 있습니다.”
엘런의 말이 그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