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51
51
반격 (2)
척.
대열의 가장 전방에 서 있던 베르무트가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제국군은 거의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는 커다란 돌문이 있었다. 그것은 르와투르 협곡 개미굴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들어가지.”
베르무트의 명령하자 마법사 한 명이 문에다 마나를 주입했다.
쿠르릉.
그의 마나가 주입되자 문은 커다란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제국군은 익숙하다는 듯 열린 통로로 들어갔다. 던전은 몇백의 병사가 한 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넓었다.
쿠르릉.
병사들이 모두 던전 안으로 들어오자 마법사가 문을 닫았다.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음에도 벽면에서 자체적으로 나오는 빛 덕분에 던전 안은 어느 정도 밝았다.
“빠르게 중앙 홀까지 진격한 후, 저번 전투에서 지정해 준 위치로 간다.”
“예!”
베르무트의 지시에 따라 제국군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머지않아 중앙 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르무트가 중앙 홀로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뭔지 모를 위화감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장군님, 왜 그러십니까?”
그런 그의 모습을 본 부관 하나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닐세.”
‘나도 긴장한 것인가?’
그는 그 위화감이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각했다.
병사들은 베르무트를 따라 중앙 홀에 집결했다.
홀 벽면에는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은 르와투르 협곡 곳곳과 이어진 통로였다.
후우웅.
베르무트가 병력의 분산을 명령하려는 순간, 커다란 돌덩이들이 중앙 홀로 날아왔다.
그 수는 족히 100여 개는 넘었다. 동시에 조금 전 그들이 들어왔던 입구에 커다란 바위가 솟아났다.
“아니?”
베르무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입술은 자신도 모르게 움직였다.
콰앙!
곧 그 수많은 돌덩이가 병사들에게로 떨어졌다.
“피해.”
“으아악!”
돌덩이에 깔린 병사들의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하지만 여전히 베르무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수많은 전장을 겪었지만, 이토록 당황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저들이 어떻게 여기에!”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통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프로드군이었다.
그중에서도 엘런의 모습은 똑똑히 눈에 들어왔다. 엘런이 들어 올린 손을 내렸다.
후우웅.
그의 손짓에 맞춰 돌덩이가 재차 날아왔다. 이번에도 수는 여전했다.
“나를 수호할지어다, 프로텍트.”
그때 정신을 차린 제국의 마법사들이 급한 대로 프로텍트 마법을 펼쳤다.
콰앙.
급조한 마법인 탓에 금방 깨져 버렸다.
하지만 프로텍트 덕분에 조금 전보다는 피해가 덜했다.
“젠장,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제 서야 베르무트도 정신을 차렸다. 단 한 번도 전장에서 넋을 놓은 적이 없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대처해야 했다.
“고위 마법사들이 방어 마법을 펼쳐. 그리고 하위 마법사들과 궁수들이 적들을 견제한다. 보병들은 즉시 지정해 준 통로를 점령한다.”
베르무트는 짧은 순간에 상황을 파악하고 지시를 내렸다.
엘런은 저 상황에서도 최선의 전략을 선택하는 베르무트와 그에 따라 움직이는 제국군을 보고 놀랐다.
‘그렇다고 마음대로는 안 되지.’
하지만 엘런도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아무리 베르무트라도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선택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 뿌려.”
홀에서 통로로 올라오기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했다.
엘런에 지시에 따라 보조사 부대가 계단 위에 그리스 마법을 사용했다.
“강인함을 품을지어다, 스톤.”
제국군 보병대에 포함된 마법사들은 병사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마법을 사용했다.
“창병들 준비하고 궁병들 발사한다.”
엘런의 목소리는 중앙 홀 전체에 울렸다.
다양한 통로에 각개로 퍼져 있는 병사들을 한 번에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마법사들은 내가 처리해야겠군.’
“저건?”
엘런의 자세를 본 자네트가 감탄을 내뱉었다. 그 자세는 트라모레에서 한차례 보여 준 적이 있었다.
‘매직 미사일.’
활대처럼 잡은 지팡이에서 검푸른 색의 빛이 쏘아져 나갔다.
피융.
“크헉.”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든 그 빛은 단숨에 제국군 마법사의 가슴을 관통했다.
엘런은 계단을 오르고 있는 보병대의 마법사들을 저격했다.
그리스를 막기 위해 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그들은 자신이 왜 죽는지조차 모르고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웅.
그와 중에도 돌덩이는 계속 중앙 홀로 날아오고 있었다. 엘런이 미리 빼놓은 마법사와 보조사들이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법이 없다.’
베르무트는 절망감을 느꼈다. 전장을 계속해서 훑고 있었지만 어떠한 탈출구도 보이지 않았다.
도망칠 통로는 처음부터 막혀 버렸다. 계단을 오르는 병력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공격 탓에 마법사들로 그들을 지원할 수도 없었다.
보병대에 포함된 마법사들에게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그’에 의해 마법사들이 무참히 살해당하고 있었다.
완벽한 패배.
지금까지 자신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는 지금 고작해야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에 의해 처음으로 그것을 경험하고 있었다.
‘도대체 저자는 정체가 무엇인가?’
베르무트는 기가 찼다. 지금까지 결단코 들어본 적도 없는 이였다. 저런 소년은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왔단 말인가.
‘드래곤인가?’
전설 속의 생물을 떠올릴 정도로 그는 독보적이었다.
이 통로는 제국군 외에 그 누구도 모르는 곳이었다. 어째서 그들이 여기에 와있는 것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통로의 존재를 아는 것보다 더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올 줄 어떻게 알았단 말이지?’
자신이 이곳에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그들의 본대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 후 움직였다.
그 움직임이 속임수였다면 이미 자신의 전술을 모두 꿰뚫고 있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베르무트의 무기력한 표정을 보자 제국군은 사기를 모두 잃어버렸다.
프로드군에게 그들은 그저 연습용 허수아비일 뿐이었다.
프로드군이 승리를 확정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병사는 전사했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았다.
“레미 님, 정말 대단하신 것 같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그 원수 놈이랑은 전혀 달라.”
“그분이 매직 미사일 쏘는 것만 생각하면 아직 등골이 오싹한다고.”
프로드군은 전에 없던 지휘관인 엘런에 대해서 떠들어 댔다.
“주목.”
엘런이 승전을 선언하기 위해 앞으로 나왔다.
“와아아아아.”
이제는 2중대뿐만 아니라 제5군 전체가 그를 찬양했다.
“그대들 덕분에 완승을 하였다. 다들 신속히 전장을 정리하고 이곳을 빠져나간다.”
프로드군의 함성이 더 커졌다.
그 모습을 보며 베르무트와 제국군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 * *
개미굴 던전에서 완승을 한 제5군은 곧바로 로슈로 진격했다. 그들이 로슈로 당도했을 때, 이미 그 안에는 엘런이 보냈던 선봉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레미 님, 도시에 별다른 점은 없었습니다. 시민들도 도시를 비운 지 오래된 것 같았습니다. 또한, 창고에는 식량이나 물품들도 전혀 없었습니다. 영주 성을 포함해 모든 건물은 이미 저희가 확보했습니다.”
엘런이 입성하자 선봉대장이 로슈의 상황을 보고했다.
“수고했네.”
엘런은 그의 어깨를 툭 쳐 주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승전과 로슈 점령을 알릴 전령을 보내라. 그리고 곧바로 베르무트의 처형을 준비하도록. 처형은 비공개로 진행할 테니 묶어놓기만 하고 나머지는 제국과의 포로 거래를 위해 가둬 두어라.”
“예.”
프로드군은 베르무트를 제외한 나머지 참모진들을 모두 영주 성의 지하 감옥에 가둬 두었다.
그리고 베르무트만 따로 지하 취조실에 데려다 두었다.
‘내가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군.’
병사들의 손에 끌려온 베르무트는 자조적인 웃음만을 보였다.
퍽.
병사 한 명이 그의 오금을 찼다.
털썩.
두 손이 묶여 있는 그는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됐어, 자네들도 다들 나가 봐.”
취조실로 들어온 엘런이 병사들을 모두 물렸다.
“예.”
군기가 바짝 들어있는 병사들은 절도 있는 발걸음으로 취조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것을 확인한 엘런은 베르무트를 일으켜 세웠다.
“무혈장군 베르무트 경, 저들의 무례한 대우는 용서해 주시오.”
“큭, 곧 처형될 이에 대한 예우인 것이오?”
베르무트는 엘런의 태도에 코웃음을 쳤다.
“그렇게 보였소? 일단 여기 앉으시지.”
엘런은 그에게 의자 하나를 건네주었다. 베르무트는 비틀거리는 모을 가누며 의자에 앉았다.
“당신은 내가 처음이겠지만, 나는 당신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소. 번뜩이는 전략과 때로는 인간성을 상실한 것만 같은 효율적인 전략. 나는 당신의 그 모든 것을 배우고 싶었소.”
“승리한 자의 여유인 것이오? 승자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이지. 그 승자에게 내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소?”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내 계획을 눈치챈 것이오? 우리 중에 첩자가 있었던 게요?”
하지만 엘런은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첩자가 있냐고 물었소. 난 이 전략에 승리를 확신했었소.”
결국, 입을 연 것은 베르무트였다.
“첩자가 있는 것은 아니었소. 그대의 부하들은 모두 충직했지.”
엘런의 말을 들은 베르무트의 표정인 한결 편안해졌다.
“그렇다면 내 계획을 간파당했다는 것이오?”
이번에도 엘런은 입을 닫았다.
그 모습에 베르무트는 답답해했다.
“해 줄 말이 없나 보군. 뭐 되었소. 내 부하 중 첩자가 없었다는 것으로도 난 만족하니.”
그제야 입을 연 엘런의 말은 그가 원한 대답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대의 능력은 너무나도 유능하오. 그대가 나와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소.”
“참 나, 고작 그런 걸 말하고 싶었던 것이오? 거기에 대해서 나는 할 말이 없소.”
“그대는 여기서 죽기에 너무 아까운 인물이오. 나와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여는 것이 어떻소?”
이번에는 베르무트가 입을 다물었다. 그는 비인간적인 지휘관이었지만 제국을 향한 충성심만큼은 누구보다 컸던 자였다.
엘런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더는 그를 설득할 수 없음도 알았다.
스르릉.
그는 칼을 뽑아 들었다. 베르무트는 체념한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당신은 내가 어떻게 전략을 알았냐고 물었지?”
엘런은 칼끝을 바닥으로 향한 채 베르무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미 20여 년 전에 보았던 전략이기 때문이오. 난 미래에서 왔거든.”
그 말에 베르무트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믿을 수 없군.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되질 않으니 믿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 죽기 전에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소?”
“뭐든지. 내 비밀을 말해 준 시점에서 당신은 모든 것을 들을 수 있소.”
“이 전쟁의 승패는, 내가 생각한 것과 똑같소?”
하지만 엘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씁쓸한 미소만을 보여 줄 뿐이었다.
그 미소를 본 베르무트는 고개를 떨구었다.
“부디 그대가 알고 있는 미래가 틀리길 바라겠소.”
투욱.
그와 동시에 베르무트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