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49
49
역전재판 (2)
“불러오도록.”
“유세르, 제5군의 비리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소?”
엘런이 1보병 부대의 소대장인 유세르를 불렀다.
“저는 1보병 부대 1중대 3소대장 유세르입니다. 3년 전 1보병 부대장으로 온 토니에 대해 의심스러운 점이 있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유세르의 등장에 토니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그는 자신이 오기 전부터 1보병 부대에 있었다.
그런 그가 입을 연다면 분명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일 게 뻔했다.
“1보병 부대장이 공석이 되었을 때, 원래는 현 1중대장인 도노반이 내정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직 발표 이틀 전, 갑작스레 원수의 지시로 토니가 지금의 부대장 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디서 모함을 하는 것이냐?”
토니가 벌떡 일어서며 유세르에게 삿대질을 했다. 그의 얼굴을 시뻘게져 있었다.
“지금부터 나에게 발언권을 받지 않고 말을 하는 자에게는 엄벌을 내리겠다.”
그를 제지한 건 아카드였다.
그의 말에 토니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아 버렸다.
“장부와 비교해서 딱 그때쯤 돈이 오간 내용이 있군.”
장부에는 유세르가 말한 시기에 토니에게서 게르밀에게 돈을 보낸 내역이 있었다.
그 옆에는 1보병 부대장이라는 글자도 적혀있었다.
“레미, 유세르말고도 비리 사건에 대해 증인이 더 있나?”
“예. 더 있습니다. 캔들, 말씀해 주시겠소?”
엘런이 다음 증인으로 캔들을 지목했다.
그 후로도 4명의 증인이 나왔다.
그들은 모두 소대장이나 중대장급 직위였다. 대부분이 돈도 없으며 집안의 작위가 있는 것도 아닌 평민 출신이었다.
엘런은 사베의 장부를 취득한 후, 곧바로 비리 인사가 있었던 부대의 평민 출신 간부들을 찾아갔다.
그들은 평소 부대 자체에 불만이 많았다.
게르밀이 오고 나서부터 진급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거나 집안이 좋아야 했다.
그 둘 다 없는 평민들은 실력이나 성과가 있어도 현재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덕분에 그들은 만년 소대장이나 중대장으로 남아 있었다.
엘런은 그들의 서러움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 이번 계획을 통해 그 썩어빠진 녀석들을 뿌리 뽑아 버리자고 제시했다.
그의 계획을 들은 그들은 동참하기로 한 것이다.
“저들의 말은 모두 근거가 타당한 것으로 보이는군. 여기에 대해 할 말이 있나?”
모든 증언을 들은 아카드가 게르밀과 사베를 노려보았다.
“그, 그것이…….”
게르밀은 이미 반쯤 넋이 나간 상태였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은 채로 말을 얼버무릴 뿐이었다.
“그 장부는 제 것이…….”
사베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너무 명확한 증거와 증언이 있었기에 변명을 할 여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자기 것이 아니라고 잡아떼는 것밖에 없었다.
“마나 검증 결과 사베 세넌의 것과 일치합니다.”
그때 아카드와 함께 온 마법사가 장부의 마나 검정 결과를 그에게 말해 주었다.
그 말에 사베는 억장이 무너졌다.
“더는 들을 필요도 없겠군. 돈을 준 자들은 할 말이 있는가?”
아카드는 토니를 포함해 돈을 주고 직책에 오른 이들에게 물었다.
“…….”
하지만 그들도 말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엘런이 손을 들었다.
“혹시 제가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해도 좋다.”
발언권을 받은 엘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제5군으로 발령받은 지 두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너무나도 많은 비리를 목격했습니다. 돈도 없고 가문도 없는 이들은 능력을 갖췄음에도 기회를 받지 못했습니다.”
주위에 있던 평민 출신 간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반해 귀족 출신이나 돈이 많은 간부들은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에게 어떤 조치가 따를지 두려워하는 이도 있었다.
“만연한 비리 때문에 우리 부대는 궤멸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마법 부대장이 저의 의견을 들어 주지 않았다면 제5군은 그렇게 협곡에서 전멸했을 것입니다. 독자적인 작전은 규율에 어긋나는 게 맞습니다.”
잠시 엘런을 숨을 골랐다. 그 잠깐의 정적 동안 그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저희가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무능한 지휘관 때문에 부대원 전부가 죽어야 하겠습니까? 애초에 실력대로 성과대로 진급했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짝짝짝.
일부의 간부를 제외한 회의장에 있는 모두가 엘런의 말에 박수를 쳤다.
‘지난 두 번의 전투에서 전술 지휘와 전투 능력에서 가장 큰 활약을 보여 줬다는 것이 사실이었구나.’
아카드는 무인이지만 대원수로서 정계에도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는 단번에 현재 상황을 유추했다.
‘게르밀의 계획을 역으로 이용했군. 게다가 여론까지 가져가는 게 아주 노련한 정치꾼 같아.’
그는 엘런에게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이는 어렸지만, 그에게 신체적인 나이는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판결을 내리지.”
아카드가 입을 열자 회의장에는 무거운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원래 이 군법회의는 제트 카네로와 레미에 대한 판결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들보다는 게르밀 즈벳과 사베 세넌에 대한 판결로 바꿔야 할 것 같군.”
게르밀과 사베는 여전히 벌벌 떨고 있었다.
“평시에도 그렇지만 지금과 같은 전시 상황에서 군사 비리는 중죄이며 이는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 특히 이 비리가 과거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최근까지도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은 용납될 수가 없다.”
실제로 사베의 장부에 적힌 마지막 날짜는 바로 이틀 전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단순히 매관매직을 한 것이 다가 아니었다.
군사비를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등 전 분야에 걸쳐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의 비리는 너무나도 많아 일일이 말로 읊을 수조차 어렵다. 이에 왕명을 대신해 왔으며 군의 총책임자인 본 대원수는 그들에게 처형을 명한다.”
“처형이라니요?”
“대원수님, 처형이라고 하셨습니까?”
아카드의 처분을 들은 두 명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설마 처형이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대원수님, 처형은 너무나도 가혹한 처분입니다.”
“게르밀은 즈벳 가문의 자제입니다. 귀족의 자제를 처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합니다.”
다른 귀족 출신 간부들도 게르밀의 말에 동참했다.
“그들은 귀족임과 동시에 군인이다. 군의 총책임자로서 이런 사실은 도저히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아카드의 말에 그들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렸다.
목숨의 위협을 느껴 본 적이 그리 많지 않았던 그들은 지금의 두려움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특히 전시인 만큼 즉결 처분의 권한을 사용할 수도 있겠으나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겠다. 왕궁으로 돌아가 재조사를 거친 후 처분을 명하도록 하겠다.”
그 말은 재조사에서도 죄가 그대로 나온다면 예정대로 사형을 진행하겠다는 말이었다.
이토록 명백한 증거가 있으니 재조사를 해도 결과는 같을 것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두 명은 급기야 무릎을 꿇었다.
“대원수님, 한 번만 봐주십시오.”
퍼억.
아카드는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은 게르밀을 발로 차 버렸다.
“더는 군인으로서 수치스러운 행동을 하지 마라.”
게르밀은 입안이 터져 흘러나오는 피를 보면서도 입을 꾹 다물었다.
다른 귀족들도 입을 다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카드의 말대로 전시에서 대원수의 명은 왕명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다음으로 직위를 산 자들은 당장 직위 해제를 명한다. 저들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는 수도로 돌아가 조사를 더 한 후 정하도록 하겠다. 전부 여기서 끌어내.”
아카드의 명령에 그와 함께 온 부관들이 비리를 저지른 간부들을 끌고 나갔다.
“안 됩니다. 대원수님.”
“저희가 없으면 전력의 큰 누수가 생길 것입니다.”
끌려 나가는 와중에도 그들은 발버둥을 쳤다.
마지막까지 추한 모습이었다.
“너희들 같은 놈들이 있으면 전력에 더 큰 누수가 되겠지. 끝까지 입만 살아서 말이야.”
‘이 사람, 행동력이 상상을 뛰어넘는걸?’
엘런은 현재 상황에 당황하고 있었다.
물론 자신이 계획한 일이긴 하지만, 이토록 빠르고 결단력 있는 조치가 이루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음으로 공석이 된 자리들과 논공행상을 동시에 진행해야겠군. 그리고 바로 로슈 점령 계획에 대해 세우기로 하지.”
아카드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상석에 앉으며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직책은 철저한 조사를 통해 신중히 뽑을 것이다. 5군의 대대적인 개선이 될 수도 있겠지. 아, 그리고 저 자식들도 여기서 끌어내.”
아카드는 말하다 말고 아직 바닥을 기고 있는 게르밀과 그 옆에 있는 사베를 보며 말했다.
그들도 곧 아카드 부관들의 손에 질질 끌려 나갔다.
“하지만 현재 로슈의 점령이 우선시 되어야 함이 틀림없다. 그러니 이번 전투에 한해 임시적인 직책을 부여하겠네.”
아카드는 이곳에 오면서 읽어보았던 전장 보고서를 꺼내 놓았다.
1, 2 보병부대장과 원수와 그의 부관 2명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임시로 1, 2 보병부대장은 1중대장들이 맡기로 한다. 그리고 부관은 2명은 당장은 비워 놓아도 되겠군. 다른 부대장들이 보조하는 것으로 한다.”
원수의 자리만이 남아 있었다. 회의장에 남아 있는 이들은 아카드의 입에 집중했다.
“원수를 뽑는 것은 훨씬 더 신중해야 할 일이니 보류하도록 하겠다.”
그의 말에 회의장을 두르고 있던 긴장감이 갑작스레 새 버렸다.
하지만 그 말이 맞았다. 원수라는 자리는 덜컥 누구에게 주기 어려운 자리였다.
“하지만 원수를 대신해 이번 로슈 점령 작전을 총지휘할 사람이 필요하겠지.”
아카드의 입가에 흥미로운 미소가 서렸다.
“레미, 네놈이 이번 작전을 맡아라.”
순간적으로 회의장에는 숨소리 하나조차 들리지 않았다.
“예?”
이번에는 엘런조차도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네 녀석이 지휘해 보라고, 로슈 점령 작전 전체를.”
그제 서야 주변에서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 웅성거림은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내 회의장은 해리포드의 시장바닥같이 소란스러워졌다.
“모두 조용!”
그랜드 마스터의 사자후는 장내를 모두 침묵하게 만들었다.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다 알고 있다. 경험이니, 나이니, 직책이니, 전통이니 그런 소리를 해 대겠지. 그런데 말이야, 나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군.”
아카드는 얼이 빠져있는 엘런을 가리켰다.
“여기 모여 있는 녀석들 중에서 저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녀석이 있나?”
간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카드의 사자후의 여파가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반박할 말도 없었다.
그만큼 두 번의 전투에서 엘런의 활약을 독보적이었던 것이다.
개중에서 입이 씰룩거리는 이도 있었다.
아카드는 그런 이들을 한 번씩 노려보는 것으로 그들의 입을 막아 버렸다.
“그래, 다들 이의가 없는 것 같군. 레미, 이번 작전을 잘 부탁하네.”
아카드가 엘런에게 손을 척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